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345)
홈플레이트의 빌런-346화(346/363)
< 346화 Wild wild east (3) >
1
수비 시프트 사인은 벤치에서 나올 수도 있고 포수에게서 직접 나올 수도 있다.
현 2030년 메이저리그의 포수 기근은 벤치에서 나오는 사인에서 기인하는 바가 있다는 비판도 있다.
고교나 대학 그리고 프로 레벨에서조차 승패에 대한 부담감 혹은 욕심 때문에 포수가 직접 사인을 내는 경험을 쌓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수비 시프트 외 볼 배합도 마찬가지다.
특히 고교 혹은 대학에서 볼 배합 사인을 코치가 직접 내는 것이 포수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이야기다.
블로킹, 송구, 포구 등의 기본기 외에도 포수는 경기를 총괄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경기 보는 눈을 직접적으로 향상시킬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1루 측으로 전체적으로 이동. 외야수들은 전진.’
홍빈은 과감한 수비 시프트를 지시했다.
크레익 벨터의 키워드는 선구안, 호타준족, 인내심, 금강불괴.
스프레이 히터 키워드가 있는 선수는 아니지만 타구의 방향에 눈에 띄는 일관성은 없고, 그럼에도 수비 진영을 움직인 것은 이 타자의 컨디션이 좋지 못해 패스트볼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점을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레드 빈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군요.”
“하하. 저건 샘 이델의 전매특허 같은 모습인데요.”
“꽤 구체적으로 내야수들의 깊이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레드삭스가 시프트로 재미를 꽤 봤는데, 오늘 여러 의미로 포수 대결이 벌어지게 됐군요.”
평소보다 큰 동작으로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것은 경기를 보는 모두가-해설자를 포함해서- 이걸 알아차리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ㅇㅅㅇ: 네 녀석은 역시 타고난 관종…….
타자들이 수비 시프트에 계속 당하면 심리적으로 쫓기게 된다.
평소라면 안타가 됐을 텐데. 빌어먹을 시프트.
홍빈의 행동은 그걸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평소에도 시프트를 지시하기는 하지만, 월드시리즈 1차전 같은 큰 무대에서는 사기가 무척 중요한 법.
샘 이델이 진지한 얼굴로 세세하게 시프트를 지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또 당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을 가졌던 타자들이, 홍빈의 그런 모습을 보고 레드삭스도 마찬가지로 당하게 될 거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패스트볼 타이밍을 전혀 못 맞추고 삼진을 당한 이놈에게는…….’
그런 쇼를 한 뒤라면 결과가 따라와야 한다.
여기서 만약 시프트를 뚫어 내는 안타가 나온다면 지금까지의 퍼포먼스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지도 모른다.
‘초구는 몸 쪽, 높은 존 안쪽 포심.’
일단 미끼를 던진다.
“스트라이크!”
98.7마일 포심 패스트볼이 존 안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고, 타자가 살짝 불평한다.
“조금 높게 봤는데, 제가 잘못 본 걸까요?”
“잘못 봤겠지.”
삼진을 당했던 첫 타석과 방금의 초구까지 4구 중 3구가 패스트볼.
충분히 머릿속에 포심 패스트볼이 심어져 있을 것이다.
모험 수를 내놓아야 할 차례고, 컨디션과 집중력이 저하된 이 타자가 적절한 상대다.
‘만약 외야로 날아가고 전진 수비 된 외야수들의 키를 넘기기라도 한다면…….’
골치 아파지겠지만 홍빈은 짐에게 또 패스트볼 사인을 냈다.
‘완전히 제구에만 신경 써서 몸 쪽 낮은 코스. 구속은 신경 쓰지 말고.’
홍빈의 생각대로만 된다면 스윙 타이밍이 더 빨리 나올 것이고, 이미 스윙이 나간 후에 영 좋지 못한 임팩트가 이루어져 케이스가 있는 곳으로 타구가 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수비 시프트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빗나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딱!
홍빈의 사인에 전혀 의문을 표하지 않은 짐의 ‘제구에만 신경 쓴’ 94.4마일 포심 패스트볼을 때린 타구.
지나치게 앞쪽에서 히팅 포인트가 형성됐고, 생각한 것보다 늦게 임팩트가 이루어져 2루 방향으로…….
“아웃!”
타구 속도가 조금 느리긴 했지만 케이스는 잽싸게 앞으로 대시한 후 1루로 송구해 아웃을 따냈다.
“Whooooooooooo!”
“봤나, 샘 이델!“
“우리 포수가 이것도 네놈보다 더 잘한다고!”
홍빈은 아웃을 따낸 후 세리머니라도 하고 싶었지만, 침착한 모습을 보여야 했기에 자리에서 일어서 다시 수비 위치를 직접 세세하게 조정했다.
그리고 다음 타자, 첫 타석에서 좌익선상으로 좋은 타구를 날렸지만 진 테프먼의 호수비에 잡혔던 웨이드 스나이더의 타석.
딱!
“아웃!”
홍빈의 수비 시프트가 어떻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유격수 라인드라이브 아웃.
“Yah!”
에이머가 거의 선 자세 그대로 공을 잡아낸 후 소리치는 것을 들은 케이스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Oh my fucking god!! 레드 빈이 예언자인가 봐!”
그리고 다음 타자 위 잭슨에게는.
“스트라이크-아웃!”
뒤로 물러서는 수비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짐의 하이 패스트볼이 4구째 헛스윙을 끌어내 삼진.
이제 똑같이 갚아 준 필리스 선수들의 마음은 가벼워졌고, 되레 당한 레드삭스 선수들의 마음은 착잡해졌다.
2
“양 팀 포수들이 오늘 꿈에서 계시라도 받은 걸까요? 수비 시프트가 서로 크게 성공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레드 빈의 타격 실력을 보고 공격력만 좋은 포수라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닙니다.”
“그렇죠. 그는 기본적인 수비 실력도 톱클래스입니다. 필리스 더그아웃에서 사인이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미국으로 건너온 그의 나이와 그리고 엄청나게 짧았던 마이너리그 경력 때문에 믿기 힘들긴 하지만요.”
“마이너리그 시절 그를 지도했던 감독이 했던 말이 떠오르는군요.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은 사인뿐이라고요. 이미 완성되었던 선수라더군요.”
“심지어는 마이너리그 시절, 공만 빠른 평범한 유망주였던 짐 플로렌스의 투구 폼을 직접 뜯어고쳐 지금의 저 선수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역대 최고의 WAR을 기록한 2년 차 포수가 수비적으로도 완성되어 있다… 아니, 있었다. 이해가 안 갑니다만 이해하려고 해선 안 되겠죠.”
“그렇습니다. 우린 그냥 즐겨야 합니다. 뭐 어쩌겠어요? 이해할 수 없는 건 항상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 선수는 좀 심하게 이해할 수 없긴 하지만요. 제가 단장이라면 20년짜리 초거액 계약을 제시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돈을 줘서라도요! 20년이 지나도 이 선수는 지금 개빈 폴체스키보다 어릴 테고, 언젠가는 염가 계약이라고 말할 날이 올지도 모르죠!”
“저런 선수에게는 얼마를 줘도 합당해 보일 겁니다!”
3
[바비 댄스] [우투우타, 우익수] [키워드: 당겨 치기, 홈런, 어퍼 스윙, 호타준족]“헤이.”
“왜? 무슨 말을 하려고?”
“포심 패스트볼을 던질 거라는 말을 해 주려고.”
“뭐?”
케이스에게 1루 측으로 조금 더 움직이고 앞으로 뛰쳐나올 준비를 하라고 사인을 냈다.
“자료를 봤는데, 네 95마일 이상 패스트볼 상대 타율이 0.198이더라고.”
“젠장. 그래서 패스트볼을 던지겠다고?”
“그런데 98마일 이상이면 0.058로 줄어들더군.”
“오, 젠장.”
“맞아. 어차피 못 칠 거니까. 작전을 세울 필요도 없더라고.”
“좋아. 해 봐. 어디 한 번 해보자고.”
흥분했나?
나는 짐에게 존 안쪽으로 체인지업을 던지라고 사인을 냈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것이 보인다. 아니 뭐… 너무 싱겁지 않나? 말은 이렇게 했어도 다른 걸 던질 수도 있잖아?
탁!
패스트볼을 노리다 느린 공이 오니 배트 헤드 끝부분에 맞고 케이스의 앞으로 공이 날아간다.
“아웃!”
시프트가 성공할수록 사기가 오른다.
이번 이닝 선두 타자인 샘을 잡아내고 난 후에는 아주 난리가 났었지. 케이스가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한 표정을 지었었다.
ㅍㅅㅍ: 사기(詐欺)를 쳐서 사기(士氣)를 높이다니…….
뭐 어때. 좋지 않냐?
[로드니 데이먼] [좌투좌타, 중견수] [키워드: 인내심, 주력, 장타, 관심법]“혹시 커터 칠 줄 알아?”
“나만큼 잘 치는 놈은 이 바닥에 없을걸.”
“거짓말하지 마.”
“제기랄. Easy, boy.”
딱!
그런데 이놈은 내가 입을 턴 것이 민망하게시리 바깥쪽 패스트볼을 툭 밀어 쳐 에이머의 키를 넘겨 버렸다.
내야 안타를 대비해 살짝 당겼는데 조금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원래 시프트라는 것이 그렇다.
ㅡㅅㅡ: 정신 승리를 그런 식으로 하다니.
“코스는 맞았어! 운이 없었을 뿐이야!”
그리고 오늘 내 시프트에 완전히 불타 있는 케이스가 빽 소리를 지른다.
“자! 여기로 보내! 내가 병살을 따낼 테니까!”
ㅡ,.ㅡ: 저기에 정신승리 대장이 있었군.
…기분이 너무 올라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주머가 얼굴을 감싸 쥐며 웃는다. 의욕 과다 상태가 되니까 좀 보기 그렇긴 한데 웃기긴 하네.
그래도 처져 있는 것보단 훨씬 낫지.
2아웃 주자 1루.
[니키 반스] [우투좌타, 2루수] [키워드: 다이빙 캐치, 밀어 치기, 작전병, 승부욕]주자는 주력 키워드가 있고, 타자는 작전병 키워드가 있다.
2아웃에서 번트가 나오진 않을 테고.
장타력이 거의 없는 선수다 보니 안타를 때려 봤자 1루 주자는 2루나 3루까지 가는 게 고작일 거다.
게다가 다음 타자는 투수.
오늘 같은 날의 짐을 상대로 투수가 안타를 뽑아낼 거라고(그것도 평소에 타격을 거의 하지 않는 아메리칸 리그 투수가)는 기대하지 않을 테니.
그렇다면, 피치아웃 한 번.
100마일가량의 패스트볼을 주로 던지는 투수에게 도루를 시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시즌 37도루를 성공시킨 데다가 주력 키워드를 가진 주자라면.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과감한 주루 플레이 하나로 분위기를 바꾸려 들지도 모르지.
런 앤드 히트 작전이었는지, 피치아웃을 하는데도 타자가 움찔했다.
그리고 나는 뭐.
잡아다가 그대로 던졌다.
“아웃!”
레드삭스는 눈물 좀 나겠지?
저기 더그아웃 분위기 좀 보고 싶은데…….
ㅍㅅㅍ: 보긴 뭘 봐, 이 악마 같은 놈아.
요정의 반응을 보아하니 초상집 분위기인 듯하다.
4
샘 이델은 난감했다.
“6회 말, 홍빈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현재 주자 1사 1, 2루! 케이스 에이블과 에이머 시나가 홍빈의 앞에 서 있습니다!”
거른다?
그것도 곤란하다.
정면 승부?
위브 드레이머의 구위가 여전히 괜찮은 편이지만, 말 그대로 괜찮은 편이다.
그렇게까지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좋았지만, 점점 손아귀 힘이 떨어져 가는 상황.
필리스의 테이블 세터 둘을 상대하면서 무려 15구를 던지고도 아웃 카운트 하나를 못 따낸 것이 뼈아팠다.
“아직까지는 필리스의 최강 타선을 상대로 0 대 0으로 잘 이끌어 온 레드삭스입니다. 슬슬 투수 교체 시기를 점검해 볼 수도 있겠죠!”
더그아웃에서는 아직 교체를 생각하진 않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결국 위브 드레이머로 홍빈을 처리해야 한다.
“흠. 살살하는 게 어때?”
“내년에 살살할게요.”
월드시리즈 경기라 그런지, 상대 팀의 포수 녀석은 평소보다 훨씬 끔찍한 느낌이었다.
도루를 두 번이나 해내더니 수비에서는 피치아웃으로 도루를 잡아내기도 하고, 수비 시프트는 또 어찌 그렇게 귀신같이 잘 적중시키는지.
알게 모르게 두 포수 간에 프레이밍 대결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서는 어쩔 수 없이 보더라인 투구로 승부해야 한다.
볼넷을 각오하고서라도.
“볼!”
프레이밍을 시도하기도 민망한 코스로 들어오는 볼.
샘 이델은 투수에게 공을 돌려주면서 조금 더 존에 가깝게 던지라고 신호를 보냈다.
너무 대놓고 볼넷을 주려는 의도를 보여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피하되, 피하려는 의도를 너무 노출시키는 것은 패배의 기운을 피워 낼 뿐이다.
다음은 싱킹 패스트볼.
야구에서 기도는 의미 없는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병살이 나오길 기도하며 미트를 가져다 댈 수밖에 없었다.
홍빈이 타석에 나오기 전에 이미 마운드를 한 번 방문했기에, 그저 투수가 제대로 던져 주길 간절히 기대하며.
코스 자체는 괜찮았다.
몸 쪽 낮은 곳을 공략하는 싱커.
하지만 홍빈의 클래스는 그 기대와 기도를 아득하게 넘어서 있는 상태.
따악-!
타구는 쭈욱 뻗었다.
홈런까지는 나오지 않을 듯하지만, 좌익수 위 잭슨이 경기 초반에 보여 줬던 그 흔치 않은 수비를 다시 보여 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타구.
홍빈은 고작 2루타성 타구를 날려 놓고도 배트를 어깨 뒤로 넘기고 뛰기 시작했고, 1루와 2루 사이 정도에서 타구를 바라보던 에이머에게 소리 질렀다.
“뛰어! 홈까지! 뒤도 돌아보지 마!”
그 말을 들은 에이머가 2루와 3루 사이쯤에서 타구를 바라보던 케이스에게 ‘뛰어, 멍청아!’라고 소리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홈런은 아니지만, 불알이 두 쪽은 났을걸!”
“Nut and nuts!”
거대한 몸을 날린 위 잭슨의 글러브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곳에 떨어져 버린 타구에 필리스 팬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2 대 0.
압도적인 구위의 짐 플로렌스에 대항해 절묘한 수비 시프트와 야수들의 호수비로 겨우 균형을 유지하던 월드시리즈 1차전에 드디어 점수가 나는 순간이었고.
“세이프!”
홍빈은 3루에 들어가 여유만만하고 자신만만한 포즈로 손가락 두 개를 들어 홈 팬들에게 보였다.
“R-E-D-B-I-N-!”
“그가 레드삭스에게서 뺏어 왔지!”
“Nut and-double nuts!”
5
[보스턴 레드삭스 0 : 3 필라델피아 필리스.] [치열했던 포수 대결. 승자는 타격과 수비 모두에서 이긴 레드 빈! 필리스에게 WS 1차전 승리를 안기다!] [짐 플로렌스의 8이닝 무실점 투구. 그레이 밴델튼의 세이브. 레드삭스를 울리다.] [홍빈, 2안타 2볼넷 2타점 1득점 2도루.] [현란했던 수비 시프트와 프레이밍의 향연. 명품 포수전, 결국 홍빈의 2타점 2루타로 결정 지어지다.] [필리스 감독, ‘시프트? 보시다시피 모두 빈이 직접 만들어 낸 것이다.’] [레드삭스 감독, ‘필리스가 정말 강했다. 하지만 고작 한 경기가 끝났을 뿐이다.’] [월드시리즈 1차전 승리 필리스. 정말 역대 최초 전승 우승 가능한가?] [필리스 팬들, 1차전 완승에 ‘Nut and nuts’를 부르며 귀가하다.] [필리스 선수들, 홍빈에게 무한 믿음. 짐 플로렌스, ‘그는 필리스 야구 그 자체다.’] [케이스 에이블, ‘레드 빈의 수비 시프트를 보았나? 믿을 수 없었다. 레드삭스 타자들도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을 거다. 그들이 친 타구가 내 앞으로 엄청나게 굴러왔다.’] [홍빈, ‘이겨서 기쁘다. 팬들이 기뻐해서 더 기쁘다. 내일도 기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