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347)
홈플레이트의 빌런-348화(348/363)
< 348화 Wild wild east (5) >
1
홈런은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화려한 큰 스윙, 강력한 임팩트, 호쾌한 포물선. 주루 플레이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확실한 득점.
투수와의 승부에서 완벽한 승리를 일궈 낸 타자가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다.
이것은 팬들에게 최고의 눈요기를 선물해 주는 것도 있지만, 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굉장히 크다.
대결 중인 양 팀 모두에게.
그리고 홍빈의 타구가 홈런임을 직감하는 순간, 샘 이델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남은 두 개의 아웃 카운트를 순식간에 따내야 한다.’
그냥 이 홈런을 불운으로 치부해 버리기 위해서다.
‘표정 관리.’
본인이 팀에 미치는 영향력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가 무너지면 팀도 무너진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샘 이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행동했다.
필리스 팬들의 함성에 파묻혀 들리지야 않겠지만, 외야수들에게 크게 소리치고, 투수에게 괜찮다고 손짓한 후, 내야수들에게 자리로 돌아가 자세를 낮추라고 지시했다.
“Let’s ball game!”
아직은 괜찮다.
그냥 경기 초반에 흔히 있는 불의의 일격으로 만들어야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가지 않는다.
만약 이닝이 길어지면 패배의 그림자가 레드삭스팀을 덮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토니 카우치는 어리지만 배짱 있는 투수라는 것이다.
거기에 샘 이델의 말이라면 뭐든지 믿는다.
이건 고작 2실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선수들에게 심어 준 샘은 자리로 돌아갔다.
“흠.”
콧수염을 기른 필리스의 좌익수가 타석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며 내야수들의 표정을 살폈다.
홍빈은 홈런으로 기선을 제압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샘 이델은 그럭저럭 수습이 된 것으로 생각했다.
레드삭스는 훌륭한 정신력을 가진 팀이다.
어쨌거나 월드시리즈까지 도달한 팀 아니던가.
내야수들의 표정에서 조급함이 읽히지 않는 것을 확인한 샘은 차분하게 사인을 냈다.
딱!
케이스 이후 필리스 선수들의 경기 전략은 과감하게 배트를 내는 것이었고, 그 전략은 홍빈의 투런 홈런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컨디션이 그리 좋지 못했던 크레익 벨터가 강한 타구를 그대로 잡아내는 데 성공.
“아웃!”
홈런을 맞은 이후 공 하나로 추가 아웃 카운트를 따낸 레드삭스 선수들의 얼굴에 조금씩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Boooooooooo!”
“레드삭스는-양키스보다 못한 멍청이들!”
“Asshole!”
“양키스는 4 대 1로 패배했지-!”
“Asshole!”
“레드삭스는 1승이라도 할 수 있을까-!”
“Asshole!”
“아마 못 할걸! 저놈들은 양키스보다 약하니까!”
“Asshole!”
엉망진창인 노래(노래 같지도 않은)를 불러 대는 필리스 팬들이야 아웃 카운트 하나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2점 홈런에 여전히 도취되어 있기는 했지만.
2
레드삭스는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수비력이 괜찮은 팀이다.
제구 잘되는 투심은 그런 수비력을 가진 레드삭스와 꽤 궁합이 잘 맞고, 로즐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경기 전략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거야 나중 일이고, 지금은 투구에 집중할 때다.
“스윙을 잘 하지 않는 타자들에겐 좀 더 과감하게 들어가야겠어.”
“중앙에 던져도 못 치는 공을 보여 줄까?”
아직 농담이 나오는 걸 보니 다행이다.
1회 초에 로즐은 총 16개의 공을 던졌다.
그중 7개가 볼 판정을 받았고, 볼넷으로 주자를 내보냈다.
로즐은 배짱 있는 투수고 키워드에 강심장과 핀포인트가 있지만, 지나치게 보더라인 투구에 집착하다가는 볼넷을 얻어 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레드삭스 타자들을 상대로 주자를 허무하게 쌓아 버릴 수도 있다.
“샘 이델의 옆구리가 여전히 별로인 것 같으니 존 안쪽 구석구석을 찔러.”
“나보다 그걸 잘하는 놈은 이 바닥에 없지.”
자신감이 충만한 로즐을 보고 있으면 가끔 불안할 때가 있다.
로즐의 삼촌인 기욤 페르난데스가 손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좋아졌으니 쓸데없는 걱정일지도 모르지만.
・_・: 불길한 말을 하다니.
・_・: 이것은 피홈런 플래그인가…….
…불길한 소리를 하다니.
・_・: 힘내라, 로즐.
・_・: 이런 포수랑 호흡을 맞추는 네가 불쌍해…….
공은 투수가 던지는 거거든?
그리고 2회 초 레드삭스의 선두 타자는 샘이다.
[샘 이델] [우투우타, 포수] [키워드: 야전 사령관, 해결사, 강견, 명경지수, 철벽, 번트]“멋진 홈런이었어. 정말 우릴 힘들게 하는군.”
“많이 힘들어 보이네요.”
“그래? 티 안 내려고 했는데 티 나?”
말할 것도 없지.
홈런을 친 후 그의 행동을 봤다.
개빈은 샘의 행동을 보고 ‘저딴 짓에 속아 넘어가는 레드삭스 놈들은 모조리 얼간이’라고 말했지만, 저런 게 가끔은 효과가 있다니까.
특히 팀원 모두가 누군가를 정신적 지주라고 인정했을 때는 더.
“너무 애쓸 필요 없어요.”
“애써야지. 너희 팬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걸 알려 줘야 하거든.”
뭐? 레드삭스가 양키스보다 아래라는 거?
아니면 불알이 다 뜯긴 채 보스턴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는 거?
ㅍㅅㅍ: 경박하도다…….
그게 이 팬들의 매력이지.
“팬들은 항상 옳죠.”
내 말에 샘은 낮게 웃었다.
“지고 있을 때 웃는 거 카메라에 찍히면 레드삭스 팬들이 싫어할 텐데.”
“복화술이야.”
“빌어먹을 명경지수.”
“갑지가 웬 갠지스강?”
“됐으니까 삼진이나 먹어요.”
갠지스강은 무슨.
샘은 타격 실력만 놓고 보면 꽤 괜찮은 타자지만, 옆구리가 그리 좋지 못한 상태라면 어제처럼 몸 쪽 공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로즐이 짐만큼 강한 구위는 없더라도 충분히.
몸 쪽 포심. 존 안으로 들어오게.
로즐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 자신 있게 공을 던졌다.
그리고.
따아악-!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샘은 몸을 비틀어 콘택트에 성공했다.
잡아당겨 꽤 강하게 맞은 타구가 크게 날았지만.
“파울!”
파울 폴 바로 옆으로 휘어져 나가는 파울 홈런.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 순간 샘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묘한 표정을 캐치했다.
너무 강하게 잡아당겨서 옆구리가 아픈 걸까.
아니면 그냥 홈런이 될 뻔한 타구가 아쉬워서 그런 걸까.
이걸 확인하려면…….
‘다시 같은 코스로 포심.’
무모한 모험일 수도 있다.
그리고 로즐은 방금 그 타구에 자기도 놀랐는지 살짝 난색을 표했지만, 내가 두 번 더 그 코스를 요구하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라이크!”
이번에 샘은 스윙도 내지 못하고 공이 존을 통과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아마 방금 그 스윙으로 통증이 조금 심해진 것 같다.
난 명백하게 샘 이델의 팬이지만, 이건 월드시리즈다.
엄청난 돈과 엄청난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월드시리즈.
그리고 여기서 이기려면 뭐든지 이용해야 한다.
‘몸 쪽 존 아래로 떨어지는 스플리터.’
몸이 아프면 집중력도 같이 무너지기 마련.
“스트라이크-아웃!”
샘은 어정쩡한 자세로 배트에 억지로 갖다 맞히려는 스윙을 하다가 삼진을 당했다.
“와우. 스플리터 끝내주는데.”
그 와중에도 저렇게 능청을…….
저거 하나는 좀 배워야 할 것 같다.
“끝내주죠? 오늘 레드삭스를 노히터로 잡아낼 스플리터니까 당연히 끝내주겠죠.”
샘은 또 입을 움직이지 않고 웃고는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음.
이번 이닝 끝나고, 선수들에게 과감하게 도루해도 된다고 말해야겠다.
ㅍㅅㅍ: 남의 약점을 이용하다니…….
당연히 남의 약점을 이용해야지.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어?
3
“에이머 시나! 체인지업에 크게 헛칩니다! 큰 걸 노리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삼진 아웃!”
“2루 주자 케이스 에이블이 고개를 갸우뚱하는군요. 하하. 무슨 의미일까요.”
“어쨌든, 타석에 홍빈이 들어옵니다!”
안타를 뽑아내고 도루를 성공시킨 케이스의 도발에, 에이머는 홍빈에게 타격 연습을 하러 갈 테니 투수에게 10구를 던지게 하라고 말했다.
물론 홍빈은 그 말에 코웃음을 치며 대꾸도 안 해 줬지만.
여전히 스코어 2 대 0인 상황.
샘은 1루가 비어 있는 지금, 고의 사구를 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아직 3회 말이고…….’
고작 3회 말. 주자가 득점권에 있긴 하지만 어떤 타자도 매번 홈런을 때리진 못한다.
투수가 다시 한번 대결해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고.
“오.”
홍빈은 고의 사구를 예상하고 배팅 글러브를 푸는 시늉을 하다가, 악당처럼 웃으며 타석으로 들어왔다.
“혹시 개빈이 무섭게 웃는 방법도 가르쳐 준 거야?”
“개빈이 제게 안 가르쳐 준 것은 없죠.”
“와우.”
심지어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법까지.
물론 배웠다고 하기엔 그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뿐이지만.
샘은 직전 타석에서 홍빈이 보여 준 타격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타격 준비 자세로 자신을 농락하며 홈런을 때려 낸 것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저렇게 다양한 타격 접근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도 밸런스에 흐트러짐이 없다.
홍빈은 그립을 낮게 잡았다. 홈런을 쳤을 때처럼.
어쩌면 도발일지도 모르지만, 샘은 개의치 않고 신중하게 접근했다.
저런 것에 휘둘리면 될 것도 안 되는 법이다.
바깥쪽 낮은 투심.
따악!
“파울!”
날카롭고 빠른 타구가 관중석으로 강하게 날아갔다.
아까처럼 자세를 바꾸는 타격법이 아닌, 정말 바깥쪽 낮은 코스를 노리는 스윙.
아마 존 안으로 넣었더라면 인플레이 타구가 되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발 빠른 2루 주자가 지금쯤 홈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완전히 밀려 버리는 양상이지만,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개빈이 자신을 보고 즐거워했던 것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그런 즐거움은 나중으로 미뤄야 한다.
즐거움과 함께 슬며시 피어오르는 승부욕.
샘은 과감하게 존 안으로 슬라이더를 던지라고 요구했다.
투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샘의 요구에 부합하는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변화구가 존 안으로 꽂히는 것을 지켜본 홍빈은 아무 반응 없이 다시 타석으로 돌아왔다.
하긴, 싸움닭에 핀포인트 가진 놈이니 어련할까.
그리고 다음 선택은.
존 아래로 공 두어 개는 빠지는 체인지업.
스윙이 나오지 않을 법한 코스지만, 다음 공을 던지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샘은 홍빈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 번 정도는 삼진을 따내야 필리스의 날카로움을 죽여 놓을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낮은 코스를 볼로 던질 거라는 밑밥.
그리고 그 판단은 첫 타석의 홍빈에게 던졌던 몸 쪽 높은 패스트볼과 비슷하게, 샘 이델의 오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따아악-!
확실하게 낮게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걷어 올린 타구.
공갈포 성향이 아주 짙은 타자들이 아니고서야 손대지도 않을 그런 공을, 존 안으로 들어오는 변화구에 스윙을 내지 않았던 홍빈이 때려 냈다.
“Arrrrrrrrrr!”
관중석에서 기묘한 함성이 터져 나왔고, 홍빈은 펜스 상단에 빛나는 낙구 지점을 확인하고 케이스에게 소리쳤다.
살짝만 더 안쪽으로 잘 맞았더라면 넘어갔을 텐데, 그래도 외야수가 잡아내기 힘들게 돌출된 높은 곳에 떨어질 것이다.
“뛰어! 멍하게 서 있지 말고!”
외야가 특이한 구장에서는 홈 외야수들이 굉장히 유리하다.
레드삭스의 펜웨이 파크만큼 특이하지는 않지만 돌출된 부분에 맞고 튀어 오른 공을 외야수들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사이, 홍빈은 전력 질주 해 3루에 도착했다.
“…세이프!”
3 대 0.
필리스가 홍빈의 1타점 3루타로 1점 더 달아나기 시작했다.
4
나는 세 번째 타석에서(5회 말 주자 2루 상황이었다) 결국 고의 사구를 얻어 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2점을 더 뽑았고, 7회 초까지 5 대 0 스코어를 유지했다.
하지만…….
“심판 개자식을 죽여 버리고 싶어.”
로즐은 분을 못 이기고 있다.
7회 초, 현재 1사 만루.
로즐의 투구 수는 방금 볼넷을 내준 공으로 98개를 찍었고, 홈 팬들은 우리 혹은 레드삭스에게 야유를 쏟아내고 있다.
볼 판정은 조금 애매하긴 했지만 죽여 버릴 정돈 아니었다. 음. 그 애매한 것 때문에 투수가 흔들린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나간 일에 신경 쓰지 마.”
“젠장. 맞는 말이라 짜증 나.”
“이거, 네가 마무리 해야 해. 알지?”
“물론이지.”
불펜에서 누군가가 몸을 풀고 있겠지만, 우리 더그아웃에서 큰 움직임은 없다.
에드윈이라는 카드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이럴 때 큰 도움이 된다.
선발투수가 더 크게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면서도 다음 수를 준비할 수 있으니.
“또 필요한 거 있어?”
“뭐?”
“저놈에게 병살을 따내는 데 또 뭐가 필요하냐고.”
투수 타석에서 대타로 들어온 상대 타자를 가리키자, 로즐은 글러브로 입을 가리곤 으르렁거렸다.
“그런 건 없지. 로즐 펠리시다드는 준비됐어.”
에이머에게 모두가 전염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단순해서 좋지만.
로즐은 6이닝 동안 3개의 볼넷과 2개의 안타만을 맞으며 호투하고 있었는데, 이번 이닝 들어 급격히 흔들리며 3개의 볼넷을 내주었다.
제구 좋은 이런 투수들에겐 자존심이 상당히 상할 법한 상황.
어차피 큰 거 한 방 맞아도 우리가 여전히 이기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 줬다가…….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공이나 받아.”
…욕만 먹고 홈으로 돌아왔다.
・_・: 이번에야말로 피홈런 플래그가 강력하군.
・□・: 이건 다 초소형 포수 탓이다!
플래그?
그딴 건 믿지 않지.
실제로도 결과는 홈런이 아니었거든.
따악-!
존 바깥쪽에 걸친 타구를 타자가 밀어 쳐 3타점 2루타가 되어 버리긴 했는데…….
음.
뭐.
아직 5 대 3이니까 그래도 괜찮…….
ㅍㅅㅍ: 괜찮긴 뭐가 괜찮냐.
ㅍㅅㅍ: 왜 너만 괜찮냐.
…….
투수 교체 타이밍인가 드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