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352)
홈플레이트의 빌런-353화(353/363)
< 353화 필리스 왕조 (4) >
1
“Come on. 샘이 잠깐 할 이야기가 있대.”
지친 표정의 유격수, 크레익 벨터가 홀딩 돈프레드에게 말했다.
“샘이? 알았어. 바로 가지.”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홀딩 돈프레드는 손을 닦고 바로 나가겠노라고 답했고, 크레익 벨터는 턱짓으로 바깥을 가리키곤 사라졌다.
“후…….”
홀딩 돈프레드도 이 상황에 조금은 지쳐 있었다.
트레이드로 우승권 팀에 합류한 것은 좋은 일이었다.
내년에 게론 제이소가 부상에서 복귀한다면 어느 정도의 경쟁은 불가피하겠지만 올 시즌 레드삭스에 합류해 중심 타선에 들어가며 자리를 굳혔으니.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꿈에도 그리던 월드시리즈임에도 전혀 신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그 원흉인 필리스 포수가 미친 것처럼 날아다닌다는 것이었다.
“제기랄.”
야구에서는 우승 반지가 선수 커리어에 그렇게까지 중요하다고 평가받지 않는다.
지금 속한 레드삭스 팀의 레전드이자 영구결번인 테드 윌리엄스도 우승 한 번 못 해 보지 않았던가.
물론 그와 비교할 만한 선수는 상대 팀에서 뛰고 있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우승 문턱까지 도달한 선수라면 당연히 우승이 탐이 나기 마련이다.
금전적인 보너스와는 별개로, 어쨌거나 모든 메이저리거의 궁극적인 목적 아니던가.
홀딩이 더그아웃 쪽으로 나가자, 모든 레드삭스 선수들이 모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즌 중간에 합류했지만 언제나 오랜 팀원처럼 대해 준 샘이 모두를 모아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좋아. 다 왔네. 짧게 말할게.”
홀딩은 살짝 소름이 돋았다.
아직 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샘 이델이 챔피언십시리즈부터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레드삭스 선수는 없다.
“누군가를 위해 뛰라고 말하진 않을 거야. 아직 기회는 있지. 그 남은 기회를 본인을 위해 뛰자고. 알고 있겠지? 우린 모두 레드삭스고, 우리를 위해 뛰는 게 가장 좋은 팀플레이라는걸.”
샘은 팀이 힘들 땐 항상 저런 말을 하곤 했다.
삼진을 당한 것은 레드삭스를 위해 점수를 내려다가 조금 실수한 것이고, 홈런을 맞으면 레드삭스를 위해 삼진을 잡으려다 운이 없었던 것이고, 실책을 저지르면 팀을 위해 막으려는 마음이 너무 컸던 거라고.
가끔 너무 감성에 젖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어쨌거나 샘 이델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8회와 9회가 남았어. 그리고 내 생각인데, 우린 9회에 경기를 뒤집을 거야. 상대 마무리를 두들길 계획이 있어. 다들 그렇지?”
레드삭스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1차전에서 마무리 투수에게 2루타 하나와 볼넷을 뽑아낸 전력이 있다.
기회를 못 살리고 무득점으로 종료되기는 했지만.
“좋아. 이제 집중해서 수비하고, 우리가 끝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자. Go!”
대책이 있든 없든, 2점 차로 가시권인 상황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샘 이델은 그걸 선수들에게 알려 줬고, 레드삭스 선수들은 이 희망을 착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2
8회 말, 우리는 위기에 봉착했다.
스캇의 제구가 흔들렸고, 볼넷을 내주며 이닝을 시작했다.
그다음 타자인 우투좌타 2루수는 히트 앤 런 작전에서 내야 땅볼을 때려 냈고, 라이언의 송구가 조금 빗나가서 비디오 판독 끝에 주머의 발이 1루에서 조금 떨어졌다는 판정을 받았다.
조금 불운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안타 한 방을 맞고 1실점.
댄 벨이 올라와 3타자 연속 아웃 카운트를 따내 마무리 지었지만, 스코어는 5 대 4로 변했다.
그리고 나는 9회 초 선두 타자로 올라왔다.
[아디 터너] [우투우타, 중계 투수] [키워드: 핀포인트, 견제왕, 그라운드볼러, 각도기] [상대 투수와의 연봉 차이가 1.3배로 확인되었습니다!] [상대 투수의 국적이 미국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상대 투수의 서비스 타임이 3년 차로 확인되었습니다!]“그냥 빨리 끝내고 휴가나 가는 게 어때요?”
“좋은 아이디어야. 아직 늦지 않았어. 우리가 4연승을 하는 게 가장 빠르지 않을까?”
씨알도 안 먹힌다. 뭐, 먹힐 거라 생각도 안 했지만.
ㅇㅅaㅇ: 헛된 발악이 취미인가.
그러게. 나도 아는데 그냥 나도 모르게 나오네.
입이 자동인가 보다.
장타가 필요하다. 1점이라도 점수를 더 내야 한다.
ㅇ෴ㅇ: 젊은이여, 메이저리그 최초 월드시리즈 히트 포 더 사이클엔 욕심이 없는가?
뭔 소리여 그게.
기록이 중요하냐 지금?
(灬ㅇ෴ㅇ灬): 오.
(灬ㅇ෴ㅇ灬): 웬일로 맞는 말을…….
…혹시 그것도 기록으로 쳐서 스킬 줄 거냐?
ㅡㅅㅡ: …….
ㅡㅅㅡ: 홈런이나 쳐라.
ㅡㅅㅡ: 요정님 빡치게 만들지 말고.
요정이 왜 이렇게 기분이 그때그때 변하냐. 기분 좋든지 나쁘든지 하나만 하라고.
뭐…….
뭐든 좋지.
자세를 잡고 섰다.
제구가 좋은 투수.
바깥쪽 낮은 코스를 정석적으로 공략하는 투순데, 향후에 선발로 전향했을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일… 테지만 그거랑 지금이랑은 별 관계 없다.
“볼!”
존에 넣었다 뺐다를 강박적으로 하는 투수다. 내게 볼넷을 주려 할지는 잘 모르겠다.
안타를 맞을까 봐 좀 더 신경 써서 던지긴 하겠지.
홈런이라도 맞았다간 기껏 점수를 따라온 게 무색해질 테고, 그게 아니라 안타나 2루타 같은 걸 맞더라도 무사에 주자를 내보내는 건 부담될 테고.
게다가 1루타 하나만 뽑히면 월드시리즈 최초 히트 포 더 사이클의 희생자가 될 테니 그것도 신경 쓰일 테고.
음.
음?
딱!
생각하던 도중, 치기 괜찮은 코스로 공이 들어와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공은 포심이 아니라 싱커였고, 배트 아랫부분에 맞은 타구는 유격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Booooooooooooo!”
야유가 쏟아지고.
ㅍㅅㅍ: …….
…….
ㅍㅅㅍ: 기록이 중요하냐더니 똑딱이질을…….
…….
야.
ㅍㅅㅍ: 퉤.
…….
포심인 줄 알았는데 이걸 안타로 만든 것도 대단한 거라고.
ㅍㅅㅍ: 퉤.
야.
ㅍㅅㅍ: 퉤.
…젠장.
그래도 월드시리즈 최초로 히트 포 더 사이클에 성공했잖아?
나 장난 아니게 잘난 듯.
“세이프!”
ㅍㅅㅍ: 정신 차려라, 초소형 포수.
음.
견제가 매섭구먼.
3
나는 견제왕 달린 투수에게 견제구 5번을 받았다.
어쨌거나 출루에는 성공했지만, 우리는 추가 점수를 내지 못했다.
홈런을 쳤어야 했는데.
그래도 리드를 안고 마지막 수비 이닝을 맞이했다.
그레이가 막아 주면 3승 0패가 된다. 그럼 내일 경기가 끝난 후, 개빈에게 내 일생일대의 고백을…….
“베이스 온 볼스!”
…해야 하는데.
그레이는 위 잭슨의 장타력을 의식해선지 볼넷을 내줬다.
“스트라이크-아웃!”
큰 거 한 방을 의식한 홀딩 돈프레드에게는 그래도 삼진을 잡아냈다.
그리고 위 잭슨의 대주자로 투입된 놈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게 상당히 거슬릴 때쯤.
“미안한데, 지금은 집중해야 하니까 말 걸지 마.”
언제나 나만 보면 강박적으로 말을 걸어 대는 샘 이델의 내로남불이 이어졌으며.
“Boooooooooo!”
“샘! 샘! 샘! 샘! 샘! 샘! 샘!”
“새-애-애-애-애-애-앰!”
“S-A-M-S-A-M-S-A-M!”
레드삭스 팬들의 경박하고, 정신없으며 시끄러운 샘 응원이 쏟아졌다.
그리고 몸 쪽 패스트볼을 던지라는 사인에 고개를 끄덕인 그레이의 공이 실투가 되어 중간으로 몰렸고.
따아아악-!
분명히 앞서 나가고 있었던 이 경기가, 월드시리즈 3차전 경기가 너무도 허무하고 너무나도 순식간에 종료되어 버렸다.
젠장.
역시 인생은 한 방이라니까.
4
[필라델피아 필리스 5 : 6 보스턴 레드삭스.] [레드삭스, 그린 몬스터의 주인이 누군지 보여 주다!] [레드삭스 캡틴 샘 이델, 펜웨이 파크에서 끝내기 투런 홈런으로 필리스 마무리 그레이 밴델튼을 무너뜨리다!] [홍빈, 메이저리그 사상 첫 월드시리즈에서 히트 포 더 사이클 기록하며 맹활약. 그럼에도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다.] [명승부를 연출한 양 팀. 두 팀 모두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 [샘 이델, ‘황홀하다. 우리는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레드삭스의 모두가 승리를 만끽할 자격이 있다.’] [역전패 필리스. 그레이 밴델튼의 블론 세이브. 세이브 기회가 별로 없어서 경기 감각이 무뎌진 것이 패인?] [홍빈, ‘히트 포 더 사이클? 팀이 졌으니 그냥 4안타 경기일 뿐.’] [시리즈 스코어 2 대 1. 레드삭스는 끝나지 않았다.] [레드삭스 감독, ‘홍빈은 좋은 선수지만, 레드삭스는 좋은 팀이다. 팀의 승리였다.’] [필리스 감독, ‘우리도 가끔은 진다. 포스트시즌에서 9연승 후 1패를 했을 뿐이다. 야구는 원래 그런 스포츠다. 우리 마무리는 여전히 그레이 밴델튼이다.’] [승부의 향방은 어디로? 더욱 중요해진 4차전.]5
한 경기를 진 것은 별로 특별할 일도 아니다.
감독님이 인터뷰에서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감독님은 더그아웃에서 우리를 위로했고, 우리는 조용히 3차전을 마무리 지었다.
패배한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지 못한 일이지만, 패배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뿐이다.
다만 우리가 경기에서 진 기억이 너무 오래돼서 조금 생소할 뿐.
“처음 져 보는 것도 아닌데 표정들이 왜 그래?”
개빈은 침체된 선수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진 지 한 달쯤 됐군. 맞아. 9월 28일에 마지막으로 졌고, 오늘은 10월 27일이니까.”
오래도 됐네.
그러니까 다들 이렇게 반응하는구먼.
“내일 또 져도 이상한 일은 아닐걸. 그게 바로 야구니까.”
얼핏 들으면 초를 치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개빈이 누구보다 승리를 바란다는 것을 안다.
“그냥 하나만 기억해. 필리스 팬들이 필리스가 이기길 바라는 마음보다 조금만 더 이기고 싶어 하자고.”
개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주위를 둘러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 됐어. 굳이 말 안 해도 다들 그렇겠지. 가서 쉬자고.”
사실 이런 패배는 어떤 식으로든 쉽게 회복되기 힘들다.
내가 레드삭스의 마무리를 두들기면서 게임을 완전히 끝냈을 때처럼.
ㅇㅅㅇ: 한 번 터진 마무리는 계속 터진다고 했지.
…그랬나?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그레이를 다독이기는 정말 힘든 일이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연속 안타를 맞거나 했더라면 그레이의 멘탈을 수습하거나 투수를 교체하는 등의 방법을 고려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볼넷 후 삼진으로 기세가 조금 올랐을 때 초구 홈런을 맞고 경기가 끝나 버렸으니.
그냥 내일도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월드시리즈 히트 포 더 사이클을 기록해서 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결코 기분 좋거나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원정 로커 룸에서 우리만의 시간이 끝난 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기자들이 따라붙으며 히트 포 더 사이클에 관해 묻기도 했다.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쳐 히트 포 더 사이클을 완성하려고 의식하셨나요?”
진 날은 조금 기가 죽은 척이라도 해야 한다.
“홈런을 치려 했는데 조금 빗맞았습니다. 홈런을 쳤더라면 정말 아쉽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겨우 기자를 따돌렸다.
숙소로 돌아오니, 내 스마트폰에는 엄청난 수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패배했지만 정말 좋은 경기였습니다. 히트 포 더 사이클 축하합니다. <그루 T. 심슨>
하긴, 이 양반은 내가 잘하면 자기가 돈을 더 벌 수 있으니 무조건 좋겠지. 팀의 승패랑은 별로 관계없을지도.
-자기, 내일은 꼭 이겨! 오늘 정말 멋졌어!
아리는 끝내기 홈런을 맞았을 때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태교에 안 좋았을 텐데 큰일이다.
-이야 넌 진짜… 괴물이다 괴물. 한국 왔는데 다 네 이야기만 물어본다. 한국 안 오냐? <송 형>
이 형은 요새 한국 가서 예능 출연하고 있던데. 스윙 연습은 하고 있나 모르겠다.
-아들, 승패는 병가지상사란다. <아버지>
아버지, 부산 자이언츠 지는 날에는 꼴산 새끼들 맨날 진다고 화내셨으면서…….
어쨌든 뭐, 아버지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
이걸 그레이에게 어떻게 알려 주느냐가 문제일 뿐.
그리고…….
[관대하신 요정님이 정규시즌은 아니지만 초스탯 관리 포수에게 선물을 내리기로 하셨습니다!] [요정님의 월드시리즈 히트 포 더 사이클 선물!] [1부터 10까지 고르세요!]…….
계속 침 뱉더니, 그래도 선물은 주네.
[싫으면 말고!]10.
[…….] [다시 한번 기회를 드리겠습니다!]10.
[…마지막 기회입니다.]10.
ㅍㅅㅍ: …….
ㅍㅅㅍ: 언젠간 복수할 것이다.
뭔 소리야. 복수는 무슨.
빨리 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