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41)
홈플레이트의 빌런-42화(42/363)
# 42
이것은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여 (3)
1
내가 에브러햄의 입을 다물게 했다는 것은 다른 선수들의 증언으로 증명되었고, 개빈은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정말이야? 우리 꼬마가 저 미친놈의 입을 닥치게 했다고?”
개빈은 황당해하면서도 호기심을 드러냈다. 에브러햄이 메츠에서 뛰기 시작한 뒤로 한 번도 입을 놀리지 않은 경기가 없었다나.
“엄청난 걸 해내고서 왜 이렇게 무덤덤해?”
엄청난 거?
데뷔전에서의 인사이드 파크 홈런으로 그랜드슬램을 기록한 거나, 2홈런 경기 혹은 끝내기 홈런을 쳤던 경기나.
그런 거보다 이게 더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더 엄청난 것도 해 봤잖아요.”
“내가 루키라면, 그랬을 때 미쳐서 날뛰었을 거야. 지금은 의기양양했을 테고.”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다.
하긴. 내가 만약 정말 신인이고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그런 걸 해냈다면 며칠은 잠도 못 잤을거다.
그리고 한 50년 뒤쯤, 손자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이 할애비가 50년 전에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음.
“좀 놀기도 하는 거야? 젠장. 술도 안 하고 담배도 안 하고 약도 안 하고 매일같이 태블릿 PC만 들여다보거나 스윙만 하고 있잖아? 그러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터져 버린다고. 저 미친놈 불알처럼.”
전 그게 노는 건데요. 그리고 중간에 이상한 게 끼어 있는 것 같네요. 약? 터진 불알?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야?
“스카우팅 리포트를 보거나 스윙 연습 하는 게 제 스트레스 해소법입니다.”
“야구는 재밌게 하는 게 최고야. 너무 압박감 받지 마.”
내가 전 타석에서 삼진을 당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개빈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면서도 날 걱정해 줬다. 하긴 팬들의 기대치가 높기도 하고, 야유와 환호가 번갈아 나오는 이 환경에서 적응하지 힘들 거라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20년 동안 내 스트레스 해소법은 상대 팀 분석 혹은 훈련이었다., 굳이 더 찾자면 다른 야구 경기를 보는 것 정도?
그건 아직도 변함이 없다. 집에 있을 때는 언제나 TV에서 야구 경기가 나오고 있다. 경기가 없으면 ‘다시 보기’로라도 본다. 나는 아직 메이저리그 경험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TV 중계로라도 생소한 선수들을 지켜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경기를 보고 있을 때는 뭐라도 한다. 넓디넓은 거실에서 스윙하며 경기를 보거나, 하다못해 악력기라도 몇 번 더 누른다.
“그래. 루키답게 미친 짓도 하고 좀 그래야지. 몇 년 지나면 그런 것도 힘들어. 난 데뷔 홈런을 치고 방망이를 상대 팀 더그아웃에 집어 던져 버린 적도 있다고.”
“젠장. 얜 아직 빅 리그에 온 지 한 달도 안 됐어. 다들 물들이지 말고 저리 가.”
라이언이 개빈을 거들었고, 배터리 코치님이 기겁하며 내게 이상한 바람을 불어넣으려던 베테랑들에게 손을 휘휘 저었다.
“저 늙은이들 말 듣지 말고, 지금처럼만 해. 오케이?”
흐흐.
안 그래도 지금처럼 하긴 할 테지만.
그러고 보면, 야구 그 자체에서 오는 재미 말고 다른 재미는 못 느끼는 것 같기는 하다.
음…….
한번 해 봐?
2
“9회 말, 메츠가 필리스에 1점 차로 앞서고 있습니다. 무사 주자 1루, 1루 주자는 대주자 랜들 피멜입니다. 타석에는 레드 빈. 오늘 안타가 없습니다. 시즌 타율 0.288, 출루율은 정확히 4할을 기록 중입니다.”
“3할 아래로 떨어지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좋은 성적이죠. 어제와 오늘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만, 이번 타석에서 한 방 때릴 수 있다면 타율은 3할로 다시 올라갑니다.”
“메츠의 마무리 투수인 그렉 진네만이 레드 빈을 상대로 공을 던집니다. 볼. 존에서 약간 빠지는 공을 잘 참았습니다.”
“양 팀의 포수들이 두 경기 내내 무안타로군요.”
“어린 선수가 초반에 너무 기대를 받다 보니 부담이 된 걸까요? 2구째 스트라이크.”
“누가 고졸 루키 포수에게 3-4-5에 30홈런 100타점을 기대하나요? 하하. 사실 올해는 0.250에 두 자릿수 홈런만 쳐도 탑클래스 소리를 들을 겁니다. 그리고 그는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겁니다.”
“3구. 오! 그가 때립니다! 강한 타구! Hit it away! 그가 또 종을 울립니다! 경기를 끝냅니다! 필리스 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완벽했습니다. 실투도 아닌데 아래로 가라앉는 공을 제대로 올려 치는군요. 83마일의 공을 홈런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가 해냅니다! 마운드에 주저앉은 진네만.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어린 선수가 필리스를 승차 없는 2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제가 괜한 소리를 한 게 되어 버리네요. 결국, 그가 다시 3할로 복귀합니다. 오, 레드 빈이 홈런을 치고 난 후 배트를 상대 팀 더그아웃으로 던져 버렸나 봅니다. 흥을 못 이긴 걸까요? 메츠 선수들의 표정이 영 좋지 않군요.”
3
인터넷이 시끄럽다.
나는 끝내기 홈런을 때리고 화려한 배트 플립을 해 버렸고, 메츠 팬들의 상당한 반발에 직면했지만…….
-필리스의 그 애송이는 오늘 헬멧 두 개를 쓰고 경기에 나와야 할 거다.
┕메츠 병신들이 뭐라는지 누가 신경이나 쓴대?
┕어메이징한 끝내기였어. 뭐라고? 어메이징 메츠? 그게 어메이징한 끝내기를 필리스에게 헌납한다는 그런 의미지?
┕너희 포수는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나와야 할 거다. 차라리 그냥 이틀 전에 맞은 곳에서 뭔가 흘러나와 경기를 못 뛰게 되었다고 말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
┕레드 빈의 스윙을 봐. 너무 강한 스윙이라 배트가 거기까지 날아간 것뿐이라고. 이게 왜? 뭐가 문젠데?
┕메츠 놈들이 뭐라고 하는 거야? 그 팀 포수는 불알이 없어서 그런지 잘 안 들리는데?
┕난 너희가 하는 말이 뭔지 정확히 모르겠어. 그러니까 메츠 유니폼 입고 있는 놈들을 쏴 버리면 된다는 말 맞지?
…우리 팬들이 더 시끄럽다. 메츠도 강한 팬덤이지만, 이 팀은… 뭐, 말이 필요 없지.
필리스는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팀과 사이가 좋지 못하지만, 메츠는 특히 그중에 가장 나쁜 편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팬들은 내 배트 플립에 더 환호했고(메츠와의 2경기에서 모두 무안타였기에 홈런을 치기 전까지는 내게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나는 그 와중에 끝내기 홈런을 쳐 요정에게서 역시 변태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60살인 필리스의 전 스타, 메츠를 싫어하기로 유명한 지미 롤린스는 SNS로 이런 말을 남기면서 이 불바다에 기름통을 집어 던졌다.
@J_Roll07
-앞으로 메츠는 필리스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할 일은 없을 것이다, 최소 10년은.
@J_Roll07
-10년이 과하다고? 10년도 메츠 팬들을 배려한 거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네.
@J_Roll07
-계속 떠들어 봐. 난 요트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SNS를 하는 중인데, 넌 맥도날드 햄버거로 허기를 채우면서 내게 헛소릴 하고 있는 거겠지.
나이를 먹어도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어쩌면 저게 나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하지만.
사실, 누가 나를 보호해 주길 원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도 않았을 거다.
순위 경쟁 중이면서 동시에 민감한 라이벌 팀을 상대로, 승차가 사라지는 끝내기 홈런을 때리고 나서 겁을 먹는다고?
차라리 야구를 접어야지.
ㅇㅅㅇ : 점점 필리스화가 되어 가는군.
필리스화?
나쁘지 않은 어감이네.
ㅎㅅㅎ : 역시 변태 포수에게 걸맞은 팀이로다.
ㅎㅅㅎ : 그 팀에 그 선수지. 암.
뭐?
필리스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나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4
“만약 공을 맞으면, 상대 투수를 박살 내 버려.”
“그래. 우리 모두 뛰쳐나갈 테니까.”
“쇼는 오른손을 다치면 안 된다고 왼손 펀치를 연습하고 있던데?”
“메츠를 박살 내 줄 좋은 기회야.”
이 양반들이 단체로…….
“아니면 차라리 네 타석 때 배터 박스로 가지 말고 그냥 바로 마운드로 달려가는 건 어때?”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야.”
“그래. 공을 맞고 다치느니, 어차피 맞을 거 화끈하게 바로 가 버리자고.”
요정님, 당신의 혜안은 도대체…….
그 팀에 그 선수라더니…….
어제의 끝내기 홈런과 배트 플립에 대해서 팀 선수들이 이야기하는 가운데, 그가 나타났다.
“뭐야, 다들 뭐하는 거야?”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고.
야구를 못하게 될 때가 아니라 상대 선수를 쓰러뜨릴 수 없게 될 때 은퇴하겠다는 패기 넘치는 인터뷰를 했던 개빈이, 주먹에 복싱 글러브를 낀 채 나타났다.
“오, 개빈. 제기랄.”
“젠장! 혼자만 좋은 걸 낄 거야?”
“다들 이리 와! 개빈이 뭘 준비했는지 보라고!”
개빈은 글러브뿐만 아니라 뭔가를 잔뜩 들고 나타났는데, 그 모습이 마치 대머리 산타클로스 같았다.
아니, 머리털도 없고 산타 옷도 없으니 그냥 노상강도 같기도 하다.
“저기, 근데.”
“왜?”
“뭐?”
뭔가 이상하지 않나?
나만 그걸 느끼고 있는 거야?
“제가 배트 플립을 했으니, 한 대 맞고 끝나는 게 평화로운 일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빈볼은 보복이자, 더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하나의 장치라고도 할 수 있다.
만약 머리를 맞히려 한다면 이야기가 좀 다를 수도 있지만, 적당히 허벅지 같은 곳을 맞는다면 그냥 넘어가는 것도 지나친 열기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내가 몸에 공을 맞고 투수에게 달려들면 우리 팀의 다른 선수가 또 공에 맞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이봐, 지금 우리 크레디트 보이가 뭔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데?”
크레디트 보이는 팬들이 내게 지어 준 별명이다.
끝내기를 몇 번 치거나 끝내기 득점 주자가 된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니, 내가 나서면 경기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는 의미로.
개빈이 날 붙잡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봐, 꼬마.”
“네?”
“다른 팀은 몰라도, 메츠 놈들에겐 그런 걸 따질 필요 없어.”
“맞아.”
“그래. 5년 전에 메츠 타자 놈이 똑같은 짓을 했어. 홈런을 치고 배트를 집어 던진 후, 다음 타석에서 빈볼을 맞으니 마운드로 뛰어갔지.”
“그놈이 어떻게 됐었지?”
“내게 묵사발이 될 때까지 두들겨 맞았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중학생일 때 그런 일이 있었으니 그렇게 해도 된다는 그런 기적의 논리가 여기서 펼쳐지고 있는 거지?
“그래. 그놈이 우리 투수의 턱을 날렸는데, 개빈이 직후에 놈을 박살 냈었어.”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러면 당연히 복수해 줘야지.”
“맞아. 그러면 메츠 놈들은 레드 빈에게 보복해선 안 되지.”
“만약 보복구를 던진다면 스스로 파렴치하다고 광고하는 셈이 되는 거야.”
음…….
뭔가 그럴싸한 것 같기도 하다.
미친 팬들에게 둘러싸여 미쳐 버린 선수들이랑 같이 있다 보니, 나도 동화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설득당해 버렸다.
5
“퍽!”
메츠와의 3번째 경기.
타석에 들어서자, 에브러햄이 징그러운 표정을 짓고는 어제 내가 했던 말을 따라 했다.
“이건 fuck이 아니야. 바로 5초 뒤면 네 머리통에 공이 꽂히면서 날 소리지.”
아하.
그러니까 창의성 없는 이놈이, 이런 식으로 어제 당한 걸 그대로 돌려준다 이 말이지?
“음. 내 생각엔 아닌 거 같은데.”
“흐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퍽 하는 소리를 내면서 네 녀석의 머리통이 터져 버릴 텐데.”
“아니. 그건 내가 너희 투수의 면상을 박살 내는 소리일걸.”
“…Fucking idiot.”
놈의 얼굴이 참 볼 만했다.
개빈이 에브러햄의 저 얼굴을 봤다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
그 뒤로 어떻게 됐냐고?
음…….
퍽!
에브러햄이 예고한 대로 공은 내 몸에 맞았다.
하지만 투수의 표정을 보아하니, 억지로 던진 빈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벅지에 느릿한 공이 꽂혔고, 나는 참으려면 참을 수 있었지만 당장 마운드로 달려갔다.
어쩌면 저 투수는 베테랑들에게 떠밀려서 내게 보복구를 던졌을지도 모른다.
근데 뭐?
내가 알 바 있나?
나는 불쌍한 그 투수를 덮쳤고, 곧 우리 팀 선수들이 미리 준비한 대로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그 뒤는 잘 모르겠다. 사실, 마구 뒤엉키는 통에 내가 뭘 더 할 수는 없었다. 그냥 팬들이 마치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는 것처럼 흥분해서 기뻐하는 것은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결국, 나는 퇴장당했고, 뒤엉킨 선수들 사이에서 에브러햄을 두들겨 팬 개빈은 운 좋게 심판에게 들키지 않아서 나를 대신해 포수 마스크를 썼다.
그리고 우리는 메츠에게 3연승을 거두며 스윕 승리를 거두었다.
[필리스, 메츠를 스윕하며 지구 1위 탈환!] [홍빈과 개빈. 홈 플레이트의 싸움꾼은 필리스의 전통?] [홍빈, 빈볼 후 난투로 메이저리그 첫 퇴장.] [필리스 팬, ‘우리 포수는 공도 잘 치고 사람도 잘 친다. 너무나 자랑스럽다. 필리스 스피릿!’] [필리스 감독, ‘그 장면을 보지 못해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어떤 것이든 경기의 일부.’] [메츠 감독, ‘3연전 내내 필리스는 비열한 짓을 반복했다.’며 맹비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