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42)
홈플레이트의 빌런-43화(43/363)
# 43
남들만큼만 (1)
1
한국에서는 벤치클리어링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몸싸움만 해도 매너나 존중, 배려 같은 게 부족하다며 떠들어 대는데 주먹질까지 하면 아주 난리가 나지.
인성이 어쩌니 가족이 어쩌니, 동업자 정신에 프로 정신도 그렇고 듣도 보도 못한 각종 정신이 쏟아져 나온다. 지들이 정신체야 뭐야? 그리고 내가 SNS를 하지 않으니 팀 동료 선수들의 SNS에 몰려가서 욕을 하곤 했다.
기자들은 과거사나 출신 학교 같은 걸로 억지로 엮어서 10년 된 악연이니 뭐니 하고 표현하는 때도 있었고.
메이저리그?
여기도 비슷한 면은 있다.
팬들은 욕하고(대상이 누구든) 기자들도 기사를 써 댄다. 하지만 최소한 MLB에서 거물 대접을 받는 누군가가, 싸운 두 선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새벽에 술자리에 나오라고 하거나 기자들 앞에서 억지웃음을 지으며 포옹하는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일은 없다.
한국에서 ‘어린이날에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홍빈. 슈퍼스타의 품격은 어디로?’ 같은 제목이 뜰 때, 여기서는 ‘필리스 팬들을 환호하게 만드는 홍빈의 펀치!’라는 제목이 뜬다. 물론 날 비난하는 기사도 가끔 있기야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벤치클리어링도 경기의 일부라고 떠들지만, 그건 메이저리그에서나 제대로 통용되는 이야기다.
여기선 정말 경기의 일부라고. 보고 있나, 크보 놈들아?
“헤이, 뭐해?”
“응? 지미, 그냥 있었지.”
혼자 딴 생각하면서 KBO 욕하고 있었다고 대답하긴 또 좀 그렇지.
나는 두 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다. 굳이 항소는 하지 않기로 했고, 오늘은 훈련만 소화하고 클럽 하우스 안에서 경기를 TV로 볼 예정이다.
“젠장. 어젠 정말 끝내줬어.”
짐은 뭔가 살짝 흥분되어 보였는데, 쓸데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걱정이 앞선다.
“왜. 너도 상대 선수한테 주먹질하고 싶어?”
“아니, 난 그런 타입이 아니야.”
이게 무슨 소린지 조금 더 들어 봐야 알 것 같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안다는 말이 있는데, 거기서 한국을 미국으로 바꿔도 충분히 통한다.
사실, 미국 놈들 말을 이해하는 게 더 어렵다. 하도 돌려 말해 대서 그런지.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녀석을 바라보자, 짐이 정말 부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팬들이 널 사랑하기 시작했잖아.”
“그래? 벌써?”
자. 나는 나 자신을 꽤 인내심 있는 청자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우리의 미친 팬들이 나를 사랑하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정말 그들이 날 사랑한다면 개빈처럼은 아니더라도 삼진당한 후에 차라리 공에 맞고 나가라며 욕은 안 하겠지.
“오늘 구장 앞에서 네 노래를 부르는 팬들이 있더라고.”
그리고 짐은 더듬거리며 팬들이 불렀다는 그 노래를 불렀다.
음…….
이거…….
좋아해야 하나…….
이걸 부러워하는 짐을 보고 있자니, 음.
좋은 거로 치고 그냥 넘어가자.
2
“조심해! 레드 빈이 네 공을 터뜨려 버릴 거야!”
“Nut(머리) and nuts(고환)!”
“그가 네가 가진 모든 동그란 걸 터뜨리려 할걸?”
“Nut and nuts!”
“그다음엔 메츠 투수의 얼굴도 터뜨릴 테지!”
“Nut and nuts!”
몇몇 필리스 팬들은, 홍빈이 출장 정지로 두 경기를 쉬게 되었다는 소식을 이미 접했음에도 그들이 만든 노래를 부르며 필리스 홈구장의 명물, 히터 샌드위치 앞에서 줄을 서 있었다.
고작 20경기도 뛰지 않은 동양인 루키 포수에게 보내는 성원이라고 보기에는 과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포수 갈증에 시달려 오기도 했었고, 워낙 극적인 장면을 많이 연출하지 않았던가.
메츠와의 3연전 결과로 무려 381일 만에 선두로 나섰다는 사실이 그런 것들을 꽤 많이 증폭시킨 것일 수도 있다.
노래 자체가 홍빈의 활약이라기보다는 메츠를 조롱하는 느낌이 강한 것만 보더라도.
정확히 말하자면 메츠 3연전에서 홍빈의 성적은 좋지 못했다. 시즌 타율이 0.305인데 3경기에서 홈런 한 방을 제외하고는 안타를 때려 내지 못했으니, 성적을 까먹은 시리즈였다.
하지만 첫 경기에서 필리스 팬들이 가장 증오하는 선수 중 하나인 ‘AAA’ 에브러햄의 급소를 강타해 교체 아웃시켰고, 두 번째 경기에서는 패색이 짙던 9회 말에 끝내기 홈런을 때려 냈다.
세 번째 경기?
2회 말에 퇴장당했지만, 메이저리그 최악의 팀(필리스 팬의 입장에서)인 메츠의 선발투수를 내동댕이쳤으니까! 게다가 그 경기로 메츠를 짓밟고 지구 1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우리 선수들이 모조리 싸움꾼으로 채워졌으면 좋겠어. 샌님 같은 선수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고.”
“동의해. 야구는 져도 싸움에선 절대 지면 안 되지. 플로렌스를 봐. 한 대 맞으면 부러지게 생겼잖아.”
“무슨 개소릴 하는 거야? 게임과 싸움 둘 다 이겨야지.”
“맞아. 상대를 두들겨 패고 경기에도 이기면 최고지.”
“그래. 달려 나간 시점에서 벌금이 확정된 거야. 벌금 값을 해야지. 두들겨 맞고 벌금을 내면 억울하잖아.”
필리스 팬들은 샌드위치를 기다리며 두런두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저런 지극히 필리스다운 일상적인 이야기 외에도, 평범한 일상적인 대화도 있었다.
“개빈이 정말 은퇴할까?”
“믿어지지 않아. 그는 내 아들이 태어날 때 이 팀에서 데뷔했다고.”
“그가 우리 팀의 감독을 바로 맡는 건 어떨까?”
“괜찮네.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면 우리는 항상 감독을 잃게 되겠지만.”
“벤치 코치도 주먹을 잘 쓰면 좋겠어. 지금 벤치 코치는 맨날 누군가를 말리기만 한다고.”
언제나 벤치클리어링에 앞장서는, 팀의 상징적인 선수에 관한 이야기는 곧 감독과 수석 코치를 해고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아마 팀을 1위로 올려놓은 맥마나만 감독이 들으면 황당해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래도 2년 정도는 더 뛸 수 있지 않을까? 레드 빈이 잘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난 주전급 포수를 하나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해. 루키는 루키일 뿐이야. 매치니가 딱인데.”
“매치니도 좋지. 하지만 엘란더도 괜찮아. 아니면 대븐포트도 좋지. 그도 어리지만.”
원래 팬들은 그런 법이다.
라인업을 리그 최고의 선수들로 채우고 싶어 하고, 감독과 코치나 단장을 욕한다. 데려오려면 기둥뿌리를 뽑아야 하는 선수를 영입하자고 주장하면서도 자기 팀의 좋은 선수는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필리스 팬들은, 경기를 보러 온 한국인들에게 꽤 싹싹하게 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기준에서지만.
“오. 저기 아시아인인데, 한국인이겠지? 샌드위치를 먹으려고 줄을 서 있잖아.”
“물어보면 알겠지. 헤이! 거기 당신, 한국인이야?”
그 팬이 물어본 대상은 꽤 건장한 체격의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끼고 필리스의 티셔츠를 입은 한국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팬은 크게 웃으며 물었다.
“홍을 보러 온 거지? 이리와! 특별히 내가 산 샌드위치를 선물해 주지! 이거 굉장히 맛있다고. 우리도 홍을 사랑해!”
“I like 김-치!”
“그래! 우리가 홍의 응원가도 만들었어!”
“Nut and nuts!”
그들은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댔고, 홍빈의 유니폼을 입은 한국인에게 히터 샌드위치를 건네주고는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며 소리를 질러 댔다.
“어…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3
나는 필리스 팬이 건네준 샌드위치를 얼떨결에 받아 들고는 내 응원가를 들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내 이야기를 하길래 사인이라도 해 줘야 하나 싶었는데.’
나름대로 팬들에게 꽤 강렬하게 나를 각인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사인 요청은 무슨. 두유 노우 김치라고 물은 것도 아닌데 왜 아이 라이크 김치야? 한국 기자들이 물 다 버려 놨네.
샌드위치를 사러 갈 때와 마찬가지로, 클럽 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가끔 ‘레드 빈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팬들은 있었다. 내가 선수인 걸 알아채서가 아니었다. 젠장, 끝까지 관광객 취급이라니.
“제기랄. 가져왔어요.”
“표정이 왜 그래? 보아하니 아무도 네가 필리스 선수인 줄 몰라 봤나 보군. 내 말이 맞지? 유니폼을 벗고 러닝화를 신으면 모를 거라고 했잖아.”
“제가 그렇게 특색 없이 생겼어요? 분명 MLB.COM에 몇 번이나 얼굴이 올라갔는데?”
씁쓸한 기분으로 개빈에게 샌드위치를 건넸다. 무슨 40대가 그리 힘이 좋은지, 그는 왼손이었는데도 내기 팔씨름에서 졌기에 샌드위치를 사러 간 길이었다.
내가 가기 전에 팬들에게 둘러싸여서 제시간에 못 와도 이해하라는 헛소리를 했던가? 미친. 더 부끄럽네.
“왜, 누가 뭐라고 해?”
“한국인 관광객 취급하던데요. ”
“흐흐. 그건 또 나름대로 필라델피아를 돌아다닐 때 편하겠군.”
개빈은 묘하게 약 올리는 것처럼 웃으며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 물었다.
“몸은 좀 어때요? 준비됐어요?”
“날 걱정하려거든 나한테 팔씨름부터 이기고 와.”
“차라리 좌타자로 전향하면 어때요? 왼팔 힘이 끝내주던데.”
“해 본 적 있지 않아요?”
대화 도중 스캇이 끼어들었다. 그는 기괴한 색깔의 주스를 마시고 있다. 정력에 좋다나.
“그래. 진지하게 고려했지만, 실전에는 못 나갔어.”
“왜요?”
“그거야 개빈이 좌타석에서는 홈런밖에 못 때리기 때문이지.”
스캇은 그렇게 말하며 낄낄댔고, 개빈은 그새 샌드위치를 다 먹어 치우곤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시즌 50홈런을 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600타수 50안타 50홈런이 될 것 같더라고.”
하긴.
공갈포도 쓸데가 있다지만, 그 정도면 너무 심각하지.
오늘부터 3일간은 같은 지구의 워싱턴 내셔널스와 경기한다.
선수들은 다른 팀에는 몰라도 내츠에는 절대 지면 안 된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처음 합류했을 때는 초상집 분위기였는데, 성적이 좋다 보니 확실히 분위기가 살아나기는 하네. 약간 좀 오락가락하는 거 같긴 한데… 잠깐.
다른 팀에는 몰라도 내츠에는 절대 지면 안 된다고?
분명 메츠를 상대할 때도 그랬던 거 같은데?
게다가 파이레츠전이랑 카디널스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내츠 놈들을 박살 내 버리자고!”
“그래! 워싱턴 촌놈들의 오줌 지리는 날이 될 거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다면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는 거 아닐까.
아무나 박살 내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불도저야 뭐야.
ㅇㅅㅇ : 친구 없는 너한테 딱인 팀이다.
ㅇㅅㅇ : 팀 한번 잘 골랐다.
뭐.
친구 없는 게 어때서.
ㅎㅅㅎ : 칭찬인데 발끈하지 마라.
내가 언제 발끈했다고.
ㅎㅁㅎ : 지금. 방금.
퉤.
ㅋ□ㅋ : 반사.
아니 이 미친놈이 진짜.
4
개빈과 꽤 가까운 사이가 되어서가 아니라, 여전히 개빈은 좋은 선수다.
안정적으로 블로킹하고, 정밀하게 야수들을 배치한다.
나는 내 경력을 믿기는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지금까지 활약 중인 개빈의 노하우는 확실히 나보다 몇 단계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G-A-E-B-I-N-폴체스키!”
장내 아나운서가 힘 있게 알파벳 하나하나를 읊으면, 4만여 관중들이 하나같이 그의 이름을 따라 부른다.
암흑기라면 암흑기인 시기를 굳건히 지탱해 온 프랜차이즈 스타 아닌가.
그는 자신의 상태를 아주 잘 안다.
오른쪽 손목이 말을 안 들어서 임팩트 시에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한다. 사실, 그의 왼손 힘이 강한 것은 반쯤 고장 난 오른쪽 손목을 커버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울!”
10년 전… 아니, 3~4년 전이라면 홈런이 되었을 타구가 힘이 모자라 파울이 된다.
하지만 포수를 하기엔 많이 닳은 무릎과 허리를 가지고도, 바운드 볼을 거의 놓치는 법이 없다. 부상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달리며, 상대 선수에게 소리를 질러 댄다.
그래서 그런지 필리스 팬들은 개빈에게만큼은 관대하다.
오늘 경기에서 개빈이 무안타로 물러났고 팀이 졌음에도 개빈에게 야유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이제 개빈은 끝난 거지? 이제 그를 안 보게 되어서 기뻐. 퇴물이 드디어 가는군. 😀
┕개빈보다 네 목숨을 먼저 끝내 주지. 어디야?
┕내가 널 쏘고 나면, 아마 네 어머니가 널 다시는 안 보게 되어 기뻐할 거다.
누가 인터넷에서 개빈을 욕하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죽일 듯이 군다.
그리고 개빈은 올해가 끝나면 은퇴할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원래대로라면, 필리스가 와일드카드 진출 실패를 확정 지은 그 경기에서 갑작스럽게 은퇴 발표를 한다.
그런데 오늘 개빈은, 내가 아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타이밍에 은퇴 선언을 해 버렸다.
[개빈 폴체스키, ‘올해가 내 선수 경력의 끝.’] [폴체스키, ‘이제 끝이다. 조금 늦었지만, 결정의 때가 왔다.’]왜 그랬을까.
올해가 끝나면 은퇴하는 건 맞지만, 어쩌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다면 1년 정도는 더 할 수 있지도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워낙 몸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원래의 그 은퇴 발표는 충동적이었다고 나중에 밝히기도 했었으니.
그 발표 이후로도 개빈은 여전했고, 먹먹해하는 팀 동료들에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 누구 죽었냐면서 말이다.
야, 요정. 울지 마라. 평생 선수로 살 순 없잖냐.
시즌 끝나면 바로 코치로 계약한다더라. 원래와는 다르지만, 네가 좋아하는 개빈을 계속 볼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