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46)
홈플레이트의 빌런-47화(47/363)
# 47
양키 고 홈 (1)
1
사람들이 필리스에 대해 쉽게 갖는 오해 중 하나는,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스몰 마켓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전 세계 프로스포츠 팀 사상 최초 10,000패 달성 팀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리그 상위권보다는 하위권에 위치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엄연히 빅 마켓 구단이다.
빅 마켓이 아니라면 41세의 개빈 폴체스키에게 2,000만 달러의 연봉을 지급할 수 있겠는가.
필리스는 고액 연봉을 수령하고 있는 슈퍼스타들을 몇 보유하고 있음에도 성적이 신통치 않았지만, 자이언츠나 메츠 혹은 레인저스 같은 팀보다는 구단 가치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튼튼하고 큰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을 뿐이지 훌륭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고, 2020년대 후반부터 2030년대 초반까지는 무관의 제왕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지가 만패델피아로 박혀 버린지라 약팀 취급을 받을 때도 있었다.
투자 대비 성적이 좋지 못한 구단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올 시즌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구단주가 단장과 감독을 갈아 치우고 팀 체질 개선에 나서리란 것은 메이저리그에 공공연히 퍼진 소문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팀의 심장과 같은 개빈 폴체스키 이후 처음으로 갖게 된 주전급 포텐셜의 어린 포수.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하며 최소 2~3선발급의 포텐셜을 보여 주고 있는 두 젊은 선발투수.
주전급 포수와 에이스급 혹은 그에 준하는 선발투수를 둘이나 가질 기회는 흔한 것이 아니다.
그것도 그 선수들이 모두 올해 데뷔했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이 그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하는 것이 맞다.
만약 필리스가 돈이 없는 구단이라면 둘 중 하나를 택했을 것이다.
베테랑들을 모조리 팔아 치우고 몇몇 유망주를 중심으로 팀을 재건하거나, 유망주들을 내주고 다른 슈퍼스타를 영입해 올해에 승부를 보거나.
하지만 필리스는 충분한 자금력을 보유한 구단답게, 조금 다른 노선을 택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의 브랜든 아처는, 구단주와의 면담을 끝냈다.
구단주는 올해 우승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월드시리즈 우승에 집착해 포텐셜이 터지거나 터지기 직전의 유망주를 보내고 스타 선수들을 받아 오기보다는, 향후 몇 년간 리그를 지배할 왕조 건설에 동의한 것이다.
이것은 단장의 조급한 트레이드(유망주를 실제 가치보다 낮게 내주고 성적을 내기 위한)가 없을 거라는 말이기도 하고, 곧 재계약을 맺을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처는 구단주의 사무실에서 나온 직후, 개리 쟈니본에게 즉시 전화를 걸었다.
“개리! 양키스 단장에게 해 줄 말이 떠올랐어!”
-뭐라고요?
“Fuck you!”
아처가 신나서 소리치자, 문 안에서 구단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처, 뭐라고? 지금 그거 내게 한 말인가?”
2
어느 시점부터, 어디선가 그런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짐이 2루수와 트레이드될 거라는 둥, 메이저리그 레디가 완료된 마이너리거 넷 정도가 가고 새 유격수가 올 거라는 둥.
사실, 트레이드 대상 포지션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보다 트레이드 카드로 거론된 짐이 더 불안해했다.
다저스 포수인 셜롯도 미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리라고 평가받는 선수이기는 하지만, 그건 수비가 아니라 공격적인 재능이 워낙 탁월하기에 듣는 이야기다.
짐은 트레이드되지도 않았는데 셜롯의 수비력을 걱정하고 자빠졌다. 김칫국을… 아니, 미국에서는 이런 걸 뭐라고 하지? 옥수수 수프를 원샷…….
ㅇㅅㅇ : 퉤.
아니, 어제 심판이 한 아재 개그에는 빵 터지더니 나한테만 왜 그러냐.
ㅇㅅㅇ : 네놈의 개그에는 영혼이 없다.
아니 무슨, 이게 영혼이 어쩌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인 거야?
“저기, 미스터 홍?”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는데, 웬 꼬마가 내 유니폼을 들고 서 있다.
“오…….”
뭐라고 말해야 하나.
그러니까 얘 지금, 날 알아보고 사인을 받으러 온 거지?
“저기, 혹시 괜찮으시면 사인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대충 7~8살 정도의 꼬마로 보이는데, 굉장히 예의 바르다.
나름 용기를 내서 다가왔는지 우물쭈물하면서도 자기 할 말은 다 하네.
“좋아, 이리 줘 봐. 여기다 하면 되지?”
내 메이저리그 첫 팬 서비스가 꼬마 팬의 유니폼에 해 주는 사인이라 이거지. 사실 경기장에서는 몇 번 야구공에 사인해 준 적이 있지만, 사복을 입고 있을 때는 날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ㅇㅅㅇ : 꼬마가 불쌍하군.
뭐?
ㅇㅅㅇ : 정의롭고 모범적인 야구 선수도 많을 텐데 왜 하필 너 같은 악당 놈에게…….
저리 가. 지금 사인해 줘야 하니까.
“제 이름은 토미에요. 제 이름도 써 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지. 몇 살이니?”
“5살요.”
5살이라고? 5살치곤 엄청 큰데?
뭐, 상관없지. 그래도 꼬마 팬이 생기니 뭔가 뿌듯한 기분이다.
“오, 고맙습니다. 제 아들이 당신의 엄청난 팬이거든요. 토미, 아빠랑 같이 가야지.”
내가 사인을 해 주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다니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아무래도 이 꼬마는 나를 발견하고 아빠한테 말도 없이 내게 달려왔나 보다.
필리스 팬치고는 굉장히 젠틀한 부자(父子)네.
“제 팬이라니 기쁘네요.”
“필리스에 계속 있을 거죠?”
응?
“물론이지. 내가 가긴 어딜 가? 여기서 은퇴할 거야. 걱정하지 마.”
물론 그냥 해 본 말이다. 사람 일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다행이다.”
“하하, 애가 걱정 많이 했어요. 다른 팀으로 간다는 소문이 돌아서요. 어찌나 울던지, 꼭 필리스에 남아 줬으면 합니다.”
응? 그런 소문이 있었다고?
“예?”
내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는지, 토미의 아빠는 손을 절레절레 휘저으며 대답했다.
“인터넷이란 원래 그런 법이죠. 헛소문이 돌고, 누군가는 퍼뜨리고…….”
“양키스를 부숴 버려요.”
어쩌면 굉장히 필리스 팬다운 말이 이 꼬마 팬에게서 나오다니. 살짝 수줍어하면서도 정중한 꼬마인 줄 알았는데, 역시 너에게도 필리스의 붉은 피가 흐르는구나…….
그나저나 양키스 트레이드설이 있었나?
그러고 보니 이번 3연전이 끝나면 양키스 원정이었지? 더블A에서 만났던 Y.J.라이프가 요새 장난 아니라던데.
“꼭 양키스를 박살 내고 올게. 아, 혹시 야구도 하니?”
“네!”
“얼마 전부터 포수를 시작했어요. 당신이 파울볼을 잡는 걸 보고 반했거든요.”
오. 미래의 메이저리그 포수란 말이지.
“넌 좋은 포수가 될 거다.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내 첫 꼬마 팬을 한번 안아 주고, 토미의 아버지랑 악수를 나누고 자리를 떴다.
“브레이브스를 박살 내 줘요! 겨우 2할을 치는 그 얼간이 포수보다 홍이 더 좋은 포수라는 걸 보여 줘요!”
흠.
아까도 느꼈지만 귀엽게 생겼다고 방심해선 안 되는 게 필라델피아구나.
쟤도 20년쯤 뒤에는 펜스에 매달려서 술에 취한 채 욕하고 중지를 들어 올릴 거 아냐?
동네에 수맥이라도 흐르나?
보통 애가 저런 말을 하면 아빠가 말려야 할 텐데, 토미의 아버지는 토미를 흐뭇하고 대견한 표정으로 사랑을 가득 담아 바라보고 있다.
허허.
훌륭한 필리건이 될 인재다… 어쩌면 진짜 필리스 포수가 될지도…….
응?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스토린데?
3
“스트라이크-아웃!”
브레이브스의 타자가 짐의 95마일 패스트볼에 속절없이 삼진을 당했다.
짐은 요새 구속에 집착하기보다는 조금 더 정확하게 던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 맞다. 놈은 괴물이다. 확실하다. 제구 잡느라고 줄인 구속이 95마일이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솔직히 말해서 제구에만 치중해서 밋밋한 공을 던질 거면 그냥 힘껏 던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놈의 재능이야, 뭐. 습득력이 엄청난 녀석이다 보니 이런 변화도 순식간에 해낸다. 100마일의 제구 안 되는 패스트볼보다는 95마일의 제구되는 패스트볼이 더 훌륭한 성적을 내고 있는 거다.
“굿, 짐.”
“흐흐. 마지막에 헛스윙 한 타자 표정 봤어?”
“내가 너보다 더 잘 봤다. 제구 끝내줬어.”
짐은 이제 공공연히 자신을 짐이라고 불러 달라고 하고 다닌다. 시즌이 끝나면 등록명을 변경할 거라나.
그리고 짐의 관리법은 여전하다.
칭찬해 주고, 우쭈쭈해 주고, 엉덩이를 두드려 주면 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칭찬은 짐의 제구력을 더 좋아지게 한다.
내가 포수 마스크로 짐의 엉덩이를 툭 치자, 짐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혼자 사는 게 외롭다고 개를 한 마리 키울 필요는 없겠다. 이건 뭐 거의 2미터짜리 개가 한 마리 있으니까.
“개빈도 좋은 포수지만, 역시 난 너랑 호흡 맞추는 게 좋아.”
짐은 누가 듣지는 않는지 주위를 살피며 내게 귓속말을 하고, 더그아웃의 다른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기 자리로 들어갔다.
뭐야, 이 깜짝 고백 같은 분위기는.
ㅇㅅㅇ : 홍게…….
저리 가, 좀.
아, 포수 장비를 새것으로 바꿨다.
이건 갈아입는 게 꽤 편하다. 그래도 귀찮은 건 어쩔 수 없다. 아이언맨 슈트처럼 자동으로 입고 벗는 걸 원했지만 아무도 그런 건 안 만든다고…….
내가 회사라도 만들어서 개발해야 하나.
“흐흐. 바쁘군.”
“바쁘죠, 엄청나게. 젠장.”
“조만간 어떤 미친놈이 자동으로 장비 입히고 벗어 주는 기계를 만들지도 모르지. 그때를 기다려.”
그 어떤 미친놈이 제가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개빈.
그렇게 말은 하지 못했다. 진짜 미친놈 취급할 것 같아서.
이닝 선두 타자로 나설 때면 이게 꽤 고역이다.
빠르게 장비를 벗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주자로 나섰다가 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로 공수 교대가 된다면, 베이스에서 급하게 돌아와 장비를 급하게 차고 다시 나가야 한다.
1초 무적 믿고 포수 장비 없이 수비해 봐?
음. 규정에 어긋나겠지.
빠르게 장비를 벗고 헬멧을 앞으로 돌려 쓴 후, 배트를 찾았다.
“오늘 저 투수, 평소보다 체인지업이 덜 가라앉아.”
개빈은 경기를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지켜본다. 그리고 타자들에게 팁을 알려 준다.
체인지업이 덜 가라앉는다? 사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다. 나는 저 투수를 처음 상대해 보니까.
“고마워요. 체인지업을 노려보죠.”
평소와 뭔가 다르다는 점은 어딘가 이상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건 평소의 구위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말이며, 그걸 노려야만 한다는 거다.
아마 개빈도 확신이 생길 때까지 관찰했을 테고, 이닝 선두 타자인 내게 말해 준 것일 거다. 확신이 없는데 그런 말을 했다가 타격 밸런스가 무너지면 큰일이니까.
[조 블랙.] [좌투좌타, 선발투수.] [키워드 : 그라운드 볼러, 이닝 이터.]좌완에 땅볼을 많이 만들어 내고 이닝을 잘 소화한다는 점에서, 키워드가 두 개뿐이라도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선수다.
아마 시즌 성적이 4승 4패 4.21. 키워드가 성적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마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키워드는 부상이나 게으름 등으로 사라지곤 하지만, 노력한다고 추가되는 것만은 아니다.
“볼!”
사실, 제구가 좋은 타입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그럭저럭 묵직한 패스트볼을 던지고, 체인지업 타이밍을 잡는데 소질이 있는 투수다. 8마일 정도의 구속 차이와 뚝 떨어지는 무브먼트가 강점이다. 게다가 패스트볼을 던질 때와 투구 폼도 거의 똑같다.
체인지업만을 노리려는 작전이기에 어깨를 조금 뒤로 당겼다.
스윙 타이밍이 조금 늦어도 괜찮다. 정확하게, 강하게 때려 내기만 하면 된다.
“스트라이크!”
93.2마일의 패스트볼.
나쁘지는 않은 코스였지만 내가 노리는 것은 체인지업이기에 흘렸다.
사실 흘렸다기보다는 타이밍이 안 맞아서 놓쳤다고 보는 게 맞겠다.
투수가 와인드업을 시작했고,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배트를 낼 준비를 마쳤다.
패스트볼과 같은 투구 폼, 릴리스 포인트. 그렇지만 내가 준비한 타이밍이…….
따악!
나는 적당한 스피드로 베이스를 돌았다. 베이스가 비어 있는 것은 좀 아쉽다.
1 대 0으로 앞서 나가는 솔로 홈런.
우리 팬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머리와 불알이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노래를 불러 주었다.
음…….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체인지업이 덜 가라앉아요.”
나는 나의 다음 타자로 나서는 앤드류에게 귓속말로 이야기해 준 후, 더그아웃 근처에서 쉴 새 없이 머리와 불알을 찾는 우리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이리와! 꼬마!”
“언제 봐도 끝내주는 스윙이야!”
필리스 선수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아, 머리, 머리 좀!
우리 타자들은 체인지업만을 노렸고, 상대 투수가 그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게다가 체인지업으로 먹고사는 투수가 체인지업을 안 던지면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리가 있나. 결국 그는 3.2이닝 6실점으로 패전을 기록했다.
그렇게 우리는 제2의 만패 팀인 브레이브스에게 승리를 거두었고, 남은 두 경기에서 1승 1패를 기록하며 인터리그 양키스 원정 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