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52)
홈플레이트의 빌런-53화(53/363)
# 53
You can! (2)
1
백투백투백투백투백 홈런?
개뿔.
백투백은 커녕 그냥 홈런도 못 치고 있다. 짐은 7이닝 3실점을 하고 내려갔다.
상대 투수는 루키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선수다. 그런데 7이닝 1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정도면, 누가 됐든 최소한의 재능은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한 경기 정도는 잘할 수도 있다. 재수없게 우리 팀이 그 날에 걸린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경기 전에 개빈이 한 말을 떠올려 보면… 셜롯이 저 투수를 잘 이끌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레스 홀.] [우투우타, 선발투수.] [키워드 : 기세, 슬로우 스타터, 널뛰기.]셜롯이라는 변수를 제외하고 나면, 첫 3이닝 동안 공략하지 못한 게 패인이다. 기세는 경기 초반에 좋은 성적을 내면 후반까지 좋은 집중력을 유지하는 선수들이 가진 키워드고, 슬로우 스타터는 말 그대로 몸이 풀리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선수들이다. 경기가 좀 진행되고 나면 실력을 발휘한다. 널뛰기는 기복이 심한 선수가 갖는 키워드다.
말 그대로, 오늘은 기복이 심한 선수가 유달리 컨디션이 좋은 날인 거다. 초반을 제대로 넘기고 나니 완전 불붙어 버린 거지.
“패스트볼 한번 쳐 볼래? 어때? 자신 있어?”
셜롯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경기 시작 이후부터 우린 패스트볼로 말싸움인지 말장난인지 모를 입씨름하는 중이다.
나와 셜롯 둘 다 패스트볼을 던지겠다고 해 놓고, 커브 사인을 내거나 슬라이더 사인을 낸다. 변화구만 노리면 되지 않냐고? 그렇다고 패스트볼을 안 던지는 게 아니니까.
어차피 의미 없는 말이고, 나도 셜롯도 신경 쓰지 않는다.
“볼!”
아니나 다를까 존 밖으로 살짝 휘어져 나가는 슬라이더.
“패스트볼인데 끝내주게 휘지?”
“제구가 엉망이네. 게다가 패스트볼치곤 느려.”
“흐흐. 그럼 이번엔 존 중앙으로 패스트볼을 던지라고 할게.”
이놈, 나랑 말장난하는데 재미 들렸나?
셜롯의 리드는 투박하다. 모험을 즐기는 타입으로 보이는데, 오늘은 그게 대부분 통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래도 상대 투수의 구위가 조금씩 떨어져 가고 있으니, 셜롯이 떠들어 대는 것과는 관계없이 패스트볼만 노릴 생각이다.
“볼!”
2점 차로 밀리고 있는 8회 초 상황에서는 공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내가 홈런을 때려 내더라도 경기를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신중하게, 존을 좁히고 출루에만 집중해야 한다.
“볼!”
“헤이. 한 번만 휘둘러 줄래? 우리 투수가 스트라이크 던지는 법을 까먹은 것 같아.”
3볼. 배트를 내지 않는 게 정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볼카운트는 안타를 치기 가장 좋은 카운트 중 하나다. 칠 만한 공이 오면 그냥 친다는 자세로 접근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베이스 온 볼스!”
하지만 고의인지 실수인지는 몰라도, 한참 벗어나는 곳에 공이 들어왔다.
슬쩍 포수를 바라보니,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입 모양이 F였다.
“우리 투수가 병살을 잡아 보고 싶다고 해서 볼넷 하나 줬다. 내일 나한테 볼넷 갚는 거 잊지 마.”
말을 말자, 말을.
나는 베이스로 나가서 벤치를 살폈다. 혹시나 도루 사인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런 사인은 없었다.
내가 동점 주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게 맞기는 하다. 그리고 투수의 투구 폼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해서 타이밍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아웃!”
하지만 다음 타자인 코난이 간단하게 팝 플라이 아웃을 당했고, 앤드류가 2루수 땅볼을 쳤다.
“아웃!”
“아웃!”
최대한 병살이라도 어떻게 방해해 보려 했지만 다저스의 수비는 깔끔했다.
그리고 오늘 경기는 다저스 마무리인 헨리 보크스의 1이닝 퍼펙트로 마무리됐다.
2
다저스타디움은 언덕에 지어져 있고, 야간경기 때는 공기가 식어 하강기류를 형성해 공이 덜 뻗고, 습기를 머금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다.
반면, 외야가 크지 않고 수비하기 편한 펜스 모양 덕에 2루타나 3루타는 또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야간경기에 강한 ‘올빼미’ 키워드를 가진 로저스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높은 피장타율이 단점인데, 위에서 말한 것들이 로저스의 단점을 상쇄시키고 있다.
“아웃!”
뻗던 공도 잡히고.
“아웃!”
그냥 공도 잡히고.
“아웃!”
켄트는 강한 어깨로 보살도 해내고.
“Boooooooo!”
“Kent, you can’t! Son of bitch!”
켄트는 수비력이 좋다. 그리고 외야에서 레이저 송구를 마구 쏴 댄다.
그리고 마치 흔해 빠진 클리셰처럼, 상대 팀이 켄트를 향해 야유할 때는 저 멘트가 나오곤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 멘트는 우리 팬들이 먼저 시작한 거다. 켄트가 잘 하면 ‘You can!’이라고 외치고 실수라도 하면 ‘You can’t!’라고 외친다. 물론, 뒤에 F나 S로 시작하는 단어가 붙는 건 기본이다.
“Great assist.”
“투수해도 되겠지?”
켄트도 우리 극성 팬들에게 적응 완료된 선수 중 하나다. 농담으로 필리스 패치 혹은 필리스 모드라고 하는데, 켄트는 그런 부분에서는 우리 팀에서 최고의 선수 중 하나다. 종종 팬들이 ‘You can’t, idiot!’이라고 소리 지르면 ‘You too, idiot!’라고 소리 지르곤 한다.
한국에서 저랬다간 팬을 우습게 안다고 아주 난리가 났을 텐데.
필리스 팬들이 특이한 것인지, 아니면 메이저리그가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그냥 외야에서 팬들이랑 저렇게 말다툼하면서 논다고 하더라.
“포수는 하지 마세요. 제 자리 넘보지 말라고요.”
“흐흐. 포수도 할 수 있을걸? 나는 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다고(I can’t, but I can).”
자기 이름 가지고 말장난하는 거 보소. 멘탈 하나는 끝내주는 선수다. 시즌 20홈런을 때릴 파워도 있고.
하지만 켄트의 타구는 오늘따라 번번이 펜스 앞에서 잡힌다. 밤의 다저스타디움은 공이 쭉 뻗어 나가질 못하니까.
그리고 그건 켄트뿐 아니라 우리 모두 마찬가지였다.
다저스도, 필리스도.
이틀 연속, 투수전. 타자들의 표정에 피로감이 잔뜩 서렸다.
그리고 나는 4회 초에 선두 타자로 타석에 나서게 되었다.
“존 중앙에 하나만 줘 봐. 경기 너무 루즈하지 않아?”
“난 이런 경기 좋아해. 병살을 잡고 싶으니 볼넷으로 나가.”
볼넷을 내준다고?
딱!
거짓말하고 자빠졌네.
바깥쪽 존 안으로 들어오는 패스트볼에 힘껏 배트를 돌렸고, 2루타나 3루타가 잘 나오지 않는 다저스타디움임에도 타구가 중견수와 좌익수 사이로 샜다.
득점권에 나갈 기회다. 놓칠 수 없다.
“세이프!”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2루에 안전하게 도착.
하지만 동맥경화에라도 걸린 것 같은 하위 타순 타자들은 3연속 범타로 물러났다. 이닝 선두 타자가 득점권에 갔는데도 무득점.
끔찍한 날이다. 투수전은 야수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다.
실수 하나로 무너질 수 있는 게 이런 경기다. 다저스가 요새 늪 야구를 한다고 명성이 자자했는데, 바로 이런 느낌인가.
사실, 두 선발투수가 에이스급이라 못 치는 게 아니다.
그냥 뭔가, 양 팀 모두 어딘가 꽉 막혀 있는 거다.
어제처럼 져선 안 된다. 분위기를 끌어올려야 한다. 강팀이 되기 위해서는 연패는 하지 않고, 연승은 길게 이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7회 초.
2사 주자 1, 2루 상황에서 내게 기회가 돌아왔다.
앤드류와 코난의 컨디션이 정말 좋지 못한 이 상황에서, 내가 노릴 것은 일발 장타뿐이다.
공을 쪼개 버릴 각오로.
3
[PHI chat]AssholeAAA : 여기서 레드 빈이 볼넷을 얻더라도 우린 점수를 못 낼걸.
Showtime : 단장 대가리 속에 뇌 대신 마카로니가 든 것 같아. 방망이를 쓸 줄 아는 유격수나 2루수를 구해야 해. 둘 다면 더 좋고.
Fucking mets :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하루 남았어. 쓸 만한 선수를 구할 수 있을까? 유망주를 키우는 건 어때?
Schmidt20 : 레드 빈의 타순을 조금 더 앞으로 조정해야 해. 그는 클러치 히터야. 6번에 놓기엔 아까워.
Buytheway : 차라리 1번이나 2번으로 쓰는 건 어때?
CanCant : 포수는 아주 힘든 포지션이야. 적당한 타순을 찾아 주는 게 좋아. 어쨌든, 그가 우리 팀이라 기뻐. 그는 내셔널리그 최고의 포수야.
Redbean : 닥쳐, 병신아. 그는 메이저리그 최고라고.
Captain max : Hi, 친구들. 다저스타디움은 좆 같네. 너희들이 그리워. 여긴 얼간이 같은 파란 유니폼 천지야. 화장실에 스머프들이 가득하다고!
YouCanCant : 오, 젠장. 캡틴! LA에 경기 보러 갔어? 같이 가지!
Captain max : 토미가 생일에 레드 빈을 보러 가고 싶대서. 올테어 집안 남자들끼리 LA를 침공 중이지. 3대가 모두 레드 빈의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고 있다고. 자이언츠 3연전까지 보고 필라델피아로 돌아갈 거야.
Sexy jin : 멋진데? 내 아버지도 캡틴 필리스 같았으면 좋았을 텐데.
Mets sucks : 어제랑 오늘, 타구가 정말 안 뻗는데, 거기서 보기엔 어때?
Captain max : 맞아. 공에 누가 줄이라도 묶어 놓은 것처럼 가다가 멈춰. 그런데 조금 전부터 바람 방향이 조금 바뀐 느낌이야. 뭔가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Kong Kong bean bean : Do you know Young-gun oh?
King jimmy : Young-gun oh? 그게 누구야? 우리의 새로운 유망주인가? 한국인이야?
Redbean : 오! 젠장! 캡틴! 방금 레드 빈이 홈런을 쳤어! 설마 아직 화장실이야? 아니겠지? 설마 LA까지 가서 저걸 못 본 거야?
BINillies : 미쳤어! Fuck! 장외 홈런이라고! Fuck! 우리가 3점 앞서게 됐어! 레드 빈! Fuck!
Mets sucks : Holy shit… 크고 아름다워… 캡틴이 한 말이 맞았어.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더니 정말 날려 버렸다고!
Captain max : 정말이야? 이런 Fuck! 가 볼게, 친구들! 이걸 놓치다니!
4
토미의 아버지인 맥스 올테어는 급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홍빈이 3점 홈런을 친 것치고는 꽤 평화로웠던 것이다. 그리고 자리에 도착해서야 자신이 채팅방 멤버들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미, 레드 빈이 장외 홈런을 쳤다며?”
“아빠, 레드 빈은 지금 공을 10개째 보고 있어요. 장외 홈런을 치면 좋겠어요.”
“맥스, 무슨 헛소리냐?”
맥스의 아들과 아버지(토미의 할아버지)가 동시에 맥스를 바라보며 황당해했고, 맥스는 전광판의 스코어가 여전히 0 대 0인 것을 확인했다.
야구고 뭐고 눈에 들어오겠는가.
맥스는 당장 스마트폰을 열어 채팅방에 접속했다.
Captain max : 개자식들. 필라델피아로 돌아가면 모조리 박살 날 줄 알아라.
그런데 전송을 누르고 얼간이들의 답장을 기다리는데, 답장이 오지 않고 있었다. 자신을 놀리고 낄낄대고 있는 녀석들의 얼굴이 눈앞에 선했다.
맥스는 이어서 F 워드를 채팅창에 치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아들과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소리를 질러 댔다.
“아빠! 아빠! 저거 봐요!”
“토미, 잠시만 기다려. 내가 이 자식들을…….”
“해냈어! 그가 해냈다고! 레드 빈이 저 빌어먹을 투수의 공을 박살 냈어!”
맥스는 그제야 그라운드로 고개를 돌렸다.
홍빈이 2루를 도는 모습, 주머가 뒤뚱거리면서 홈으로 들어가는 모습, 켄트 롱이 홈에서 양팔을 들고 주자들을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분노가 끝까지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Captain max : 개자식들아!!! 너희 때문에 진짜를 놓쳤다고!!!
제대로 속았고, 제대로 걸렸다.
하긴, 필리스 타자가 홈런을 치면 근처에 있는 무언가를 던진 후에 소리를 지르며 집 밖으로 뛰쳐나올 놈들이다. 장외 홈런을 보고 채팅이나 치고 앉아 있을 놈들이 아니었다.
채팅방의 멤버들이 충분히 소리 지르고 날뛰었는지, 잠시 후에 채팅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Mets sucks : Oh, my god…….
BINillies : 아니, 그게 아니야. 이제부터 오 마이 갓은 Oh my bin으로 바뀔 거야.
Redbean : 젠장. 캡틴이 부러워. 이걸 직관하다니.
Captain max : LA까지 와서 우리 병신 같은 타자들이 삽질하는 것만 보다가 드디어 홈런이 나왔는데! 너희들 때문에 못 봤다고!
맥스는 울부짖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맥스가 말한 대로 계속 답답한 경기가 이어지다가 겨우 시원한 홈런이 나오지 않았는가.
채팅방에서는 맥스의 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신난 필리스 팬들의 홍빈 찬양이 이어졌고, 경기장에서는 토미의 할아버지가 토미를 목말 태우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조심해! 레드 빈이 네 공을 터뜨려 버릴 거야!”
“Nut and nuts!”
할아버지가 온 힘을 다해 얼굴이 벌게지도록 선창하면, 손자가 조그마한 주먹을 휘두르며 후렴구를 불렀다.
주변의 몇몇 다저스 팬들이 쳐다봤지만, 올테어가의 남자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맥스도 홈런을 직접 보지 못해 분한 마음을, 홍빈이 홈으로 들어가면서 환호하는 것을 보며 풀어 버리고 노래에 동참했다.
“그가 네가 가진 모든 동그란 걸 터뜨리려 할걸?”
“Nut and nuts!”
비록 홍빈이 다저스타디움에서 장외 홈런을 때려 낸 5번째 선수는 되지 못했지만, 필리스는 홍빈이 선제 3점 홈런을 때린 기세를 타서 4 대 1로 승리를 거두었다.
[AL, NL을 가리지 않고 강팀들을 박살 내고 다니는 필리스! 포스트시즌을 정조준하다!] [필리스 감독, 홍빈의 타순을 바꾸라는 요구에 대해 ‘필리스에 정해진 타순은 없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