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53)
홈플레이트의 빌런-54화(54/363)
# 54
Big 고추, 작은 고추 (1)
1
상대 팀의 포수가 강하거나 악연으로 꼬이면, 타자보다는 포수로서 경기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언론이나 팬들은 보통 내가 안타나 홈런을 쳤는지, 타점을 올릴 기회에서 어떤 타격을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혹은 도루를 하거나 잡아낸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블로킹에 대해서 말하기도 한다.
조금 더 나가면 프레이밍으로 몇 개의 스트라이크를 잡었는지, 타구 발사 각도나 타구 발사 속도, 스윙 메커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애석하게도 야구의 역사가 굉장히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수라는 포지션에 대해 명확한 정의가 내려진 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포수 본인이 아닌 그 누구도 경기 내내 포수가 어떤 노력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우타자가 타석에 들어와서 왼발의 각도를 5도 정도 바깥으로 틀었는지, 오른발을 2cm 정도 앞으로 내밀었는지, 턱을 포수 쪽으로 평소보다 얼마나 더 당기고 있는지.
포수가 아니라면 누구도 그런 걸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포수는 그런 것들을 모두 고려해야 하며, 언제든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6 대 5, 1점 차로 앞서고 있는 마무리 상황이라면 더하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 팀의 오른손 홈런 타자가 몸 쪽 공을 펜스 밖으로 넘기기 위해, 왼발을 3cm 정도 바깥으로 빼고 오른쪽 어깨를 열어 팔꿈치를 살짝 들어 올리고 있는데 몸 쪽 공을 요구하는 건 자살행위다.
물론 몸 쪽 공을 강하게 치기 위해 기다린다고 해서 모든 몸 쪽 공을 외야 2층 스탠드에 꽂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 1%의 확률이라도 높이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 게 야구라는 스포츠고, 수십 수백만 수천만 달러를 쓰는 대신에 투수에게 바깥쪽 낮은 코스 체인지업을 요구하는 건 아주 상식적인 일이다.
사실 모든 포수가 그런 상식적인 것을 이런 상황에서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모든 투수가 정확하게 공을 던지지도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 상식을 아는 포수고, 그레이 밴델튼은 내 요구와 비슷하게 공을 던질 줄 아는 투수다.
탓!
강하게 당겨 치려고만 하는 타자의 빠른 스윙은, 배트 끝으로 체인지업을 살짝 건드릴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런 타구는 1, 2루 간으로 향할 확률도 높다.
그러나 2루수는 이미 투수가 오프스피드 피치를 던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지정한 위치로 한 걸음 이동해 있었다.
“아웃!”
“아웃!”
동점 주자가 나간 상황에서 홈 팀 중심 타선 타자가 9회 말에 경기를 병살로 끝내 버리면, 자기 팀 관중들에게 거센 야유를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홈 팬들에게 야유받는 남의 팀 선수를 걱정해 줄 이유 같은 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Good!”
“오늘도 완벽했어요, 그레이!”
나는 마운드로 뛰어가 그레이와 하이파이브 했고, 3연전 첫 경기를 내줬음에도 다저스에게 위닝 시리즈를 결정지었다.
“끔찍한 놈들.”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본 개빈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피곤한 시리즈였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매 경기마다 양 팀의 마무리 투수가 등판해야 할 정도로 접전이었으니까. 그레이가 이틀 연속 등판했으니, 최소한 하루 정도는 쉬어 줘야 할 텐데.
“그래도 이겼으니 됐죠.”
투수전이든 타격전이든 경기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승리했고, 그게 다다.
3경기 연속 접전에서 생긴 피로는, 위닝 시리즈를 거두었기에 어느 정도 상쇄될 것이다.
다저스 입장에서야 힘들겠지만, 아까도 말했듯 다른 팀의 사정 따위는 관심조차 없다.
2
그나마 다행인 것은, LA와 가까운 거리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음 경기를 치를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에서 나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 중인 자이언츠의 대븐포트는 오늘로 41경기를 치렀고, 홈런 16개를 기록 중이다.
시즌 성적은 데뷔 직후에 이렇게 몰아친다고 해서 단순하게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풀 시즌 4분의 1경기 만에 16홈런을 기록했다 해서 162경기에서 64홈런을 쳐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븐포트는 50경기 만에 21홈런을 때리지만, 남은 경기에서 8홈런 추가에 그쳐 29홈런으로 시즌을 끝낸다.
그리고 그다음 시즌에는 2할 8푼이던 타율이 2할 4푼으로 떨어지고 23홈런을 친다. 그 소포모어 징크스(2년차 징크스)를 겪고 나서는 더 좋은 타자가 될 테지만.
어쨌든 데뷔 초반에 임팩트를 보여 준 다음 성적의 향방은, 다른 팀들의 분석을 얼마나 이겨내느냐, 얼마나 노력하느냐다.
당연히 그건 내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내가 유리한 점은 체력 소모가 큰 포수 포지션임에도 금강불괴 스킬 덕분에 체력적으로 유리하다는 점.
나는 지금 28경기 11홈런으로 2.54경기당 홈런 하나씩을 때려 내, 2.5경기당 홈런 하나를 치고 있는 대븐포트에게 살짝 밀리고 있다. 사실, 소수점 둘째 자리면 그냥 비슷하다고 보긴 해야 하지만.
ㅇㅅㅇ : 도전할 준비가 되었느냐, 작은 고추.
뭐? 도전? 아니, 작은 고추?
ㅎㅅㅎ : 네 입으로 대븐포트에게 밀리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ㅎㅅㅎ : 그럼 작은 고추지.
ㅎㅅㅎ : 게다가 대븐포트가 너보다 키도 크다.
ㅎㅅㅎ : 다윗과 골리앗. 빅 마켓과 스몰 마켓. 큰 고추와 작은 고추.
그냥 다윗과 골리앗이라고 하면 되지, 왜 하필 고추냐.
그리고 나보다 커 봤자 2cm 정도다. 거의 차이도 안 난다고.
ㅇㅅㅇ : 그런 사소한 것에 연연해서는 결코 초소형 포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ㅎ□ㅎ : 초소형 포수, 작은 고추.
내 팬티 속에 들어가서 다시 한 번 확인해 볼래?
꼭 내가 그래야만 하겠냐고.
ㅍㅅㅍ : 배은망덕한 놈… 좋다. 작은 고추 소리는 그만두지.
ㅍㅅㅍ : 어쨌든, 네 녀석에게 미션을 하달하겠다.
[요정님의 미션 도착!] [폴 대븐포트가 50경기 21홈런을 달성하는 것을 저지하세요!] [성공 시 선택형 스킬 팩 지급, 실패 시 스킬 하나 삭제 페널티.] [수락하시겠습니까?] [Yes or no.]잠깐. 미션이 뭐라고?
야이 미친 요정 놈아. 내가 투수로 보이냐? 난 투수가 아니고 포수라고.
게다가 50경기를 채우기까지 3경기가 남은 것도 아닌데, 뭐? 3연전에서 한 번도 못 치더라도 남은 경기에서 4개 치면 어쩔 건데?
ㅡㅅㅡ : 선택형 스킬 팩에 스킬 레벨업권 하나.
장난하냐? 흐름 타고 있는 타자 타격감 망치는 게 그리 쉬운 일인 줄 알아?
ㅡㅅㅡ : …스킬 레벨업권 둘.
스킬 레벨업권 다섯 개.
ㅡㅅㅡ : 세 개.
네 개.
ㅣㅅㅇ : 할 생각 없으면 그럼 이만…….
오케이. 세 개 콜. 성질 급한 거 보소. 사람 말은 끝까지 듣고 가야지.
[요정님의 미션을 수락했습니다!]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작은 고추가 맵다는 걸 보여 주세요!]요정 이놈이 끝까지?
ㅍㅅㅍ : 아니다, 이놈아. 저건 내가 말한 게 아니다.
ㅠㅅㅠ : 놔라, 이놈아.
ㅠㅅㅠ : 놓…….
ㅠㅅㅠ : …….
3
굳이 요정의 미션을 받아들인 것은, 실패해서 스킬 하나 삭제 페널티를 받아도 버릴 스킬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차피 스킬 삭제는 내가 선택하는 거다. 랜덤으로 스킬이 날아가서 S급 스킬도 날아간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긴 하겠지만, 제물로 바칠 만한 스킬이 있어서 부담이 덜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대븐포트에게 홈런을 내주지 않는 것뿐만이 아니라 타격감을 완전히 죽여 버리는 것이다.
50경기까지 남은 경기는 9경기고, 21개까지 남은 홈런 개수는 5개다.
9경기 5홈런?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홈런은 예기치 못한 순간 마구 터질 수도 있는 거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븐포트가 원래 그걸 해낼 운명이라는 거다.
3경기 내내 대븐포트에게 승부를 걸지 않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대븐포트의 홈런 패턴을 연구하고, 약점이 무엇인지, 또 습관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어퍼 스윙을 주로 해서 발사 각도가 좋아요. 공격적인 스타일이라 초구에 스윙이 잘 나오고, 2스트라이크 이후에도 기죽지 않고 큰 스윙을 해서 삼진도 많은 타입이죠.”
“그래?”
쇼는 사과를 베어 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미션에만 신경 쓰느라 경기를 놓쳐선 안 되기에, 대븐포트에만 집중할 수는 없다.
내 욕심 때문에 우리 팀의 에이스와 에이스가 될 투수들의 기록을 망칠 수는 없다. 볼넷을 남발하며 승부를 피하기보다는 철저히 짓밟으며 타격감을 망가뜨려야 한다.
사실 짐은 몰라도 쇼나 로즐이 무작정 그를 피해 가는 볼 배합에 동의할 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쇼는 최근 뜨거운 스타로 급부상한 폴 대븐포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보더라인 투구, 2스트라이크에서 뚝 떨어지거나 존 밖으로 달아나는 유인구, 신중한 볼 선택. 나름대로 철저하게 준비를 마쳤다.
“억!”
그러나 인생이 항상 계획한 대로 흘러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인생은 불확실성의 묘미가 있고, 예측할 수 없기에 살아가는 재미가 있기는… 개뿔! 미친!
이딴 걸 누가 즐거워하냐고!
“쇼!”
“제기랄! 쇼!”
“쇼가 다리를 다쳤어! 닥터!”
쇼는 2회 말, 1루 베이스 커버를 가려다 넘어져 발목을 접질렸다. 그 와중에 프로 의식을 발휘해서 아웃을 잡아내기는 했지만,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파코를 준비시켜!”
불펜에서는 급하게 롱 릴리프인 스티븐 파코가 몸을 풀기 시작했고.
[폴 대븐포트.] [우투우타, 포수.] [키워드 : 어퍼 스윙, 승부욕, 홈 스위트 홈, 스타 의식, 공갈포.]하필이면 폴 대븐포트가 다음 타자로 타석에 들어서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스티븐 파코는 트리플A에서 콜업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투수다. 97마일 정도의 패스트볼과 괜찮은 커브, 조금 애매한 싱커를 던진다.
일단 이닝을 길게 가져갈 수 있는 투수가 불펜에 그리 많지 않기에, 저 친구를 투입하기로 한 것일 거다. 다른 롱 릴리프 투수는 완전히 밸런스가 무너진 상태다.
우리 불펜은 그리 선수층이 두껍지 못하고, 특히나 길게 던질 수 있는 선수가 없다는 것은 팀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다.
[스티븐 파코.] [좌투좌타, 중계 투수.] [키워드 : 싸움닭, 근성, 파이어볼러, 불나방.]“스티븐, 부담 가질 필요 없어. 그냥 존 안에만 넣으면, 우리가 해결해 줄게.”
“배트를 박살 내 버려.”
“그냥 정면 승부 해. 할 수 있어. 긴장하지 말라고.”
싸움닭은 정면 승부를 즐기는 선수의 키워드다. 불나방은 전력투구로 온몸을 불사르는 키워드고.
사실, 이럴 때 굉장히 딜레마가 생긴다.
우리 내야수들이 스티븐 파코를 격려하는 것처럼, 정면 승부를 하는 것도 좋다. 애당초 그런 피칭을 즐기는 타입의 선수니까.
하지만 홈런을 맞지 않아야 한다는 내 목적에는 정면으로 배치(背馳)된다.
선택?
젠장. 제구도 그리 좋지 못해서, 내가 원하는 코스에 꽂아 넣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이 투수의 강점을 살리는 쪽으로 플레이 할 수밖에.
“피하는 건 네 성격에 안 맞잖아. 그냥 들이받아 버리자고. 네 패스트볼은 끝내주니까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스티븐은 다소 뻣뻣하지만 결의에 가득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키워드만 봐도 맞든 말든 마이 웨이로 막 던질 타입인데, 괜히 살살 피해가며 던지라고 하면 오히려 마이너스일 수도 있으니까…….
홈런을 절대 맞으면 안 된다는 그런 생각은 버리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걸 하자.
어차피 자이언츠 측에서도 스티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거다. 어떤 공을 던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몇 구 정도는 지켜볼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불안하기는 하지만…….
‘포심.’
초구로는 마음껏 패스트볼을 던지라고 사인을 보냈다.
코스는 무릎 높이의 바깥쪽.
타자가 그냥 지켜만 봐서, 먼저 스트라이크를 잡아 카운트를 앞서 나가면 정말 이상적일 거다. 스티븐이 왼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고는 피칭을 시작했다.
따악!
야구계엔 오래된 격언이 있지.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라… 오늘부터 그 격언이 싫어질 것 같다.
“D-port! D-port!”
“Hooooooooo!”
아무리 공격적인 스윙을 즐겨 한다고 해도 그렇지, 시작부터 홈런이냐.
젠장. 이러면 왕창 꼬이는데.
ㅇㅅㅇ : 작은 고추.
ㅇㅅㅇ : 시작부터 망조가 들었군.
ㅇㅅㅇ : 금강불괴를 제물로 바칠 테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이야기 못 들어 봤냐?
요기 베라의 전설적인 그 명언 모르냐고. 어? 첫 끗발이 개끗발, 뭐 그런 거 모르냐고.
ㅇㅅㅇ : 알 게 뭐냐.
ㅍㅅㅍ : 조금 더 노력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