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58)
홈플레이트의 빌런-59화(59/363)
# 59
Home sweet home. (1)
1
홈은 편안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게 홈구장이든, 정말 말 그대로 집이든 간에.
그러나 몇몇 선수들에게, 우리 홈구장은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팀 내에서 스타 대우를 받는 선수들은 대체로 그런 요소들(주로 과격한 팬)에 초탈한 분위기다.
수비 도중 중지를 올리며 욕설을 하는 팬이 있더라도 웃으면서 넘기거나 아예 같이 욕을 하는 선수도 있다. 켄트가 뭐랬더라? 팬이 너한테 주는 연봉이 아깝다고 욕을 하니까, 오히려 자기 차를 자랑했다던데.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그럴 때면 오히려 불타오르는 편이다.
ㅇㅅㅇ : 변태니까.
ㅇㅅㅇ : 변태 포수.
ㅇㅅㅇ : 변태 콩.
난 변태가 아니지만 어쨌든, 162경기 중 절반을 치르게 되는 홈구장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차피 어디서 경기하나 똑같은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생각보다 홈과 원정의 차이는 크다.
쿠어스 필드 같은 극단적인 구장은 논외로 치고, 심리적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편안한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과 구장 이곳저곳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엄청난 강점으로 작용한다.
그만큼 집은 중요하다.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면 삶이 고달파진다. 집에서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쉴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집 전체에 물이 새서 엉망이 된다면 집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없다.
“…일이 그렇게 됐으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내 집에서 며칠 신세를 지시겠다?”
“집에 물이 새서 엉망이에요. 빌어먹을 관리인. 12일 동안 집을 비운 사이에 관리는커녕, 오히려 저보다 하루 일찍 돌아와서 집을 치우려고 했다더군요. 그리고 와서 보니 집이 난장판이 된 거죠. 그게 하루 만에 정리가 되겠어요? 특히 주방은 공사를 해야 할 판인데.”
“…호텔은?”
나는 내 픽업트럭에서 캐리어를 내리며 대답했다.
“호텔은 질렸어요. 원정이 너무 길었잖아요. 집수리가 끝날 때까지 좀 신세 져도 될까요?”
“빌어먹을. 들어와, 젠장! 잔디 밟지 마!”
개빈은 황당해하면서도 캐리어 하나를 나 대신 끌어 주었다.
나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다. 당연히 미리 이야기하고 온 거다. 개빈이 TV에 집중하느라, 가도 되냐는 질문에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않고 오케이 했다. 내 짐을 보고 딴소리를 하길래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지만.
잘 부탁해요. 개빈.
수리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요.
2
“맥주 3병을 가져와. 얼음 통에 얼음을 가득 채워서, 린넨 타올도 같이.”
나는 개빈의 저택 한구석에 있는 방을 배정받았고, 맥주 심부름을 하고 있다.
맥주를 가져다주면서 거실 한 곳에 걸려 있는 개빈의 가족사진을 힐끔 바라보았다.
“가족사진을 영화 포스터처럼 찍으셨네요.”
개빈의 대머리가 꿈틀하는 것을 보고 슬쩍 시선을 돌렸다.
가족사진에는 개빈과 개빈의 부인인 바바라, 그리고 딸인 아리아나가 각자 다른 개성을 뽐내고 있다.
마피아 보스같이 찍힌 개빈은 가족사진인데도 상대 내야수를 때려 눕힐 것 같은 눈빛을 발산하고 있다.
개빈은 날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슨 뜻이야?”
“개빈이 마블 영화에 나오는 슈퍼 빌런 악당 보스 같다고요.”
“그거뿐이야?”
“바바라는 개빈을 때려 잡은 슈퍼 히어로 같네요. 블랙 위도우 아시죠?”
“그리고?”
“끝입니다.”
아리아나가 악당 개빈에게 납치당한 팝스타 같아 보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건 좀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러자 개빈은 내 대답에 만족했는지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좋아. 그 태도를 내 집에서 나갈 때까지 유지해.”
아마 아리아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만족했을 테지. 나는 유니폼을 입었을 때와는 다른 개빈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뭐야? 왜 웃어?”
음. 티가 났나? 나는 재빨리 딴청을 피우며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렸다.
“오늘 아마 말린스랑 자이언츠 낮 경기가 있을걸요? 같이 보실 거죠?”
“흠. 그래.”
개빈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냅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렸다. 말린스 유니폼을 입은 Y.J.라이프와 얼굴이 영 좋지 못한 폴 대븐포트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AT&T파크가 화면에 나왔다.
“저 투수, 엄청난 괴물이 될 거예요.”
“저 포수도 괴물이 될 거야.”
“그럼 저도 괴물이 되겠네요.”
“얼굴이 괴물이 되겠지.”
“개빈처럼요? 제기랄.”
“뭐?”
“농담입니다.”
개빈과 나는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경기를 보며 투수의 구질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개빈은 나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날카로운 분석을 했다.
“3루수가 공을 잡을 거야. 타자의 왼쪽 어깨가 평소보다 빨리 돌아가.”
진짜 대븐포트의 힘없는 타구가 3루로 향했다. 뭐, 매번 맞추지는 못하겠지만, 꽤 잘 맞추는 편이다.
“은퇴하고 스카우트로 일해도 잘하시겠어요.”
“아니, 난 필리스 감독이 될 거야.”
“코치를 할 거라면서요?”
“선수 겸 감독으로 일하면서 네 입에서 살려 달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굴릴 거다.”
“제가 주전으로 162경기에 나설 테니, 그럼 개빈은 그냥 감독이 되겠군요.”
ㅇㅅㅇ : 대머리를 괴롭히지 마라.
ㅍㅅㅍ : 이 대머리는…….
8ㅅ8 : 불쌍한 대머리라고.
대체 뭐가 불쌍한 대머리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멋진 집을 가지고 있는 데다 아름다운 부인이랑 예쁜 딸을 가졌고, 40대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사람이 왜 불쌍한 거냐고.
“저 자식은 자기가 슈퍼스타인 줄 알아. 표정 봐. 마치 날 찍어 주세요 라고 하는 것 같지 않아?”
야구 경기를 보며 다른 팀 선수의 욕을 하던 개빈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TV 볼륨을 줄였다.
“젠장, 기다려. 바바라와 아리아나에게 전화를 해 둬야겠어.”
“뭐라고 하시게요?”
“잠시만 호텔에서 묵으라고 할 거야.”
하지만 개빈은 내게 했던 말과는 다르게, 오늘부터 며칠 정도 손님이 집에 묵을 거라고 말했다. 그 손님이 나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이언츠가 말린스에게 5 대 2로 패배한 후, 귀가한 바바라는 사진으로 본 첫인상과는 다르게 내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오, 레드 빈? 개브, 손님이 레드 빈이라곤 안 했잖아? 잠시만 기다려요. 내가 맛있는 요리를 해 줄 테니까.”
“바바라, 이 녀석에겐 그냥 빅맥 하나만 먹여도 된다고.”
“개브, 나가서 빅맥이나 세 개 먹고 와. 난 손님에게 파스타와 피자를 만들어 줄 테니까.”
흐흐.
개빈은 깨갱 하고 물러나서는 맥주를 하나 더 마시며 구시렁댈 뿐이었다.
8ㅅ8 : 저것 봐라.
8ㅅ8 : 불쌍한 대머리라고 하지 않았냐.
요정 주제에 왜 저런 데 감정이입 하는 건데?
웃긴 놈이네 진짜.
3
“내가 만약 메츠 단장이라면, 바바라를 고용할 겁니다.”
“뭐? 바바라를? 왜?”
“개빈이 메츠 선수를 때릴 때마다 바바라가 뛰쳐나오면서 소리를 지르는 거죠. 개브! 빅맥이나 먹어!”
나는 개빈과 함께 구장으로 출근하며(내가 운전했다) 낄낄대며 웃었고, 오늘따라 피곤해 보이는 개빈을 출근길 내내 놀려 댔다.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면 난 널 두들겨 팰 거야.”
“흐흐. 그나저나 왜 말 안 했어요?”
“뭘?”
나는 억지로 웃음을 감추려 애썼다. 개빈과는 전혀 닮지 않은, 활발한 성격의 아리아나가 떠올랐다. 아리아나를 보니 왜 개빈이 딸바보가 된 건지 알 수 있겠더라. 역시 딸이 최고다. 아들은 다 쓸데없는 거라고.
“아리아나가 제 팬이라는 거요.”
개빈은 낭패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어제의 즐거웠던 식사 자리(개빈은 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를 떠올렸다. 필리스의 팬이지만 개빈이 야구장에 못 오게 한다나.
“아리아나를 이름으로 부르지 마. 폴체스키 양이라고 불러.”
“아리아나가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폴체스키라 부르면 개빈이 떠오른다고요.”
“단장이 돼서 널 매리너스로 팔아 버리겠어.”
시애틀? 거긴 너무 멀잖아.
이 정도면 딸바보의 범주를 벗어난 거 같은데.
“우리 단장 재계약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필리스 구단을 사 버릴 거야. 은퇴한 놈들을 불러 모아서 돈을 긁어모을 거라고. 그리고 구단주가 되어서 널…….”
음. 아리아나 이야기는 그만해야겠다. 어차피 노릴 생각도 없으니까.
ㅇㅅㅇ : 철컹철컹.
아니, 노릴 생각 없다니까.
4
아까 말했던가? 어떤 선수들은 우리 홈구장에서 그리 편안하게 경기하지 못한다고.
대표적으로 주전 2루수 코난 마이어가 있다.
그는 원정에서의 OPS가 홈 OPS보다 8푼가량 높다. 우리 홈구장이 타자 친화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꽤 놀라운 일인데, 심지어 홈에서는 수비율마저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개자식아! 어젯밤에 대체 뭘 했길래 그따위로 플레이하냐!”
“죽여 버리겠어!”
“내 연봉의 몇 배씩이나 받으면서 그따위밖에 못 하냐!”
“나가 죽어!”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실책 하나, 그리고 득점 기회에서 병살타까지 기록한 코난은 벤치에 앉아서도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헤이! 코난! 왜 그리 울상이야? 내가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 줄까?”
팀의 장난꾸러기 역할을 맡고 있는 헤스밀 에르난데스가 완전히 풀 죽어 있는 코난에게 다가갔다.
뭔가 걱정되는데? 헤스밀은 가끔 장난이 도가 지나치는 경향이…….
“푸핫!”
뭔 짓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헤스밀의 귓속말을 들은 코난의 코에서 게토레이가 뿜어져 나왔다. 맙소사. 초록색 게토레이를 마셨는데 노란색이 되어 나왔어.
“Fucking crazy!”
황당해하는 코난을 두고 헤스밀은 낄낄대며 도망갔다. 대체 뭔 소릴 한 거지. 궁금한데.
“헤스밀.”
“오! 원더 키드! 왜, 무슨 일이야? 혹시 외야에 맘에 드는 여자 팬이라도 있어? 사인볼 전해 줄까?”
“아니, 그게 아니라…….”
“오늘 외야 물 좋아. 젠장, 네가 외야로 나올 수 없어서 아쉽군.”
“그러니까…….”
“공이 높게 뜨면 네가 외야 플라이를 처리하러 나오는 건 어때? 몸을 날려서 외야 플라이를 잡아 내면 여자 팬들이 환장할 거라고!”
젠장, 이 미친 수다쟁이랑 대화를 시도한 내가 미친놈이지. 결국, 자기 할 말만 하는 통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듣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 메이커인 헤스밀의 저런 수다는 의욕을 잃은 선수들에게 꽤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코난은 코로 게토레이를 뿜어서 굉장히 아파하긴 했지만,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기분이 좋다고 해서 야구가 잘 되는 건 아니지만, 좋은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예를 들자면, 오늘 뭔가 저기압인 개빈이 대타로 타석에 나선다면…….
ㅇㅅㅇ : 분노의 쓰리런을 칠 것이다.
ㅇㅅㅇ : 날아오는 공을 홍빈이라 생각하고 300미터짜리 홈런을 때리겠지.
ㅍㅅㅍ : 아버지는 강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젠장, 너나 개빈이나 내 말을 믿을 생각 따윈 없는 거지?
5
7회 초. 6 대 6으로 동점 상황.
발 빠른 주자가 1루에 나가 있고, 타석에는 극단적인 타자가 들어와 있다.
지금 마운드는 패트릭이 지키고 있는데, 그는 최근에 성적이 좋지 못한지라 조금 예민한 편이다.
[패트릭 다우너.] [우투우타, 중계 투수.] [키워드 : 배트 브레이커, 스터프, 각도기.]타자가 느린 편이라 낮은 공으로 병살을 노리는 게 좋다. 다만 낮은 공을 찰 치는 선수이기에 주의해서 상대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당겨 치는 스타일이기에 내야수들의 위치를 3루 쪽으로 옮겼고, 초구로 바깥쪽 패스트볼을 선택했다.
“뛴다!”
주자는 과감하게 도루를 시도했다.
나는 93마일 패스트볼을 포구하자마자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르게 미트에 손을 넣어 2루로 송구했다.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여겼다. 코스가 좋다.
“Run! Run!”
그런데 브레이브스 3루 코치가 2루 주자에게 소리친다.
유격수인 앤드류가 3루 쪽으로 꽤 치우쳐 있었기에, 2루수인 코난이 2루 베이스로 들어가기로 약속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코난은 딴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던 건지 베이스로 들어가지 않았고, 내 송구가 2루 베이스를 지나 중견수 헤스밀 앞으로 날아가는 사이 주자는 3루까지 들어와 버렸다.
“세이프!”
“Booooooooo!”
“개자식들아! 내가 이딴 걸 보려고 시즌 티켓을 끊은 줄 아냐!”
코난은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기도 갑갑하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코난에게 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욕을 하진 않을 거다. 그냥 이 상황을 잊어야지. 코난에게 욕을 한다고 해서 3루 주자가 자동으로 아웃되지는 않는다.
“따악!”
그런데 그 3루 주자는, 우익수 플라이에 태그 업해서 결승 득점을 올려 버렸다.
어쩌면 주지 않아도 될 점수였을지도 모른다. 수비에서의 이런 허술한 실수가 나오면, 팀은 종종 집중력을 잃어 버리곤 한다.
결국 우리는 그대로 패배했다. 7 대 6. 패트릭은 패전을 기록했다. 9회 말에 타자들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준 것은 팬들을 더 화나게 한 듯했다.
패배한 날에, 특히 이렇게 패배한 날에는 더더욱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침묵하는 리버티 벨은 너무도 초라해 보인다.
“Fuck you! 패트릭! fuck you!”
“Mother fucker!”
게다가 패전투수가 된 패트릭과 패전의 빌미를 제공한 코난은, 라커 룸에서 몸싸움까지 벌였다.
“패트릭! 그만둬!”
“코난을 잡아!”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