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62)
홈플레이트의 빌런-63화(63/363)
# 63
Home sweet home. (5)
1
아무리 에이스라 해도 매 경기 완봉, 완투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아무리 특급 타자라 하더라도 매 경기 홈런을 쳐 낼 수 없고, 경기마다 안타를 두 개씩 때릴 수도 없다.
그게 가능한 선수라면 메이저리그의 모든 기록(연봉 포함)을 깨 버릴 테지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선수는 없다.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쇼 주니어, 연속 안타를 맞습니다. 다음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는 조 오코너. 2주 전에 양키스에서 트레이드되어 온 선수로, 양키스에서는 5번째 외야수였지만 말린스에서는 기회를 받고 있습니다.”
“발이 굉장히 빠른 선수죠. 시즌 타율이 0.211에 불과하지만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선수입니다.”
“기습번트! 쇼! 쇼가 공을 잡고… 오, 이런. 그가 2루를 택했군요. 세이프. 뒤늦게 1루에 던져 보지만 1루에서도 세이프!”
“아쉽습니다. 홍이 1루로 던지라고 가리켰는데 쇼가 그걸 미처 보지 못한 것 같군요.”
“못 봤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어쨌든 무사 만루가 되었습니다.”
투수들은 아웃 카운트 두 개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면, 당장 그 순간에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병살에 대한 욕심은 베테랑들조차 가끔 실수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명경지수 키워드가 있다고 해서 항상 침착하게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고 완벽한 투수도 없다.
[LIVE) 마이애미 말린스 0 : 0 필라델피아 필리스.]┕소중이 왜 저러냐???
┕왜 저러긴 포수 새끼가 어리바리하니까 덩달아 얼타는 거지
┕소중이 힘내 ㅠㅠ
┕영근이니?
┕ㅅㅂ 아무한테나 내 이름 붙이지 마라ㅡㅡ 홍발놈 투수 리드 존나 단순함. 저런 빡대가리는 절대 메이저리그에서 롱런 못 함.
┕ㅋㅋㅋㅋㅋㅋㅋ이제 받아들인 거임?
┕너 그러다 진짜 고소당한다 ㅋㅋㅋㅋㅋ
<마이클 클로이 안타.>
<3루 주자 홈인.>
<2루 주자 홈인.>
┕헐
┕ㅎ러
┕허미쉬펄
┕Her me she pearl…….
┕소중아 안 돼!!!!!
┕ㅆㅂ 소중이 소중이거리지 마라, 제발; 별명이 그게 뭐냐;
┕소중이는 소중하니까. 근데 하는 꼴이 오늘은 불소중이네;
┕불소중이 돌았냐 ㅋㅋㅋㅋㅋ
┕불쇼중 ㅋㅋㅋㅋㅋ
2
포수는 언제나 침착해야 한다. 포수가 흔들리면 투수도 덩달아 흔들리기 마련이다.
물론, 쇼 주니어는 필리스의 에이스이자 베테랑 투수다. 게다가 명경지수 키워드도 있다.
하지만 그런 투수도 잘 안 풀리고 흔들리는 날은 있기 마련이다.
“볼!”
쇼 정도의 클래스 있는 투수가 안타 좀 맞았다고 심리적으로 흔들린다는 건 쉽게 생각하기 힘들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피안타율이 엄청 낮은 선수는 아니다. 공격적인 스타일이라 안타도 꽤 얻어맞곤 한다. 그리고도 자기 투구를 하기에 에이스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거다.
그냥 시즌마다 몇 번 있는 ‘그런 날’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뭔가 밸런스가 흐트러졌거나 재수가 없거나… 투구 버릇을 들켰을 가능성도 있다. 1회에도 위기를 넘긴 건 코난의 슈퍼 다이빙 덕분이었다.
딱!
“파울!”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평소보다 어딘가 조금 좋지 못한 느낌은 있지만, 뭔가 몸에 이상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아직 마운드로 올라가야 할 시간은 아니다.
쇼는 몇 대 맞고 점수 좀 주더라도, 타자들이 뒤집어 줄 때까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타입…….
딱!
쇼의 슬라이더가 살짝 밋밋하게 높이 들어왔다. 그리고 타구가 펜스를 맞는 사이에 2루 주자 조 오코너가 홈으로 쇄도했다.
1루 주자인 마이클 클로이는 무리하지 않고 3루에 멈춰 섰다. 오늘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코난이 적절하게 공을 커트해서 추가 진루를 막아 낼 수 있었다.
음…….
내가 조금 전에 마운드로 올라갈 시간이 아니라고 했던가? 유연한 대처를 잊어선 안 된다. 지금이 바로 마운드에 올라가서 투수와 만나야 할 시간이다.
“쇼.”
마운드로 뛰어가 그를 부르자, 쇼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내게 물었다.
“좋아. 네가 보기엔 어때? 내 공에 문제가 있나? 아니면 내가 슬라이더를 던질 걸 저놈들이 아나?”
아니다.
이번 이닝 초반에 맞은 건 패스트볼이고, 방금은 슬라이더였다. 특정 공을 던지는 걸 들킨 건 아닌 것 같다.
사인 훔치기도 아니다. 내가 1이닝에 으름장을 놓기도 했고 의심 가는 부분은 없다.
게다가 잘 들어온 슬라이더라면 알아도 치기 힘들다. 그냥 방금 슬라이더가 좋지 못한 것뿐이었다.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그래? 내 생각에도 그래. 아쉬웠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마. 방금 내 공은 좆 같았으니까.”
조금 날카로워진 거 같긴 하다. 마지막 문장에는 꽤 힘이 들어갔다.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주먹을 흔들면서 쇼에게 물었다. 기분을 조금 풀어줘 볼까.
“타자를 한 대 때릴까요?”
“빈볼?”
“아뇨, 주먹으로요.”
내가 진지하게 그렇게 말하자, 라이언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젠장, 그게 뭐야?”
“뭐라도 해 보려고요.”
“개빈 관절염은 좀 괜찮대?”
주머는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내가 퇴장당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 걸까.
그리고 앤드류는 한술 더 떴다.
“송구 실수한 척하고 말린스 감독을 맞혀 버릴까?”
“Crazy guys.”
내야수 중 가장 진지한 태도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코난이 황당해하며 양팔을 하늘로 들어보였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마운드에 모여든 모두의 긴장이 조금은 풀렸으니, 빠르게 본론으로 넘어가자.
상황을 통제하기도 힘들고, 원인도 모를 때는 그냥 아무렇게나 바꿔 보는 수밖에 없다.
“좋아요. 사인을 3번 패턴으로 바꿀게요. 쇼, 슬라이더가 조금 뜨는 것 같으니 싱커 위주로 가는 게 어떨까요? 싱커 보여 주고, 패스트볼 높게 던지고, 커브 떨어뜨리고요.”
“Okay.”
모든 슬라이더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좋은 수준은 아니다. 투구 패턴을 바꾸는 건 도움이 될 수 있다.
다행히도 쇼는 내 의견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 오래 호흡을 맞춘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신뢰는 쌓인 듯하다.
“좋아요. 다들 집중해요.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홈런이나 때리러 가자고요.”
“Yes, boss.”
“좋아, 해 보지.”
음. 방금, 조금 소름 돋았다.
어느새 동료들의 신뢰를 얻게 된 건가. 나도 모르게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했는데 단 한 명도 내 의견에 토를 달지 않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었다.
이럴 땐 민망해할 필요 없다.
당연한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자, 심판이 부르네요. Go!”
내가 주먹을 내밀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들 주먹을 모으고 힘 있게 후창했다.
“Go!”
“Go!”
오.
나 되게 멋있는 듯.
3
그 뒤로 쇼는 실점하지 않았다.
결정구를 싱커로 바꾼 게 꽤 잘 먹혔는지, 아니면 그냥 이전의 그 3실점이 운이 없었던 건지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쇼의 투구 수가 꽤 늘어난 것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얼마 전의 가벼운 부상 때문에 한계 투구 수가 정해져 있던 쇼는 5이닝만 던지고 파코에게 마운드를 넘겼고, 파코는 인시그니테에게 2점 홈런을 얻어맞았다.
단, 우리 타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아쉽게 내 앞에서 끊기긴 했지만, 3점을 만들어 냈다.
[루츠 벨리시오.] [우투우타, 선발투수.] [키워드 : 좌타 천적, 소방관.]가끔 이런 선수들이 있다.
우투수인데 좌타자를 잘 잡는 건 그렇게까지 드문 일은 아니지만, 불펜이 체질인데도 선발로 나서거나 그 반대의 경우.
평균 구속 95마일의 패스트볼과 훌륭한 서클체인지업, 평균 이하의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인데 우타자를 상대로는 체인지업을 잘 던지지 않는다.
최근 패스트볼을 상대하는데 자신감이 붙었기에, 패스트볼만 노리고 6회 말 선두 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파울!”
“볼!”
“볼!”
초구 낮은 패스트볼을 상대로 파울 홈런, 2구와 3구 존을 벗어나는 슬라이더에는 배트를 내지 않았다.
패스트볼을 던졌다가 얻어맞을 걸 두려워하나?
“멋진 슬라이던데.”
상대 포수는 살짝 얼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치니가 양키스로 가면서 이 팀도 포수는 엉망이 됐을 거다. 트레이드로 백업 포수도 날려 먹었거든.
대꾸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얘도 루키지.
“메이저리그는 많이 어렵지? 나도 올해 데뷔했는데 여긴 장난 아니더라고.”
할 수 있는 최대한, 다정한 어투로 말했다. 낚이면 뒤통수를 때릴 거다. 하지만 포수, 제리 데이밴드는 약간 갈라지는 목소리로 내게 날을 세웠다.
“Fuck you. 개수작은 집어치워. 여긴 메이저리그야. 내가 우습게 보여?”
음…….
나 말고 다른 팀 선수들이 많이 귀여워해 줬나 보다.
“볼!”
배트를 낼 이유가 전혀 없는 볼.
얘 어디서 상처 많이 받았나 본데.
“루키끼리 친하게 지내고 싶었을 뿐인데,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네.”
“잘 들어. 난 널 짓밟을 거라고. 사자가 토끼랑 친하게 지내는 거 봤어? 난 사자고, 넌 토끼라고.”
“풉.”
나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저렇게 말하면 누가 무서워하냐. 나도 떨면서 말했다면 다들 날 비웃었겠지. 다행이라고 하기엔, 나는 저렇게 말하지 않는다.
“웃어?”
화가 좀 난 거 같은데?
“너 같으면 안 웃기겠냐?”
“대체 뭐가 웃긴데?”
“나는 볼넷으로 나갈 거고, 2루와 3루를 훔친 다음에 홈스틸을 성공할 거다. 그때 네 표정이 상상되니까 웃겨서 참을 수가 없네.”
목소리를 살짝 깔고 비아냥대자, 놈은 애처로운 목소리를 냈다.
“보, 보, 볼넷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자신 있으면 스트라이크 던지라고 하던가.”
휘파람을 슬쩍 불어 줬다.
어떤 공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시원하게 풀스윙을 한번 돌려 볼 생각이다. 아직 1스트라이크니까.
말이 없어진 걸 보니 사인을 주고받는 모양이다. 나는 스트라이드를 넓게 잡고 자리를 투수 가까이 이동했다.
어차피 포심 아니면 슬라이더다. 끝내주는 걸 날릴 준비를 마쳤다.
따악!
요새 패스트볼을 치는 데 자신감이 꽤 생기더라고.
게다가 스트라이크를 억지로 잡기 위해, 존 안으로 넣는 데만 집중한 밋밋한 패스트볼 따위야 이런 영웅 스윙으로도 충분히 멀리 날릴 수 있다.
1점 차이로 따라잡는 홈런.
나는 가볍게 베이스를 모조리 돈 다음, 홈 플레이트를 밟으며 제리 데이밴드에게 다시 휘파람을 불어 줬다.
“자, 이제 내게 웃을 자격이 생겼나?”
“이, 이, 이…….”
나는 데이밴드의 뒷이야기를 듣지 않았고, 나를 축하해 주는 다음 타자인 켄트에게 상대 포수가 이미 끝났다고 말해 주었다.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다.
그리고 더그아웃에서 환호를 받으며 우리 팀의 하위 타순 타자들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그래. 포수는 언제나 침착해야 한다.
포수가 흔들리면 투수도 함께 흔들린다.
음…….
쇼가 흔들린 건 내가 흔들린 탓이 아니지만, 어쨌든 포수가 흔들리면 투수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둘 다 흔들리면 아주 끝장 나는 거지.
딱!
“켄트! 좋아!”
따악!
“Oh my god! 앤드류! 제기랄!”
딱!
“좋아! 만루야! 코난! 끝내주는 타구였어!”
내 홈런 이후 내 뒤 타자들이 만루를 만들었다.
게다가…….
따악!
“…나만 안타 못 친 거야, 오늘?”
“주머,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패트릭이 자기 커리어의 첫 홈런을, 역전 그랜드슬램으로 때려 버렸다.
이러면 팬들은 미쳐 버리지. 아마 상대 팀의 모든 사람들도, 투수에게 만루 홈런을 맞았다는 사실 때문에 미쳐 버릴 테지만.
그리고 홈런을 치고 시원하게 배트 플립까지 해 버린 패트릭은 홈으로 돌아오며 아주 요란을 떨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며칠 전에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던 코난이랑 얼싸안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올 정도였다.
“패트릭! 타자로 전향하는 게 어때?”
“맞아, 내가 코난보단 잘 칠 걸?”
“그럼 바꿀까? 아마 난 패트릭보다 잘 던질 것 같아!”
“빌어먹을 놈.”
“개자식.”
코난과 패트릭의 대화가 꽤 살벌하다고 느껴졌지만, 더그아웃의 그 누구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어깨에 상대방의 팔이 올라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웃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뒤?
바뀐 상대 투수는 헤스밀에게 보복구를 던졌고, 헤스밀은 라이언의 적시타로 홈을 밟고 돌아와선 이렇게 말했다.
“체인지업이더라고. 패스트볼이었으면 죽여 버렸을 건데.”
당연히 우리는 이 경기에서 승리했다.
스코어는 무려 21-5.
나는 경기 막판에 홈런을 하나 더 때려 냈다.
쇼를 제외하고, 선발 전원 안타 기록을 달성한 데다 내셔널리그 역사상 최다 점수 차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는 경기가 끝난 후 라커 룸에서 파티를 벌였고, 쇼는 가장 미쳐 날뛴 선수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나는 그 경기가 끝난 후 스마트폰을 열어 한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홍대 빤쓰남]이 새끼, 내가 2홈런 경기 한 번 더 하면 홍대 앞에서 팬티만 입고 춤춘다고 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