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71)
홈플레이트의 빌런-72화(72/363)
# 72
갓 혹은 갓댐 (5)
1
야구는 정말 과학적인 스포츠이지만, 감각이 지배하는 스포츠다. 상대 선수의 머릿속에 무언가를 강하게 심어 놓으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건, 볼넷 이후 홈까지 뛰어 버린 선수를 볼넷으로 내보내지 않고 싶어 할 투수의 심리다. 포수도 마찬가지다. 호되게 당하면 또다시 실수를 하고 싶어하진 않을 거다. 특히, 미처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을 또 당하고 싶어하진 않을 테니까.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 세 번이 되면 무능함이 된다. 에브러햄은 다시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끔찍하게 싫을 것이다.
나는 스코어 1 대 0의 3회 초,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서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볼넷을 얻을 준비됐어. 그리고 몇 초에 한 번씩 베이스를 이동할 거야. Keep going, AAA.”
“Shut up, please.”
이 암 덩어리가 ‘플리즈’라는 말을 쓰는 날이 오다니. 필라델피아 제약 업체 필리스 메디신의 신약, 항암제 홍빈 개발 완료인가.
“난 준비됐어. 초구는 안 휘두를 거야. 진짜야. 초구에 휘두르면 내가 메츠로 간다. 그럼 네가 백업이 되려나?”
그렇게 말하고는, 타격할 의지 자체가 없다는 듯 허리를 쭉 폈다.
뭐 던질래? 라고 투수를 도발하는 거다.
볼 던져 봐. 아마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널 보고 비웃을 거다. 존 안에 넣으면 스트라이크 하나를 얻고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대다수의 투수가 생각이 많아지면 이런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로 돌아가곤 한다.
“볼!”
투수가 머리를 하늘로 치켜든다. 안 풀린다는 걸 광고하는 셈이고, 저런 짓을 하는 놈들은 대부분 멍청이 혹은 머저리 그것도 아니면 얼간이다.
솔직히, 타격보다 투수력에 강점이 있는 메츠 투수 중에서 쿠퍼 존스는 그나마 만만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승부와는 조금 다르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홈런도 볼넷도 내주고 싶지 않은 투수와 홈런을 노리고 있는 나.
차라리 에이스급이라면 허를 찌르는 공격적인 수로 나올 수도 있지만 지금은… 글쎄.
쿠퍼 존스의 최대 강점은 제구력과 이닝 소화 능력이다. 그런 면에서 비추어 볼 때, 풀카운트 승부로 가고 싶어할 가능성이 크다.
탁!
“파울!”
좋은 공이었다. 몸 쪽 낮은 곳으로 파고드는 커브. 거의 가슴 높이로 들어오는 것처럼 보여서 강하게 휘둘렀는데 아래로 쑥 꺼진다. 이게 우연이기를 바랄 수 밖에.
“이제 볼 말고 스트라이크도 던질 건가 봐? 작전 변경? 누구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야, 응?”
“아이디어? 헛소리하지 마. 아깐 그냥 제구가 흔들린 것뿐이니까.”
센 척 한번 하시겠다?
“저녁밥보다 욕을 더 많이 먹었다며? 말이 좀 다른 거 같은데?”
“어쨌든 넌 홈런을 치진 못할 거야.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그건 변하지 않아.”
안 됨. 아무튼, 안 됨. 이건 거의 초딩 수준 아니냐고.
똑같이 초딩처럼 말해 주려다가, 사인을 주고받는 게 끝난 것 같아서 투수에게 집중했다.
패스트볼-커브 다음 공은? 슬라이더?
“볼!”
맞았다. 슬라이더.
존 밖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다.
무브먼트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배짱만 있다면 변화구를 존 안으로 잘만 집어넣을 제구력을 가졌지만, 배짱이 없는 선수는 홈런을 맞을까 두려워 그런 공을 던지지 못한다.
원 스트라이크 투 볼.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잡고 싶어할 거다.
패스트볼에 대비해 히팅 포인트를 조금 앞으로 가져가 먼 곳으로 날려 버릴 생각이다.
내 생각대로 패스트볼이 날아온다면…….
따악!
2
홍빈이 생각한 대로 패스트볼이 바깥쪽 낮은 코스로 날아왔고, 홍빈은 크게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91마일의 포심 패스트볼보다 스윙이 조금 빨랐고,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는 좌중간을 갈랐다.
“세이프!”
송구는 빨랐지만 홍빈도 전력 질주해서 그리 어렵지 않게 2루에 도착.
요정의 선물인 ‘종목 변경 : 육상’은 도루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카운트를 올리지 않았다.
견제, 견제, 견제. 견제구 세 번에 이어 피치 아웃까지.
“메츠 배터리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군요.”
“홈스틸을 내줬으니까요. 사실 그는 그렇게 무조건 뛰는 주자가 아닙니다. 그가 플랫맨 같은 스피드를 가진 선수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1루를 제외한 모든 베이스를 다 훔쳐 버렸죠. 배터리가 저러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투수의 모든 모션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거든요.”
집요할 정도로 홍빈을 묶어 두는 데 집중한 메츠 배터리는, 홍빈에게 3루 도루를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라이언에게 애매한 타구를 맞았다.
“라이언의 타구가 우익수 방면으로 날아갑니다!”
“타구를 따낼 준비를 하는 호세! 홍은 태그 업 준비를 하나요? 아니, 그가 달립니다!”
“절묘하게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타구! 호세의 페이크 동작을 홍이 간파했습니다! 홈으로 뜁니다!”
외야수 앞으로 애매하게 날아가는 타구를 외야수가 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면, 주자는 상황을 본 후에야 스타트를 가져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홍빈은 ‘나 잡아 봐라’ 스킬의 효과로 공이 우익수가 잡지 못할 위치로 떨어질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오늘 홍이 해리 포터 같은 모습을 보여 줍니다! 호세의 페인트 모션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주저 없이 내달려 득점을 기록하는 홍!”
홍빈은 홈런을 기록하지 못한 것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득점을 올리고 환호하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포수 에브러햄의 짜증 가득한 면전에 한마디 말을 남기고.
“차라리 홈런을 맞아,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러다 병난다.”
에브러햄은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저 건방진 루키 포수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기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쪽으로 두 발자국 정도를 옮기긴 했지만, 더그아웃에서 나와 홍빈을 환영하는 개빈의 얼굴을 보고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God damn Korean…….”
한 달하고도 1~2주 전쯤 개빈에게 얻어맞은 갈비뼈 부분이 욱신거려 왔다.
3
[아우토반 레드 빈. 메츠 상대로 3안타 1볼넷 6도루 4득점. 필리스의 6 대 3 승리를 이끌다.] [메츠 감독, 홍빈의 대기록을 고의로 방해하려 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런 지시를 한 적은 결단코 없다.’며 일축.] [필리스 감독, ‘메츠가 설마 그런 치졸한 짓을 했겠나? 만약 그랬다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할 것.’] [개빈 폴체스키, ‘50경기 21홈런을 못 친다고 해서 홍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최근 49경기에서 홍보다 잘 친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얼마나 있나? 있긴 있나?’] [레드 빈 신드롬. 한국인 포수에 대한 관심도 상승 중.] [볼넷, 도루, 도루, 홈스틸! 시티 필드를 절망에 빠뜨린 Korean from the hell.]갓댐 코리안에 이어 지옥에서 온 코리안, 좋다.
팀 승리도 좋다. 1881년 조지 고어의 한 경기 7도루 기록을 깨지 못한 건 좀 아쉽지만 오늘 6도루로 내 기록은 20홈런 17도루가 됐다. 20-20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홈런을 쳤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어쨌든 내겐 한 경기의 기회가 더 남았다.
항상 이런 상황은 어렵다. 투수들이 괜히 아홉수에 걸리는 게 아니다.
ㅇㅅㅇ : 흠.
오.
혹시 뭐 선물이라도 주려고?
ㅡㅅㅡ : 급할 때만 요정님을 찾다간 결국 초소형 포수에 그치게 될 것이다.
뭐, 맞는 말이니까 뭐라 말할 것도 없네.
ㅇㅅㅇ : 잔머리 굴리지 말고 그 시간에 나가서 배트나 몇 번 더 휘둘러라.
ㅇ血ㅇ : 언제까지 요정님에게 의존하기만 할 텐가.
ㅇ□ㅇ : 노오오오오오력!!!
그거 오랜만에 보는 거 같다?
ㅡㅅㅡ : 흥. 열심히 해라.
열심이라.
하긴, 그거라도 해야지.
무조건 홈런을 쳐야 한다고 강박관념에 시달리면 나올 홈런도 나오지 않는다.
명확한 타이밍에 좋은 스윙을 하는 수밖에 없다.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홈런 안 나온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내 플레이를 하자.
똥구멍으로 짬 먹은 거 아니잖아?
야구 인생만 몇 년찬데, 휘둘리거나 휩쓸리지 말자고.
4
타구가 쭉쭉 뻗는 것처럼 보였지만, 좌익수가 워닝 트랙 바로 앞에서 잡아낸다.
“아웃!”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나는 언제나 기록의 사나이였다.
연속 안타, 연속 경기 출루, 홈런, 최다 안타… 하여튼 다 기억하기도 힘들 정도로 수없이 많은 기록을 내 이름으로 바꿔 놓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매번 기록 경신에 성공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120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수립했을 때가 특히 그랬다.
프로 5년 차에 117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해내고 나서, 117경기 연속 출루만 세 번을 더 했다.
그리고 10년 차였던가? 기어코 117경기에서 한 경기 더 출루하고 두 경기 더 성공해 120경기 연속 출루를 만들어 버렸지.
KBO 커리어의 후반은 내가 세워 놓은 기록에 대한 스스로의 도전이었다. 사실, 별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회귀하고 나면 사라질 기록이니까.
때로 기록에 실패하고 나면 좌절하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뭐?
항상 그게 가능하면 그게 무슨 기록이겠는가. 어느 순간부터 실패 후의 마인드 컨트롤에 능해진 게 나다. 물론, 종종 마음만 앞서는 상황은 있지만 모든 게 끝나고 나면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나잇값은 해야지.
“아쉬웠어. 그게 수비수 정면으로 가다니.”
8회 초에 외야 플라이로 아웃당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내게, 짐이 그렇게 말하고는 아차 하고 자기 입술을 깨문다.
홈런이 아니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개빈의 어제 인터뷰대로, 내가 오늘 홈런을 못 친다고 해서 내가 마이너리그로 쫓겨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Oh, come on. 다들 끝난 표정 하지 말라고요. 젠장. 오늘이 지구 멸망의 날인가요? 아니면 필라델피아에 좀비라도 출현했나? 왜 이렇게 칙칙해?”
착잡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침묵에 빠진 사람들로 가득한 더그아웃에서 배트를 꽂아 둔 후 그렇게 말했다.
사실 나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좋다. 욕심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못 해도 상관없다. 지금도 나는 충분히 괴물 같은 성적을 내고 있으니까.
“Fuck…….”
진 테프먼이 대기 타석으로 나서다 내 말을 듣고는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았다.
다들 황당함과 안쓰러움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왜? 내가 울기라도 하나? 여기 분위기 왜 이래?
어쩌면 선수들은 내가 센 척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며 날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내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다거나 억지웃음을 띄고 있다면 몰라도.
개빈은 날 유심히 바라보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젠장. 꼬마가 화났잖아.”
“더그아웃 분위기가 퍼펙트게임 깨진 투수 눈치 보는 것 같잖아요.”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진다.
“아주 좋은 지적이야. 젠장, 이제 다리 좀 펴고 앉아도 되나? 루키 눈치 보느라 꼿꼿하게 앉아 있었더니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아.”
“내가 쟤였다면 지금쯤 라커 룸에 들어가 울면서 엄마한테 전화했을 텐데.”
다들 눈치 보며 농담을 한마디씩 한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전광판을 가리켰다.
“저거 봐요. 우리 지금 지고 있다고요. 다른 팀은 몰라도 메츠 따위한테? 차라리 죽고 말지.”
뉘앙스나 표정, 행동에서 내 말이 억지가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전해졌으리라 믿는다.
“그건 그래.”
“Fucking 메츠에게 지면 안 되지.”
그래. 다들 불태워야지.
그리고 불태워야 내가 한 번이라도 더 타석에 나서지.
딱!
“Wow!”
“라이언! 뛰어!”
그리고 때마침 라이언의 안타가 나왔다.
앞으로 남은 아웃 카운트는 4개.
내 차례가 올지 안 올지는 모르지만.
기다려 봐야지. 분위기 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야구니까.
5
라이언의 2루타, 진 테프먼의 볼넷, 주머의 안타.
필리스는 8회 초 2아웃 6 대 3에서 1점을 따라갔고, 켄트의 잘 맞은 타구가 유격수 정면으로 향해 6번 타자에서 공격을 끝마쳤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8회 말을 지나 9회 초.
7번 타자 앤드류와 8번 타자 코난은 메츠의 마무리 투수인 그렉 진네만을 상대로 기를 쓰고 노력했으나 출루할 수 없었고.
“개빈, 조져 버려.”
투수 타석에서 개빈이 대타로 나섰다.
“아웃될 거 같으면 투수의 팔을 부러뜨리고 퇴장당할게. 다른 놈을 준비시켜.”
개빈은 정말 그렇게 할 것만 같은 표정으로 타석에 나가 안타를 때렸다. 1루수와 2루수 사이를 절묘하게 꿰뚫는 정확한 타격.
“워후.”
언제나 장난기 가득하던 헤스밀 에르난데스도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타석에 임했다.
9회 초 2아웃. 만약 여기서 아웃을 당한다면, 홍빈에게 갈 마지막 기회가 사라진다.
헤스밀은 눈을 부릅뜨고 홈 플레이트에 최대한 가까이 섰다. 심판이 뒤로 2cm 물러나라며 경고할 정도였다.
“헤스밀, 정말 몸에 맞고서라도 나가야겠다는 그런 자세입니다.”
“그에게 달렸군요. 홍에게 한 번 더 기회가 갈까요?”
볼, 스트라이크, 볼, 스트라이크, 볼.
최근 센세이션한 활약으로, 홍빈은 전 세계 메이저리그 팬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상황.
20년이 넘도록 깨지지 않고 있던 그 기록을 깰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많은 야구 팬들이 집중하고 있었지만, 상황은 이제 홍빈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렉 진네만의 손에서 공이 떠났을 때, 메츠 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손을 하늘 위로 번쩍 들면서 환호했다.
“베이스 온 볼스! 헤스밀, 헤스밀이 저걸 참아 냅니다!”
“그가 레드 빈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군요.”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2타점 적시타를 때리고 연장으로 가지 않는다면 이게 마지막일 겁니다.”
“그렉 진네만의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겁니다. 여기서 의도적으로 그를 거를 수도 있겠지만, 다음 타자는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뜨거운 타자 중 하나인 라이언 필로우죠. 아마 제 생각에는 정면으로 대결할 것 같습니다.”
홍빈의 타격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잘 맞은 타구가 조금 모자라 아웃이 되었을 뿐이고, 타석에 임할 때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Booooooooooo!”
홍빈이 타석으로 접근하자, 메츠 팬들의 거대한 야유가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왔다.
루키 선수에게 쏟아지기에는 이례적인 엄청난 비난이다. 하지만 홍빈은 되려 슬쩍 미소를 보였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오, 긴장하지 않는군요.”
“음. 이런 루키는 지금껏 본 적이 없지만… 그는 다릅니다. 뭔가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투수와 타자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
동점 주자가 나가 있고, 홈런 한 방이면 경기가 뒤집힌다.
최악의 라이벌 팀 간의 경기고, 여기서 투수가 이기면 홈팀이 승리를 거둔다.
타자가 이기면 원정 팀의 마무리가 등판할 것이고, 역대 메이저리그 타자 중 역대 최단기간에 21홈런을 친 선수가 될 수 있다.
“볼!”
진네만의 83마일 체인지업이 존 아래로 떨어졌다.
“스트라이크!”
몸 쪽 날카로운 코스. 홍빈은 높게 레그킥을 했지만, 배트를 내지 않았다. 펜스 너머로 보내기에는 뭔가 아쉬운 공이었다.
“에브러햄, 이번에도 네가 질 거야.”
홍빈은 호흡을 고르고 타석으로 돌아왔다. 에브러햄은 입에 침을 바르고서야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뭔 헛소리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렉 진네만이 투구 동작을 시작했다. 도루 따윈 하든 말든, 최대한 힘을 낼 수 있는 와인드업 동작으로.
순간 홍빈은 2루수가 성급하게 왼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것을 보았다.
아직 메이저리그 경험이 부족한 버기 플랫맨이 홍빈에게 힌트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배트에 맞는 타이밍이 좋지 않을 것에 대비해서 예상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준비를 하는 거다.
‘체인지업.’
체인지업은 타이밍을 뺏는 구종이지, 구위로 타자를 짓누르는 공이 아니다.
심리전 성향이 짙은 공이기에, 오는 것만 안다면 때려 낼 기회는 충분하다.
따악-!
지체 없는 스윙. 가끔 하는 레그킥보다 훨씬 높게 왼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가 온몸을 비튼 홍빈의 스윙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었다.
온 힘을 다해서 휘두르는 스윙이 어떻게 군더더기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마는, 홈런을 때려 내기에 이보다 아름다운 스윙이 있겠나 싶을 정도.
“Go… gone, gone! 미쳤어요! 라인 드라이브로 외야 스탠드를 직격합니다! Crazy shot! Crazy, crazy!”
“Oh… my gosh…….”
해설자들마저 정신을 놓고 제대로 말하지 못할 만큼 큰 타구를 날린 홍빈은, 마치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날리기라도 한 것처럼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과격하게 베이스를 돌았다.
“이리와! 꼬마!”
“God damn it! 해냈어! 네가 해냈다고!”
그리고 홈에서부터 개빈과 헤스밀의 격한 환대를 받기 시작한 홍빈은, 에브러햄에게 소리쳤다.
“이제 이해했지? 넌 날 이길 수 없다는 이야기야, AAA! 앞으로도 계속!”
그렉 진네만은 마운드에 주저앉았고, 필리스는 9회 말에 등판한 그레이 밴델튼의 3K 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메츠 타자들은 제대로 넘어간 분위기를 다시 뒤집을 수 있을 만큼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2029년 8월 23일 목요일.
홍빈은 이날을 지배했다.
[50경기 21홈런 달성, 역전 3점 홈런, 라이벌을 짓밟는 퍼포먼스. The Korean day! 메츠 멸망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