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76)
홈플레이트의 빌런-77화(77/363)
# 77
포수학 개론 (4)
1
9월로 접어드니 큰 변화가 생겼다.
확장 로스터 시행으로 인해 10여 명의 마이너리거가 팀에 합류했다. 더블A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들이 있지만, 싱글A에서 함께했던 녀석들은 아직 40인 로스터에 들지 못한 듯하다. 하긴, 내가 비정상적으로 빠른 거긴 했지.
“오. 이것이 바로 메이저리그의 잔디…….”
저기 경기장에 엎드려 잔디에 얼굴을 비비고 있는 미친놈은, 바로 필리스 미래의 캡틴이자 공수 겸장 2루수로 이름을 꽤 날릴 케이스 에이블이다.
“여긴 좀 어때? 요새 팀이 잘나가던데, 경기에 나설 수 있을까?”
여기 질문하고 있는 폴 데이먼도 꽤 자리를 잡는 편인데.
사실, 이 둘이 필리스에서 회귀 전처럼 자리 잡고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케이스는 어쩌면 앤드류나 코난을 밀어내고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있다. 원래도 그랬고.
하지만 폴 데이먼은 1루수다.
팀이 엉망이 되고 베테랑들을 모조리 팔아 치울 때 주머도 팔려 나가기에 자리를 잡은 1루수.
“글쎄.”
언제나 이런 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주머는 서서히 나이를 먹어 가지만, 아직 3~4년은 빅리그 레벨을 유지할 수 있을 테고,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큰 도움을 준 사람이다. 솔직히, 미래를 대비하자면 폴이 주전 자리를 서서히 꿰차는 게 맞기는 하다.
하지만 이 유망주가 성공할 거라는 건 나 빼곤 아무도 모른다. 단장이 폴의 미래에 대해 안다면 주머를 팔아 버릴지도 모르지만, 리빌딩은 원래 리스크를 동반하는 법이다. 아무도 선수의 미래는 알 수 없다.
“열심히 하면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날 봐. 기회 한 번을 살려서 쭉 주전으로 뛰고 있잖아.”
“그렇지?”
폴은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존재는 마이너리거들에게 꽤 희망이 되는 듯하다. 유망주를 잘 쓰지 않기로 유명한 우리 감독님이 이례적으로 18살 고졸 포수를 붙박이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그냥 열심히 하라는 말밖에 해 줄 수가 없다. 지금 와서 보면, 굉장히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다. 뭐가 정답인지 모르고, 조금 오버 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뭐라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다.
“좋아. 50경기 22홈런을 치겠어.”
“그래? 그럼 난 49경기 21홈런.”
나중엔 대단한 선수들이 되겠지만, 아직은 애들이다. 미래 스타 플레이어들의 찌질한 시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긴 한데.
잡담을 나누며 야수 훈련장을 안내해 주고 있을 때, 어디서 많이 본 투수 둘을 만났다.
“오! 빈!”
“빨리! 우리도 럭키 가이로 만들어 줘!”
더블A에서 함께 뛰었던 투수, 로빌 지오클과 보리스 켄달이다.
“젠장. 그건 기자 놈의 장난질이었어.”
난리네 아주. 마이너리거들까지 저 소릴 하고 있으니.
2
나는 사람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굳이 따지자면 원래 내 나이의 두 배를 살았지만, 내 인간관계는 그리 넓지 못했으니까.
사실 내가 어린 나이에 꽤 성공했다고 엮이게 되는 인간 군상들이 싫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큰 돈을 벌다 보면 현실 감각이 무뎌지기 쉽다.
주변에선 젊은 스타를 치켜세우기 바쁘고, 여드름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스타가 되다 보면 그런 것들을 당연시하기 쉽다.
심지어 연봉 1억 원짜리 KBO 선수도 그런데, 최소 수천만에서 수억 달러짜리 계약을 따낼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 메이저리그 신인왕 후보는 어떻겠는가.
물론 내 이야기가 아니다.
교체된 후 음료수 통을 발로 차며 더그아웃으로 사라진 컵스 최고 유망주의 이야기다.
@SuperSSina
-야구에 대해 좀 아는 놈이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는데.
@SuperSSina
-아니면 배짱이라도 있던가.
@SuperSSina
-대체 뭐가 문제야? 이걸 끔찍하게 여기는 게 25명 중에 나뿐이라니.
@SuperSSina
-여긴 온통 멍청이들뿐이다. 답답해. 난 경기에 뛰어야 한다고.
컵스와의 2차전에서 에이머 시나는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고, 경기가 한참 벌어지고 있던 시간에 시나의 SNS 계정에 저 글들이 게시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을 모조리 지워 버리기도 했지.
그때가 언제였냐면, 내가 3루에 있고 주머가 ‘홈런의 구슬’을 힘차게 돌려 그랜드슬램을 친 그 타이밍.
상대 팀인 우리마저도 어이가 없고 황당한데, 컵스 팬들이나 컵스 선수들은 어떤 기분이겠는가.
팀이 그랜드슬램을 맞으며 침몰하고 있는데, 어제 자기밖에 모르는 모습을 보인 루키가 SNS로 헛소리를 해 버렸으니.
경기가 9 대 2로 끝났고, 인터넷은 잘 달궈진 고깃집 불판이 되어 버렸다.
ㅇㅅㅇ : 인터넷에서 맛있는 냄새라도 나냐.
ㅇㅅㅇ : 사물인터넷의 발전이 눈부신가 보군.
아니, 이 멍청아. 뜨겁다고.
뜨거워서 활활 불타고 있는 저 모습이 안 보이냐? 넌 꼭 설명해 줘야 아냐?
ㅎㅁㅎ : 요정님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 진지하게 뭐하는 짓이더냐.
ㅎㅅㅎ : 농담도 모르는 재미없는 초소형 포수.
요새 요정 놈이랑 로즐한테 너무 끌려다니는 기분이다.
이 두 악마 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까.
3
세 번째 경기 라인업을 확인하니, 에이머 시나는 또 라인업에서 빠졌다.
어제 경기 결과로 컵스는 카디널스에게 중부 지구 선두 자리를 내줬음에도 팀 전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를 빼 버린 거다.
그런데 내 기억에는 데뷔 시즌에 SNS로 저렇게 난리를 쳐서 일이 커진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ㅇㅅaㅇ : 그게 다 너 때문이다.
뭐, 내가 뭐.
트래시 토킹을 하긴 했지. 근데 고작 그거로 몇 번 괴롭혔다고 저렇게 난리를 쳐?
그리고 뉘앙스가 내 욕이 아니라 자기 팀 욕인 거 같은데?
ㅇㅅㅇ : 그냥 널 질투하고 있는 거다.
ㅇㅅㅇ : 사람들이 자길 욕하고 널 칭찬해서 화가 잔뜩 나 있군.
ㅎㅅㅎ : (뿌듯뿌듯)
맞다. 너 다른 사람 생각도 읽을 수 있지. 근데 왜 그걸로 뿌듯해하냐.
그냥 나는 코디 벨린저의 기록을 깨서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것뿐이다. 내가 비슷하거나 약간 우세한 활약을 펼친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백인인 에이머 시나에게 더 큰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언제나 자기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경쟁자가 삐끗할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치고 나가는 건 기본이다.
이럴 때 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줘야지.
4
“오늘도 유격수 자리에 구멍이 좀 보이는 거 같은데?”
2차전에 결장한 시나의 빈자리를 메운 조니 아마티는 경기 초반의 결정적인 순간에 병살타를 때렸고 주머의 그랜드슬램이 있기 직전에 에러를 범하며 빅 이닝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꺼내자 컵스 중견수인 더스틴 헤브로시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혹시 어제 시나한테 단체로 맞기라도 한 거 아냐? 성질 장난 아닌 것 같던데…….”
“좀 닥쳐. 상대해 주고 싶지 않으니까.”
[더스틴 헤브로시아.] [좌투좌타, 중견수.] [키워드 : 스프레이 히터, 눈 야구, 인내심, 해결사.] [키워드 도둑놈 동기화 중… 15%. 현재 도둑질 가능한 키워드 없음.]해결사는 꽤 훌륭한 키워드고, 동기화율을 조금만 올리면 가져올 수 있다.
“아니, 걱정돼서 그러지. 컵스 계집애들이 고작 루키한테 휘둘려서 무너질까 봐. 너희 2위잖아. 와일드카드도 위험한 거 아냐?”
말 끝나기 무섭게 쇼가 투구 동작을 시작한다.
“스트라이크!”
정말 끝내주게 좋은 타이밍이에요, 쇼.
“하여튼,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런건 초장에 꽉 잡아야 한다고. 걔가 팀 내에서 홈런을 가장 많이 치고 나면, 문제가 생겨도 팬들이 걔 편을 들지도 모르잖아.”
왔다, 왔다. 거의 다 왔다.
“하긴, 너희 팀에서는 걔가 제일 잘 치는 거 같더라. 젠장. 컵스 좋아했는데, 어쩌다 그렇게 됐지? 크리스 브라이언트의 시대 이후 누가 컵스를 구원할 수 있냐는 말이야.”
“이봐, 더 이상 떠들었다간 가만두지 않겠어.”
[키워드 도둑놈 동기화 중… 29%. 현재 도둑질 가능한 키워드 : 해결사.]됐다. 이 건에 대해서 화가 꽤 나 있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쉽게 됐다.
“뭐, 잘 되겠지. 가만히 둬도 말이야.”
사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속을 긁으면…….
“스트라이크-아웃!”
스윙이 커지지.
사람이란 다 똑같다. 단순하지만 감정을 숨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더스틴 헤브로시아는 굳이 자기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았고, 심판이 용인할 정도의 수준에서(뒤돌아 서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욕설을 내뱉으며 컵스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타자는…….
[코너 위튼.] [우투우타, 3루수.] [키워드 : 명경지수, 해결사, 장타, 철벽, 기세.]뭐. 감정을 쉽게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지, 아예 없다고는 안 했다.
명경지수를 가진 변태가 여기 있는데 내가 뭔 소릴 한 거야?
“헤이, 너 혹시 컵스로 올 생각 없냐?”
이래서 내가 명경지수 가진 놈들을 싫어한다.
도통 이해가 안 되는 놈들 투성이고, 자기가 하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 같다니까.
“3루수인 줄 알았는데 단장이었나 보지?”
“흐흐. 내가 단장이라면 우리 루키 유격수랑 너를 바꾸려고 할 거야.”
“나라면 안 그래.”
“필리스에는 시나처럼 막 나가는 녀석이 더 잘 어울릴 거 같아서 말이야.”
“컵스 선수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 우습네. 나도 막 나가. 보여 줘?”
“좋아, 보여 줘.”
아, 이 미친 명경지수 놈들.
보여 주긴 뭘 보여 줘? SNS로 개빈 욕이라도 해?
나는 쇼에게 이놈의 눈 앞으로 공을 던져 달라고 부탁했다.
쇼는 뭔가 흥미롭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더니 슬라이더를 던지겠다고 사인을 보내왔다.
“스트라이크!”
“오… 끝내주는데.”
쇼의 컨디션이 워낙 좋다 보니, 머리를 노리고 들어가다가 확 꺾여서 존 안으로 들어가는 프론트 도어 슬라이더가 들어왔다.
놀라긴커녕 휘파람까지 불어 대며 감탄사를 날리는 걸 보니 역시 정상은 아니다.
“FA가 되면 컵스로 와. 네가 탐나.”
“차라리 네가 필리스로 와.”
“안 돼. 난 컵스가 좋아.”
“Fucking 컵스.”
“컵스를 욕하지 마. 진심이야.”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다.
가끔 이런 녀석들이 있다. 거기다 컵스빠가 더해지니… 이 무슨 끔찍한 혼종이란 말인가.
“잘 생각해 봐. 네가 오면 정말 멋진 팀이 될 거야.”
FA로 거기에 간다 하더라도 그 전에 은퇴하시겠지, 이 양반아.
대체 몇 살까지 뛸 생각인 거야?
5
나는 내 포지션을 사랑한다.
포수는 굉장히 복잡하고 힘들지만, 매력적인 포지션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차라리 다른 포지션을 선택했다면 조금 더 안타를 많이 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렇지만 역시 포수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로즐을 위시한 동료 투수들이, 자신들을 럭키 가이로 지칭하며 날 놀리긴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에 그렇게 웃고 넘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ㅇㅅㅇ : 응. 처맞는 말.
이건 좀 그렇긴 했지?
어쨌든.
타자로서 안타를 3천 개 때려 내야 한다는 압박감.
그건 생각보다 끔찍하다.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시즌을 치르다 보면 최근에 그랬던 것처럼 투수들이 내 생각 그대로 던져 주는 시기가 있는데, 이럴 때야말로 포수로서의 성취감이 극대화되는 시기다.
[덕스턴 힐스.] [좌투좌타, 중계 투수.] [키워드 : 그라운드 볼러, 팔색조.]주자 1, 2루에 1아웃.
왼손으로 비비고와 아까 훔쳐 놓은 해결사 키워드는 내게 자신감을 준다.
탓!
“파울!”
어쨌든, 사람이 아무리 정신력이 강하다 해도 지나친 압박감만 마주하다 보면 미쳐 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 포지션이 좋은 건, 포수로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을 즐기며 그 압박감을 버텨 낼 수 있다는 점이다.
KBO에서 20년,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20년이라고 치면 다른 포지션에서 40년을 최고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버틸 수 있을까.
“아까 너희 3루수가 나한테 컵스로 오라고 하더라.”
컵스 포수는 오늘 입을 거의 열지 않는다. 팀 분위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네가 컵스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봐.”
일단 그렇게 비슷하게 말하긴 했잖아?
포수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고, 투수가 투구 동작을 시작한다.
낮게 오겠지. 병살을 노리려고.
양쪽 무릎을 꽤 가까이 붙인 상태로 시작해서 그 간격을 유지하며 간결하고 날카롭게, 수직으로 배트를!
딱!
이 타구면 2루 대주자로 나선 케이스 정도는 충분히 홈으로 불러들일 수 있겠지.
아무리 뛰어도 2루까지 가기는 힘든 코스다. 유격수와 2루수 사이를 깔끔하게 갈랐고, 나는 1루로 서서 들어갔다.
보자. 어제에 이어 오늘도 2안타니 이제 3할 되려나?
ㅇㅅㅇ : 2할 9푼 9리.
ㅡㅅㅡ : 콩할 라인에서 벗어나질 못하는군.
그래도 내일쯤이면 3할 들어가겠네.
시나가 3할이라고 나보다 더 낫다는 놈들 입을 닥치게 만들어 줄 수 있겠어.
6
[시카고 컵스 2 : 4 필라델피아 필리스.] [홍빈, 컵스 3연전 동안 12타수 7안타 맹타. 3할이 눈앞에.] [에이머 시나, 구단 자체 징계받나?] [팀 동료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홍빈과 팀 동료들과 사이가 멀어진 에이머 시나.] [필리스 감독, 최근 홍빈에게 휴식이 없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 어떤 감독이라도 라인업을 짤 때 그의 이름을 가장 먼저 써넣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컵스 감독, ‘다음 시리즈 준비 잘하겠다.’며 시나에 대한 언급 회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