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93)
홈플레이트의 빌런-94화(94/363)
# 94
개빈의 방식으로 (1)
1
때로 어린 선수들은 사소한 비난에 흔들리곤 한다.
누군가가 보기엔 사소한 일이다.
노히터라는, 초특급 에이스들도 일평생 한 번 할까 말까 한 대업적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 사소한 비난이다.
번트를 대려다 누구도 원치 않은 부상을 당한 선수가 시즌 아웃 됐다며 SNS에 쏟아지는 비난 따위, 노히터를 기록하며 급격히 떠오른 선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 아닌가.
나 같으면- 혹은 대부분의 우리 팀 선수들이라면 신경도 안 썼을 테지만, 하필 비난 받는 대상이 짐이라는 게 문제다.
이런 일은 선수 본인이 받아들이고 이겨 내는 게 보통이다. 그냥 무시하는 게 제일이기는 하지만.
누군가를 부상 입히는 일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기에(물론 가끔은 그게 유쾌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의도했든 아니든 기분이 안 좋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무언가를 망칠 필요는 전혀 없다.
애당초 노히터를 깨려고 번트를 대서 불문율을 어긴 놈이 누군데.
레즈 팬들은 그게 페인트 모션이었다며 짐을 비난하고 있다. 이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7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에 대한 화풀이에 불과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짐을 위로해 주거나, 혹은 이 일을 신경 쓰지 못하도록 정신을 완전히 돌릴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단순히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해서 신경을 안 쓸 놈이 아니다.
그걸 알기에 내가 뭔가를 해 보려 했는데, 그걸 나만 아는 건 아니었다.
우리 팀 모두가 알고 있었고, 개빈은 경기장 밖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솔선해서 보여 주기로 결정한 듯했다.
솔직히 미친놈 같기는 한데, 음. 병신 같지만 멋있다는 말을 여기서 써도 되나?
“어떤 행동이 멍청한 행동인지 오늘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멍청하게 보이고 싶다면 그렇게 행동하면 된다.”
한 케이블 TV와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포문을 연 개빈은, 거침없이 막말에 가까운 대답을 쏟아 냈다.
아니, 이건 그냥 막말이지. 막말에 가까운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번트? 솔직히 농담인 줄 알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도 아니고 한 팀의 간판선수가?”
“시즌 아웃은 안타깝지만, 시즌은 고작 2주밖에 남지 않았다. 2주 가지고 시즌 아웃이라니, 꽤 좋은 조크지.”
“나는 반년짜리 시즌 아웃 부상도 당해 봤고, 그건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당한 부상이었다. 기억난다. 마이클이 내 정강이를 부러뜨렸지. 바닥에 누워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었다. XXXX XXX!”
“솔직히 말해서, 갈비뼈에 살짝 금이 간 상태였다면 의사에게 입 닥치라고 말한 뒤 그냥 출장했을 거다. 그 정도로는 날 입원시킬 수 없다.”
“매애애액이 남은 경기에 출장해서 달라질 게 뭔가? 한 순번 밀린 드래프트 지명권? 어라. 빠지는 게 이득이네?”
“음, 솔직히 모르겠다. 그들이 왜 우리 천재 루키를 욕하는지. 분노를 돌릴 곳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한다. 좋다, 여기까지만 하자.”
그는 총대를 멘 거다.
작은 케이블 TV를 이용해 광역 어그로를 끌었고, 사람들은 개빈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베테랑답지 못하게 쓸데없는 분란을 만들었다면서.
논점은 순식간에 ‘짐이 고의로 맥을 부상시켰다.’에서 ‘개빈이 노망이 들었다.’로 바뀌어 버렸다. 경기에도 나서지 못하는 퇴물이 정신이 나가 버렸다면서 말이다.
솔직히 오버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내버려 두면 잠잠해졌을 일이니까.
하지만 짐에 관한 이야기는 쏙 들어갔고, 짐은 개빈을 위해 노히터를 한 번 더 하겠다는 미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 버렸다. 완전히 불타오른 상태다.
“기왕 할 거면 월드시리즈에서. 오케이?”
개빈은 그냥 그렇게 말했을 뿐이지만, 우리는 모두 별 다른 설명 없이도 알았다.
개빈이 우리를 보호해 주리라는 것을. 그가 짐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 행동이라는 것을 말이다. 루키 선수들은 그런 걸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한 팀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여기서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개빈의 희생(내가 보기엔 의도한 것 같기도 하다)을 보면서 자기도 팀 동료를 위해 희생할 수 있을 거라 느끼고, 누군가 자기를 위해 희생할 거라고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팀의 일원이 된다고 느끼면 팀을 위해 플레이 할 줄 알게 된다.
개빈은 거센 비난의 물결 앞에서, 씩 웃었다.
“어차피 은퇴할 퇴물한테 저 지랄을 해서 뭐해? 난 인터넷에서 그랜드슬램을 칠 테니까 너흰 경기장에서 쳐.”
평소에 개빈의 성대모사를 하며 까불거리던 로즐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꽤 감명을 받은 듯했다. 그리고 로빌이나 케이스, 폴처럼 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선수들이 팀에 완전히 들어오고 싶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여기 남기 위해서 남은 시간 동안 더 열심히 진지하게 임하게 될 거다.
뭐.
이런 분위기에서, 어정쩡한 데다가 구심점을 잃은(라커룸에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는 지기도 힘들지.
로즐이 7이닝 2실점 10K로 호투했고, 로즐의 뒤를 이어 등판한 댄 벨, 그레이 벤델튼이 경기를 완벽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5 : 2 신시내티 레즈.] [필리스의 힘. 루키 선수들의 약진.] [올해보단 내년이 기대되는 필리스. 하지만 올해도 지구 1위.] [개빈 폴체스키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필리스 선수단. 로즐 펠리시다드, ‘개빈이 월드시리즈 반지를 가지고 은퇴하길 원한다.’] [필리스 특집. 갑자기 튀어나온 루키들의 선전.]2
“오늘은 경기를 망치지 않을 거야.”
필은 최근 조금 부진했지만, 신시내티 레즈 3연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는 투지를 불태웠다.
많이 불안하고 초조했을 거다.
안정된 것처럼 보였던 선발 로테이션이 살짝 흔들렸을 때, 가장 불안한 게 자신이었을 테니까.
로빌이 롱 릴리프로 호투하며 자리를 위협하고 있었고, 어쩌면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불안감이 들었을 거다.
많아야 두 경기, 어쩌면 자신의 올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될지도 모르는 오늘 경기에서 뭔가 보여 주고 싶을 거다.
거프야 팀의 유일한 좌완 선발이라 한 자리 차지할 수도 있겠지만,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삼는 우완 선발이라는 점에서 쇼나 짐과 스타일이 겹치기에 더 그럴 테지.
“베이지가 경기장에 있다고 생각해요. 베이지를 위해 다 때려눕히라고요.”
그는 살짝 거친 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든든하게 웃었다.
지난 기억을 되살려 봐도, 필은 긴장했을 때보다는 힘이 살짝 들어갔을 때 더 잘 던지는 타입이다.
키워드에서도 잘 드러난다.
근성과 기세.
좀 맞아도 기죽지 않고 던지는 근성과 경기가 잘 풀리면 한없이 잘 풀리는 기세.
묘하게 안 맞는 키워드 조합을 가졌지만, 뭔가 인간 승리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다.
낮 경기가 벌어진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 파크는 한산했다.
팀 간판스타가 출장하지 않고, 이미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된 데다 선발투수마저 별 볼 일 없는 신인이라 레즈 팬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 팬들이라면 신인 투수한테 시어머니 노릇을 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아왔을 텐데.
[브릭 빌링스.] [좌투좌타, 선발투수.] [키워드 : 새가슴, 핀포인트.]어쨌든 상대 투수의 상태를 보아하니, 오늘은 어떻게든 필을 승리 투수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거 같다.
4번 타자로 출장했는데, 1회 초부터 벌써 만루라니.
KBO 시절에 새가슴과 핀포인트 키워드를 가진 놈을 본 적이 있다.
“볼!”
웃긴 게 뭐냐면, 보통 새가슴을 가진 선수들은 맞는 게 무서워서 제구가 흔들리는 편이다.
“볼!”
하지만 저 둘을 동시에 가진 놈은 존 안에 넣을 능력이 충분하면서도 한 대 맞을까 봐 쫄아서 존 밖으로 던지곤 했다. 병살을 유도하겠다며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매번 그러는데 누가 스윙을 해? 그냥 볼넷을 기다리지.
“볼!”
사람을 더 미치게 하는 건 그놈이 우리 팀 투수였다는 거다. 진짜 죽여 버리고 싶었다. 망해라, 홍의표. 미친 새가슴.
“스윙 안 할게. 맘 편히 던지라고 해.”
“Fuck you.”
어차피 볼 던질 거면서 뭘.
저런 놈들이 꼭 불펜에선 잘 던진다. 그래서 경기에 투입되는 거고, 경기에 나가면 높은 확률로 경기를 말아먹는다. 투수 코치의 탈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타입이다.
“베이스 온 볼스!”
1회 초부터 밀어내기 볼넷.
이러니 관중이 안 들어오지.
나의 다음 타자로 들어오는 주머의 표정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별로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주머! 홈런 30개 쳐야지!”
“파파! 그랜드슬램 부탁해!”
숫자에서는 한참 밀리지만 우리 팬들의 목소리가 더 크다.
그리고 팬들의 성원을 받은 주머는, 마운드 미팅을 끝내고 억지로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브릭 빌링스를 상대로 정말 그랜드슬램을 쳐 버렸다.
1회 초에만 6점을 주고 의욕을 잃어 버린 레즈 타자들을 상대로, 필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마네킹 같은 놈들을 3K로 완벽하게 마무리했고, 2회 초에 다시 타석에 들어선 내 앞에는 또 다른 별 볼 일 없는(아마 다시는 안 만나게 될 것 같은)투수가 서 있었다.
[벡스 펠게인.] [우투우타, 중계 투수.] [키워드 : 올빼미, 인저리 프론.]레즈 투수 팜 왜 이래?
대체 이 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무리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끝났다 하더라도, 아니, 시즌이 사실상 끝난 상황이라, 전패로 시즌을 마무리해 드래프트 순위를 높이려 한다 하더라도 이런 애들만 나오는 게 말이 돼?
“홈런 하나 쳐도 돼?”
“빌어먹을 자식아. 일일이 물어보지 마.”
“알았어. 그냥 칠게.”
상대 포수인 레니 발더는 원래도 예민한 놈인데 오늘따라 더 예민하다. 하긴, 인터넷에 그 난리가 났는데 스윕 확정이나 마찬가지니 짜증이야 나겠지.
초구 패스트볼을 잘못 때려 파울을 치고, 2구째 커브를 흘리고 3구째 밋밋한 체인지업.
따악-!
“오 마이 갓! 레드 빈! 널 사랑해!”
“Nut and nuts!”
좌측 펜스까지의 거리가 100m에 불과한데, 바깥으로 부는 바람 덕에 타자 친화적인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 파크의 좌측 담장을 겨우 넘기는 홈런.
뭐, 펜스를 겨우 넘기든 구장 밖으로 공을 날려 버리든 어차피 홈런은 홈런이다.
몇 안 되지만 우렁차게 소리를 질러 대는 우리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얌전히 베이스를 돌아 홈을 밟았다.
30홈런 채울 수 있으려나? 이제 27개일 텐데.
“굿 넛츠.”
제발. 좋은 불알 따위로 날 부르지 말라고 미친 로즐 놈아.
3
스코어가 13 대 1이 된 4회 초 이후로, 우리 팀이나 상대 팀이나 경기를 빨리 끝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로 가득해졌다.
아. 필이랑 우리 술 취한 팬 몇몇만 제외하고.
“스트라이크-아웃!”
필은 7회 말인 지금, 여전히 집중력을 잃지 않은 상태로 공을 던지고 있다.
훌륭한 프로 의식이다. 완투승으로 마무리하고 싶어할 테지만, 투수 코치님은 필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수고했어.”
그 말이 교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아는 필은 살짝 아쉬워했다. 3회 말에 얻어맞은 뜬금포가 꽤 속 쓰릴 순간이다. 완봉 페이스라면 조금 더 던질 수 있을 테지만, 그래도 7이닝 1실점이면 충분히 보여 준 경기다. 코치님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인 필은 더그아웃 뒤로 들어갔고, 경기는 마무리 분위기로 흘러갔다.
아무리 많은 점수 차로 벌어진 상태라도 뒤집힐 수 있는 게 야구지만, 오늘은 아닌 것 같다.
1년 내내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꽤 심한 체력 소모를 유발한다. 감독님은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백업 선수들을 투입했다.
사실 이런 경기에서 후반에 투입된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경기는 14 대 3으로 끝났고,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홈구장과 근처에서 시즌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때다.
음, 미국에 오자마자 주전 포수가 되고 플레이오프라니. 역시 나는…….
ㅇㅅㅇ : 팀의 짐이 되지 않도록.
ㅎㅅㅎ : 짐은 짐이 아니지만 네가 짐이 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뭔 되지도 않는 말장난이야 이건?
양말이랑 같이 위탁 수화물로 실려서 집에 가고 싶냐?
ㅍㅅㅍ : 네 녀석 팬티보다는 낫겠지.
그래?
ㅍㅅㅍ : …….
뭐 어쩌라고.
[요정님이 축복을 내립니다.] [비행기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신체 회복력이 50% 상승합니다.] [단, 요정님의 본체가 당신의 신체와 직접 접촉하거나 1m 이상 떨어지면 효과가 사라집니다.] [요정님을 귀중하게 대해 주세요!]이놈 잔머리 좀 보소?
한 번 봐준다. 조용히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