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94)
홈플레이트의 빌런-95화(95/363)
# 95
개빈의 방식으로 (2)
1
KBO 시절에는 시즌 막바지가 꽤 바빴다.
아무래도 장마철에 태풍이라도 와 버리면 우천 취소가 되기도 했고, 시즌 중반부터 조금 힘들면 양 팀 관계자들이 경기 감독관한테 오늘 좀 쉬자고 읍소해 충분히 경기할 수 있는 날씨인데도 휴식일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잦았으니. 잔여 경기 편성은 일상적인 일이었지.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그딴 거 없다. 진짜 정말로 말도 안 될 정도로 불가능한 상황 아니면 그냥 경기 진행이다. 동점 상태로 자정을 넘겼는데 조명 탑이 고장나 버리지 않는 한, 그냥 경기 속행이다.
다행인지 그런 경우는 일단 없긴 했지만… 어쨌든 이제 남은 경기는 9경기다.
홈에서 메츠와 3경기를 치르는데 여기서 2승을 거두면 그냥 지구 우승 확정이다. 지구 우승은 거의 확정적이라고 보면 된다.
“체력은 좀 어떤가?”
홈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감독님이 내게 물으셨다. 솔직히 여기서 체력 달린다고 대답할 사람이 있기나 할까. 그러니까 저건, 질문이 아니라 남은 경기에 모조리 뛰라는 말씀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거의 휴식 없이 출장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투수 때려서 출장 정지당하고 쉬긴 했다. 출장 정지 없었어도 체력이 부족하진 않았을 거 같다. 내가 그래서 회귀 시점에 금강불괴를 가져온 거기도 하다.
사실 피로감이 조금 있긴 했는데, 요정이 안락하게 내 지갑에서 집에 오는 대가로 내놓은 회복력 증가로 상쾌한 상태가 되었다.
“완벽합니다. 남은 경기에 모두 뛸 수 있어요.”
개빈이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상태라면 휴식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경기 수가 그리 많지 않기에 쉬고 싶은 생각도 없다.
혹시라도 신인왕 수상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해서 남은 경기를 모두 풀타임으로 출장하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혹시 모르지. 동양인 페널티 먹어서 엄한 놈이 받을지도. 남은 아홉 경기를 다 말아먹으면 몰라도, 어지간하면 날 위협할 만한 놈은 안 보인다. 대븐포트와 시나는 후반기에 제대로 삽질했고, 오히려 노히터를 한 짐이 가장 큰 경쟁자일 수도 있다.
“좋아. 자네만 좋다면 남은 경기에서 한 타석도 빠지지 않게 할 거야. 단, 트레이너에게서 조금이라도 불안한 말이 나오면 한두 경기는 쉬게 될 수도 있을 테니 몸 관리 잘하도록 해.”
쉬고 싶으면 벤치클리어링 한 번 하지 뭐.
근데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내가 그 정도 인성은 아니다. 저건 그냥 개빈이 내게 했던 말이다. 체력이 달리는 게 느껴지면 시비 걸고 공 한 대 맞고 마운드로 달려갔다고.
정말 웃긴 사람이긴 한데, 우리 편이라 웃긴 거지 남의 편이었으면 진짜 쓰레기 취급했을 거 같다.
하긴 지금도 그렇긴 하다. 레즈 원정에서 그 인터뷰로 아직도 욕을 먹고 있는데, 동업자 정신이 없다나 뭐라나.
물론 개빈은 다른 팀 선수들을 동업자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역시 멋있어. 오늘 안 보이던데 뭐 하고 있으려나?
ㅇㅅㅇ : 무법 대머리는 WWE 경기를 보러 갔다.
참 속 편한 영감이라니까.
고수위 발언으로 벌금을 먹이니 징계를 먹이니 이런 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콧방귀도 안 뀐다.
나도 저렇게 늙어야지.
ㅇㅅㅇ : 흠. 대머리가 되고 싶은 건가?
ㅇㅅㅇ : 원한다면 지금 당장 대머리로 만들어 줄 수도 있는데.
음…….
깝치지 말자, 응?
ㅍㅅㅍ : …….
그래, 착하지.
2
맥마나만 감독은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일어난 뒤, 식사하면서 지역 스포츠 뉴스를 싹 훑는다. 혹시 어떤 선수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고를 쳤을까 싶은 노파심이다.
구장에 도착하면 야구 외적인 업무들이 감독에게 몰려든다. 최근 팀의 성적이 좋아짐에 따라 몰려드는 인터뷰 요청을 골라내야 한다. 맥마나만은 최대한 개빈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언론사나 기자를 골라냈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나올 만한 질문은 뻔하다.
원정에서야 기자들을 최대한 피해 다녔지만, 홈구장으로 돌아와서까지 계속 그럴 수는 없다. 특히 홈 팬들이 좋아할 만한 기사를 내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다.
기자 몇몇과 약속을 잡은 후, 경기장 전체를 직접 둘러보며 구장 관리 직원에게 잔디가 죽은 부분의 보수와 파울 지역의 흙을 한 번 갈아엎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클러비가 주워온 약병의 주인이 누군지 고민하기도 한다. 만약 선수단 중 누군가가 약물에 손을 댔다면 단장에게 처리를 맡겨야 한다. 그리고 그 약병이 주머의 아들이 가지고 다니는 장난감 의사 놀이의 부속품이라는 것을 확인 후에야 안심한다.
그리고 단장과 잠시 만나 시즌 마지막 날 이벤트에 관해 이야기를 한 후, 벤치 코치를 호출한다.
“맥. 다들 내 방으로 모이라고 해.”
코치진들을 모두 불러 모아 오늘의 경기 전략도 짜야 한다.
최근 회의의 첫 번째 순서는, 주전 유격수와 2루수 중 누가 더 타격감이 좋지 않은지에 대해 타격 코치에게 듣는 것이다. 확장 로스터로 합류한 내야수 케이스 에이블이 꽤 쓸 만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둘 다 비슷합니다. 사실, 앤드류가 조금 낫기는 하지만 코난이 볼을 좀 더 볼 줄 알기는 하죠.”
타격 코치가 앤드류와 코난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면, 이제 수비 코치의 발언이 이어질 차례다.
“케이스는 1루로 던질 때 송구가 조금 약합니다. 메츠에는 당겨 치는 우타자가 꽤 있고 발 빠른 선수도 있으니 오늘은 2루로 투입해 수비 부담을 조금 줄여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라인업에서 코난의 이름이 지워지고, 케이스의 이름이 들어갔다. 코난에게는 안된 이야기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년에 코난은 이 팀에 남아 있지 못하거나 내야 백업으로 시즌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투수 코치가 자기 차례라는 것을 알고 발언했다.
“딱히 기록을 세울 만한 친구도 없으니, 선발진 체력 관리 차원에서 로빌에게 선발 기회를 한 번 주죠.”
“언제가 좋겠나?”
“다저스전 1차전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아. 그렇게 해.”
마지막 남은 와일드카드 희망을 불태울지 모르는 메츠전보다는, 그리고 루키 투수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같은 지구 팀과의 경기보다는 다저스 경기에서 팬들의 야유를 덜 받으며 등판하게 해 주려는 투수 코치의 배려였다.
감독의 동의를 받은 투수 코치는 일어서서 화이트 보드의 9월 26일에 로빌의 이름을 써넣었다.
다음은 배터리 코치 차례다.
“내 차롄가?”
배터리 코치가 화이트보드의 라인업에 아무 고민 없이 홍빈의 이름을 써넣자, 다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최근 필리스 라인업 작성에 아무 이견이 없는 포지션은 바로 포수다. 다른 포지션이야 백업 선수의 기량 점검이나 주전 선수의 체력 보전을 위해 종종 변동이 생기지만, 포수 포지션은 요지부동. 백업 포수의 기량 따위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어차피 물으나 마나니까. 개빈이 자신이 후보로 밀려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정도의 기량을 가진 루키 아닌가.
그 외에도 마지막 9경기 동안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줄 계획을 짠 후, 맥마나만 감독이 침착하게 말했다.
“단장이 시즌 마지막 경기에 개빈을 임시 감독으로 앉혀 보자고 하더군. 순위가 결정 난 상태라면 말이야.”
아직 개빈의 다음 시즌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은퇴하겠다고 발언하긴 했지만, 사람 일은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다.
한 시즌 더 뛰어 줬으면 하는 게 코칭스태프들의 마음이었다. 아직도 충분히 대타로는 쓸 만하고, 홍빈의 멘토로서도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게다가 홍빈이 빠졌을 때 개빈 외에는 적절한 역할을 해 줄 선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일각에서는 플레잉 코치로 계약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팬들은 정말 개빈이 은퇴한다면 당장 코치로 합류시켜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중이다.
무엇보다 개빈의 리더십은, 늙은 백업 포수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괜찮은 아이디어네요.”
“조 토레 감독이 항상 그랬었지.”
“뭐, 어차피 부담도 없는 경기일 테니 괜찮겠지.”
“찬성합니다.”
코치들의 동의를 얻은 맥마나만 감독은 회의를 종료했다.
이제 각 코치는 각자 맡은 일들을 하러 떠날 테고, 감독은 기자와 만나기 전에 오늘의 경기 시나리오를 생각할 시간이다.
각 경기 상황에 따라 등판할 수 있는 필리스 불펜 투수들을 확인하고, 상대 불펜 투수와 상성이 좋은 대타도 미리 정리하며, 경기 후반에 누구를 대주자나 대수비로 교체시킬지도 미리 정해 놓는다.
그리고 기자를 만날 시간이 되면, 제발 이 시간이 빨리 끝나고 저녁이 되기를 바란다.
경기에 들어가면 야구만 생각하면 되지만, 경기 전에는 야구 외적인 업무가 너무 많다.
감독은 정말 힘든 직업이다.
3
“불쌍한 AAA, 오늘도 불알이 터지겠지!”
“Nut and nuts!”
“마지막 남은 하나를 잘 간수해. 홍을 조심해야 할 거야!”
“Nut and nuts!”
우리 팬들이 AAA를 싫어한다는 거야 전 세계의 메이저리그 팬들이 아주 잘 아는 이야기다.
게다가 전에 나와 맞붙어서 완전히 짓밟힌 후 우리 팬들은 메츠전을 더 기다리는 듯하다. 내가 타석에 들어가기도 전에 에브러햄을 조롱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1회 말, 2사 주자 1루. 팬들이 저러면 나도 박자 맞춰 줘야지.
“우리 배려심 넘치는 팬들이 조심하라고 전해 달래. 터진 덴 좀 괜찮아?”
“흐흐. 기고만장하네.”
짐짓 태연한 척하며 일부러 웃음소리를 내는 에브러햄의 사타구니를 향해 배트를 휘두르는 척했다.
“젠장. 뭐하는 짓이야?”
“응? 스윙 연습. 아, 조금 가까웠나?”
에브러햄이 깜짝 놀라며 중심을 잃은 사이, 발 디딜 곳을 만들며 홈 플레이트에 흙을 차 넣어 배터 박스 라인을 빠르게 지워 버렸다.
그리고 배트를 바닥에 튕겨 땅에 홈을 내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타격 자세를 취했다.
에브러햄은 홈 플레이트의 흙을 치워 배터 박스 라인을 그리고, 살짝 파인 곳을 메꾸며 내게 욕을 했다.
[마르쿠스 세일러.] [우투우타, 선발투수.] [키워드 : 에이스, 닥터 K, 폭포수, 이닝 이터, 각도기.]AAA를 자극하면서 동시에 투수 신경을 긁으려고 한 거다. AAA는 여유로운 체하다가 한 번에 억지 평정심을 잃었고, 투수는 포수가 왜 저러나 하고 있을 거다.
사실 포수가 허둥대고 있으면 투수나 내야수들도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사소한 거 하나라도 약점을 잡으면 좋다. 무엇보다,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주 무기로 쓰는 투수다 보니 땅에 파 놓는 구멍이나 흙더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운드되는 스플리터가 흙에 튕겨 이상한 데로 날아가 버리면 순식간에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가 나간다.
“왜. 흙에 튕겨서 네 불알에 맞을까 봐? 설마 또 그럴까. 야구공이랑 불알에 자석이라도 달아놨냐? 뭘 그리 겁을 내?”
“Fuck off.”
“홈런 치고 더그아웃으로 꺼져 줄게. 가운데로 밋밋한 체인지업 하나 부탁해.”
한 번 무너진 평정심을 되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능글맞기로 소문난 놈이지만, 개빈은 한 번도 무너진 걸 본 적이 없다고 했었다.
그건 이제까지 평정심을 무너뜨릴 상대를 만나본 적 없다는 말일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몇 년간 이 놈의 평정심을 무너뜨릴 사람이 바로 나다.
딱!
“파울!”
패스트볼이 올 줄 알고 휘둘렀는데, 초구부터 슬라이더가 들어와서 포수 쪽으로 튀는 파울.
낮게 뒤로 튀어가는 공에, 나도 모르게 기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뭘 봐?”
놈이 험악한 얼굴로 투덜대는 걸 보니, 아쉽게도 불알에 맞지는 않은 듯하다.
나중에 불알 태그 한번 해 줘야지. 아무것도 안 하면 아쉬우니까.
“볼!”
각도기 키워드를 가진 투수들은 다른 공을 던져도 투구 폼에서의 차이를 읽어 내기가 힘들다.
2스트라이크로 몰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저 투수의 궁극기와 같은 낙차 큰 스플리터가 날아온다.
“볼!”
초구 바깥쪽 슬라이더에 배트를 냈더니 비슷한 위치로 체인지업과 슬라이더가 연달아 들어와서 2볼 1스트라이크.
이제 한결 여유가 생긴다.
“스플리터 오늘 못 던지나?”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스플리터를 던지진 않겠지. 패스트볼도 안 던졌으니 패스트볼을 기다려 보자.
타격은 찰나의 예술이다.
그 작은 공을 때려 내기 위해 온몸을 긴장한 상태로 준비하고 있을 때, 순간의 구속 차이로 구종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이게 패스트볼인지 스플리터인지는 공이 배트에 맞아 봐야 안다.
타자가 두 구종을 두고 하나에 모험을 걸 수 있는 이유는, 야구가 30%의 승률을 기록해도 승자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따악-!
패스트볼에 모험을 건 내 선택이 옳았다.
2스트라이크로 만들고 난 후 스플리터로 마무리하려는 강박관념이 있는 투수가, 카운트를 잡기 위해 패스트볼을 던질 거라는 분석이 맞은 거다.
나는 배트를 밀어 버리고 베이스를 돌았다.
에브러햄의 표정이 볼 만하다.
우리 팬들이 불알을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있어서 더 그럴지도?
아. 간만에 리버티 벨의 종소리를 들으니 너무나도 상쾌한 기분. 역시 우리 홈은 홈런이 잘 나오는 구장이라 좋다니까.
이제 28호다. 시즌 중반에 합류했으니까 100타점은 무리일지라도 홈런 30개는 쳐야지, 안 그래?
ㅇㅅㅇ : 옳다.
ㅇㅅㅇ : 30개도 못 치면 초소형이 아니라 초바보 포수에 불과하지.
[관대하신 요정님이 시즌 홈런 30개를 쳤을 경우, 특전을 약속합니다!] [요정님께 홈런을 상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