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97)
홈플레이트의 빌런-98화(98/363)
# 98
개빈의 방식으로 (5)
1
개빈이 내게 물었다.
자기가 왜 은퇴하려 하는지 아느냐고, 자기가 더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고.
글쎄. 사실 개빈의 나이만 봐도 답이 나온다. 아마 그가 한 해 더 하기로 결정한다면 다음 시즌 초반에는 만 42세가 되어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나이라는 대답을 들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 거다.
아마 99%는 저 질문에 나이 때문이냐고 대답할 텐데, 굳이 물을 필요가 없지 않나.
그게 아니라면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서?
물론 그럴싸한 대답이고 어느 정도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가장 큰 이유가 될까?
바바라나 아리아나는 메이저리거로서의 개빈을 좋아한다. 최소한 내가 알기에는 그렇다.
그게 아니라면 팀의 앞날을 위해서?
개빈이 한때 내게 자리를 내주면서 팀이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을 돕고자 했던 것도 안다.
몸 상태? 쉬고 싶은 마음?
젠장. 모르겠다.
아마 개빈이 솔직하게 말하거나, 요정이 개빈의 생각을 다 말해 주기 전까지는 모를 거다. 남의 마음을 내가 다 어떻게 알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게스 히팅이 통할 수도 있지만, 나는 휘두르지 않고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저야 모르죠. 그냥 개빈에게 달린 문제 아닌가요?”
가만히 서서 이게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 지켜보자.
사실, 명확한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것 같지도 않지만.
“내게 달렸다라.”
개빈은 씁쓸하게 웃었다.
“포수로 나서서 게임을 하다 보면 왼손아귀가 터질 듯이 아파 와. 손바닥 인대가 걸레짝이 되어 버렸으니까. 공을 받을 때마다 울고 싶어지지.”
금강불괴 스킬 때문에 느껴보지 못한 괴로움이다. 그 스킬을 가지기 전에는 종종 느껴본 적도 있지만, 오래되기도 했고 그렇다 해도 개빈 정도는 아니었다.
“우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상대 타자에게 욕을 하곤 해. 그러면 기분이 좀 나아지거든.”
역시.
배우신 분.
“비가 오면 송구도 제대로 못 해. 어깨에서 자동차 조인트 나간 소리가 나거든.”
결국, 말하려고 하는 건 나이 이야긴가?
“근데 그건 10년 전부터 그랬어.”
음?
“조금 더 심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몸이 성한 채로 경기에 나섰을 때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나. 하여튼, 난 나보다 네가 있을 때 경기에 이길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으로 이걸 그만두려 했지.”
나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부인하진 않겠다.
전성기라면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개빈보다는 내가 확실히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기는 하니까. 전성기의 개빈과 내가 있다면, 단장은 둘 중 하나의 포지션을 바꾸려 하거나 하나를 팔아서 다른 포지션을 보강하려 할지도 모른다.
“난 어쩌면 네가 뭔 짓을 해도 내가 주전일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아니면 주전 자리를 내주는 게 정말 싫었거나.”
노오오력을 해서 내 자리를 뺏어 보라는 농담은 여기서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개빈의 집에 도착했지만 개빈은 내리지 않았다.
“근데 그랜드슬램을 치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백업으로도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리 나쁘지는 않겠는데?”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주전 포수’ 개빈 폴체스키가 아니라 ‘백업 포수’ 개빈 폴체스키로서의 역할 같은 걸 이야기 하려는 듯하다.
은퇴를 미루겠단 이야기가 나올 맥락인 것 같은데.
“내가 너한테 왜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지는 모르겠다. 애송이라서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아서 그런가? 젠장, 아니야. 32살이 됐다고 노장인 척하는 멍청이보다 네 녀석이랑 이야기 하는 게 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
“사실은 제가 41살이라 그래요.”
“헛소리 집어치워. 어쨌든, 결정은 이번 시즌이 완전히 끝나면 할 거야. 다른 녀석들에겐 이야기하지 마.”
개빈은 내 말을 당연히 믿지 않았고, 내게 고백 비슷한 것을 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내일 해가 뜨면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개빈은 대답하지 않았고, 그가 좋아하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기 시작했다. 얼핏 가운뎃손가락이 올라가 있는 걸 본 것 같다.
뭔가, 음.
나는 허락도 받지 않고 개빈의 집 앞에 차를 대 놓은 채 개빈의 뒤를 따라갔다.
“뭐야, 집에 안 가?”
“아리아나랑 인사나 하고 가려고요.”
“젠장. 맥주나 한잔하자. 따라와.”
“아리아나랑요?”
“혹시 샷건에 맞아 본 적 있나?”
“둘이서 맥주나 한잔하죠.”
“좋아.”
요정, 1초 무적으로 샷건도 막을 수 있나?
ㅇㅅㅇ : 궁금하면 해 보든가.
2
지구 1위가 확정된 후, 도시 전체에 생기가 넘치는 느낌이다.
미국 4대 프로 스포츠팀이 한군데 몰려 있는 도시가 바로 필라델피아인데, 필리스 외의 다른 팀들은 모두 30%대의 승률로 멸망해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일하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성공하고 있는 필리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어차피 홈경기는 매진을 이어 나가고 있다. 우리 미친 팬들은 여전하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필리스의 인기가 한국에서도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사실 소위 말하는 국뽕으로, 한국인 선수인 내가 팀에서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는 게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겠지만.
[첨에 콩빈 땜에 보긴 했는데, 보다 보니 필리스 매력 쩐다.]┕맞음. 빠따 잘 치고 사람 잘 치고. 이게 뭐라고 새벽에 일어나서 경기 보고 회사에서 숨어서 경기 보는지 모르겠음;
┕국뽕 빼고 봐도 불빠따 필리스가 게임을 재밌게 하긴 하지.
┕특히 벤클 개꿀잼ㅋㅋㅋ 개형 보면 죽빵 되게 찰지게 때리지 않냐?
┕맞다. 나도 개형 팬됨. 개형 좀 많이 나왔음 좋겠다.
┕개형 많이 나오면 우리 팥 못 나오잖아ㅡㅡ
┕그래도 개형 넘나 멋지다구…….
┕개형 졸라 멋지긴 하지. 성격도 개 같다고 유명하자나ㅋㅋㅋ
노장의 뜨거운 눈물이 한국 팬들마저 감화시킨 모양이다. 언제 대머리 장군이 개형으로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즌이 끝날 때가 되니, 이미 결정 난 상위권 싸움보다는 결정되지 않은 하위권 팀들의 싸움이 더 격한 느낌이다.
이미 물 건너간 시점에서 드래프트 순번을 높이기 위해 거의 지기 위한 라인업을 제출하는 팀들도 있는데, 시즌 마지막 원정 경기인 브레이브스도 그런 팀이었다.
따악-!
지구 4위가 결정된 브레이브스 홈구장은 꽤 비어 있었고, 오히려 780마일 거리를 날아온 우리 팬들이 많이 보이는 편이다.
그리고 나는 2연전 동안 홈런을 때리진 못했지만 4타점을 올리며 780마일을 날아온 우리 팬들에게 보답했고, 선 트러스크 파크에서 머리&불알 송을 들을 수 있었다.
“레드 빈에게 신인상을 줘!”
“Nut and nuts!”
“내년엔 MVP를 타게 되겠지!”
“Nut and nuts!”
그리고 경기 후, 개빈이 내게 무언가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다른 루키 선수들도, 각자 멘토 격인 베테랑 선수들에게 선물(?)을 받았다.
“이번 컨셉은 슈퍼 히어로다!”
스캇은 신나서 외치며 로빌에게 닌자 터틀 의상을 입혔고, 나는 남들보다 훨씬 작고 가벼운 봉투를 두려운 마음으로 열었다.
“What the fuck……?”
뭔데 이거.
아무래도 다른 옷이랑 바뀐 거 같은데?
“왜, 마음에 안 드나?”
킬킬대는 개빈을 보며, 나는 내용물을 들어 보였다. 쫄쫄이 반바지?
반바지 하나만 입고 다니는 슈퍼 히어로? 누군데, 그게? 아니, 그것보다 너무 작고 탱탱한데?
“전 대체 뭐죠?”
“뭐긴 뭐야.”
그리고 개빈은 무언가를 들어 보이며, 다른 선수들에게 외쳤다.
“다들 이리 와! Red bean을 Green bean으로 바꿔 놓자고!”
개빈이 들어 올린 것은 보디페인팅용 물감이었다.
오…….
안 돼…….
3
[루키 헤이징 데이! 코리안 메이저리거 홍빈의 의상은?] [30홈런 루키 포수, 신인왕 최고 유력 후보인 홍빈조차 피해갈 수 없었던 루키 헤이징.] [(PHOTO) 필리스의 루키 헤이징 데이. 슈퍼 히어로가 된 필리스 루키들!]┕홍빈 왜 헐크냐 ㅋㅋㅋㅋㅋ
┕바지 실화? ㄷㄷㄷ
┕야, 근데 홍빈 가랑이에 뭐 넣었냐? 저거 대체 뭐냐?;; 설마… 진짜?
┕오… 갓빈… 당신은 도덕책…….
┕동양인 사이즈가 아닌데 저거…….
┕ㅋㅋㅋㅋㅋ동영상 봄? 홍빈 캡틴 아메리카 방패 뺏어서 사타구니 가리고 다님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바지 너무 작은데? ㅋㅋㅋㅋㅋ
┕작은 것도 문젠데 너무 딱 붙음ㅋㅋㅋㅋㅋ
┕부럽다… 야구 실력도 ‘그곳’도…….
┕ㄷㄷㄷ 미쳤따리 미쳤따;
┕(영근) 이게 바로 진정한 의미의 국위선양…….
┕미친놈;
4
살면서 잊고 싶은 일은 언제나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걸 흑역사라 하던가.
ㅋ□ㅋ : ㅋㅋㅋㅋㅋㅋ
웃지 마, 이 새끼야.
애틀랜타 원정이 끝나고 루키 헤이징 의상이 엉망이었던 것도 문제지만, 지금 내게는 다른 문제도 있다.
-너희 팀 단장이 우릴 초청했다. 플레이오프 전 경기 다 봐도 된다더라. 최고로 모신다고 그냥 몸만 오라던데?
예전부터 나왔던 이야기다.
팀에서 우리 부모님을 초청하겠다고.
나쁠 게 있겠는가?
나도 외로우니 부모님이 오시면 좋고, 팀에서 모든 비용을 대겠다는데 나쁠 게 뭔가.
하지만 문제는 내 집이다. 커도 지나치게 큰 이 집. 그리고 한국의 우리 집보다 두 배는 넓은 실내 주차장에 들어가 있는 6대의 자동차도 그렇고.
애당초 계약금은 부모님께 다 드리고 왔다.
이거, 파워볼 당첨된 걸 이실직고하는 수밖에 없나. 부모님 기절하실라.
“빈,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어떡하지?”
내 집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니 고민이 갑자기 사라지는 느낌이다.
2미터짜리 남자 주제에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제발. 여자라면 좀 설렜겠지만, 하필 저런 말을 한 게 플레이오프를 앞두고서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는 짐이라는 게 문제다.
“캡틴 아메리카가 왜 그렇게 겁이 많아?”
마치 자기 집처럼 아주 편안하게 소파에 드러누워 있는 로즐이 짐에게 핀잔을 줬다.
마지막 남은 내셔널스 홈경기 2연전에서 쇼, 짐, 로즐은 휴식을 부여받았다.
그 말은 디비전시리즈 로스터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물론 둘이 거기에 못 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부모님께 이 집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고민은 잠시 접어 두고, 로즐의 불펜 전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다.
쇼와 짐의 원투펀치를 유지하고, 유일한 좌완 선발인 거프를 3선발로 활용하며 로즐을 불펜의 키맨으로 활용하는 전략이다.
로즐은 상관없다고 한다. 선발에 대한 욕심이 클 줄 알았는데, 플레이오프에 나가서 팀에 도움이 될 방법이 있다면 뭐든 좋다고.
“그래도 플레이오프라니. 생각도 못 했었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동안 하위권을 맴돌 줄 알았는데, 나와 각성한 짐, 로즐이 합류해 팀의 약점을 절묘하게 메꾼 덕에 지구 1위가 되었으니.
이건 거의 내 덕분에 팀의 운명이 바뀐 거나 마찬가진데, 어디 가서 자랑할 수도 없고. 내가 아니었으면 팀이 와일드카드도 못 나갔을 거라고 말하면… 나르시스트 확정이지.
“젠장, 속 편한 놈들. 가자, 나 경기 준비해야 해.”
이놈들이 휴가를 겸해서 내 집에 머무른 덕에, 나는 놈들의 운전기사도 해 줘야 할 판이다.
10월 2일 내셔널스전에서는 홈 팬들이 내 30번째 홈런을 기원하며, 경기 내내 내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Thirty!’ 라고 외쳐 댔다.
[제리 벤트너.] [우투우타, 중계 투수.] [키워드 : 폭포수, 근성, 기세.]그리고 나는 내셔널스의 루키 불펜 투수를 상대로 결국 홈런을 때리는 데 성공했다.
밋밋한 커브를 완벽하게 잡아 당겨 좌측 펜스를 넘겨 버렸고,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는 종소리와 Nut and nuts가 울려 퍼졌다.
게다가 대형 전광판에서는 내 30홈런을 축하하는 영상까지.
30개를 칠 수 있을까 조금 걱정하긴 했는데, 내셔널스를 상대로 결국 해내고 말았다.
“윽! 억!”
“축하해, 괴물 꼬마!”
“30개를 기어코 채우는군!”
“Nut and nuts!”
“우는 소리 내지 마! 불알이 터질 때까지 맞고도 홈런 30개를 칠 수 있다면 난 터져도 좋을 거야!”
이게 뭔 소리야 대체.
불알이랑 홈런 30개랑…….
ㅇㅅㅇ : 시즌 홈런 100개 치고 불알 파괴 vs 그냥 살기.
홈런 30개 치고 그냥 살련다.
ㅇㅅㅇ : 불알 한 개만 있어도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필요 없다고.
ㅇㅅㅇ : 불알 하나 없으면 군대 면제.
아 그냥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고 말지.
ㅎㅅㅎ : 어차피 쓸데도 없는 거에 왜 집착하는지 모르겠군.
불알 이야기는 그만하자.
쓸데없는 이야기는… 젠장, 그게 아니라.
ㅎㅁㅎ : 쓸데없는 거 인정?
…….
됐고, 30개 쳤으니 보상이나 끝내주는 걸로 내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