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케틴 섬의 해안가에 자리한 커다란 하나의 바위. 생존자들은 그 뒤에 배 한 척을 숨겨둔 상태였다. 언젠가 몬스터가 숨을 거두는 날 탈출하기 위해서라는 설정이었던가.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 포탈을 설치하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었지만 그 또한 선택할 수는 없었다. 당장 포탈에는 이용 가능한 자들이 따로 있었고, 고작 이런 퀘스트에서 정보를 오픈한다면 손해를 볼 일이 더 많았으니까. 회수도 힘들고.
아무튼, 나는 열댓 명이 타도 충분한 배에 생존자들과 올라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그들은 얼마나 나가고 싶었는지 각자 앞다투어 노를 쥐었다. 나야 자발적인 노동을 말릴 필요도 없었고.
“다 같이 박자에 맞춰서 젓도록 하죠.”
“네. 한 분이 구호 외쳐주세요.”
“알겠습니다.”
생존자들은 곧 육지에 도착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너도나도 노를 저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한 내게는 노동을 시킬 수 없다며, 나한테는 노를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잘 풀려가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흐음…….’
이래서 언제 도착할는지.
케틴 섬에 머무는 동안 음식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이들이었기에, 그들의 노질에는 영 힘이 없었다. 그나마 멀쩡한 내가 노를 저어볼까 하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치유 물약을 꺼냈다. 내가 ‘치유’ 스킬을 사용해서 만든 물약이 아닌, 연금술사들이 만드는 레시피로 제조한 비상용 물약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생존자들의 체력은 노를 저을 만큼 충분히 회복될 것이었다.
“다들 이거 하나씩 받으세요.”
나는 인원수에 맞춰 치유 물약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교, 교주님. 이게 뭔가요?”
예상치 못한 선물에 놀란 듯한 그들의 모습에 나는 은은하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연금술사들이 만든 치유 물약입니다. 마시면 다들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실 거예요.”
“치유 물약이요? 그 비싼 걸 저희에게 그냥 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죠. 여러분들이 고생해주시는 거잖아요.”
“세상에. 저희를 구해주신 것뿐 아니라, 값비싼 치유 물약까지 주시다니!”
사람들은 감탄하며 물약을 들이켰다. 비록 내가 치유 스킬을 사용한 물약만큼은 아니었지만 연금술사들의 레시피로 만든 치유 물약 역시 그 효능이 상당히 좋은 물건. 체력회복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오오, 기운이 솟는다!”
“감사해요, 교주님!”
이윽고 생존자들이 기운을 차렸는지 노를 젓기 시작했다.
금세 회복된 체력이 적응되지 않는 듯 처음에는 배가 살짝 휘청했지만, 곧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나도 힘이 들지 않는군……!”
“카이로스교라고 했던가요? 대체 어떤 종교기에 이런 비싼 물약을 턱턱 주시는지…….”
“저희 교주님, 아주 멋있으시죠? 무척 강하시고, 자애로우신 분이십니다! 이 모든 것이 카이로스님의 은혜입니다!”
놀란 생존자들 사이에서 처음 카이로스에게 구조를 요청했던 우리 신도만이 신이 나 떠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나뿐만이 아니라 카이로스까지 기분을 상당히 좋게 만들어주었다.
– 하하! 아주 귀여운 청년이구나.
카이로스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은근히 왕자와 호위를 살폈다. 때때로 왕자와 나의 시선이 마주치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아닌척하면서 카이로스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이대로 가면…….’
메릴세우스에 신전 하나 세울 수 있을 수도.
나는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
치유 물약 덕분에 우린 금세 하비스 섬에 도달했다.
오늘 세우스 마을로 향하는 배는 더 없었지만, 우리는 마을 사람 중 항해술에 능한 이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이 사람들이 케틴에서 온 사람들이란 말입니까? 어휴, 몰골들이…… 도와드리죠!”
케틴 섬에 갇혀 있던 생존자들을 구출해왔다고 하니, 자발적으로 돕겠다고 나서준 것이다.
우리는 그 덕분에 해가 질 무렵, 마침내 세우스 마을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날이 저물었기에 항구 주변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
배가 항구에 멈춰서고 난 뒤 나는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그러자 생존자들이 내게 다가왔다.
“정말 감사했어요, 교주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다들 얼른 돌아가세요.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나는 생존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그들을 배웅했다. 나 역시 그들을 얼른 보내고 난 뒤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바다 수영을 오래 해서 그런지 몸에는 피로가 잔뜩 쌓인 상태였다.
그렇게 생존자들이 떠나고, 마지막에 남은 것은 메릴세우스의 왕자와 호위뿐이었다.
“두 분은 안 가십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러자 왕자가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저…… 저기.”
“네, 말씀하세요. 형제님.”
“나, 나는 베르샤 메릴세우스다.”
“저는 레비아탄입니다.”
자기소개라도 하자는 건가 싶어 나 역시 이름을 말하자, 왕자 뒤에 있던 호위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는 목소리를 깔았다.
“이분은 메릴세우스의 왕자님이십니다. 예를 갖춰주시오.”
“페데릭! 나는 괜찮아. 이분은 우릴 구해주신 은인이잖아.”
“하오나, 전하.”
“페데릭, 괜히 여기서 나를 창피하게 하지 말고 너는 왕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어. 나는 은인과 이야기를 좀 나눌 테니.”
“……알겠습니다.”
결국 호위 페데릭은 베르샤 왕자의 명에 물러났다. 그는 물러나면서도 힐끔거리며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내가 이 왕자를 잡아먹을 것처럼 보이나.
한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카이로스는 의외라는 듯 작은 감탄을 내뱉었다.
– 놀랍구나. 그 섬에 왕자가 있었다니.
‘그러게요. 저도 웬 귀족이 하나 껴있는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언뜻 본 복장으로 귀족이 아닐까 싶긴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히든 루트라 해도 이 퀘스트에서 메릴세우스의 왕자가 나타날 줄은 정말 몰랐다.
“저, 정말 고맙다. 레비아탄. 나를 구해주어서.”
“아닙니다.”
조금 전 호위인 페데릭에게 명령할 때와 달리 베르샤 왕자는 소심한 성격인지 쉬이 말을 하지 못했다.
“왕자님, 제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그래도 내게 큰 호의를 갖고 있으니 꽤 괜찮은 보상을 해줄지 몰랐다.
보상을 위해서는 이 정도의 답답함 정도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그, 은인인 그대를 왕궁에 데려가고 싶구나. 아버지, 그러니까 국왕 전하를 함께 뵈러 가자꾸나. 그대에게 은혜를 갚고 싶다.”
드디어 나온 말에 나는 빙긋 미소했다.
“알겠습니다.”
***
베르샤 왕자의 호위 페데릭이 빠르게 마차를 수배해준 덕분에 우리는 밤이 깊어 오기 전, 메릴세우스 왕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마차가 왕궁 입구에 도착했을 때,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들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있긴 했다.
그 이유를 나는 베르샤 왕자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사, 사실 나는 가출한 몸이다.’
대략 이 주일 전, 이 철없는 왕자는 세상을 돌아보고 싶다며 편지만 남겨두고 가출을 했단다.
어느 날은 바다가 보고 싶어 호위 한 명만 데리고 놀러 다니다가 케틴 섬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하필 그때 크라켄이 나타나 꼼짝없이 갇히게 된 것이다.
– 용기가 상당한 아이구나.
‘이걸 용기라고 불러야 할지, 철딱서니 없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베르샤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그사이 전해졌는지, 나는 마차가 커다란 궁 앞에 멈춰 서자마자 메릴세우스 국왕이 버선발로 그를 마중 나오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 아버지!”
“베르샤! 대체 어디에 있었던 게냐! 이 몰골은 또 뭐고!”
머리가 온통 새하얗게 센 중년의 국왕은 베르샤를 끌어안고는 엉엉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눈물겨운 부자 상봉을 심드렁하게 보고 있는데, 국왕의 옆쪽으로 베르샤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던 여성이 나와 눈을 맞췄다.
“그대는 누구지?”
“아, 저는…….”
내가 나서서 소개를 하려고 할 때, 베르샤가 국왕의 품에서 벗어나 대신 말했다.
“이 분은 제 은인입니다. 꼼짝없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저를 구해준 사람이에요.”
이어 베르샤가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국왕이 탄식을 내뱉었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내 손을 붙잡았다.
“정말, 정말 고맙네. 내 아들을 구해줘서. 사실 그동안 비밀리에 베르샤의 행방을 수색하였지만, 도통 찾을 수 없어 몹시 걱정했었다네. 그러니 너무 고맙네.”
“아닙니다, 전하.”
“아,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안으로 함께 들어가게나. 함께 만찬이라도 즐기세.”
메릴세우스 국왕은 직접 내 손을 붙잡고 왕궁 안으로 이끌었다.
‘일이 술술 풀리네.’
***
나는 기다란 식탁에 질서정연하게 깔린 각종 해산물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버터와 향신료를 발라 구운 랍스터와 생굴, 새우구이 등등.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해산물들이 쫙 깔려있었다.
– 너무, 너무 먹고 싶구나!
‘참으세요.’
나는 카이로스에게 딱 잘라 이야기하고는 포크를 들었다. 그러자 근처에 앉아있던 국왕이 내게 랍스터를 건네주었다.
“많이 들게나, 레비아탄 군.”
“아, 예. 감사합니다.”
잠깐의 시간 동안 알게 된 건데, 메릴세우스 국왕은 제 자식들을 몹시도 사랑하는 자였다. 그리고 백성들도 상당히 아꼈기에, 내가 크라켄을 처치한 것에 대해 듣고서는 매우 고마워했다.
듣자 하니 근 2주간 메릴세우스 왕국은 케틴 해역에 등장한 크라켄으로 인해, 주요 무역 지점인 몇 개의 섬나라들과 교류가 이어지지 못해 손해가 막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 그랬는지 메릴세우스 국왕은 나를 매우 흡족한 눈으로 보았다. 아들을 구해준 것도 모자라, 다시 무역업까지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레비아탄 군.”
“예, 예. 전하.”
나는 보드라운 랍스터 살을 빠르게 씹어 넘기고 답했다. 그러자 메릴세우스 국왕이 나를 부드러운 눈으로 보며 말했다.
“혹시 내 아이 중 한 사람과 연을 맺어보는 게 어떻겠는가?”
“쿨럭!”
하마터면 입 안에 남아있던 랍스터를 뿜을 뻔했다.
‘대뜸 이게 무슨 소리야. 그것도 아이 중 한 사람이라니?’
나는 맞은편에 앉아있는 왕자와 공주를 보았다.
베르샤 왕자와 쌍둥이인 알리샤 공주. 메릴세우스 국왕의 아이는 이들뿐이었다.
그러니까, 이 중 한 사람하고 결혼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은 건가. 아니, 왕자인 베르샤를 제하면 사실상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한편 카이로스는 난처해하는 내 모습이 퍽 재밌게 느껴졌는지 시원스레 웃으며 내게 물었다.
– 오. 재밌구나. 아가야, 네 생각은 어떠냐.
‘저는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물론, 이 세계가 중세시대를 모티브로 한 건 잘 안다만, 그래도 이건 구시대적인 사고방식 아닌가? 자식의 결혼을 부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 마음대로 결정한다니?
“저는 괜찮습니다. 전하.”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그의 제안을 깔끔히 거절했다.
“흐음, 그래? 그래도 나중에 생각이 바뀔지도 있지 않은가.”
국왕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싶었지만.
“아,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종교에 귀의한 사람입니다. 하여 저는 결혼을 할 수 없습니다.”
내게는 나름 그럴듯한 변명도 있었고.
– 아니다, 아가야. 나는 네가 짝을 이루어 살아도 괜찮단다.
‘제가 싫다니까요.’
–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당장 내 한목숨 살기 바빠죽겠는데 결혼은 무슨 결혼. 그것도 이런 일방적인 의사의 결혼이라니.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매우 싫었다.
“아차, 그랬지. 미안하네. 내가 너무 기쁜 나머지, 자네를 꼭 왕실에 들이고 싶었다네.”
“마음만으로도 기쁩니다, 전하.”
물론 국왕에게 이런 속마음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메릴세우스의 국왕. 기껏 은인의 타이틀을 얻어놓고 괜히 척을 질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일이 조금이라도 더 커지기 전에 무마해서 다행이다. 어쩐지 국왕의 자식들, 정확히는 베르샤가 약간 실망한 기색인 것 같기는 하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나는 이 왕족들에게 무언가를 더 설명하는 대신 모르는 척 새우구이를 입에 밀어 넣었다.
‘아, 진짜 맛있네.’
어딜 둘러봐도 맛있는 해산물이 가득했다. 나중에 자인한테 자랑해야지. 그리 생각하며 미소 지을 때, 국왕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짐이 그대에게는 꼭 보상을 내리고 싶구나. 왕실의 일원이 되기 싫다면…… 원하는 것이라도 들어줘야겠지.”
드디어 국왕의 입에서 정략결혼 같은 쓸데없는 말이 아닌, 내가 바라던 말이 나왔다.
나는 큼, 목을 작게 가다듬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편히 말해보아라.”
메릴세우스 국왕을 향해 미소 지으며, 나는 이제서야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요구했다.
“메릴세우스 내에 카이로스교 신전을 설립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