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자인, 그런 거 아니다.”
나는 녀석을 보며 말했다. 그러나 자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뭐가 아니에요. 왕자님과 공주님이 주인님을 아주 열렬하게 보시던데.”
“그런 거 아니라고.”
“에이, 뭐 어때요. 저희 사이에 비밀이랄 게 있나요?”
자인이 소리 내어 웃으며 나를 놀려댔다. 그 모습을 보니 화가 치밀어올랐다. 인벤토리에서 몽둥이를 꺼내 들자, 녀석이 희게 질렸다.
“주, 주인님?”
“내가 아니라고 했지.”
“자, 장난입니다! 죄송해요!”
“거기 서, 이 자식아.”
나는 빠르게 다리를 놀리는 녀석을 뒤쫓았다.
“으악!”
꼭 혼나야 정신을 차리지.
***
자인을 흠씬 혼내주고 신전 청소를 이어갔다. 교주실 청소를 끝내고 복도의 먼지를 털어냈다. 시간을 얼마 쏟지 않았는데도 금세 멀끔해진 내부의 모습은 당장 신전을 오픈해도 괜찮을 정도였다.
‘왕자와 공주 때문에 오픈 시기를 좀 미뤄야겠지만.’
청소도구를 정리할 즈음 알피어스로부터 통신이 왔다.
[교주님! 홀든가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서신?
“알겠어, 알피.”
저번에는 방문, 이번에는 서신이라니.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나는 곧장 로벨로 향했다. 복도에는 여전히 자인이 널브러져 있었지만…… 지 잘못이지.
포탈을 넘어 로벨의 교주실에 들어서니 알피어스가 나를 기다렸다.
“교주님, 오셨군요!”
“응, 알피. 그래서 얘기했던 서신은?”
“네, 여기요.”
“고마워.”
나는 알피어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고 서신을 받았다. 서신에는 홀든가의 인장이 찍혀져 있었다. 그것을 열자, 유려한 어머니의 필체가 보였다.
[사랑하는 내 아들, 레비에게.레벨로프. 잘 지내고 있니? 지난번, 생일 선물은 잘 받았다고 들었다.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
오늘 내가 네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도착한 서신은 레비아탄에게 도착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아들 레벨로프에게 쓴 편지.
나는 어머니의 서신을 쭉 훑어내렸다. 서신의 내용은 간단했다. 어머니의 어머니, 즉 홀든 가의 전대 가주이자 나의 할머니께서 나를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말로네 병이 온전히 나은 후, 그대로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더더욱 그리워하신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말로네 병에 걸렸던 레벨로프로 인해 할머니께서도 많이 마음 아파했던지라, 이제 치료도 마쳤으니 완쾌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할머니라……’
이런저런 걱정들로 길어진 내용이었지만 결론은 조만간 세베누스와 함께 할머니를 뵙고 오란 이야기였다.
‘으음…… 나쁘지 않지.’
나는 레벨로프의 기억을 통해서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원작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이기에 레이라의 어머니이자 그의 할머니가 정확히 어떤 이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레벨로프의 기억으로 보면, 전대 홀든 가의 가주인 할머니는 가족이라는 입장을 떠나 상당히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소드마스터라니.’
레벨로프의 할머니는 검술에 마력을 결합하여 사용하는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현재 할머니가 거주하는 곳은 홀든 영지가 아닌, 그보다 북쪽에 있는 ‘하시스’라는 마을이었다.
‘어머니께 작위를 세습하고 은퇴하셨군.’
별장 같지만 드넓고 푸근한 저택.
굳이 떠올리려고 하면 단편적인 영상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레벨로프는 어렸을 적 때때로 그곳에 놀러 가기도 했던 모양이다.
‘거리는…… 대략 이틀인가.’
사실 안 그래도 바쁜 일정에 아무리 편지를 받았다고는 해도 하시스에 굳이 갈 필요는 없었다. 하나, 하시스 근방에는 ‘네젠’이라는 소도시가 있었다.
하시스에 방문하게 되면 나는 겸사겸사 네젠에도 들를 계획이었다.
‘이번 기회에 둘러보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원작에서 테르디안과 그의 동생이 함께 살던 곳이 네젠이었다. 네젠을 중심으로 포교 활동을 펼쳤으니까.
그러니까 할머니를 만나 뵙고, 겸사겸사 네젠에도 들를 예정이었다. 테르디안의 동생, 아이반 아스틴을 한번 보고 싶어서.
하여 나는 서신의 답장에 긍정적인 답변을 적어넣었다.
– 아이야, 할머니를 뵈러 갈 생각이로구나. 잘 생각했다.
‘모처럼 뵙고 싶어서요.’
– 그래, 그래. 하시스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대되는구나.
내 진짜 의도를 모를 카이로스는 그저 나를 칭찬할 뿐이었다.
***
서신의 답장을 적어 보낸 후, 나는 로벨에 있던 아이들과 자인, 트로이를 한 자리에 불렀다.
“주인님,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냥 가시면 어떡합니까?”
자인은 내게 얻어맞은 어깨를 붙잡으며 울상을 썼다.
“그러게 누가 장난치래?”
“칫, 그 정도 가지고 이렇게 화를 내시다니. 생각보다 쪼잔하시군요.”
“이 자식이?”
불평을 멈출 생각이 없는 녀석과 드잡이를 하고 있자, 가만히 지켜보던 트로이가 자인의 어깨를 꾹 눌렀다.
“악!”
고통에 자인의 몸이 벼락에 맞은 듯 튀어 올랐다.
“자인, 교주를 괴롭히지 마라.”
“야, 거길 누르면 어떻게 해!”
이제 두 사람이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원, 언제 이야기를 꺼낼는지.
“자, 자, 조용.”
나는 두 녀석을 향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나 못 들었는지 녀석들이 연신 싸우자, 양옆에 앉아있던 알피어스와 체스터가 두 녀석을 붙잡았다.
“하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이 주 정도 자리를 비우게 됐다.”
“예? 어디 가십니까?”
자인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잠시 할머니를 뵈러 가게 되었다.”
“아아.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죠.”
“그러니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신전을 잘 부탁한다. 급한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비상용 포탈 한 개를 남겨뒀으니, 신전에 큰 문제가 생기면 그걸 통해 넘어오면 되니까. 게다가 평소에도 잘 알아서 하던 아이들이니, 큰 문제는 없겠지.
“네, 교주님.”
“거, 걱정하지 마세요!”
“……열심히 할게요.”
아이들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자인도 마지못해 답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걱정 마라, 교주. 별일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없이 고민하던 트로이도 그리 말하니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사샤. 메릴세우스 신전을 채울 조각상과 그림 좀 부탁할게.”
“……네. 맡겨만 주세요.”
“메릴세우스 신전은 아마 다음 달쯤에나 개방할 거니, 천천히 해도 돼.”
“……네.”
그래. 일단 당장 원작의 중요한 이벤트도 없으니,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다.
“그럼 해산.”
나는 아이들과 다시금 인사하고는 자리를 떴다.
***
다음 날. 빠르게 답장을 보냈기 때문인지, 오전부터 홀든가의 마차가 신전에 도착했다.
나는 교주실에서 잠을 자던 중이었는데, 아이들의 부름에 헐레벌떡 준비를 마치고 나섰다.
신전 입구에 도착하자 아름다운 홀든 가의 마차와 호위를 맡은 기사들이 보였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 하얀 정복을 입은 세베누스가 내렸다.
“레비.”
평소보다 단정한 차림새의 그는 일전의 어두워졌던 모습과 달리 환한 미소와 함께 나를 맞이했다.
“형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얼른 가자꾸나.”
세베누스는 어서 마차에 타라는 듯 내게 손짓했다.
“잠시만요. 대사제님께 인사를 좀 하고요.”
“그래.”
나는 나를 배웅 나온 알피어스와 체스터, 그리고 사샤에게 인사를 했다. 자인과 트로이는 늦잠을 자느라 나오질 않았다. 하여튼.
“잘 다녀올게요, 대사제님.”
“조심히 다녀오세요, 레벨로프 형제님.”
아이들에게 미소를 보여준 후 세베누스에게로 향했다. 마차에 올라타자, 세베누스가 맞은편에 앉았다.
‘이렇게 단둘이 하시스로 가야 한다니.’
세베누스와 많이 친해진 것 같기는 하지만, 여전히 어색했다. 게다가 지금은 교주 레비아탄이 아닌, 레벨로프 홀든. 우습게도 인지 부조화 안경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니 더더욱 가까워야 할 사이가 오히려 더 어색하다.
나는 나를 향한 세베누스의 시선을 느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손을 흔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알피어스와 체스터, 사샤에게 인사하자마자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시스까지는 이틀.’
이틀간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 나는 미리 챙겨온 작은 짐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일전에 자인으로부터 받아둔 것을 꺼내 들었다.
– 아이야, 또 그걸 하려는 생각이냐?
‘이젠 진짜 할 수 있어요. 잘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괜찮습니다.’
나는 우려 가득한 말을 건네는 카이로스를 달래며 뜨개 용품을 비장하게 꺼내었다. 그리고 천천히 실을 바늘에 얽었다. 그렇게 이제 막 첫 코를 뜨려던 타이밍에 방해꾼이 등장했다.
“레비.”
“네, 형님.”
하필 집중하려는 때에 세베누스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들어 그를 보자, 그가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취미도 있었구나.”
“아, 네. 뭐…… 신전에 와서 처음 배웠는데 나름 재밌더라고요. 어…… 나중에 목도리라도 하나 완성하면 어머니랑 형님께 드릴 수도 있을 테고…….”
사실 선물할 생각은 지금 떠올린 거지만. 분명 처음에는 이런 걸 왜 하나 싶었지만,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비록 아직 쓸 만한 물건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게 슬프기는 하지만.
한편 내 답을 들은 세베누스는 잠시 눈에 이채를 띠더니 흥미롭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그래? 그럼 나도 배워보고 싶구나.”
“……네?”
“레비, 네가 하는 걸 보니 왠지 재밌을 것 같아서. 안 되겠느냐?”
그러니까 이거 지금 세베누스가 나한테 뜨개질을 알려달라고 하는 건가. 어쩐지 세베누스와 뜨개질이 잘 어울리지는 않긴 하지만, 문득 머릿속에 자인이 떠올랐다. 나를 가르치며 놀리던 그 녀석의 얼굴.
나는 미소와 함께 여분의 뜨개 용품을 세베누스에게 넘겼다. 그리고 말했다.
“자, 형님. 이게 바로 실이고, 이게 바늘이란 겁니다.”
“……지금 뭐 하는 것이냐?”
“습! 배울 때는 얌전히!”
***
로벨에서 하시스로 향한 지 어느덧 이틀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세베누스와 함께 마차에서 뜨개질 열풍에 빠져 있었다.
동시에 나는 자괴감이 들었다.
“레비, 거기선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떻겠니.”
세베누스는 뜨개질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 나는 자인에게 배운 만큼만 세베누스에게 알려주었는데, 그는 단 이틀 만에 내 실력을 월등히 뛰어넘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뜨개질의 원리를 완벽하게 익히기라도 했는지, 이젠 되레 나를 가르치기까지 하는 수준이 되었다.
‘젠장. 역시 내가 뜨개질과는 맞지 않는 거였어.’
세베누스는 그사이 제법 그럴싸한 모자 하나를 떠냈다.
이틀간 내가 만들어낸 건 여전히 걸레짝이었고.
– 아가야. 아무래도…… 뜨개질 재주는 네 형이 더 나은 모양이구나.
설마 뜨개질 하나에 이렇게까지 열등감이 들 줄이야.
나는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세베누스를 보았다. 그러자 그가 자신이 완성한 모자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왜 그러느냐, 레비. 혹시 이게 갖고 싶은 것이냐?”
“예? 아뇨. 그건 아닙니다.”
“아니다. 너는 내게 즐거움을 준 스승일진대. 내 첫 작품을 네게 선물로 주마.”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세베누스는 내게 모자를 들이밀었다. 결국 나는 그의 모자를 받아들어야만 했다.
‘젠장, 부러워.’
그에 대한 질투를 속으로 삼킬 즈음. 창밖으로 소박한 마을 풍경이 보였다.
하시스의 풍경은 엘륀만큼 북적이지 않았으나, 아기자기한 집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주변의 숲과 잘 어우러져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처럼 보였다.
“언제 와도 아름답구나.”
세베누스의 감탄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 난 길을 따라서 안으로 더 들어가자, 이번에는 근사한 저택이 등장했다.
세련되기보다는 푸근한 느낌을 주는, 별장 같은 저택이었다. 저택의 모습은 레벨로프의 기억 속 모습과 같았다.
‘저곳이…….’
그리고 바로 홀든가의 전대 가주, ‘소드마스터’ 헬레나 홀든의 거처였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곳은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 살아가는 곳으로, 오직 레벨로프의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다.
약간 긴장이 될 즈음. 마차가 저택 앞에 멈춰 섰다.
“내리자꾸나, 레비.”
아무렇지 않게 앞장서는 세베누스의 모습이 어쩐지 부럽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