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흡사 별장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고저택이었다.
– 멋들어진 곳이구나.
‘……그러게요.’
카이로스의 감탄에 짧게 답하고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조금 딱딱한 인상의 노집사가 우릴 맞이해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들. 오랜만에 뵙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고 깔끔히 쓸어올린 윤기 나는 백발에 호리호리해 보이지만 어딘가 날카롭게 정리된 체형.
구태여 그가 자신을 소개하지 않아도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레벨로프의 기억 속에도 존재하는, 벌써 수십 년째 할머니의 곁을 지키는 인물이었으니까.
“오랜만이군, 맥스.”
세베누스가 노집사 맥스와 악수를 나눴다. 나는 그 옆에 가만히 서 있다가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야.”
맥스는 내 인사에 나를 잠시간 보다가 별안간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손수건이었다.
그는 어느샌가 눈가에 고여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콕콕 눌러가며 닦아내는 중이었다.
“매, 맥스?”
나는 당황하며 그를 불렀다.
몸을 잠시 떨던 그는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복받쳤던 감정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추태를 보여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뵙는 레벨로프 도련님의 모습이 무척 건강해 보여 안심한 나머지…….”
딱딱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맥스는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괜찮다, 맥스. 간혹 나도 그럴 때가 있으니.”
그런 맥스를 달래준 건 세베누스였다.
‘그나저나 세베누스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고?’
설마 내가 건강해졌다는 사실 때문에 눈물이라도 흘렸다는 건가.
상당히 의외인 말에 놀라고 있을 때. 환히 열려 있는 저택의 문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세비, 레비! 내 손주들! 왔구나!”
노쇠했지만 힘 있는 음성에 고개를 들자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기억 속의 모습에서 약간 달라지긴 하셨지만…….’
레벨로프 홀든의 할머니, 헬레나 홀든은 어머니인 레이라 홀든과 판박이 그 자체였다.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은빛 머리카락과 보랏빛 눈동자, 그리고 이목구비가 누가 봐도 혈연관계라 생각할 정도로 거의 흡사했다. 두 사람이 명확히 다른 건 오직 주름뿐으로, 멀리서 봐도 할머니임을 똑똑히 구분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나마 있는 주름도 소드마스터라는 육체의 정점을 찍은 이답게 나이보다 한참은 적었고.
– 호오, 네 어미와 무척 닮았구나. 그리고 외견을 떠나… 아름다워. 아주 신기하군. 헌데 뭔가…… 아니다, 내 착각일지 모르니.
할머니의 이런 모습에 카이로스까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카이로스는 미의 신. 그는 단순히 외적인 미뿐만 아니라 내면의 영혼, 그 자체의 아름다움도 주관하는 초월적인 존재였으니까. 여전히 맑은 눈과 올곧은 눈빛, 반듯한 자세만 봐도 헬레나 홀든은 그 내면 또한 대단할 것이 분명했고. 뭔가 찜찜한 마무리를 맺긴 했지만.
‘분명 저분은…….’
레벨로프의 기억에 의하면, 어머니인 레이라 홀든처럼 헬레나 홀든 또한 제국의 전쟁 영웅이었다.
‘하긴 소드마스터인데…….’
제국 내에도 몇 없는 등급의 검사였으니,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 앞장선 것은 당연할 터였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내 강아지들.”
지금은 영락없이 손주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할머니의 모습이었지만.
할머니는 환히 웃으며 나와 세베누스에게 달려왔다. 그녀는 세베누스를 품에 끌어안았다.
“잘 지냈니, 세비?”
“네, 할머님.”
세베누스가 평소의 차가운 표정이 아닌 온화한 낯으로 할머니를 마주 안았다. 그 역시 할머니와 머리 색과 눈 색이 쏙 빼닮아 있기에 누가 봐도 한 가족임이 티가 났다.
‘나랑은 조금 다르지만.’
어느새 세베누스와 포옹을 마친 할머니는 두 팔을 벌리고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내 작은 강아지, 레비.”
곧장 포옹이 이어지리라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일단 그녀는 내 두 손을 붙잡았다. 보랏빛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니 이 할미는 무척 기쁘구나.”
“할머니…….”
“내가 진즉 너희들을 보러 갔어야 했는데, 혹시 거기서 눈물이라도 날까 싶어서 말이다….”
할머니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나를 끌어안았다.
“정말 고생 많았다, 레비.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그 몹쓸 병 때문에…… 내가 무언가 도움이 되어줬어야 했는데. 미안하구나.”
“아니, 아니에요. 할머니.”
나는 그녀를 마주 안았다. 나를 끌어안는 할머니의 힘이 생각보다 강해서일까. 어쩐지 기댈 수 있는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에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 할미는 언제나 우리 강아지 편이란다. 언제든 기대렴.”
“네, 할머니.”
– 어쩐지 감동적이구나.
나는 실제 내 혈육이 아닌 존재임에도 눈가가 시큰해지는 것을 느끼며, 꽤 오랫동안 할머니의 품에 안겼다.
***
저택 앞에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해후를 마치고, 우리는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지긋해진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힘이 넘치시는 것만 같은 할머니는 곧장 우리를 이끌고 응접실로 향했다.
“너희가 좋아했던 것들로 준비했단다.”
응접실의 테이블 위에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지 정갈하게 차와 디저트가 세팅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차를 마시는 중에도 유독 나를 바라보았다.
“항상 널 걱정했었단다. 그래도 얼굴이 많이 좋아져서 다행이구나. 이제 완전히 다 나은 거지?”
이미 어머니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들으셨을 텐데도 내게 직접 확인을 하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게 있었던 것으로 ‘꾸며진’ 일들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할머니께 설명해 드렸고, 그제야 만족하신 할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비록 진실이 아니라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그 후 평화롭게 저녁 식사를 한 뒤, 일찍 주무시는 할머니가 먼저 자리를 떴다.
시간이 꽤 늦었으니 나도 맥스의 안내를 받아 준비된 손님방으로 향했다.
***
– 피곤해 보이는구나.
‘아무래도 며칠간 마차를 탔으니까요.’
나는 고풍스럽게 꾸며진 방을 둘러보며 카이로스에게 답했다.
– 그래도 꽤 즐거워 보이던데.
‘……네. 생각보다 즐거웠어요.’
진짜 내 가족은 아니지만, 어쩐지 편안하고 포근했다. 레벨로프 홀든이 되고 꽤 시간이 지나 적응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가족의 정이란 것을 그만큼 갈망해왔던 것일까.
기억에만 존재했던, 처음 보는 가족과도 잘 지낼 수 있는 건.
똑똑.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레비, 안 자고 있었구나.”
노크의 주인공은 세베누스였다.
‘……이 자식이 갑자기 왜 찾아온 거지?’
얘는 피곤하지도 않나.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앉아있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날 필요 없다. 앉거라.”
“아, 네.”
이제 좀 마음 편히 쉴 수 있나 싶었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녀석을 보았다. 세베누스는 침대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고는 잠시 말이 없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저러는 거지?’
이 시간에 찾아올 만한 일이라면 제법 심각하겠다 싶어 조용히 그를 응시할 즈음. 세베누스의 입이 열렸다.
“레비, 놀라지 말고 듣거라.”
“네, 형님.”
“이런 말을 너한테 전하는 게 맞는가 싶지만…….”
“그냥 편하게 말씀하시죠. 무슨 일이시길래…….”
“사실 할머님께서…… 1년 전부터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일까.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육체의 정점이라 불리는 소드마스터에 달한 그녀의 몸이 안 좋다니. 하지만 나는 그의 당부대로 최대한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되물었다.
“어느 정도로 안 좋으신 겁니까?”
기억 속 할머니의 나이를 떠올려서 계산해보면, 현재 대략 70세다. 그렇다면 노환으로 인한 병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네가 들어봤을지는 모르겠지만, ‘마나 번’이라는 병 때문이다.”
“……들어는 봤습니다.”
내 예측은 빗나갔다. 차라리 노환이라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마나 번.’ 나는 이걸 들어본 것뿐만이 아니라, 어떤 병인지도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는 누구나 ‘마나’를 가지고 태어난다. 물론, 내게는 ‘성력’이다. 마나와 성력은 같은 뿌리에서 시작되었으나, 종류가 달랐으니까. 굳이 따지면 포도와 청포도의 차이 정도랄까.
‘그리고 가장 큰 차이는…….’
성력은 신으로부터 얻는 것이기에 한계가 없지만, 마나에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나를 느끼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자신의 체내에 있는 마나를 느끼게 된 이들은 보통 마법사, 연금술사 혹은 검에 검기를 실을 수 있는 기사가 되곤 하였다. 그렇게 마나를 다루게 된 이들은 국가적,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이른바 출세를 하여 윤택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마나를 다루는 이들이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게 마나 번이고.’
마나를 느끼고, 그 마나를 다루게 된 이들은 희박한 확률로 ‘마나 번’에 걸리곤 했다. ‘마나 번’의 원인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건 없었다.
그저 마나를 사용하는 이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불치병이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마나 번은 일단 한 번 걸리면, 체내의 마나가 죽을 때까지 자연스레 소멸해가는 병이었다. 즉, 생명력을 점차 깎아가는 것이다. 마나의 근원은 결국 생명력이었으니까.
한편 심각해진 내 표정을 보던 세베누스가 말을 이었다.
“……그래, 들어봤구나. 그럼 이건 알고 있느냐.”
“예?”
“‘마나 번’에 걸린 이들은 길어야 5년 정도밖에 더 살지 못한다.”
그러니까 할머니의 남은 수명은 길어야 4년 정도뿐이란 뜻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원작에도 마나 번에 걸린 이들이 등장했기에 병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헬레나 홀든은 테르디안 시점의 플레이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인물. 그 병을 앓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형님께서는 할머니의 병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나의 물음에 세베누스가 시선을 떨궜다. 그리고는 푸념하듯 답했다.
“……그래. 네게 이야기하지 못해 미안하다. 하나, 네가 아픈 상황에서 할머님의 병에 관한 이야기까지 꺼낼 수는 없었다. 또, 그것이 할머님의 부탁이시기도 했지. 가급적 끝까지 숨길까도 했지만…… 너도 이제 어엿한 어른이니까.”
세베누스는 내게 거듭 사과했다. 나는 그 모습을 응시하다가 마른세수했다.
사실, 이 문제는 세베누스가 내게 사과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부탁이라고 했으니까.
“……내가 할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다만, 할머님께는 내색하지 말거라. 그걸 원하실 테니까.”
세베누스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잘 자라, 레비.”
세베누스가 침실을 나간 후. 나는 잠시 고심했다.
‘마나 번…….’
마음 같아서는 당장 할머니를 치료해드리고 싶다. 하지만 말로네 병과 달리 마나 번의 치유는 불가능했다.
‘원작에도 뚜렷한 치유법이 나오질 않았으니까.’
뿐만 아니라, 원작에서는 ‘치유’의 힘으로도 마나 번의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즉, 내 힘으로는 불가능해.’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마냥 두 손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진짜 가족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그들로부터 가족의 마음을 받았으니까.
적어도 가족으로서의 도리는 다하고 싶었다. 그러나 앞길이 막힌 기분이 들었다.
‘이걸 어쩌면 좋지.’
– 아이야.
고민하고 있을 때. 카이로스가 부드럽게 나를 불렀다.
‘네, 카이로스 님.’
– 일단 그 병을 자세히 조사해보는 게 어떻겠니.
‘역시 그게 먼저겠죠?’
– 그래.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때론 그 목적지에 대해 알게 되면 나아갈 길 또한 알 수 있으니까.
‘네. 그럴게요.’
나는 옅게 미소하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마나 번에 대해 조사한다고 해서 반드시 해결책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보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게임의 온갖 루트에서도 본 적 없던 해결책을 내가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혹여 이 또한 히든 루트의 변수 때문일까. 그렇다면, 할머니가 아픈 건 나 때문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인.”
[네, 주인님. 할머니 댁에는 잘 도착하셨습니까?]“그래. 그나저나 부탁할 게 있다.”
[말씀만 하세요!]“‘마나 번’과 관련된 책을 전부 구해줘.”
[예? 마나 번이요? 그 병에 관한 책이요? 왜요?]“……필요한 일이 생겼어. 그러니까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은 모두 구해봐. 절판된 것까지 전부. 마나 번에 관한 이야기만 들어가 있다면 모두 구매해. 가격은 얼마가 되었든 상관없으니까.”
[노력해보겠습니다.]어째 자인의 대답이 시들시들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추가 수당 제대로 챙겨 줄게.”
[내일 아침까지 구해두겠습니다!]자인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함께 통신을 끝냈다. 녀석이 구해다 주는 책을 통해서 작은 실마리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몰랐다.
‘내일 아침이면, 조사를 시작할 수 있겠지.’
라고 어젯밤 생각했지만, 내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가 내 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