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문득 몽롱한 의식 속을 부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육체의 감각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정신은 또렷한 감각.
‘……뭐지. 꿈이라도 꾸는 건가?’
내가 대체 언제 잠들었던 걸까.
아니,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서부터 현실인 걸까.
그런 무의미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득 옛날 영화처럼 흐릿한 세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여긴…….’
내 앞에 등장한 세상은, 내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 중 하나인 고등학교였다.
그 너무나도 익숙한 배경의 교실에는 어릴 적의 내가 앉아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언제나 공부만 했다. 쉬는 시간에도 친구를 사귀지 않고, 그저 공부에만 몰두했다.
‘정확히 따지자면 친구를 만들 생각이 없었던 거지만.’
내게는 어린 시절부터 늘 고아원 출신 정의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종종 내게 다가오는 녀석들도 있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시선에 나는 그들을 내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야, 정의현. 또 공부하냐?’
‘네가 공부해서 어디다 쓰려고? 가진 건 X도 없으면서.’
나를 유독 싫어하던 무리가 있었다. 놈들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부모님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살아온, 내가 보았을 때는 금수저나 다름없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대체 내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사사건건 내게 시비를 걸어왔다.
‘어차피 너처럼 돈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놈은 아무리 공부를 해봤자 그 끝에는 한계가 있어.’
‘맞아. 그러니까 주제를 알고 살아가, 벌레 같은 놈아.’
‘아니면 반반한 얼굴이라도 팔아 보든지.’
놈들의 온갖 비아냥과 멸시에도 나는 별 타격을 입지 않았다. 상대하기 귀찮기도 했고, 괜히 말을 섞었다가는 똑같은 놈이 될 것 같아서.
하여 나는 오히려 그럴수록 더 이를 악물고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이래서 그놈들이 나보고 주제를 알고 살라고 했던 것일까.
세상에는 노력만큼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 일이 수두룩했다. 제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봐도, 경제적 여유가 되지 않으면 환경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남들은 쉬이 구하는 문제집 하나 구매하기 어려웠고, 공부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가난’이란 쉬이 벗어날 수 없는 족쇄였으니까.
그래도 피나는 노력 끝에 나름 준수한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지만, 그것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유지해야만 장학금을 계속 받을 수 있었다.
성적을 유지할 자신은 있었다. 당시 내게 그나마 자신 있는 특기란 공부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결국 또다시 돈을 벌어야만 했고, 그러다 보니 성적이 떨어져서 등록금을 내기가 힘들었다. 악순환이었다.
그나마 내가 숨을 쉴 수 있을 때는 게임을 할 때뿐이었다. 몇 달에 한 번씩 돈을 모아 게임을 구매했고, 그 하나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곤 했다. 그곳에서는 내 노력 여하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난으로 가득 찬 현실은 여전히 고통의 연속이었다.
마치 지옥처럼.
***
“……레비?”
문득 들려온 할머니의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시야로 잔뜩 걱정스러워하는 할머니의 표정이 보였다.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게야?”
“아, 네…….”
나는 힘겹게 대답하고는 주변을 살폈다. 할머니와 함께 탄 마차 안. 그래, 네젠으로 가고 있었지. 문득 안도감이 들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구나.”
“아, 네. 그랬나 봐요.”
“괜찮으니 더 자려무나. 아직 도착하려면 좀 남았단다.”
“괜찮아요.”
나는 할머니에게 애써 미소를 보이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성한 소나무로 가득 차 있는 숲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진짜 피곤하긴 했나 보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던 때의 꿈을 꾸고.’
– 어떤 꿈을 꿨기에 그러느냐, 아이야.
‘아, 그게…… 좀 안 좋았던 시절이요.’
카이로스의 물음에 나는 대충 얼버무려 답했다.
악몽의 여파로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벗어날 수 없었던 가난의 굴레 속에서 나는 쉽지 않은 삶을 살았었다.
그러다가 아끼고 아낀 돈으로 구매했던 게임이 바로 우세법이었고.
‘……어? 잠깐만.’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보통 때의 나라면 유료 게임을 구매할 때는 정말 신중하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했다.
몇 날 며칠간 거듭해서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그런데도 하고 싶다면 그때에나 구매를 했었다.
‘그런데 왜 우세법은…….’
그러지 않았던 거지?
우세법을 구매했던 때를 떠올리면, 평소보다 생각을 적게 하였었다. 마치 나도 모르게 이끌려, 충동구매를 했던 느낌이었다.
‘뭐지?’
그 정도로 우세법이 끌리는 게임이었던가? 번지르르한 일러스트 외에는 볼품없는, 혹평으로 가득한 게임이?
아무리 내가 게임을 좋아한다고 한들, 당시 내 입장에서는 거금이었던 돈을 들여 살 만큼의 게임은 아니었다.
“레비? 정말 몸이 안 좋은 거니?”
“아, 아니요. 괜찮아요. 잠시 생각할 게 좀 있어서.”
“혹 어디가 안 좋은 거라면 언제든 이야기하렴. 저택으로 돌아갈 테니.”
“네, 할머니. 꼭 그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할머니를 안심시키고는 생각을 갈무리했다.
‘단순한 충동구매였겠지.’
지금 와서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미 나는 우세법 속 세상으로 들어왔고, 이제 이곳이 내게는 현실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메인 퀘스트 기간인 3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메인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하면 죽는 거니 그건 그렇다 치고. 성공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건가.’
그 생각을 하니 문득 기분이 더 저조해졌다. 꿈도, 미래도, 희망도 없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럴 바엔…….’
이 세계에서 사이비 교주로든 뭐든 살아가는 편이 훨씬 낫지.
그래. 훨씬.
***
마차는 열심히 달리고 달려 어느덧 속도가 느려졌다.
“이제 곧 도착이겠구나.”
소나무 숲길이 끝날 즈음,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는 옅은 미소와 함께 나를 보았다.
“레비, 너와는 처음으로 나들이를 나온 것 같아 기쁘구나.”
“저도 기뻐요, 할머니.”
이전까지만 해도 영 좋지 않았던 기분이 곧 네젠에 도착한다고 생각하자 좀 나아졌다.
“우리 레비가 좋아할 만한 맛있는 것들이 아주 많으니, 즐겁게 놀자꾸나.”
“네, 할머니.”
어느덧 마차가 멈춰 섰다. 네젠 입구 부근,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공간에서 마차의 문이 열렸다.
“여기서 대기해줘, 진.”
“네, 주인님.”
할머니는 마부에게 명령하고는 내게 다가왔다.
“그럼 가자꾸나, 레비.”
나는 할머니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네젠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네젠은 어느 영지에도 속하지 않는 제국령으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한적한 도시였다.
“헤, 헬레나 홀든님. 어서 오십시오.”
“아아, 그래요. 반가워요.”
네젠의 입구를 통과하려던 때. 할머니를 알아본 경비병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할머니가 일선에서 물러난 지 어언 20년이 넘었다고 들었는데도 꽤 젊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걸 보면, 할머니의 위용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 오오, 역시 소드마스터로구나.
‘그러게요.’
할머니는 경비병들의 인사를 자연스럽게 받고는 환히 미소 지었다.
“레비, 우선 저기부터 가 볼까?”
할머니가 가리킨 곳은 시장 입구에 있는 가판대였다.
“저긴…….”
“꼬치구이 집이란다. 소금구이도 맛있지만, 특제 양념이 특히 맛있지.”
양념 꼬치구이. 이건 무조건 먹어야지. 나는 할머니에게 대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머니. 얼른 가봐요!”
나는 할머니와 함께 곧장 꼬치구이 가판대로 향했다. 그러자 푸근한 인상의 주인이 우릴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아니, 헬레나 님 아니십니까?”
“오랜만이야, 빌리. 그간 잘 지냈어?”
“그럼요! 그러면 옆에 계신 분은……?”
“아아, 내 손주. 귀엽지?”
할머니는 꼬치구이 가판대 주인과 친한 사이인지, 아주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레벨로프 홀든입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헬레나 님을 닮아 아주 미남이시군요!”
정중하게 인사하자 빌리는 신이 나 보였다.
“그래, 맞아. 아무튼 빌리, 얼른 꼬치구이나 줘. 평소처럼.”
“아아, 그러면 소금 넷, 양념 넷으로 드리면 될까요?”
“그래, 그래.”
할머니는 미소 지으며 빌리에게 금화를 건넸다. 빌리도 신이 나서는 조리를 시작했다.
치이이익-
꼬치구이가 보기 좋게 익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 나, 나도 먹고 싶구나, 아이야!
‘돌아가는 길에 포장해둘 테니, 조금만 참으세요.’
어떤 맛일까. 몹시 기대가 되었다.
빌리는 노릇노릇하게 고기를 구운 후 소금, 후추로 양념을 했다. 우선 소금구이가 먼저 내게 전달이 되었다.
“먹어보렴. 아주 맛있을 거란다.”
“네, 할머니.”
나는 곧장 크게 한입 꼬치구이를 베어 물었다. 쫄깃한 고기와 소금의 담백한 짭짤함이 무척 잘 아우러졌다.
“이, 이건……!”
“어떠냐, 아주 맛있지?”
“네!”
미쳤다, 이 맛은.
‘최고잖아?’
마음 같아서는 네젠에 포탈을 설치하고 매일 먹으러 오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렇게 꼬치 하나를 끝내고 있을 때, 할머니는 어느새 두 개를 먹은 뒤였다.
‘역시 우리 할머니…….’
함께 식사를 했을 때도 그랬지만, 참 먹성이 좋은 분이셨다.
“자, 다음은 양념이다. 미리 말해두건대, 이게 정말 맛있단다. 나도 처음 맛본 순간부터 잊지 못하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찾아올 정도지.”
“오, 네!”
할머니의 말에 상당한 기대감이 들었다. 갈색빛의 윤기가 도는 꼬치구이를 우선 눈으로 감상하고,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입 안에서 천국이 펼쳐졌다.
‘이, 이건……! 대륙 규모 프랜차이즈를 열면 대박이다!’
짭조름하면서도 이어지는 감칠맛에 순식간에 꼬치 하나를 해치우고 말았다.
“와, 진짜, 진짜 맛있어요.”
나는 빌리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러자 빌리가 호탕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그때였다.
“어머, 헬레나?”
근방에서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 보였다. 20대 남짓으로 보이는 인상의 여성이 할머니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오, 제나. 잘 지냈어?”
“헬레나, 보고 싶었어!”
아니, 할머니에게 반말을 한다고? 심지어 그녀는 서슴없이 할머니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동안 편지도 드문드문 보내더니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하하, 그러게.”
“그나저나 옆에 있는 이 귀염둥이는 누구야?”
“내 손주. 인사하렴, 레비.”
나는 할머니에게 예를 갖추지 않는 제나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레벨로프 홀든입니다.”
“반가워요. 제나 루이스예요.”
그리고 들려오는 이름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마법사가 왜 여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