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그럼 저는 이만, 일이 있어서.’
네젠의 골목 어귀에서, 그의 손을 뿌리친 레비아탄은 그리 이야기하고는 쏜살같이 달아났다.
사실 테르디안이 마음만 먹었다면 그를 붙잡는 것쯤이야 조금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테르디안은 그러지 않았다. 레비아탄은 그 어떤 이유에서인지 필사적으로 자신이 레벨로프 홀든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아니라며 변명했으니까.
‘전쟁 영웅의 집안에서 나타난 신흥종교의 교주가 정체를 숨긴다……. 나름 이유는 있군.’
어차피 그에게서 확답을 받기란 어려울 것 같았기에 그냥 놓아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레비아탄의 행동에서 앞으로 그가 무얼 우려하는지 얼추 눈치도 채었기 때문에, 굳이 그를 더 붙잡을 필요도 없었고.
‘더군다나…….’
어차피 테르디안은 레비아탄의 우려와 달리 그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사실을 가지고 협박을 할 생각도 없었다.
또한, 마찬가지로 디에고교 내에 이 사실을 발설할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녀석을 위험에 빠트릴 생각은 없으니까.’
현재 테르디안에게 있어 레비아탄은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었다. 어찌하여 그가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안개를 걷어낼 수 있는 것인지, 레비아탄과 함께 있을 때 보았던 알 수 없던 장면들은 또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한동안은 레비아탄을 보호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에게서 느끼는 알 수 없는 친근감도 크게 한몫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나저나 의외이기는 하군.’
그가 새로움을 느낀 것은 조금 다른 방향이었다.
테르디안이 여태 보아왔던 카이로스교 교주, 레비아탄이라는 인물은 귀족 가문의 자제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이였다.
귀족 특유의 자만심이 없고, 꼿꼿함이 없었다.
‘레벨로프 홀든…….’
현 제국에서 전쟁 영웅이라 불리는 레이라 홀든의 두 번째 아들이자 과거 마찬가지로 영웅이었던 헬라나 홀든의 손자.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불치병, 말로네 병에 걸려 시한부로서의 삶을 살았던 남자.
‘그러고 보니 레비아탄이 레벨로프 홀든의 병을 치료했다는 건…… 결국 말로네 병의 치료법 또한 레벨로프 홀든이 찾아낸 것이 되는군.’
정말 기묘하고 신기한 일이었다. 병약한 귀족 청년에 불과했던 이가 어떤 비밀이 있어 하루아침에 이리 달라진 것일까.
‘게다가 내가 레비아탄을 처음 만났던 곳.’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곳은 홀든 영지의 후미진 마을인 로벨이었다. 그리고 카이로스교의 신전이 가장 먼저 세워진 것도 로벨.
‘……그래서였군.’
홀든 영지 내부의 신전을 설립하고, 영지민까지 구할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행보이기는 했다.
그때부터 테르디안은 레비아탄, 아니 레벨로프 홀든의 행동을 추측하며 앞에 놓여 있던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현재, 테르디안이 있는 곳은 디에고교 본단이 자리하고 있는 도시 ‘퀴에른’이었다.
그리고 퀴에른의 중심에서도 한참 떨어진 구석, 유독 후미진 골목에는 허름한 술집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현재 테르디안이 술을 마시고 있는 단골 가게였다.
내부 인테리어가 썩 좋지 못하고, 찾는 이들도 거의 없으며, 파는 술이라고 해봤자 싸구려뿐이기는 하지만…….
테르디안에게 있어 퀴에른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이 바로 이 술집이었다.
고급품 중에서도 고급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이용 가능한 사도들인 만큼 이곳에서만큼은 디에고교의 간부들과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때론, 칼리드가 대체 왜 그런 싸구려 술을 마시냐고 면박을 주듯 말할 때도 있기는 했지만.
품질이 좋은 술을 마시는 대가로 디에고교 간부놈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정도면 술맛도 썩 나쁘지 않고.’
디에고교의 사도가 되기 전. 경제적인 여유가 없을 때는 싸구려 술이라도 감지덕지였으니까.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테르디안의 평화로운 시간을 방해했다.
“여기서 뵙는군요, 3사도.”
술집 구석에 앉아 로브의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있었건만, 상대방은 테르디안의 정체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굳이 자신을 ‘3사도’라고 칭하기까지 했다.
테르디안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이어 그는 고개를 들어 저를 방해한 이를 확인했다.
무감한 낯의 미소년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단추 하나 풀지 않고 정갈하게 걸친 사제복과 안경 너머로 보이는 무심한 눈빛까지.
7사도 라윈이었다.
“7사도, 네가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지?”
대상을 확인하자 테르디안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물론, 그가 이 술집에 들른다는 사실이 암암리에 디에고교 간부들 사이에 퍼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까지 저를 찾아오는 이는 없었다.
오늘 전까지는.
“주인장, 저도 같은 걸로 한 잔 주십시오.”
라윈은 테르디안의 날이 선 표정을 보았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주문했다.
곧 푸근한 인상의 주인장이 테르디안의 것과 같은 술을 라윈에게 갖다주었다.
라윈은 호기심에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맛을 본 후 잔을 탁 내려두고는 더 이상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다.
“3사도.”
“……이런 자리에서 그렇게 부르는 건, 눈치가 없는 건가.”
테르디안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라윈에게 비아냥거렸다. 그제야 라윈이 제 실수를 깨달았다는 듯 사과했다.
“아, 미안합니다. 테르디안.”
하나 테르디안은 사과를 받아주는 대신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테르디안은 디에고교의 사도가 된 이후, 간부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그들은 레비아탄과 달리 거리감만 느껴졌으니까.
그중에서도 유독 거부감이 느껴지는 이가 1사도라면, 7사도 라윈은 그 반대였다.
아직 스무 살밖에 되지 않는 어린 녀석이 사도라는 자리에 올랐으니까.
디에고교의 진급 시스템은 여느 종교와는 달랐다. 물론, 하위 직급은 타 종교와 같았다. 말단 사제부터 시작해 한 계단씩 오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도’는 다르다. ‘사도’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오직 디에고의 선택을 받은 자들뿐이었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테르디안은 어쩌면, 라윈 또한 저와 비슷한 환경에 처했으리라 생각했다.
어딘가 한 군데씩 모자란 다른 사도들과 달리 라윈은 반듯한 인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생각은 얼마 안 있어 깨지기는 했지만.
어린 녀석이 잔혹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일삼는 것을 보면 마음이 영 좋지만은 않았다.
그리 생각할 즈음. 라윈이 입을 떼었다.
“테르디안 사도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뭔데.”
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자신의 휴식 시간까지 방해하는 것인가.
별 시답잖은 일이라면, 당장 이 녀석을 쫓아내리라.
그리 마음을 먹고 있을 때. 라윈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카이로스교 교주, 레비아탄에 대해 잘 아신다고 들었습니다.”
“……뭐?”
“현재 본교에서 카이로스교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테르디안이라고 해서요.”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5사도, 칼리드입니다.”
테르디안의 미간이 좁혀졌다. 칼리드가 저에 대해 그리 이야기를 하고 다니다니. 아니, 일단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째서 라윈의 입에서 레비아탄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가.
“……카이로스교에 대해서는 왜 묻는 것이지?”
그러자 라윈의 입매가 조금이나마 옅게 올라갔다.
“제가 얼마 전 그 사람과 친구가 되었으니까요.”
라윈의 대답에 테르디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안 되는 ‘운명’이란 것을 신봉하는 라윈에게 있어, 친구란 맹목적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제 유일한 친구가 이단을 누구보다 앞장서 섬기고 있으니, 제가 구해주고 싶습니다.”
이것이 지난번, 크라켄 사건 이후 라윈이 한 결심이었다.
오랜만에 사귄 소중한 친구를 이단으로부터 구해내겠다는 결심.
신념이 깃든 라윈의 눈을 바라보던 테르디안은 고개를 저었다.
‘대체 레비아탄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매번 이렇게 이상한 놈들이 꼬이는 것인지.
이쯤 되면 이마저도 재능의 영역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테르디안은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카이로스교에 대해서도 나도 잘 모른다. 그저 레비아탄이라는 자가 교주라는 것 외에는.”
그러자 라윈이 눈에 띄게 실망하였다. 하나 테르디안은 그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그날 라윈이 얻은 정보는 없었다.
***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었단다. 꿈같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뱀과 싸우는 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지.”
이어지는 할머니의 말에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하여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저 듣기만 했다.
아마 할머니는 정신세계에서 내 생각보다 꽤 오래전부터 깨어있었던 모양이다.
“얼굴은 또렷하게 보였지만, 누구인지 인지하기가 쉽지 않더구나. 하지만 전투가 끝나갈 무렵, 네가 보이더구나. 레비.”
정신세계에서 안경이 부서지기까지 했으니, 확실히 알아보신 모양이었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네가 보이는데…… 네 팔이, 그리고 안경이 그 어둠 속에 보았던 모습과 같더구나. 그래서 레비, 네가 날 구해준 거라고 확신이 들었지.”
할머니의 말에 나는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던 때, 할머니의 손이 내 왼팔 부근에 와닿았다. 조심스럽게 올라온 손이 내 팔의 상태를 확인하듯 느껴졌다.
“피, 피가 나는구나. 괜찮은 거니? 그 팔은…….”
“제 팔은 괜찮아요. 보세요. 상처만 조금 났을 뿐이에요.”
“그래도 피가…….”
순식간에 할머니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를 더 걱정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오른손으로 왼팔에 치유 스킬을 사용했다.
파앗-
작은 빛과 함께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었다.
“이게 무슨…….”
“할머니, 지금부터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릴게요.”
잠깐 동안 고민한 끝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하여,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방에 침입했던 이는 디에고교의 대주교이며 그가 할머니에게 저주를 내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해제하기 위해 내가 직접 할머니의 정신세계에 들어갔었다는 것까지.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할머니는 놀라기도 했지만, 이내 진정되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누구에게도 먼저 발설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내뱉었다.
“……그리고 조금 전, 제 몸을 치유했던 그 힘은 제가 모시는 신 ‘카이로스’님으로부터 받은 힘이에요.”
“분명 작은 종교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대단한 치유의 힘까지 갖고 있다니…….”
“이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오직 저뿐이에요. 제가 바로…… 카이로스교의 교주이니까요.”
나의 정체를 할머니에게 밝히기로 한 것은, 오늘의 사건 때문이기도 했지만 할머니를 살리기 위함이기도 했다.
할머니를 카이로스교의 신도로 만들기 위한 마땅한 방법도 찾지 못했고, 남은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하여, 최후의 수단을 쓴 셈이다.
며칠 동안 할머니와 함께 생활해본바, 그녀는 상당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올곧은 정신을 가졌으며, 그에 맞는 신념이 함께 하는 사람이니까.
게다가 가족을 무척이나 아끼는 그녀가 적어도 나를 배신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 생각하며 할머니의 대답을 기다렸다. 할머니의 반응이 예상되지 않아 초조해질 즈음.
“……그래. 그랬구나. 그래서 제나가…….”
할머니는 뜻 모를 이야기를 중얼거리더니, 내 두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따스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동안 혼자 고생 많았겠구나, 내 손주.”
어쩐지 나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