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2
12화
그렇게 물어본다면 대답해주는 게 인지상정이긴 하지만.
“어떻게 내가 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알고, 네가 만든 그것을 마실 수 없다는 걸 알지?”
내가 만든 즙은 성력을 이용한 것이니, 상반되는 힘을 가진 테르디안에겐 해를 입힌다.
하지만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해 줄 수는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그나저나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르네. 뭐, 내가 테르디안 입장이었어도 비슷했겠지만.
솔직히 테르디안 입장에서 갑자기 등장한 내가 이상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인물이 비밀로 치부되는 정보들을 알고 있으니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말 못해요. 어차피 안 믿을 테니까.”
“……뭐?”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에요.”
내가 전생에서 보았던 여러 콘텐츠에서처럼 ‘사실 저는 예언자입니다.’ 같은 이유를 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왜인지 테르디안한테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굳이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하나.
이 녀석이 그래도 내가 아꼈던 주인공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하여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하자, 테르디안은 더 묻지 않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예배당 쪽으로 향했다.
나와 테르디안이 마주쳤던 담벼락과 예배당에는 거리가 꽤 있어서, 우리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여긴 마신의 가호를 받고 있기에 외부에는 따로 경비가 없었다.
나는 살금살금 예배당으로 향했고, 테르디안은 최대한 기척을 죽였는지 발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런데 넌 어떻게 로벨을 구하려는 거지?”
문득 테르디안이 물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목소리 좀 낮춰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힘있게 말했다. 예배당과 거리가 가까워졌으니 이젠 조심을 해야 했다.
그러자 테르디안이 내게 고개를 기울였다.
“대답해 봐.”
다행히 그의 음성은 작았다. 어휴. 얘랑 오래 붙어 있다가는 심장이 남아나질 않겠네. 나는 들릴 듯 말 듯한 크기로 답했다.
“일단 여기서 쫓아내야죠.”
“그리고?”
“그 후에는 어차피 당신이 알아서 할 거 아닌가요?”
내 대답이 마음에 차질 않는지, 테르디안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나는 테르디안 아스틴이다.”
이제야 통성명을 하는구나.
“저는 레ㅂ-.”
일순, 등골이 서늘해졌다. 순간적으로 진짜 이름을 말할 뻔했네. 그랬다가는 변장한 의미가 없어진다.
“레비, 뭐?”
넌 귀가 왜 이렇게 밝은 건데.
“레비아탄이요.”
일단 대충 떠오르는 단어로 둘러대었다.
……근데 하필 떠오른 게 왜 이것뿐인 걸까.
“특이한 이름이군.”
테르디안이 제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네. 그러게요.”
제길.
-아가야, 작명에는 별로 소질이 없는 것 같구나.
‘네. 저도 알아요.’
젠장.
“그래. 네 말대로, 나는 리제스교를 처리할 계획이다. 그러니 방해되는 일은 하지 말도록.”
내가 지 아랜 줄 아나.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만.”
사실 리제스교 놈들을 처단한 뒤, 테르디안한테 떠넘길 생각이었다.
디에고교에서 알아서 처리하게 놔두는 게 편하니까.
어차피 여기서 얻어야 할 것도 하나뿐이고.
‘뭐, 겸사겸사 다른 것도 얻으면 좋지만.’
짤막하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예배당의 뒤쪽까지 오게 되었다.
예배당에 가까워지자 달빛에 반사되는 거대한 장막이 보였다.
예배당 전체를 감싸고 있는 반투명하고도 검붉은색의 장막.
보통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이지만, 신과 가까운 이들만이 볼 수 있는 이것이 바로 ‘마신의 가호’였다.
“이제 알 수 있겠군.”
애당초 테르디안의 신뢰를 바란 건 아니지만. 아직도 나를 못 믿는다는 게 좀 기분이 나쁘다.
“네. 그러게요.”
나는 대충 대꾸하며 먼저 장막 안으로 발을 디뎠다. 나의 몸은 아무런 이상 없이 장막을 통과했다.
“봤죠?”
그리고 부러 테르디안을 향해 아무렇지 않다는 몸짓을 하자, 녀석도 성큼 따라 들어왔다.
내가 이 정도야, 짜샤. 뿌듯함에 미소 지으며 테르디안을 보자, 녀석의 입매가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마저도 몇 초뿐이었지만.
‘이런 냉정한 녀석.’
원래의 서글서글한 테르디안이 보고 싶어졌다.
테르디안은 곧바로 예배당 가까이로 향했다. 그리고 녀석의 손이 겁도 없이 뒷문으로 향했다.
‘저놈이!’
나는 곧바로 테르디안의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삽시간에 일그러지는 테르디안의 얼굴을 보며, 내 입가로 검지를 갖다 대었다.
아오, 저 녀석이 아직도 여길 모르나.
나는 녀석에게 나와보라고 손짓하여 뒷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대놓고 쳐들어온 걸 알릴 생각이에요?”
테르디안을 꾸짖듯 말하자, 놈의 미간이 좁아진다. 어쭈. 지가 잘못했으면서.
나는 테르디안을 지나쳐 예배당의 뒷문과 이어지는 벽으로 향했다.
그리고 벽에 붙어 있는 불이 꺼진 램프를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러자 드르륵- 작은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나무 문이 나타났다.
우세법 플레이 12회차쯤, 꼼수를 찾던 중에 알아낸 방법이었다.
“이건…….”
이 자식이!
나는 곧장 테르디안의 입을 내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렇게 주의를 줬건만!
“제발 조용히 좀 말해요.”
테르디안이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나는 녀석을 놔주었다. 이번에도 이놈이 사고를 칠까 싶어, 바닥에 드러난 나무 문의 손잡이를 내가 먼저 잡았다.
그리고 최대한 조심히, 소리가 거의 안 날 정도로 열었다.
-아가야, 대체 이런 건 어떻게 아는 거니?
‘그야 전 카이로스님의 어린 양이니까요.’
-오오! 그래, 그렇지. 너는 나의 가장 똑똑한 어린 양이란다.
카이로스가 좋아할 법한 말을 해주며 논리적인 설명은 넘어가고.
끼익-
마침내 문이 완전히 열렸다.
그러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벽에 박혀 있는 등불 덕분에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나는 먼저 내려가기 위해 발을 뻗었다가 뺐다.
“먼저 가시죠.”
그리고 테르디안에게 선두에 설 것을 권하자, 녀석이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겁쟁이처럼 보여도 상관없다.
‘내 몸은 소중하니까.’
녀석이 사라진 뒤에야 나도 따라 계단을 밟았다. 그리고 조심히 문을 닫은 뒤 테르디안의 뒤를 따랐다.
한두 명만이 지나갈 수 있는 끝도 없는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앞서 가던 테르디안이 물었다.
“넌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고 있지? 혹시 리제스교의…….”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세요.”
차갑게 대꾸하자 녀석이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테르디안이 이름을 걸고 한 맹세 덕분인지, 녀석을 대하는 게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좁은 계단이 끝이 나고, 거대한 공간이 드러났다. 흡사 동굴처럼 느껴지는 공동.
그곳에는 갈림길이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왼쪽은 리제스교의 본거지고, 오른쪽은 지하 감옥이에요.”
작게 설명해주자 테르디안은 망설임 없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나 역시, 이쪽이 목적지니 뒤따랐다.
“너는 왜 여기로 오는 거지?”
“그야…….”
대꾸하려던 순간, 테르디안이 멈춰 서며 팔을 뻗어 길을 막았다.
뭔데.
“기척이 느껴진다.”
녀석이 여태껏보다 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작게 대꾸하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
왠지 모르게 긴장되네.
테르디안이 있긴 하지만, 언제든지 몽둥이를 꺼낼 수 있게 인벤토리를 열어두었다.
‘원래는 체스터랑 둘이 쳐들어올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걸 어쩌겠는가.
그리고 천천히 이동하는 테르디안을 따라 걷자 얼마 안 있어, 통로보다 조금 밝은 공간이 나타났다.
“누구냐!”
널따란 지하 감옥 안.
무장한 병사들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하나같이 얼굴색이 푸르고, 시체처럼 퀭한 느낌을 가진 병사들은 흡사 좀비같이 보였지만 인간이었다.
그것도 ‘해피’에 심하게 중독된.
막상 실제로 마주하니 떨리네. 곧장 성물 몽둥이를 꺼내려던 순간.
촤르륵-
선혈이 바닥에 흩어졌다.
언제 검을 뽑은 건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테르디안이 병사들을 베어내고 있었다.
‘……살벌하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여태 테르디안이 나를 살려둬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테르디안은 병사들이 튀어나와 달려들 때마다 손쉽게 그들을 베어내었다.
마치 감정이 없는 살인병기를 보는 듯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전투에 뛰어들어봤자, 도움도 안 되겠지.’
나는 녀석에게 전투를 맡긴 채 지하 감옥을 둘러보았다.
지하 감옥에는 거대한 철창이 열 개가량 있었고, 그 안에는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대부분 힘없는 로벨의 사람들이었다.
몸의 절반 이상이 푸르게 변한 걸 보니, 해피에 꽤 중독된 이들이었다.
리제스교가 꾀하는 것은 이들을 이용해 실험을 자행하는 것.
-이런…… 어떻게 이런 일을…….
나는 카이로스의 탄식을 들으며, 입술을 짓씹었다.
그때, 병사 수십을 순식간에 정리한 테르디안이 검에 묻은 피를 떨쳐내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철창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철컹- 쿠웅-
굳건히 잠겨 있던 감옥의 철창문이 모두 열렸다.
“고맙습니다.”
감옥 문을 어찌 열지 고민하고 있었던 터라, 테르디안이 꽤 고마웠다.
비록 녀석은 내 인사를 무시하고는 감옥을 뒤졌지만.
그러다 이내, 테르디안이 한 철창 앞에서 멈춰 섰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테르디안의 정예 수하들이 보였다.
물론, 테르디안처럼 로브를 걸치고 있었지만, 테르디안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기에 알아챈 것이다.
‘역시 수하들을 찾으러 온 거였네.’
나는 멍하니 서 있는 테르디안에게 다가갔다.
테르디안의 수하들은 모두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다만 해피를 먹은 것인지 푸른 반점이 돋아나 있었다.
“이거 먹여요.”
잠시 고민하다가 인벤토리에서 맨드레이크 머리초를 꺼내 나눠주었다.
“이 정도면 심하게 중독된 건 아니니까, 이걸 먹이면 금방 정신을 차릴 거예요.”
“……고맙다.”
짜식, 고맙다는 말도 할 줄 아네?
조금 의외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테르디안에게서 돌아선 뒤, 감옥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감옥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곳에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둡고 칙칙한 기운이 감도는 공간에서, 마치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따스한 존재.
카이로스 또한 알고 있었을 것이다.
– 아가야, 이곳에…….
벅찬 음성만 들어도 그렇다.
나는 옅게 웃으며 감옥 안에 홀로 동떨어져 있는 철창으로 향했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에는 오직 검은 상자 하나밖에 없었다.
다행인 건, 테르디안이 칼춤을 출 때 이 철창도 열렸단 것이다.
하여 곧장 상자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었다.
검은 상자에는 금빛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나의 어린 양아, 저 상자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네. 저도 알고 있어요.’
나는 조심히 상자로 손을 뻗었다.
이 자물쇠는 리제스교에서도, 디에고교에서도. 어느 누구도 열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니 이런 지하 감옥에 대충 처박아둔 것일 터.
이건 오직, 나만이 열 수 있으니까.
마침내 자물쇠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철컹, 소리와 함께 상자가 스스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