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확실히 황제 폐하다우시더군요.”
황제를 알현한 후 숙소로 돌아오자, 지금까지 숨도 참는 듯한 모습이었던 자인이 감탄하며 말했다. 자인과 트로이, 두 사람은 황제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꽤 감명 깊은 만남이었던 모양이다.
“그저 앉아있는 것뿐이었는데도 내리누르는 기백과 넘치는 품격까지!”
특히 자인은 황제의 팬이라도 된 모양인지 연신 황제를 극찬하였다.
“더군다나 황제 폐하는 아직 무교이잖습니까. 디에고교가 황실을 거의 장악한 상태나 다름없는데, 굳건히 신념을 지키고 계시는 걸 보면 감탄만 나옵니다.”
아무래도 이 얘기 저 얘기 다 했지만, 자인이 황제를 마음에 들어 한 것은 바로 저 이유 때문인 모양이다.
‘디에고교에서 정말 원했다면 검은 나비의 저주를 이용해 황제를 세뇌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마땅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굳이 꼽아보자면, 그렇게 세뇌를 한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가.
‘이미 디에고교는 많은 것을 가진 상태이기는 하지.’
굳이 황제를 얻지 않아도, 언제든 그 위치를 갈아치울 수도 있을 터다.
‘즉, 당장 황제는 디에고교에 있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
반면, 황제는 언제든 디에고교를 쳐내고 싶어 한다. 디에고교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황제를 놔둔다. 그녀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을 잘 아니까.
‘그래도 황제의 측근 중 상당한 힘을 가진 이들이 있기는 해.’
물론 황제라는 자리에 앉은 이인 만큼 그 주변으로는 나름 대단한 이들이 포진한 상태였다.
문제는 디에고교의 사도들과 견주었을 때는 터무니없이 약하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래도 그자들을 우리 세력으로 만들어서, 카이로스의 힘을 나눠준다면…….’
어쩌면 할머니만큼 강한 병사들을 직접 육성할 것 없이 얻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황제의 측근 중에는 소드마스터도 더러 있으니까.
‘뭐, 일단 이건 나중에 생각해도 될 문제이긴 하지.’
나는 생각을 갈무리하며, 내 방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는 어제 설치해둔 포탈이 있었다.
‘오늘 일정은 이후에 더 없으니.’
일단은 각 지역의 신전을 돌아다니며 밀린 일을 할 생각이었다.
***
어제 황제를 알현한 후, 종교 화합의 날 행사까지는 황궁에서 특별히 강요하는 일정이 없었기에 나는 포탈로 각 지역의 신전을 돌아다니며 밀린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어느새 하늘의 달이 중천에 떴을 무렵이 되어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눈을 떴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떠 있는 한낮이었다. 어차피 종교의 날 행사는 내일 열릴 예정이라, 오늘 하루는 자유의 몸이었다.
“그러니까 수도 구경을 좀 합시다!”
대충 빵을 입에 물고 있을 때, 자인이 어린아이처럼 내게 외쳤다. 각자 알아서 휴식을 취하라고 했건만 기어코 내게 수도 구경을 하자고 난리를 쳤다.
“혼자 가면 되잖아.”
대충 대꾸하고 우유를 마셨다. 그러나 자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모처럼 왔잖아요. 그러니 한 바퀴 돌아보자는 겁니다.”
“귀찮아.”
“주인님! 제발요!”
정 그렇게 나가고 싶으면 혼자 다녀오면 될 것을 대체 왜 나랑 다니고 싶어 하는 것인지. 계속되는 애원과 트로이의 한 번쯤은 그냥 가는 게 어떠냐는 듯한 눈빛에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 가자. 가.”
그제야 자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트로이 또한 옅게 웃었다.
‘어차피 수도에서 우릴 알아볼 사람도 거의 없고, 편하게 돌아다닐 수는 있겠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는 몸을 씻은 뒤 외출 준비를 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안경도 쓰고, 로브까지 걸쳤다.
“그래서 어딜 갈 건데?”
“일단 그냥 수도 구경이나 해보죠. 중앙에 있는 광장하고 시장, 그리고 상점가도 가볼 생각입니다.”
자인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숙소를 나섰다.
그 순간, 멀리서 악신의 기운이 느껴졌다. 한순간에 전신에 소름이 돋고, 기분이 급격히 나빠졌다.
‘이 정도 기운이면 사도급인가 보군.’
느껴지는 불쾌함의 수준이 테르디안의 옆에 있을 때와 견줘볼 만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만 있어도 경계심이 생기는 와중에, 그와 비슷한 크기의 기운이 하나 더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한 명이 아닌 건가?’
분명 원작에서는 2사도 혼자 종교의 날 행사에 참석하였었다. 하지만, 히든 루트의 변수로 인해 한 명이 더 온 모양이었다.
‘누가 왔으려나.’
2사도와 친분이 있는 자라면 기껏해야 1사도일 터였다. 하지만 1사도는 대부분 디에고교 본단에서 시간을 할애하니, 이런 행사에 참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설마 그 녀석은 아니겠지.’
테르디안도 이런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으니까. 칼리드와 라윈도 비슷한 성향이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나나 카이로스교에 크게 관심이 없는 이들이겠군.’
설령 관심이 있다고 한들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디에고교는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보다 많이 의식했으니까.
그러니 이렇게 사람이 많은 수도에서 우리를 해하거나 하지는 못한다.
‘여차하면 수호의 방벽도 있으니까.’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얼마 안 있어, 예상치 못한 만남이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
대략 다섯 시간가량을 자인 때문에 끌려다녔다.
구경을 시작하자마자 중앙 광장에서 열리는 겨울나무 축제에 참석해 제국 각지에서 모인 나무들을 감상했고, 시장에 방문해서 온갖 식재료들을 구경했다.
“역시 수도라서 그런지 홀든 영지랑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쏠쏠한 정보가 많네요.”
“쏠쏠한 정보가 없어서 참 미안하다.”
자인은 특히 시장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모으느라 바빴다. 그로 인해 나와 트로이, 둘이서 시장을 돌아다녔는데 트로이의 먹방 여행이나 다름없이 느껴졌다.
“교주는 안 먹나? 맛있다.”
“……너 많이 먹어라.”
녀석은 식사를 했음에도 그 많은 음식들이 넘어가는지 잔뜩 먹어대었다.
그러고 난 후에는 상점가로 향했다. 수도의 상점에는 제국 내에서 인기가 많은 가게들이 잔뜩 있었다.
대부분 귀족이 방문할 정도로 고가의 물건들만 취급했고, 자인은 당장이라도 가게들을 털고 싶어 할 정도로 눈이 돌아가 있었다.
나와 트로이는 자인을 붙잡고 간신히 뜯어말렸다. 하마터면 종교의 날 행사 참석 전에 절도죄로 황궁에 잡혀갈 뻔했다.
그렇게 낮 시간 대부분을 보낸 후, 지금 나는.
“어서 오십시오!”
“저희 닭꼬치 좀 맛보고 가세요!”
야시장에 와있었다. 온갖 맛있는 음식 냄새와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 야시장은 중앙 광장에서 열렸다.
이번 종교의 날 행사 기념으로 열렸다고 하는데, 솔직히 야시장과 그 행사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네.’
이 세계에서는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 야시장이니 조금 들뜨기는 했다.
“여기서는 각자 행동하죠!”
자인은 조금 전, 내게서 받은 ‘얌전히 있으면 주는 수당’을 흔들어 보이며 외쳤다.
“그래! 따로 행동하는 게 좋겠다!”
트로이도 자인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 보였다. 아까부터 코끝으로 흘러들어오는 음식 냄새를 참지 못한 모양이다.
뭐, 사람이 좀 많기는 하지만 별일 없겠지. 잔뜩 신나 보이는 두 녀석에게 절대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각자 행동하도록 하지. 단,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내게 연락하도록.”
“네, 주인님.”
“걱정 마라!”
자인과 트로이는 대답을 마치자마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빠르게 비어버린 자리를 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야시장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작게 탄식했다.
‘나도 가면이나 쓸 걸 그랬나.’
제국 수도에서 열리는 야시장은 특이하게도 ‘가면’을 쓰고 다녔다. 가면무도회처럼 말이다.
각양각색의 가면들이 거리에 즐비했고, 나처럼 쓰지 않은 이들도 있기는 했다.
‘이미 안경을 쓰고 있으니 굳이 필요는 없어서 안 썼는데.’
자인과 트로이도 가면을 쓰지 않았지만, 막상 녀석들과 떨어지고 나니 괜한 후회가 들었다.
‘지금이라도 하나 살까.’
아직 나의 위치는 야시장 초입이었다. 게다가 입구 부근에서는 가면 장수들이 각양각색의 가면을 팔고 있기도 했다. 나는 터덜터덜 걸어 가면 가게로 향했다.
– 아이야, 저 토끼 가면이 잘 어울릴 것 같구나!
조금 전까지는 신전에 있던 카이로스가 언제 왔는지 불쑥 말했다.
‘그래요? 저는 저기 있는 검은 고양이 가면이 더 나은 것 같은데.’
그나마 어두운색이 편할 것 같기도 하고, 무늬도 가장 튀지 않았기에 딱 좋아 보였다.
– 흐음. 하지만 저건 고양이보다는 표범 같아 보여서 귀엽지는 않구나.
‘꼭 귀여워 보여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 그래도 귀여운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지잖니!
‘……맞는 말이긴 한데요. 제가 쓸 거라 딱히 볼 일은 없을 텐데.’
카이로스는 열심히 내게 토끼 가면을 사라고 종용했다. 계속 징징거리는 걸 듣고 있기도 귀찮고, 어차피 내가 쓴 가면이 내 눈에 보이는 일도 없을 테니 그냥 카이로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이걸로 주세요.”
상인에게 돈을 건네주고 가면을 받았다. 그러고 나자 후회가 밀려왔다. 진짜 이 귀여운 걸 나보고 쓰라고?
‘정말…… 싫다. 신만 아니었어도.’
그리 생각하며 토끼 가면을 만지작거리며 야시장 거리를 걸었다. 그때였다.
‘……!’
언제 이리 가까이 접근한 것이었을까. 근처에서 거대한 악신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만한 크기의 기운이라면 사도의 것이 분명했다.
‘내가 너무 방심했군.’
야시장 분위기에 취해서, 카이로스와 수다를 떠느라 악신의 기운이 접근하는 것도 몰랐다.
– 이런, 아이야. 조심하거라! 뱀의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카이로스도 나와 비슷하게 알아챈 것을 보면, 단순히 내가 방심했기 때문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갑자기 근처로 다가온 것이 분명했다.
‘뭐지?’
설마 나를 찾아온 것은 아니겠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눈앞에 여우 가면을 쓴 누군가가 나타나 있었다. 상당히 큰 키를 지닌 남자로 보였다.
확실했다. 여우 가면으로부터 악신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무리 놈들이 날 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곳에서 마주칠 줄이야.
‘대체 누구지?’
가면에 얼굴이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하나로 묶여 있는 보랏빛 머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랜만이네, 예쁜아.”
그 순간, 그가 여우 가면을 살짝 들고는 내게 인사했다.
여우 가면의 주인은 바로 칼리드였다.
“마침 네 기운이 느껴지길래 말이야. 같이 야시장 구경할래?”
칼리드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하지만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 자식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종교의 날 행사 같은 것에 참석하는 걸 귀찮아하는 녀석이!
‘아, 설마 본단과 가까워서 야시장 구경만 하러 온 것인가?’
워낙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놈이었기에 이놈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있기는 했다. 제길, 내가 너무 방심했군.
‘그래도 크게 문제는 되지 않을 거야.’
야시장이 열리고 있는 이곳, 중앙 광장은 황궁과 가깝기도 하였고, 주변에는 상당한 숫자의 인파도 있었다.
아무리 이놈이 미친놈이라고 해도, 여기서 난리를 피울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1사도의 처벌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왜 대답이 없어? 혹시 싫은 거야?”
칼리드는 다시 여우 가면을 쓰고는 내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뒤로 물러서기에는 행인들이 지나치게 많아 불가능했다. 그 순간, 칼리드의 얼굴이 확 가까워졌다.
“잘 생각하는 게 좋을걸? 네 친구, 그 녀석들이 다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