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마침내 종교의 날 행사 당일 아침이 밝았다. 나는 간밤에 잠을 꽤 설쳤다. 오늘 있을 행사에서 괜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괜찮겠지.’
이른 오전부터 괜히 복잡한 고민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 사념을 털어내려 운동한 뒤 샤워를 하고, 교주복을 걸쳤다.
[카이로스교 교주복(성물)등급: 신화 아이템
설명: 주신 카이로스가 내린 교주복. 교주복을 입고 전도 시 상대방이 신도가 될 확률이 30% 증가한다.]
최근 전투와 관련된 일들이 많기도 했고, 공식행사 때를 제외하고는 자주 입지 않는 교주복을 오랜만에 갖춰 입으니, 당장이라도 사람들을 향해 윙크와 손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했다.
‘뭐, 일정이 있으니 그럴 수는 없기는 하지만.’
나는 거울을 보다가 문득, 교주복을 입는 게 너무 오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아이야,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카이로스가 아름답다며 내게 극찬하긴 했지만, 그냥 자인과 트로이가 입을 신관복으로 갈아입을지 고민이 들었다.
‘……아니다. 그래도 명색이 공적인 자리인데. 추레하게 갈 수는 없지.’
잠깐 고민이 스쳤지만 나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레벨로프의 이름으로 방문하는 거라면 몰라도, 카이로스교 교주라는 직함을 달고 가는 자리이니 이 정도는 해줘야만 했다.
‘안경도 걸쳤고, 머리는…….’
머리카락은 평소와 같은 모양새로 살짝 손질만 했다. 그렇게 외양 점검을 마친 후 방에서 나오자 평소와 다른 차림의 두 사람이 보였다.
“자인, 트로이. 불편해 보이네.”
두 녀석의 모습에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평소 트로이는 자유분방하게 셔츠나 티셔츠를 보이는 대로 입고 다녔다. 그리고 자인은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깔끔하게 입었다. 셔츠와 바지, 혹은 그 위에 로브를 걸친다든가 하는.
하지만 이번 일정에서는 두 사람 다 신관복을 걸쳐야만 했다. 우리 간부들이 입는 깔끔한 새하얀 제복을 말이다. 카이로스교의 교인으로서 참석하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주인님, 불편해 죽겠습니다.”
“교주…… 나는 차라리 흑표범의 모습으로 참석하고 싶다.”
두 사람 다 어지간히 불편한지 내게 징징거렸다.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안 돼. 공적인 자리니까. 그래도 두 사람 다 꽤 잘 어울리는데?”
자인과 트로이, 두 사람 다 얼굴은 꽤 반반한 편이었기에 신관복이 제법 잘 어울렸다. 자인은 말쑥한 것이 깔끔한 느낌의 사제 같았고, 트로이는 신관복이 터질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잘 어울린다고 해도 불편한 건 참기 힘드네요. 이런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에휴.”
자인이 대놓고 한숨을 쉬며 내 지갑이 열리길 기다렸다. 나는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녀석에게 던졌다.
“자. 오늘치 보너스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이제 좀 옷이 편해졌네요!”
이제는 아예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여하튼 자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그려진 반면, 트로이는 여전히 죽상이었다. 나는 그런 트로이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트로이, 황궁에 가면 맛있는 음식이 많아. 그러니 좀만 참아.”
“그게 사실인가?”
“그래. 분명 만찬 시간도 있었으니까. 그때 맛있는 걸 잔뜩 먹으렴.”
“그래, 알겠다. 그렇다면 참을 수 있다.”
그제야 트로이의 안색도 밝아졌다. 그렇게 두 녀석을 열심히 달래고 있을 즈음. 마침내 황궁 시종이 방문했다.
“황궁으로 모시겠습니다.”
우리는 이틀 전에 그랬던 것처럼 숙소 앞에 마련된 황실 마차에 올라탔다.
“그나저나 공적인 행사에 참석한다고 하니 조금 긴장되네요.”
“그리 긴장할 것 없어.”
나는 마른침을 삼키는 자인에게 말하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사실 긴장은 내가 하고 있었다.
‘원작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으면 다행일 테지만.’
만일 히든 루트의 변수가 여기서 작용이 된다면…….
칼리드와 테르디안이 행사에 참여하기로 한 것부터가 이미 변수였다.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그것도 내게 악운으로 작용할 요소라면 제발 피하고 싶었다.
부디 그런 일이 없길 바라고 있을 즈음, 우리가 탄 마차는 빠르게 황궁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리자 새하얀 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오늘 종교의 날 행사가 열릴 흰장미궁입니다.”
시종의 설명을 들으며 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번 행사를 위해 황실에서 궁 하나를 통째로 내어주었다고 한다.
‘황제가 역시 통이 크기는 하네.’
그리 생각하며 내부를 살폈다. 흰장미 궁은 사절단을 맞이하는 등 교류 행사에서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그런 만큼 제국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값비싼 장식품들이 많았다.
“자인, 침 닦아라.”
나는 옆에서 두 눈을 빛내는 자인에게 말했다. 그러자 자인이 입가를 닦으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걱정하지 마시죠. 이 옷을 입고 있는 한, 어떤 짓도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 그 결심이 변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렇게 긴 복도를 걷다 보니 어느덧 문 앞에 도착했다.
“카이로스교 여러분께서는 이곳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어 주십시오.”
시종의 안내를 받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고풍스러운 느낌의 응접실이 나타났다.
‘대기실이군.’
시종이 나간 후, 나는 응접실을 살폈다. 중앙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에는 각양각색의 음식과 디저트, 음료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마침 배가 고팠는데 잘됐군.”
음식을 보자마자 트로이가 눈이 돌아갔는지 테이블로 달려갔다. 나는 녀석이 다 먹기 전, 음료 한 잔만을 챙겨 들고 소파로 향했다.
소파 앞에 있는 티테이블에는 종이 한 장이 있었다. 그 종이에는 이번 행사의 식순과 참여 교단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나는 곧바로 종이를 들고 읽어 내려갔다.
‘디에고교, 카이로스교…….’
그리고 나름 유력 종교인 벨스네교, 케르메르교, 셈누르교. 이렇게 총 다섯 개의 교단이 모였다.
‘리제스교, 그러니까 마신 녀석의 숭배자들은 당연히 참석 안 했군. 아니, 못 한 거라고 해야 하나.’
원작에서도 그러했고, 이 세계에서도 그들은 디에고교에 의해 쫓기는 처지니 당연했다. 애당초 황실에서는 리제스교에 초대장조차 보내지 못했을 테니.
다음으로 간단히 적혀 있는 식순을 확인했다.
‘회담, 휴식, 만찬.’
뭐, 하루 만에 행사를 끝내려면 이 정도 식순이 적당하기는 했다.
‘가장 먼저 열리는 건 역시 회담이로군.’
회담의 주제는 자유로, 원작에 따르면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이기는 했다. 그저 얼굴을 익힐 겸 이야기를 나누고, 인사나 나누는 그런 자리였으니까.
‘그리고 회담에 참석하는 것은 오직 각 교단의 대표자 1인뿐.’
카이로스교에서는 당연히 내가 참석해야 하고, 다른 교단에서는…… 원작과 동일할 터.
‘문제는 디에고교인데.’
칼리드와 테르디안, 두 사람이 참석하였을 텐데 누가 회담장에 들어설까. 부디 테르디안이 나을 텐데. 칼리드는…… 영 껄끄러웠다.
‘그리고 마음에 걸리는 건, 만찬.’
만찬장에서는 각 교단의 대표와 동행자들, 그리고 황제와 황족 몇몇이 참석하게 되어 있었다. 여기서 원작과 다른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이것도 모두 칼리드 탓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또 한 가지의 변수. 디에고교의 참석자인 테르디안과 칼리드를 제외한다면, 남은 한 자리는 누가 왔냐 이거다.
원작에서는 2사도와 그의 수발을 드는 신관 두 명이었는데, 흐름이 바뀌었으니 혹시나 최악의 경우 자인의 누나인 성녀가 참석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놈의 히든 루트는 마치 내가 겪을 수 있는 최악만을 선사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
‘물론, 아닐 가능성이 더 높으니…… 괜찮겠지.’
운이 좋다면 디에고교에서 이번 행사에 참석한 이들이 테르디안과 칼리드뿐일 수도 있었다. 부디 그러면 좋겠는데.
“주인님, 뭘 그렇게 보고 계십니까?”
응접실 곳곳을 둘러보던 자인이 옆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나는 녀석에게 종이를 건네었다.
“아아, 식순과 참여 교단 리스트군요.”
“곧 나는 회담에 참석해야 할 테니, 트로이 잘 돌보고 있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누구입니까?”
“돈벌레.”
나는 자인을 싸늘한 시선으로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괜히 황궁에 왔다고 싸돌아다니거나 해서 문제 만들지 말고.”
“네, 네. 걱정하지 마세요.”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회담에 참석하실 시간입니다.”
“곧 나가죠.”
나는 시종에게 답하고는 자인과 트로이에게 다시금 당부했다.
“혹여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바로 연락해.”
“알겠다, 교주.”
“걱정하지 마세요.”
두 사람의 얼굴을 마지막까지 확인한 후 응접실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나는 시종의 안내를 따라 회담장으로 이동했다.
그를 따라 2분가량 걸었을 즈음. 널따란 문 앞에 도착했다. 문밖에 서 있음에도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다들 도착한 모양이었다.
“카이로스교 교주, 레비아탄 님이십니다.”
시종이 나를 경비병에게 소개했다. 그러자 회담장의 문이 열렸다.
끼이익-
널따란 문이 열리고, 회담장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원작과 흡사한 장소에 새삼 신기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총 네 명의 사람이 있었다. 가장 먼저 나와 눈이 마주친 건 디에고교의 대표, 테르디안이었다.
‘다행이네.’
칼리드가 아닌 테르디안이 참석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른 이들을 보았다.
‘저자는…….’
40대 중반에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남성이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자칭 벨스네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벨스네교의 교주, 샨베르였다. 다만 실제로 벨스네 신은 존재하지 않으니, 벨스네교는 사이비 집단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저 할머니.’
70대 정도로 보이는 푸근한 인상의 노인, 하슈나. 그녀는 바로 케르메르교라는 종교의 교주였다.
케르메르교는 ‘신’을 믿는 게 아닌 케르메르라는 내세를 믿는 집단이었다.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전통적인 교단이다.
디에고교에 의해 세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명성은 꽤 높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0대 중반의 개구리를 닮은 남자는 말롱으로, 셈누르라는 개구리 신을 믿는 교단의 교주였다.
“제가 좀 늦었군요.”
나는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후 인사를 이어갔다.
“저는 카이로스교의 교주, 레비아탄이라고 합니다.”
“아아, 그 홀든령을 구해냈다는 거기로군!”
“홀홀, 대단하구려.”
“흐응…… 비실비실해 보이는데.”
샨베르, 하슈나, 말롱은 한마디씩 했지만 테르디안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 자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얼른 와서 앉지.”
녀석과 시선이 마주치자, 테르디안이 말했다. 빈자리가……
하필이면 저놈 옆자리로군.
나는 회담장 중앙에 있는 원탁으로 향했다. 각 교단의 교주들과 테르디안은 그곳에 앉아있었다. 나는 빈자리인 테르디안과 하슈나 사이에 앉게 되었다.
“자, 그럼 이제 다 모인 거군요.”
착석하자마자 샨베르가 환히 미소하며 말했다.
나 또한 반가운 얼굴이었기에 그를 보며 화답했다.
‘저놈이었지.’
회담장에서 사건을 일으킬 범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