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피리 소리는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나는 정말 내가 피리를 분 게 맞나 싶어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그리고 확신이 가질 않아 몇 번이나 더 불었다.
‘뭐, 테르디안 녀석이 여기에 자기 힘을 불어넣었다고 했으니 어쨌든 신호는 가겠지.’
이 이상을 생각하는 건 무리였다. 지금 나는 몹시 피곤했으니까. 하여, 나는 곧바로 피리를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후 두 눈을 감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비록 반년 동안 테르디안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설마 그 잠깐 사이에 아이반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한 건 아니겠지.’
부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길 바라며 나는 잠을 청했다.
***
잠에서 깨어난 것은 얼마 안 있어서였다. 정확히는 다섯 시간 정도 지난 후이기는 했지만.
‘……아직 새벽 세 시밖에 되지 않았네.’
아직 몸에 남아있는 피로감을 생각했을 때 잠을 더 자기는 해야만 했다. 하지만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근방에서 악신의 기운, 그것도 테르디안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꽤 성장하기는 했나 보네.’
신도의 숫자가 늘어나고, 카이로스가 내게 전달해준 성력이 대폭 상승한 덕분에 자고 있을 때도 기감이 발달한 모양이다. 테르디안이 홀든 영지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알아챌 수 있었으니까.
‘일단…… 곧장 가보는 게 낫겠지.’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힘겹게 일어났다. 벗어두었던 안경과 로브까지 서둘러 걸친 후 교주실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디에고의 기운이 워낙 짙게 느껴져 테르디안이 어디 있는지는 굳이 찾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한여름의 더우면서도 서늘한 밤공기를 느끼며 테르디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역시 여기 있었네.’
그리고 녀석을 찾은 곳은, 이전에도 테르디안과 마주한 적이 있는 로벨의 골목 중 하나였다. 테르디안은 그 안에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나는 녀석에게 인사하며 골목 안으로 향했다. 그제야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테르디안의 얼굴이 보였다. 달빛이 비치는 테르디안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뭔가 다른데.’
반년 전보다 상당히 얼굴이 상해 있었다. 눈그늘이 짙게 드리웠고, 어쩐지 조금 수척하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테르디안의 표정도 이전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대체 반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나랑 처음 만날 때보다 더 표정이 안 좋은 거지?’
아무런 대답 없이 나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테르디안으로 인해,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겨우 반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늦어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래서 이미 아이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무리 원작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벌써?’
대체 테르디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녀석에게 일어났을 법한 비극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영 불편했다.
그즈음, 테르디안의 입이 느리게 열렸다.
“오랜만이군.”
녀석의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목소리는 살짝 갈라져 있었다. 역시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동안 꽤 강해진 모양인데. 이전보다 훨씬 기운이 강해진 것이 느껴진다.”
테르디안이 내게 말했다. 그런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 그…… 혹시 무슨 일 있어요?”
나는 조심스레 테르디안에게 물었다. 그제야 녀석이 내가 왜 이러는지 알아채었는지, 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
“……걱정하지 마라. 내 동생은 아직 살아있으니까. 그러니 그런 표정 짓지 마.”
테르디안의 말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반이 살아있다니 다행이기는 했다.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닐 테니까. 하지만 ‘아직’이라고 덧붙인 것에 나는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설마 아이반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진 건가?’
하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테르디안이 진지한 눈으로 물었다.
“그동안 동생의 상태가 조금 안 좋아지기는 했다. 그래서 말인데, 수확은 좀 있었나?”
테르디안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지한 눈으로 이야기했다.
“수확이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건 아니에요.”
일단 나는 품에서 유리병 세 개를 꺼내었다. 유리병 안에서 내가 정성 들여 만든 투명한 색의 물약이 찰랑거렸다. 그리고 그것을 테르디안에게 건네어 주었다.
“이건…….”
테르디안이 조금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꽤 놀란 듯이 보이기는 하다만, 나는 이 약의 효능을 확실히 알려줄 수가 없었다.
“일단 셀루론 병의 치료제로 만든 거긴 합니다만, 완벽하지 않아요. 어떤 병의 치료제든 실제 복용을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임상 시험을 해야 하는데, 그 약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테르디안에게 약의 위험성에 대해 말했다. 셀루론 병의 치료제는 내가 여태 만들어온 치료약들과는 결이 많이 달랐다.
‘다른 병들은 내가 원작을 통해 알고 있었고, 그 치료제 또한 원작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셀루론 병 같은 경우에는 달랐다. 이 병은 내가 이 세계에 오고 난 후에 알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치료제 또한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반년간의 여정에서 알아낸 정보를 취합해 어찌어찌 만들기는 했지만.’
효과 자체가 검증되지 않은 약이다. 어떤 부작용이 존재할지, 애초에 약효가 들지조차 알 수 없다는 뜻.
“어쩌면 제 약으로 인해 동생분이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애당초 희귀병이니 어쩔 수 없겠지.”
테르디안은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일단 약은 매일 한 모금씩, 한 달간 투약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여 부작용 증세가 나타난다거나 하면 바로 저에게 데려오십시오.”
나는 진중한 눈으로 말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테르디안의 동생만큼은 꼭 지켜주고 싶었으니까.
그러자 일순, 테르디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들릴 듯 말 듯 작은 음성으로 말했다.
“……고맙다.”
이어 녀석은 빠르게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순간에 테르디안이 사라지고, 나 혼자 골목에 남았다.
‘부디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부작용을 최소화하여 만든 약이기는 하지만, 괜한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레비아탄으로부터 셀루론 병 치료제를 받은 테르디안은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그가 향하는 곳은 디에고교의 본단이 아니었다.
테르디안의 발길이 닿은 곳은 바로 네젠이었다. 오래전, 레비아탄이 찾아왔던 적이 있는 바로 그의 집이었다.
파앗-
집 앞에 도착한 테르디안은 곧바로 자신의 기운을 발산했다. 그러자 집 전체를 보호하고 있던 힘이 제 주인을 알아보고 알아서 비켜났다.
끼익-
테르디안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잠시 흩어졌던 그의 기운은 이내 집 전체를 다시 감싸기 시작했다.
테르디안은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오른 그가 가장 안쪽에 있는 방에 들어섰다.
그가 들어선 방 안에는 아직 어린 한 소년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핏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과 느린 숨소리. 테르디안은 제 동생의 안타까운 모습에 입술을 짓씹었다.
원래 아이반은 디에고교 본단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6사도가 만든 장치에 들어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반의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나빠지기만 했다. 6사도로부터 들려온 말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과 자신이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반을 인질로 나를 붙잡아두었으면서.’
그 대단하다는 디에고는 그의 절실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응답이 없었다. 테르디안은 깊은 절망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레비아탄이 가져올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리고 혹시나 아이반의 얼마 안 남은 생을 디에고교 본단에 갇혀 지내게 하고 싶지 않아 집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비록 아이반이 눈을 뜰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적어도 편안한 공간에서 떠나는 편이 나으리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테르디안의 손에는 레비아탄이 만들어준 치료제가 쥐어져 있었다. 아직 희망은 있었다.
테르디안은 죽은 듯이 누워있는 아이반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빠르게 레비아탄이 건네준 약의 병을 열었다. 이어 테르디안은 아이반이 약을 섭취할 수 있도록, 제 동생의 목을 살짝 일으켜주었다.
그리고 레벨로프가 준 약을 아이반에게 한 모금, 먹였다.
‘제발…….’
그러다 테르디안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레비아탄을 터무니없을 정도로 신뢰한다는 사실을.
분명 두 사람은 처음에 적으로 만났다. 아니, 사실 지금도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테르디안은 그를 해치질 못했고, 오히려 레비아탄에게 도움만 주었다.
그리고 그건 레비아탄도 마찬가지였다. 절체절명의 위기이자, 아이반을 잃을 뻔한 지금. 그는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아이반…….”
테르디안은 초조하게 자신의 동생을 살폈다. 약을 먹은 아이반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
아이반의 창백했던 안색에 서서히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테르디안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테르디안은 곧바로 아이반의 손을 붙잡았다.
“아이반!”
다음 순간, 아이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내 아이반의 눈꺼풀이 올라가며 몇 년 만에 소년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아직 초점을 쉬이 잡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눈앞에 있는 테르디안을 보고 있었다.
“형……아?”
이윽고 아이반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또한 몇 년 만에 듣게 되는 아이반의 음성이었다.
“아, 아이반.”
테르디안은 떨리는 목소리를 힘겹게 가다듬으며 제 동생을 불렀다. 그때, 아이반의 초점이 맞춰지며 제 형을 바라보았다.
“형…….”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테르디안은 아이반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런 그를 아이반은 빤히 올려보다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반대편 손을 힘겹게 끌어올렸다.
그리고 축축하게 젖어있는 제 형의 뺨을 닦아주었다.
“형, 왜 울어?”
테르디안은 그제야 알아채었다. 자신의 두 눈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대해.
“그야 기뻐서.”
테르디안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몰랐다.
머릿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던 엉켜있던 실타래 같은 것이 사라졌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