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신전으로 돌아온 이후, 지난 며칠간은 휴식을 취하며 신전 업무를 찬찬히 훑어봤다.
‘말이 휴식이지 사실 일한 시간이 더 많지만.’
그래도 나름 높이 쌓인 서류 더미들만 처리하면 되는 일들이었기에 길었던 여행에서 축적되어 있던 피로를 좀 풀 수는 있었다.
‘일단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이긴 하니까.’
다만 그렇다고 해서 신전 업무가 마냥 편했냐고 묻는다면……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이러다 쪄 죽겠어.’
현재 제국의 날씨는 한여름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설산에서 머물렀는데.
그때는 너무 추운 나머지 얼른 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극명히 대비되는 날씨라니.’
더웠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대에 살았던 때만큼 덥지는 않았다. 에어컨은 없지만, 얼음 정도는 쉽게 구할 수도 있었고.
‘신관복을 시원한 재질로 만들어둬서 다행이네.’
그리 생각하다 문득, 며칠 전에 만났던 테르디안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아이반은 괜찮으려나. 내가 만든 약이……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그간 세상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정보와 마지막으로 설산에서 얻은 약초까지 배합하여 만든 약이기는 했다.
그러니까 내가 계산한 확률에 의하면 99% 완치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 걱정이 된단 말이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콕콕.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서류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교주실 창문 밖에는 로벨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생명체가 있었다.
‘저건…….’
주먹만큼 작은 크기의 초록빛 새였다. 신기한 점이 있다면 초록빛의 새는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녀석은 마치 대단한 지능이라도 있는 양 나를 보며 콕콕, 창문을 두드리는 것이 꼭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서류를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 귀여운 초록빛 새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피로로-
새는 기분이 좋은지 소리를 내며 교주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어 내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귀엽다.”
나는 홀린 듯이 새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새가 나의 정면에 서서는 날갯짓을 했다. 이윽고 새에게서 연한 초록색의 빛이 흘러나왔다.
파아앗-
나는 놀라움에 입을 벌리고 말았다. 작은 새로부터 나온 초록빛은 점차 모이더니 허공에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
‘이건…….’
나는 허공에 적힌 초록빛의 글씨를 쭈욱 읽어 내려갔다.
[잘 지내시나요, 카이로스교 교주님. 저는 생명의 정령 휘니스입니다.]꽤 오래전, 바하누 왕국 근처에서 만났던 휘니스의 연락이었다. 초록빛 새는 휘니스의 전령이었고, 휘니스가 내게 갑작스럽게 연락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교주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를 도와주세요.]그 문구를 전부 읽자마자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등장했다.
[서브 퀘스트 발생!] [서브 퀘스트 ‘휘니스의 부탁’ 1.내용: 생명의 정령, 휘니스가 당신에게 급하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목표: 24시간 이내에 켄타우로스의 숲으로 향하기(본 퀘스트는 연계 퀘스트입니다.)
성공 시 : 다음 퀘스트 갱신
실패 시 : –
최종 성공 보상 : ???
[수락하시겠습니까?] [네/아니오]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와 우호 관계인 이들의 도움 요청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하여 곧바로 퀘스트를 수락했다.
– 이런, 휘니스에게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구나.
그와 동시에 어떻게 알았는지 여태 사라졌던 카이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 아직 여독이 다 풀리지 않았을 텐데도 기꺼이 도와주려 하다니…… 잘했다, 아이야.
‘그야 당연히 돕고 살아야죠.’
퀘스트를 수락하자마자 초록빛의 글씨가 바뀌었다. 이 역시 휘니스의 힘인 모양이다.
[도움을 주시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내일까지 켄타우로스의 숲 입구로 와주십시오. 퀴르가 교주님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퀴르라면 지난번, 나를 태워주었던 켄타우로스였다. 오랜만에 만나 보겠군.
내일까지 방문해달라고는 했지만 사실 당분간 내가 할 일이라고는 신전에서 서류를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당장 자리를 비워도 별 탈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알피, 나 잠깐 바하누에 다녀올게. 급한 일이 생겼어.”
[넵, 알겠습니다. 교주님! 혹시 기간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시나요?]“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 오래 걸릴 것 같으면 연락할게.”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이번 퀘스트는 홀로 떠날 생각이었다. 원작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퀘스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자인과 트로이를 데려가기도 좀 그렇고.’
따라오라고 하면 못 이긴 척 따라오겠지만…… 먼 여정에서 돌아온 지 고작 며칠밖에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두 녀석은 조금 더 휴식을 취하게 두고, 나는 홀로 떠날 준비를 했다.
– 혼자 가도 괜찮겠니?
그러자 카이로스가 걱정 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괜찮지 않을까요? 정 위험한 일이 생기면 그때 간부들을 불러도 늦지 않을 테니까요.’
나는 카이로스에게 그렇게 답하고는 곧장 포탈로 향했다. 일렁거리는 포탈을 넘어가며 바하누를 떠올렸다.
그러자 바하누의 교주실에 도착했다.
“교주님!!”
이윽고 경쾌하고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주실에서 나의 업무를 대행하던 아벨이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평소에도 사제 중 유독 내게 자주 연락을 해오던 아벨은 나의 방문에 아주 기쁜지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아, 바하누에 볼 일이 좀 생겨서.”
“그러세요? 어떤 일이신데요?”
“뭐, 밝힐 수는 없다.”
“끄응. 그렇군요.”
나는 아벨에게 대충 대꾸하며 인벤토리에서 로브를 꺼냈다. 그리고 후드까지 걸친 뒤 교주실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아벨이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너, 안 바쁘냐.”
“지금은 좀 한가해요! 모처럼 교주님이 방문하셨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냥 가만히 있어 주는 게 더 좋은데.
그래도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해주는 녀석을 내칠 수도 없으니, 그냥 녀석과 함께 걷기로 했다.
“그래서요. 어쩌구저쩌구…….”
나는 아벨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바하누 신전을 살펴보았다.
지난 반년 동안 아벨을 비롯한 간부들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바하누 신전은 이전보다 더 규모가 커진 상태였다.
건물 자체도 조금씩 증축을 한 상태였고, 사샤가 만든 조각상도 더 늘어나 있었다.
‘방문하는 신도들도 상당히 많고.’
아직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었기에 바하누 신전의 신도들은 꽤 많았다. 아벨과 함께 다니는 덕분에 신도들이 그에게 많은 인사를 해왔다.
‘얼굴을 가리길 잘했어.’
내가 얼굴을 드러내고 다녔다면 신도들에게 꽤 붙잡혀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아벨과 걷다가 신전 입구에 도달했을 즈음, 나는 아벨에게 작게 말했다.
“아벨, 바쁠 텐데 이제 들어가라. 나는 이만 가보마.”
“네? 조금만 더 있다가 가시지.”
“아니야. 할 일이 있어.”
“알겠어요, 교주님. 그럼 조심히 다녀오세요.”
아벨은 아쉬운 티를 역력히 드러내었지만, 그래도 나를 순순히 보내주었다. 나는 녀석에게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주고는 바하누 신전에서 벗어났다.
‘켄타우로스의 숲은 분명, 이쪽이었지.’
나는 바하누의 거리를 빠르게 거닐었다. 간간이 보이는 주변 풍경을 보니, 현 국왕인 아르헨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는 모양이다.
바하누의 국민들은 모두 표정이 밝았고, 거리도 깨끗하였으며, 낙후된 지역도 없어 보였으니까.
그렇게 걷다 보니 바하누의 국경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지체없이 켄타우로스의 숲을 향해 나아갔다.
***
쌔액, 쌔액.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아이의 숨소리에 테르디안은 옅게 미소했다.
레비아탄으로부터 받아온 셀루론 병의 치료제는 상당히 효과가 좋았다. 며칠 만에 아이반은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고, 여느 아이들처럼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까.
게다가 이번 일을 통해 얻게 된 변화는 아이반의 건강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테르디안을 힘들게 만들었던, 머릿속의 안개가 대부분 걷혔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몇 년간.’
테르디안은 생각에 잠겼다. 진한 안개가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당시.
그는 맹목적으로 디에고 신을 섬겼다.
그러나 안개가 걷힌 지금, 테르디안의 머릿속에서 ‘맹목적인 신앙’은 소멸하다시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어.’
디에고 신은 자신이 정말로 그를 필요로 할 때 응답해주지 않았으니까.
아이반의 고통이 커지고, 생명이 꺼져갈 때. 디에고는 테르디안의 기도에 응답조차 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디에고 신은 자신을 버렸다.
그것이 테르디안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취할 태도 또한 정해져 있었다.
‘……나 또한, 더 이상 필요 없다.’
테르디안 역시, 디에고를 버릴 차례였다.
***
머나먼 차원, 어딘가의 폐허.
거대한 크기의 검은 뱀이 느른하게 잠에서 깨어났다. 검은 뱀은 서서히 형체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두 다리가 생기고, 팔이 생겨나며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다.
허리까지 오는 긴 흑색의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 그리고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아름다운 외형이 드러났다.
검은 뱀이었던 남자, 디에고는 제 앞에 펼쳐진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가 잠에서 깨어난 이유는 자신의 사도 중 하나가 불순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디에고가 응시하는 화면에 바로 그 사도가 보였다.
어두컴컴한 방에 앉아있는 테르디안이었다.
“이 세계의 주인공…….”
디에고는 그를 보며 옅게 미소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제 사도에게 집착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지.’
지난번의 세상과는 달리, 이번 세상에서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제 너는 그다지 필요가 없구나.”
디에고는 바로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여겼다.
테르디안이 그에게 절실한 기도를 올리고, 얼마 안 있어 디에고는 마신 샤미르의 움직임을 읽었다.
‘그 멍청한 녀석이 멍청하게 움직여준 덕분이지.’
마신 샤미르는 카이로스교에 분노하여 자신의 자식들을 끊임없이 보내었다.
그중 상당수를 카이로스교에 의해 잃었고, 그런 와중에도 고위급의 자식들을 헤르페온 황궁으로 보낼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디에고는 그 사실을 알아챘고, 자신의 사도들과 카이로스교의 교주가 그것들을 처치할 것까지 읽었다.
하여, 그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 디에고는 조용히 샤미르를 찾아내었다.
상당수의 힘을 잃은 샤미르는 손쉽게 디에고에게 무너져 내렸다.
‘지난 세상에서는 카이로스와 힘이 비등했기에 샤미르를 흡수하는 건 불가능했지.’
괜히 움직였다가는 카이로스에게 역으로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샤미르의 전력 중 상당수가 사라졌고, 디에고를 견제할 카이로스 또한 여전히 미약했다.
‘이번 세상에서 카이로스는 아직도 내 발끝도 따라잡지 못했으니까.’
그렇기에 디에고는 손쉽게 샤미르를 흡수하였고, 샤미르의 힘까지 모두 손에 넣었다.
비록 그 힘을 모두 소화해내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려 지금에야 잠에서 깨어났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공은 나니까.”
디에고가 빙긋 미소했다. 이어 그는 응시하고 있던 화면으로 손을 뻗었다.
“더 이상 너는 내게 필요가 없구나.”
이윽고 디에고는 테르디안이 품고 있던 악신의 기운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