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바야르의 간곡한 애원에 카이로스도, 나도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작은 엘프야.”
강아지의 외견과는 어울리지 않는 진중한 카이로스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간신히 참아내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으려 했건만, 강아지의 외견을 한 그가 저 거대한 엘프를 ‘작은 엘프’라고 부르다니.
나는 속으로 카이로스를 원망하며,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애써 진정시켰다. 그러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바야르가 카이루스에게 흐느끼는 듯한 음성으로 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모든 일의 시작은 몇 시간 전, 잠시 외출하고 돌아온 저희 족장님으로부터였습니다.”
엘프족의 족장이라면 얼추 알고 있다. 원작에서도 몇 번 보았다.
‘분명 엘프족 족장은 상당한 힘을 가졌었지.’
원작에서 묘사되기로는 디에고교의 사도보다 강하다고 했다. 비록, 지금 이 세계는 디에고교의 힘이 상당해서 지금도 엘프족 족장이 사도보다 강할지는 미지수지만.
“외출에서 돌아온 족장님의 이마에는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검은 구슬’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항상 관대하시고, 저희의 안위만 생각하시던 족장님께서 돌변하셨습니다. 동족들을 공격하였죠.”
바야르는 설명을 이어갔다. 엘프족의 족장은 제 이마에 박힌 검은 구슬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과 같은 기운을 퍼트려 엘프들을 감염시켰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제지하는 엘프들 또한 처참히 죽였다고 한다.
“그로 인해 많은 동족이 죽었고, 지금도 죽어가는 중입니다. 저는 간신히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이야기를 마친 바야르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확실했다. 엘프족 족장의 이마에 박혀 있는 것은 진짜 ‘블랙아크’다.
진짜 ‘블랙아크’는 사용자의 힘을 강화해준다. 강화의 정도는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지만 블랙아크에는 그보다 큰 문제가 있었다. 단순히 장착된 자를 오염시키는 것뿐 아니라 악신의 기운 자체를 주변에 퍼트리고 전염시킬 수 있다는 것.
엘프는 자연에서 태어난 존재. 즉, 정령과 비슷한 부류였다. 자연에서부터 풍부한 마나를 얻을 수 있는 생명체들은 그에 반대되는 기운인 악신의 힘에 노출되면, 조금 전 바야르가 그랬던 것처럼 전신이 썩어들어간다.
‘엘프들도 그 사실을 잘 알 테지.’
바야르도 블랙아크를 보고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고 했으니.
‘문제는 족장에게 블랙아크를 박아넣은 게 누구냐는 건데.’
보통의 엘프들도 아는 것을 족장이 몰랐을 리는 없다. 더군다나 그것을 알고도 스스로 블랙아크를 받아들였을 리도 없고.
즉, 누군가가 엘프 족장에게 블랙아크를 집어넣은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디에고교의 사도 중 하나겠군.’
엘프족 족장의 힘이 강하다고 해도, 방심한 때를 노리거나, 다른 수를 쓴다면 가능할 테니.
“그러니 부디 저를, 아니 저희 엘프들을 도와주십시오!”
흉수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바야르가 다시 한번 호소했다. 그러자마자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서브 퀘스트 ‘휘니스의 부탁’ 3. 클리어!] [서브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서브 퀘스트 ‘휘니스의 부탁’ 4.내용: ‘블랙아크’로 인해 감염된 엘프족을 구원하십시오.
목표: 24시간 내로 엘프족 구원하기 (본 퀘스트는 연계 퀘스트입니다.)
최종 성공 보상 : ???
실패 시 : –
[수락하시겠습니까?] [네/아니오]다음 퀘스트의 흔적이 이어지지 않는 걸 보면 이번이 마지막 퀘스트임이 분명했다.
‘엘프족 구원…….’
블랙아크로 인해 벌어진 사태라면, 이미 상당수의 엘프가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아이야, 어떻게 하겠느냐?”
카이로스는 그런 바야르가 마음에 걸리는지 나를 바라보며 의사를 물었다.
‘그래도 해봐야지. 적어도 몇 명이나마 살릴 수 있다면.’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퀘스트를 수락했다. 그리고 카이로스를 향해 말했다.
“네. 돕겠습니다.”
그러자 바야르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아까 전보다는 한층 누그러진 시선이었다. 이어 근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이로스의 입까지 열렸다.
“그래. 나의 첫 번째 사도가 너희를 도울 것이란다.”
그 말에 엘프 바야르의 눈빛이 확연히 좋아졌다. 녀석은 따스한 시선으로 카이로스를 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카이로스님. 그리고 고맙다, 교주.”
나를 보는 엘프놈의 시선이 더 좋아지기는 했다만, 왜 카이로스한테는 존댓말을 하면서 나한테는 반말을 쓰는 것인지.
‘이 녀석 자체는 썩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미 도와주기로 했으니, 이 차별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쉰 후 바야르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는 겁니까?”
“아, 그건 걱정하지 말게. 내가 안내할 테니까.”
바야르가 눈물을 닦고,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곧바로 바야르의 뒤를 따랐다.
“부디 조심하세요, 교주님.”
“네,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스러운 표정의 휘니스에게 미소를 지어준 후 생명의 꽃에서 벗어났다.
“잘 다녀오게, 교주.”
퀴르와도 인사를 나누고, 켄타우로스들에게도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렇게 인사를 끝마치고 나자 카이로스가 다시금 빛으로 변모하였다.
“카이로스님께서는 동행하지 않으시는 건가?”
바야르가 대놓고 아쉬운 어투로 물었다. 나는 애써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도 모든 상황을 보고 계실 겁니다. 제게도 꾸준히 목소리가 들려오니까요.”
“……그래. 알겠다.”
바야르는 곧바로 내게 몸을 돌렸다. 나는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
“…….”
테르디안은 번쩍, 두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익숙한 천장이었다. 요즈음, 매일같이 머물던 집이었다.
그는 천천히 마지막 기억을 상기했다. 분명,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통증에 고통을 호소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된 것이로군.’
테르디안은 빠르게 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눈을 떴을 때, 머릿속에 남아있던 미약한 안개까지 모두 걷혀 있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테르디안은 전신에 흘렀던 ‘디에고 신의 기운’ 또한 사라진 것을 알아채었다.
즉, 여태껏 디에고로부터 당해 왔던 세뇌가 끝이 났으며, 디에고로부터 부여받았던 힘 또한 사라진 상태였다.
‘언젠가 이런 때가 오리라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울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분명 자신이 그를 버리기로 했다는 것을 알아챈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자라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는데.’
원래도 변덕이 심했던 신이라 그런 것일까. 그 변덕 덕분에 자신이 목숨을 구한 게 분명했다.
그때, 테르디안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뜨거운 햇빛을 느꼈다.
한여름인 날씨로 인해 상당히 더웠지만, 테르디안은 어째서인지 해방감을 느꼈다.
‘몇 년 만에 아주 머리가 깨끗해진 기분이군.’
그 덕분에 상쾌함과 거기서 오는 평온함까지 느껴졌다. 그러기를 잠시.
‘……이제부터는 무얼 해야 하는 것일까.’
저를 붙들고 있던 디에고의 목소리도, 그 힘도 사라졌으니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형? 벌써 일어났어?”
그때였다.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것인지, 아이반이 두 눈을 비비며 테르디안을 불렀다.
“왜 그러고 있어?”
테르디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을 하는 아이반을 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멍하니 앉아있는 형이 낯설게 느껴진 아이반은 고개를 갸웃했다.
테르디안은 그런 아이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뿐이었다.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아이반을 보호하는 것.
‘그리고…… 은혜를 갚아야겠군.’
테르디안은 아이반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이반, 우리 이사 가자.”
“이사? 갑자기?”
아이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싫지는 않은지 이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갑작스럽겠지만, 여기보다 더 안전하고 좋은 곳이야.”
“이사 가면 친구들도 있어?”
아이반의 순수한 물음에 테르디안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물론이지.”
그곳에는, 아이반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도 있을 테니까.
“거기가 어딘데?”
아이반의 질문에 테르디안은 환히 미소했다.
“로벨.”
홀든 영지에 있는 로벨. 테르디안은 이제부터 그곳에서 생활하기로 결심했다.
***
엘프의 숲은 인간들의 눈을 피해 아주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
광활한 숲, 숲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냇가, 언제나 청명한 하늘, 풍부한 먹거리까지.
엘프들의 숲은 본디 켄타우로스의 숲만큼이나 아름다우면서, 자연의 생명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이었다.
“아아악-!”
하지만 지금은 엘프들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지는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늘 푸르렀던 숲에는 엘프들의 피가 얼룩져 있었고, 곳곳에는 엘프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엘프의 숲을 오염시킨 주범, 엘프족 족장은 숲 한가운데에 우직하게 서 있었다.
“크아아악!”
그는 깨질듯한 두통과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포효했다. 검게 물들어 버린 그의 눈에서는 검은 눈물까지 흘렀다.
아무리 이마에 박혀 있는 블랙아크를 빼내려고 해도 빠지지 않았다.
하다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보려고 했지만, 블랙아크의 힘이 그것 또한 가로막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포효뿐이었다.
“크아아악!”
고통에 찬 포효가 엘프의 숲에 울렸다.
“시끄럽군.”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디에고교의 7사도 라윈은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바로 엘프족 족장에게 블랙아크를 심은 범인이었다.
라윈은 공중을 부유한 채 자신의 몸을 은신한 상태였다. 그리고 여태까지 엘프족 족장의 상태를 관찰하고 있었다.
‘계획이 틀어지기는 했군.’
라윈은 원래 진짜 블랙아크를 이용하여 엘프족 족장에게 ‘검은 나비의 저주’를 걸려고 했었다.
모처럼 숲에서 벗어나 있던 엘프족 족장이 방심했을 때. 라윈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족장은 그 낌새를 알아차렸다.
‘내 힘을 전부 사용하면 상대할 수는 있기는 했을 테지만.’
괜히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았기에, 라윈은 세뇌를 포기했다. 제압도 힘들 터이니, 그냥 블랙아크를 욱여넣어 버렸다.
이번 일은 따로 명령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라윈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평소라면 그러지 않았을 테지만, 요즘 인생이 그다지 재미없었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좋은 구경을 했군.’
블랙아크 하나를 아깝게 날리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은 구경이었다.
‘이제 족장이 가진 블랙아크의 힘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니.’
시간이 꽤 지난 만큼 블랙아크의 효력이 떨어졌다. 그리고 족장은 정신을 차렸고,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차렸다.
엘프 족장이 자괴감에 빠진 모습이 재밌었던 것도 잠시였고, 이제는 흥미가 다 떨어져 버렸다.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 라윈이 이제 엘프의 숲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였다.
파앗-
하지만 그 순간.
엘프의 숲 초입에서 밝은 빛이 퍼졌다.
이어서 느껴지는 맑고 청명한 기운까지.
그와 동시에 라윈의 시선이 빛을 향해 돌아갔다.
‘이 기운은……!’
그의 입매에 반가운 미소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