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그렇게 대련이 끝난 후. 나와 간부들은 모두 신전의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테르디안을 소개하기 전, 내가 미리 제이콥에게 간부들과 다 함께 식사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해둔 상태였다.
그 덕분에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각종 요리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요리모를 쓰고 손에는 스테이크 배분용 나이프와 포크를 든 제이콥이 푸근한 얼굴로 우리에게 인사했다.
“어서들 오십시오.”
“고마워, 제이콥.”
나는 제이콥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널따란 식탁의 상석에 앉았다. 그리고 테르디안을 내 근처에 앉게 했다.
“여기 앉아요.”
이제 카이로스교의 식구가 되었다고는 하나, 낯선 이들과 식사하는 것은 어색할 테니까. 다행히 테르디안은 군말 없이 내 바로 옆자리에 착석했다.
자인과 트로이가 언제나 그러했듯 근방에 앉았고, 할머니를 비롯한 아이들과 간부들이 각각 착석했다.
“다들 맛있게 들어요. 훈련해서 피곤할 텐데.”
“네, 교주님!”
나는 거창하게 인사나 기도 같은 것은 하지 않고 곧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제이콥이 준비해준 맛있는 음식을 다 같이 나눠 먹으니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그리고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신전에서 놀고 있던 아이반까지 제 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참석했다.
나는 아이반을 위해 작은 의자를 테르디안 옆에 마련해 주었고, 형제는 맛있게 식사를 했다.
“트로이, 체하겠다. 천천히 먹어.”
가볍게 샐러드 위주로 식사를 이어가고 있는데 문득 트로이가 시선에 들어왔다. 녀석은 걸신이 들린 것처럼 눈앞에 보이는 음식을 빠르게 해치우고 있었다.
“냅두세요. 이 녀석이 이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자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해탈의 경지에 오른 듯한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나.’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트로이를 보았다. 녀석은 각종 음식을 와구와구 섭취하면서 몹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너만 행복하면 됐다.”
나의 말에 입 안을 음식으로 가득 채운 트로이가 입을 여는 대신 눈매까지 곱게 접으며 식사를 이어갔다. 그렇게 우리의 식사 시간은 꽤 왁자지껄하게 이어져갔다.
한바탕 이어진 식사 이후 우리는 가벼운 술자리를 시작했다. 사실 딱히 술자리를 가질 생각이 없었는데, 모처럼 신입이 들어왔다며 트로이가 술을 꺼내 오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렇게 저녁 식사 시간이 자연스럽게 길어지게 되었고, 같이 자리에 있던 아이반은 어느덧 잠이 들고 말았다.
“알피, 아이반을 부탁할게.”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알피어스에게 아이반을 침대로 옮겨줄 것을 부탁했다.
“네, 교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간부 숙소에 재우겠습니다.”
“그래. 체시, 사샤. 너희들도 먼저 가서 쉬렴.”
“네, 네! 교주님.”
“네에.”
아무리 아이들이 뛰어난 힘을 가진 간부들이라고는 해도, 함께 술자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여 아이반과 아이들을 내보냈다.
그렇게 식당에는 나를 비롯한 어른 간부들만이 남게 되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죠!”
제이콥은 아이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창고에서 술을 잔뜩 들고 나타났다.
“설마 다들 여기 있는 걸 다 마실 생각은 아니겠지…….”
나는 식당 내에 쌓여만 가는 술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나 간부들의 표정은 다들 상당히 밝았다.
‘설마…….’
그리고 나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간부들은 술을 잔뜩 마셔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정숙하던 이들은 물론이고, 할머니까지 술을 쉴 새 없이 들이키셨다.
‘이거 괜찮은 거 맞나…….’
나는 초조하게 그들을 보다가 이내 체념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간부들이 술주정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간부들은 본인이 취기가 올랐다 싶으면 알아서 식당을 떠나 본인의 숙소로 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술자리에 남은 이는 나와 테르디안, 자인과 트로이 그리고 할머니뿐이었다.
예상외인 것은 테르디안이 생각보다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이었다. 녀석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지는 술을 마셨다. 자인과 트로이도 오늘은 조절하였는지 평소보다 덜 취한 듯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만독불침 때문에 쉬이 취하지 않았다.
“할머니도 상당히 술을 잘 드시네요.”
그리고 할머니도 상당한 양의 술을 드셨는데도 멀쩡해 보였다. 하여 나는 놀란 눈으로 할머니께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씨익 미소했다.
“한창때는 여태 마신 것의 두 배가량은 더 마셨단다.”
그 말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마신 양만 해도 어지간한 술집에서 귀빈이 되지 않을까 싶은 양인데 두 배라고? 소드마스터는 다른 것에도 뛰어날 수밖에 없는 건가?
그렇게 술자리가 더 이어져갔다. 약 30분가량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
자인과 트로이의 모습이 흐트러지는 게 보였다. 두 녀석의 눈이 명백히 풀려 있었는데, 자인의 상태가 평소보다 더 심해 보였다.
‘아무래도 제 누나 때문인가.’
자인은 연거푸 혼자 술을 따르고, 마셔대었다. 오늘 디에고교의 성녀와 예상치 못하게 만났으니, 그런 모양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힘든 일이 있었나 보구나, 자인.”
그런 자인을 할머니도 눈치채셨는지, 측은한 눈으로 자인을 보았다. 그러자 자인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할머니를 보며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말했다.
“다, 단장님…….”
할머니는 간부들 사이에서 성기사단장, 즉 단장으로 통용되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니? 고민이 있다면 편히 말해 보렴.”
할머니의 다정한 말 때문일까. 자인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 사실 저는 디에고교가 끔찍하게도 싫습니다. 디에고교가 제 가족들을 빼앗아 갔거든요.”
나는 자인의 과거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이미 이전에도 들어서 알고 있기도 했고, 이 녀석의 입을 막아줘야 하나 싶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할머니뿐만이 아니라 얼마 전까지 디에고교의 사도였던 녀석도 있으니 말이다.
‘뭐, 이제는 가족이나 다름없기는 하지만…….’
그리 생각하는 사이, 자인은 제 이야기를 남김없이 토로했다.
“그리고 지금 저희 누나는…… 디에고교의 성녀가 되었어요.”
이어지는 말에 할머니뿐만이 아니라 테르디안까지 조금 놀란 듯이 보였다. 조용히 술을 마시던 테르디안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으니까.
“오늘 저희 신전에 찾아온 누나를 갑작스럽게 마주치게 되었는데, 되게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자인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제 이야기를 이어갔다.
“누나가 디에고교의 세뇌를 받아서 그런지 안하무인이 되어서요. 주인님과 카이로스님께도 죄송하고…….”
자인이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는 그런 자인을 바라보다가 이내 어깨를 두드려주며 손수건을 건네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많이 힘들었겠구나, 자인.”
“네, 네에. 저 정말 힘들었어요…….”
“어려서부터 그런 일들을 겪었음에도 이렇게 자라다니, 장하구나.”
할머니의 다독임에 자인의 울음이 더욱 거세어졌다. 할머니는 그런 자인을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오늘 누이를 마주친 것도 상당히 놀랐겠구나. 하지만 자인, 아이야. 언젠가는…… 네 누이도 올곧은 신을 만나 돌아오게 될 것이란다.”
“흐윽, 정말요?”
“그래. 카이로스신께서 우리를 굽어살피고 있으시니까.”
할머니는 그리 이야기하며 나를 힐끔 보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 또한 언제든지 자인의 누나를 되찾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
“그러니 오늘은 울려무나. 때론 이렇게 우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털어버릴 수 있으니 말이야.”
할머니의 말에 자인은 더욱 거세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자인은 감정이 정리되었는지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감사해요, 단장님.”
“뭘. 이 정도는 언제든지 해줄 수 있단다.”
자인의 감정이 나아졌다니 다행이기는 한데, 어째 테르디안이 조금 불편해 보였다.
“테르디안, 당신이 미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테르디안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었다. 어울리지 않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면서 괜히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테르디안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나 또한 디에고교의 소속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압니다. 하나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래. 그렇기는 하지…….”
테르디안은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자인과 트로이, 할머니를 차례대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결연한 눈으로 입을 뗐다.
“사실 나도 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테르디안이 자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자인이 조금 놀란 눈으로 테르디안을 보았다.
“그게 무슨…….”
“나는 몇 년 전, 디에고의 속삭임을 들었다. 그 당시 불치병에 걸린 아이반을 치료하고 싶어 전전긍긍하고 있었지. 그때, 디에고가 아이반을 치료해주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나를 꾀어냈다.”
테르디안은 담담하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내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나는 디에고를 선택했고, 얼마 안 있어 디에고에게 세뇌를 당했다.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해야만 했고, 머릿속에는 희뿌연 안개가 끼어있는 듯한 감각을 늘 느껴야만 했지.”
테르디안의 이야기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테르디안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야만 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후회하고 있지. 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바쳤음에도 아이반은 끝내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반의 생명에 위험이 생겼을 때…… 나를 도와준 게 바로 레비아탄이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조금 민망해졌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감사를 표한다, 교주.”
“아, 아닙니다.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
“아니다. 내가 디에고의 세뇌를 벗어날 수 있게 된 것도, 네 덕이나 다름없으니까. 어째서인지 너와 있을 때면 머리가 맑았고, 세뇌에서 벗어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으니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테르디안의 시선이 이내 자인에게로 돌아갔다.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네 누나 또한, 원치 않음에도 디에고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즉, 언젠가 다시 나처럼 원래대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그 말은 즉, 희망을 놓지 말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아아, 네. 그래요. 그렇겠군요.”
자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녀석의 입매가 올라갔고, 이전만큼 밝은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테르디안도 그 모습을 보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가장 친해지지 못할 것 같은 두 사람이었는데…….’
지금 모습은 그야말로 단순한 직장 동료가 아닌, 같은 고통을 겪었던 동료가 된 것만 같았다.
한때는 적대적이었던 두 사람이 어느새 함께 미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조금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