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멀리서 느껴지는 이 힘은 분명 ‘블랙아크’의 기운이었다.
‘하필이면……!’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었다. 하필이면 해가 저물어가는 시각, 그것도 블랙아크의 힘까지 느껴지는 몬스터 무리가 벨세스 마을로 향할 줄이야.
‘어째서지?’
가장 먼저 든 것은 의심이 섞인 의문이었다. 블랙아크가 깃든 몬스터가 어째서 벨세스 마을을 위협하는 것인지.
‘단순히 블랙아크를 실험하기 위해서인가. 그게 아니라면…….’
디에고교 내에서 ‘홀든가’를 음해하기 위한 짓인가.
가능성만 놓고 봤을 때는 전자일 확률이 높았다. 비록 카이로스교의 본단이 영지에 있긴 하지만 홀든 가문이 디에고교에 책잡힐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일원이 모두 카이로스교 소속이 되었다는 것뿐이니까.
‘디에고교가 내 정체를 알지 않는 이상은 굳이 먼저 시비를 걸어올 일은 없어.’
더군다나 만약 놈들에게 홀든 가문의 둘째가 카이로스교의 교주라는 비밀을 들켰다면 몬스터들을 벨세스 마을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곳, 별장으로 보냈을 것이다.
“우선 어머니와 형님께 알리세요.”
생각을 마친 나는 곧바로 기사들에게 전했다.
***
얼마 안 있어, 별장 내의 응접실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상석에 앉은 어머니와 세베누스. 소집으로 달려온 기사단의 간부들과 이번 휴가에서 호위 총책임을 맡은 부기사단장까지 모여 넓은 응접실이 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시작하지.”
“예, 백작님.”
참석할 인원이 전부 모인 것을 확인한 어머니가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우리는 부기사단장을 통해서 이번 벨세스 마을로 접근하는 몬스터 무리가 어떤 종류인지 듣게 되었다.
“보고에 따르면, 마을로 접근 중인 건 덩치가 유난히 큰 트롤들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대형 트롤이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트롤 중 유독 덩치가 큰 개체들을 바로 대형 트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대형 트롤의 크기는 대략 5미터가량 되었다. 더군다나 트롤은 하나하나마다 힘이 상당했다.
‘대형 트롤 한 마리만 해도 마을 하나를 파괴하고도 남을 힘을 가졌으니까.’
한데 그만한 힘을 가진 대형 트롤이 한 마리도 아닌, 무려 다섯 마리가 벨세스 마을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물론, 트롤이란 놈들이 원래도 포악한 놈들이기는 한데…….’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블랙아크’가 모조품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었다.
디에고교 내에서도 귀중한 진품 ‘블랙아크’를 고작 대형 트롤들한테 사용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무려 다섯 개나 되는 숫자를.
물론, 인어 때처럼 우두머리에게 진품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 인어 때와는 달리, 대형 트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대형 트롤이 강하다고는 해도 그 거대한 덩치에 비해 내구성은 떨어진다.
‘전쟁 때 방패로 사용할 가치도 없다는 뜻이지.’
그러니 모조품 블랙아크로 누군가가 장난질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누구인지는 예측이 잘 가지 않는군.’
더군다나 지금 이 부분은 당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전력.’
현재 우리가 가진 전력으로 대형 트롤 다섯 마리를 상대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물론, 이 가정은 어디까지나 내가 빠졌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의 나는, 카이로스교 교주 레비아탄이 아닌 홀든 백작가의 둘째 아들 레벨로프 홀든이니 말이다.
“자세히 보고하도록.”
긴급 회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을 때. 어머니가 말했다.
이번 사태를 접한 후, 어머니는 곧바로 ‘홀든 백작’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예. 다행히도 트롤들의 걸음이 느린 편입니다. 놈들의 이동속도로 봤을 때 저희에게 20분 정도의 대비 시간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부기사단장 스미스가 보고했다.
최근, 마탑에서는 제법 먼 거리에서도 작동하는 통신구를 개발했다. 할머니와 대마법사의 친분 덕분에 상용화 전, 홀든 가문에서는 통신구를 미리 사용해볼 기회를 얻었고.
‘전쟁에서 통신구의 유무는 큰 차이를 만들겠지. 역시 마탑과는 계속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어.’
이런 상황까지 꿈에서 본 것은 아닐 테지만, 결과적으로 마탑의 덕을 크게 보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사건으로 실시했던 훈련도 기사들이 잘 따라와 준 모양이네. 역시 어머니이신가.’
여하튼 벨세스 마을의 중앙탑에서 주변을 쭉 둘러보던 기사 중 하나가 기이한 움직임을 발견했고, 그는 기사단에 보급된 강화 망원경으로 그 원인이 대형 트롤이란 것을 특정했다.
게다가 그에 그치지 않고 대형 트롤의 이동속도를 계산하여 접근에 남은 시간까지 도출해낸 것이다. 그저 평화에 절어 있었다면 할 수 없었을 일.
‘그나저나 남은 시간이 고작 20분이라.’
상당히 촉박한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벨세스 마을 주변의 마을 혹은 도시도 꽤 거리가 멀었다.
즉, 지원이 없다는 뜻이다. 설령 지원이 온다고 해도 이미 상황이 다 끝난 뒤에나 도착할 게 뻔했다.
“……우선 가장 가까운 도시에 지원 요청하도록. 그리고 우리는 지원이 도착하기 전까지 최대한 버틴다.”
“예, 가주님.”
어머니의 명령에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바빠진 것은 기사들뿐이 아니었다.
“장비를 단단히 챙기거라.”
“예, 어머니.”
어머니와 세베누스 역시 신중한 눈빛으로 갑옷과 무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그저 명령만 내린 채 결과를 지켜보는 무책임한 이들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어머니, 세베누스, 그리고 기사단 모두가 출정 준비를 시작하였을 때.
상황을 살펴보던 나는 홀로 자신의 무기를 점검하던 어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어머니.”
“아, 레비.”
어머니는 미소로 나를 맞이했지만, 걱정이 역력한 눈빛이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 미리 인벤토리에서 꺼내둔 치유 물약을 건네었다.
“이거 드세요. 교주님께서 만드신 특제 치유 물약이에요. 드시면 피로가 가실 거예요.”
“그래. 고맙구나.”
어머니는 내가 건넨 치유 물약을 단숨에 들이켰다.
“정말 효과가 좋네. 바로 피로가 사라진 느낌이야.”
“그래요?”
“그럼. 나중에 교주님께 고맙다고 전해드리렴.”
“네. 그럴게요.”
물약 섭취 후 어머니는 잠시간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지한 눈으로 이야기했다.
“레비, 너는 별장에 남아있으렴.”
역시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말에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어머니. 저도 함께 가겠어요.”
“안 돼, 레비. 위험해.”
“하지만-”
“이번에는 어머니의 말을 듣거라, 레비.”
그때, 근방에 있었는지 세베누스가 다가와 나를 만류했다.
“이번 일은, 정말 위험하단다. 네가 할머니로부터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말이다.”
세베누스는 완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날 내가 아니었다.
“어머니, 형님.”
나는 두 사람을 보며 결연한 눈으로 이야기했다.
“저는 이제 카이로스교의 사제입니다.”
“하지만 레비-”
세베누스가 무어라 이야기하려 했지만 내가 그의 말을 끊었다.
“형님. 형님께서는 제가 아직도 불치병에 걸린 동생으로 보이시나요?”
“아니, 그건 아니다. 나는 그저…….”
“그렇다면 어머니. 어머니께서도 제가 아직 유약하게만 느껴지시나요?”
“……아니란다, 레비.”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어머니와 세베누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져줄 수 없는 문제였다.
“네. 저는 이제 병도 다 나았고, 유약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카이로스님을 만나 그분께 성력도 받았습니다.”
어머니와 세베누스는 나를 그저 바라만 보았다. 나는 말을 이었다.
“하여 저는 이번 전투에서 어머니와 형님, 그리고 기사들을 도울 생각입니다. 제 힘으로 치유든 뭐든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테니까요.”
나의 말에 두 사람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이내 어머니와 세베누스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어머니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는 걱정이 잔뜩 섞인 어조로 말했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알겠다. 레비.”
어머니의 표정을 보건대 못내 허락하시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레비, 이 어미에게 분명히 약속해주렴. 절대 위험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네. 어머니. 그러겠습니다.”
비록 어머니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긴 했지만, 당장은 그리 대답했다.
“그럼 함께 가자꾸나.”
나는 어머니와 세베누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분위기가 심상치 않구나.
‘네. 아무래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으니까요.’
나는 카이로스에게 대답하며 주변을 살폈다. 현재 별장 밖에서는 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벨세스 마을에 대형 트롤들이 도착하기 전, 어떻게든 전투 준비를 끝내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어머니와 세베누스가 그런 기사들을 향해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어머니와 세베누스, 그리고 나와 기사단 일부가 먼저 말을 타고 벨세스 마을로 향할 것이다.
‘우선 선발대가 먼저 대형 트롤을 막기로 했으니까.’
더군다나 마차를 타고 별장에 왔기 때문에 기사들이 탈 말의 수가 부족했다. 계획에 없던 내가 전투에 참전하게 되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그래봤자 몇 마리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사실상 선발대로 먼저 벨세스 마을에 향하는 이들이 전투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 그나저나 아이야.
‘네, 카이로스님.’
– 지금 그 모습으로 전면에 나설 생각인 것이냐.
‘그건 고민 중이에요. 언젠가 어머니와 세베누스에게도 제 정체를 이야기할 생각이기는 했으니까요.’
– 흐음. 하지만 당장 밝힐 생각은 아니었을 테고.
‘네. 이제 저를 너무 잘 아시네요.’
– 하하, 그래도 내가 너와 함께한 세월이 어느덧 1년 반을 넘었으니 말이다.
‘네. 저도 당장 밝히고 싶지 않고, 이번 전투에서도 되도록 밝힐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 하지만?
‘혹여 어머니와 세베누스가 위험에 빠지는 일이 생긴다면, 감수해야죠.’
– 가족들에게 애정이 생긴 모양이구나. 보기 좋단다.
카이로스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애정, 애정이라.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가족들이 소중해진 건 언제부터일까.
‘글쎄요. 저는 조금 이상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요. 제 가족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 그러냐.
‘어느 순간부터 진짜 레벨로프 홀든의 기억이 불쑥불쑥 떠오르곤 하거든요. 마치 제가 정말 레벨로프 홀든인 것처럼.’
– 혼란스러운 모양이구나.
‘네. 좀 혼란스러워요.’
– 그래. 이해한다. 하나 우선은 눈앞에 있는 적부터 생각하거라.
‘네. 그래야죠.’
카이로스와 대화를 마칠 즈음. 내 앞으로 기사 한 명이 말을 끌고 왔다.
“도련님이 타실 말입니다.”
“아, 고마워.”
“잠깐, 레비에게 말은…….”
세베누스가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갈색 말에 올라탔다. 그러자 말 위에서 나를 보며 놀라고 있는 어머니와 세베누스의 모습이 보였다.
“레비, 언제 승마를 배운 거니?”
어머니가 놀라면서도 기뻐 보이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아. 신전에서 배웠어요. 교주님께.”
“그랬구나. 잘했다.”
그리고 세베누스도 조금 놀란 눈으로 말했다.
“내 말을 함께 타고 갈까 했었는데.”
“……하, 하하.”
세베누스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만일 녀석과 함께 말을 탔다면 진짜 싫었을 것 같다.
“이제 출발하자꾸나.”
“네,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뒤를 따라 말을 몰았다. 어머니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와 세베누스 뒤로 수십의 기사들이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수많은 말이 움직이는 소리는 그야말로 굉음이나 다름없었다.
벨세스 마을로 향하는 길은 산에서 내려가는 것이었기에 승마 솜씨가 없다면 위험한 길이었다.
하나 우리 기사단에서 낙마하는 인원은 없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그로 인해 우리는 빠른 속도로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벨세스 산 입구에는 약 백 명이 좀 넘는 숫자의 벨세스 마을 주민들이 대피해 있었다.
벨세스 마을로 접근 중인 트롤 무리를 발견하자마자 우리에게 보고한 기사들이 주민들을 대피시켰기 때문이다.
“배, 백작님! 부디 몬스터들을 내쫓아 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기사님들!”
주민들은 우리를 마지막 희망이라고 여겨 연신 부탁했다.
“걱정 마시게!”
어머니는 주민들에게 인사한 후 다시금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우리는 벨세스 마을에 도달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