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세베누스의 시선에도 자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상인 짬바가 나오는군.
“치료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으나, 말로네 병은 말로네 벌레의 시체가 환자의 몸에서 완전히 배출되어야만 완치가 됩니다.”
“그렇다는 건…….”
“예상하신 대로, 말로네 벌레가 배출되기 전까지 저희 신전을 찾아주셔야 합니다. 가급적 자주요.”
세베누스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입술까지 질끈 깨무는 그를 보다가 내가 물었다.
“자주라는 건, 어느 정도를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으음, 되도록 매일 오시는 편이 좋습니다.”
이에 세베누스가 주먹까지 세게 쥐고 말했다.
“매일?”
“네. 그렇습니다.”
자인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세베누스는 그를 노려보다가 마지못해 주먹에서 힘을 풀었다. 일단 더 지켜보려는 것 같았다.
그러자 자인이 제 옷을 뒤지며 말했다.
“그럼 치료를 시작하죠.”
자인이 품에서 꺼낸 것은 파스렐 독이 든 유리병. 그러나 세베누스는 그것이 뭔지 모르는 눈치였다. 다행이군.
“그건 뭡니까?”
“치료제입니다. 레벨로프님, 드시지요.”
자인이 내게 내민 유리병에는 미리 준비한 대로 딱 1회분의 파스렐 독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받아 들자, 손목이 붙잡혔다.
“형님?”
하나 세베누스의 시선은 내가 아닌 자인을 향해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 줄 알고 마시라는 거지?”
어째 말까지 짧아졌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치료제라고.”
세베누스의 예민한 태도에 자인도 약간 짜증이 난 모양이다. 그래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덧붙였다.
“저는 이미 영주님께 모든 부분을 증명해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원하시지 않는다면, 치료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인의 태도는 ‘어차피 난 손해 보는 거 없으니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 모습에 세베누스가 내게서 손을 떼었다. 더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세베누스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무감한 듯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나를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도 가족이다, 이거지.
“걱정하지 마세요, 형님.”
나는 그에게 애써 미소를 보이고는 파스렐 독을 마셨다.
독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자, 뜨거운 것이 역류해왔다.
“쿨럭!”
기침과 함께 피가 흘렀다. 그래도 처음 파스렐 독을 섭취했을 때보다는 각혈의 양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기껏해야 입가에서 조금 흐를 정도?
그간 독을 제때 섭취한 보람이 있구만.
그러나 기뻐하는 나와 달리.
“레비!”
피를 본 세베누스는 화들짝 놀란 상태였다. 곁눈질로 본 자인도 조금 놀란 눈치긴 하지만, 내가 미리 언질을 해둔 상태였기에 크게 당황하진 않았다.
세베누스가 떨리는 손으로 다급히 제 손수건을 내게 내밀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인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영문을 알지 못하는 세베누스가 자인의 멱살을 잡았다.
아이고, 이러다 내 노예가 골로 가겠네!
나는 다급히 피를 닦아내고는 세베누스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그의 팔을 붙잡고 외쳤다.
“형님, 저는 괜찮습니다!”
당장이라도 자인을 때리려는 듯 주먹을 치켜들던 세베누스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이 조금 커졌다.
“레비? 정말 괜찮은 것이냐?”
“네. 정말입니다. 보십시오. 멀쩡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전보다 피로가 풀린 기분입니다.”
연기력을 발휘하여, 나는 온전히 건강하다는 것을 내세웠다. 그제야 세베누스가 자인의 멱살을 놔주었다.
“하아, 놀랐다.”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 내가 그였어도 놀랐을 거다. 나도 아가, 네가 처음 독을 먹었을 때 놀라지 않았느냐?
‘하하…… 죄송해요.’
응접실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세베누스에게 멱살이 붙잡혔던 자인이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큼, 정 제가 못 미더우시다면 주치의를 통해 검사해보십시오. 이전보다 레벨로프님의 몸이 건강해져 있을 테니까요.”
어느새 자인은 여유를 되찾은 상태였지만, 세베누스는 여전히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레비에게 뭘 먹인 거지? 독인가?”
그러자 자인이 싱긋 웃었다.
“그것까지는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뭐?”
“음. 영업 기밀이라고 할까요?”
“하…… 명색이 종교 지도자가, 탐욕에 눈이 먼 것인가?”
세베누스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인아, 그렇게까지 도발할 필요가 있냐.
뭐, 멱살까지 잡힌 마당에 짜증이 나서 그런 걸 테지만.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레벨로프님의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이 난다면, 말로네 병의 치료법을 세상에 공표할 생각입니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이 병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말이죠.”
그럼, 그럼. 그것이 내 뜻이니까.
하나 세베누스의 눈에는 여전히 짜증이 깃들어있었다.
“그 말이 어째 레비로 실험을 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아. 그럴 수도 있겠군. 이건 내 실책이다. 나는 다급히 세베누스를 불렀다.
“형님. 저는 괜찮습니다. 이용을 당하든, 실험을 당하든. 얼른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을 뿐이니까요.”
비록 세베누스가 카이로스교를 싫어하게 된 것 같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세베누스가 이렇게까지 나를 감쌀 줄은 예상 못 했으니까.
‘레벨로프’의 기억 속에서도 세베누스가 친근했던 적은 아주 어릴 적 이후로 없었으니.
우리 사이 안 좋은 거 아니었냐?
“네가 정 그렇다면…… 알겠다.”
다행히 내 말에 세베누스의 표정이 좀 풀어졌다.
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자, 세베누스가 자인에게 물었다.
“오늘 치료는 끝입니까?”
다시 존대로 돌아왔네. 이 녀석도 참.
“네. 그렇습니다.”
자인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다음 치료는, 레비의 몸 상태가 나아진 것을 확인하고 결정하도록 하죠. 가자, 레비.”
세베누스가 나를 억지로 응접실 밖으로 밀어내었다. 덕분에 나는 자인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응접실에서 벗어났다.
세베누스는 마차에 탈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이 열린 건, 마차가 움직이고 난 뒤였다.
“레비, 정말 괜찮은 것이냐?”
세베누스가 한숨 같은 어조로 물었다.
“네. 정말입니다. 이전보다 숨을 쉬기도 편해졌습니다.”
물론, 내 몸 상태는 순전히 ‘파스렐 독’만으로 나아진 건 아니었다.
카이로스의 성력이 이전보다 강해진 덕분이 제일 컸고, 파나틱과의 체력 단련 성과도 있었다.
여하튼 저택에 가서 주치의로부터 피 검사를 받게 되면, ‘말로네 병’의 진행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때 정확한 판단이 될 것이다.
“그래, 알겠다.”
세베누스는 이후로 입을 꾹 다물었다.
***
마차가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세베누스는 주치의부터 찾았다. 나는 폴의 인사를 받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곧장 침대에 드러누웠다.
홀든가의 주치의인 프랑 박사가 도착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걸릴 터. 그동안 방에서 뒹굴뒹굴하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주인님.]편히 몸을 뉘자 자인의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지?”
[주인님의 형님분 말입니다. 아까 형님분께 잡힌 멱살 때문에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화가 난다 한들, 기사가 이래도 되는 겁니까?]자인이 구시렁거렸다. 대충 듣자 하니, 산재 처리를 해달란 거나 다름없었다.
“어휴. 알았다. 수당 더 챙겨줄게.”
[역시 주인님이십니다!]직전까지 온갖 아픈 척을 다 하던 녀석이 돈 얘기가 나오자마자 또랑또랑해졌다.
녀석과 통신을 끊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이 돈미새 새끼. 무슨 일만 하면 돈, 돈, 돈타령이지, 아주.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가진 재산이 많다는 점이었다. ‘레벨로프’의 개인 재산은 상당했으니까.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기에 용돈이란 용돈은 모두 모아둔 덕에 자산은 풍족했다.
굳이 따지자면 카이로스교에 있는 재산보다 많을 정도로.
뭐, 그래도 명문가의 둘째 자식이니 이 정도는 있어야지.
똑똑.
그때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세베누스와 주치의인 프랑 박사가 들어왔다. 푸근한 인상의 프랑 박사는 뛰어오기라도 했는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게다가 오는 길에 세베누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지, 내 곁으로 오자마자 나를 앉히고는 인사를 한 뒤 제 할 일을 시작했다.
“그럼 채혈하겠습니다, 도련님.”
프랑 박사의 가방에서 날카로운 바늘이 달린 채혈 도구가 등장했다.
– 윽, 아프겠구나.
카이로스가 나보다 더 아픈 양 신음했다.
– 도저히 못 보겠구나!
왜 당사자보다 오버하는 건데.
‘저는 괜찮은뎁쇼.’
그사이 채혈이 끝났다.
“결과는 한 시간 정도 후에 나올 겁니다.”
내 피를 잘 챙긴 프랑 박사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는 서둘러서 방을 벗어났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세베누스는 잠시간 나를 보다가 방을 나갔다.
***
똑똑.
노크 소리에 눈이 뜨였다. 나 언제 잠들었지.
“네.”
잠긴 목을 풀며 대답하자 세베누스가 들어왔다.
“레비, 자고 있었구나.”
“예? 네.”
태평한 나와 달리 세베누스는 어째 잔뜩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 다시금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프랑 박사가 들어왔다.
아까처럼 허둥지둥 달려온 그가 크게 외쳤다.
“도, 도련님!”
프랑 박사는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소리쳤다.
“효, 효과가 있습니다!”
감격한 눈을 한 프랑 박사의 말에 일순, 세베누스가 휘청거렸다. 다리에 힘이라도 풀린 모양이다.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기쁜 척 연기를 시작했다.
“저, 정말이요?”
“네! 그렇습니다! 말로네 벌레가 이전과 달리 움직임이 확연히 감소하였고, 도련님의 체내 영양소도 이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이어서 프랑이 설명을 이어갔다. 제국의 의학지식이 섞인 바람에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아무튼 내 몸이 좋아졌단 소리였다.
“혹시 몰라서 여러 마력구에 각각 검사를 해보았는데, 전부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이 세계의 검진은 마법 물품을 이용해서 이뤄지고 있었기에, 오진이 거의 없었다.
“이건 세기의 발견이나 다름없습니다!”
프랑 박사가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할 때, 옆에 있던 세베누스가 안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아. 정말 다행이구나.”
그러면서 세베누스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런데 어째, 세베누스의 눈가가 촉촉이 젖은 것처럼 보였다.
설마, 우냐……?
***
프랑 박사가 다녀간 이후. 저택 내에는 활기가 돌았다.
나의 병에 드디어 차도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프랑 박사는 나와 세베누스에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지만, 우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훗날, 카이로스교의 이름으로 세상에 공표될 것이었으니까.
프랑 박사는 몹시 궁금해했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
‘게다가 파스렐 독은 피를 통해 검출되지도 않는 독이니까.’
치료법이 유출될 일도 없었다.
아무튼 드디어 내가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저택의 사용인들은 몹시 기뻐했다.
특히 폴은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렸고, 사용인들은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그렇게 늦은 저녁이 되었을 무렵.
방에서 편히 쉬고 있을 때,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뛰어 들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