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34
34화
하마터면 수프를 먹다가 체할 뻔했다. 세베누스 녀석, 내가 신전에서 오랜 시간 머무는 게 마음에 안 드나?
하긴, 원래 가문 전체가 디에고교를 믿고 있었으니.
나는 큼, 목을 가다듬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네. 이것도 인연인 것 같아서 신전을 둘러보곤 해요.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서요.”
그리 이야기하자 세베누스가 타악, 숟가락을 세게 내려두었다.
이놈이?
세베누스의 눈이 한층 짙어졌다.
“레비. 네가 그 신전에 방문하는 건, 어디까지나 치료 때문이다.”
그 외의 일을 만들지 말라는 뜻인가 본데.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단다, 얘야.
“세비, 그러지 말렴.”
다행히 세베누스의 타박이 심해지기 전, 어머니가 나섰다.
“나는 레비가 건강하기만을 바란단다. 레비가 무얼 하든, 무엇을 원하든 모두 레비의 자유니까.”
“하지만, 어머니.”
세베누스가 더 이야기하려 했지만, 어머니가 그의 말을 끊었다.
“우리는 레비에게 어떠한 것도 강요할 권리가 없단다.”
타당한 말에 세베누스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역시 어머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해졌다.
– 네 형은 미운 말을 곧잘 하는구나.
‘가끔 저 입을 때리고 싶어진다니까요.’
– 하하, 그래선 안 되지.
카이로스에게 무어라 더 말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우욱!”
갑작스럽게 구역질이 났다. 마치 속에서부터 무언가가 튀어나오려는 듯한 감각에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레비?!”
놀란 어머니와 세베누스가 보였다. 나는 곧장 의자를 넘어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를 벗어날지, 손수건을 꺼낼지 고민하는 사이.
“우웩!”
구토감을 참지 못하고 내 손에 뱉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역한 감각이 가라앉았다.
– 아, 아가야! 소, 손에!
놀란 카이로스의 말에 시선이 손으로 향했다. 그리고 보인 것은 손가락 마디만 한 푸른색의 벌레 사체였다.
‘설마 지금 내가 토해낸 게 이거라고?’
헛구역질이 나올 뻔했지만, 뒤늦게 떠오른 이 벌레의 정체에 기분이 나아졌다.
이게 바로, 말로네 벌레였으니까.
– 오오, 아가야! 이게 혹시 그 병의 원인인 게냐?
‘네. 맞아요.’
나는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으며 씨익 웃었다.
마침내, 병이 나았다.
***
“도, 도련님께서…… 완치되셨습니다. 몸 상태도 이전보다 훨씬 더 건강해지셨고요! 어찌 된 일인지는 몰라도, 보통 사람보다도 더 건강하십니다!”
나를 검진하던 프랑 박사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여태 초조히 내 곁을 지키던 어머니가 프랑 박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장 나를 끌어안았다.
“레비, 내 아가. 그동안 고생 많았다.”
어머니뿐만이 아니었다. 세베누스도 촉촉해진 눈가를 하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다행이구나.”
나는 어머니를 마주 안으며 속으로 환호했다.
‘드디어 나았다!’
이제 파스렐 독도 더는 섭취하지 않아도 되었다.
‘야호!’
마음 같아선 마음껏 뛰어다니고 싶었지만, 최대한 참아내고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각혈 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싶었는데, 병이 완치되었을 줄이야.
몹시 행복했다.
“내 아가, 이제는 행복한 일만 있을 거란다.”
어머니가 내 뺨을 매만지며 눈물 한줄기를 흘렸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잠시간 바라보다가 진지한 낯을 했다.
“어머니.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이제는 때가 왔다.
어머니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프랑 박사와 집사 폴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이로써 나의 침실에는 어머니와 세베누스만이 남게 되었다.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콕콕 찍어 닦고는 나를 똑바로 마주했다.
“그래, 레비. 내 아가, 무슨 일이니?”
나는 쉽사리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어머니와 세베누스의 시선을 받으며 힘겹게 말했다.
“저…… 어머니께는 죄송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어머니의 손이 내 손을 따스하게 감쌌다.
“그래. 이 엄마는 네가 무슨 일을 하든 널 응원할 거란다, 레비.”
나는 그런 어머니의 손에 내 손을 겹쳐, 두 손으로 잡았다.
“저는 카이로스교에 입교하고 싶습니다.”
흡사 통보와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마치 예감하고 있었다는 듯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놀란 건, 세베누스였다.
“레비! 지금 네가 무슨 소릴 하는지 알고나 있는 것이냐?”
세베누스가 크게 발소리를 내며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알고 있습니다, 형님.”
백작가의 아들로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종교에 몸을 의탁하겠다는 뜻이었다.
귀족으로써의 신분도, 지위도 내게 필요 없으니까.
나는 어머니와 세베누스를 바라보며 진중하게 말했다.
“저는 언제나 이 방에만 갇혀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죠. 그저 죽음만을 기다리는 삶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세베누스도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제게 희망이 찾아왔고, 마침내 삶을 되찾게 되었어요. 저는 제 삶을 되찾게 해준 카이로스교의 일원이 되어 헌신하고 싶습니다.”
한창 물이 오른 연기력 덕분일까, 아니면 내 머릿속에 있는 ‘레벨로프’의 기억 덕분일까. 말을 하다 보니 진심이 되고 말았다.
“레비…….”
세베누스가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어머니는 생각보다 담담한 눈이었다. 그녀는 잠시간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레비.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꾸나.”
허머니의 허락이 떨어지자, 세베누스가 무어라 더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제 입술을 짓씹었다. 할 말은 많아 보이지만 삼키는 것이 눈에 보였다.
“감사해요, 어머니.”
“하지만…… 이 어미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주겠니? 내 아들과 보내지 못했던 시간들을 지금이라도 함께 하고 싶구나.”
그리 말하는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았지만, 어쩐지 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요.”
***
어머니가 내게 내달라고 한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 내내 어머니와 함께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실질적으로 낼 수 있었던 시간은 이틀뿐. 나머지 5일은, 어머니가 이틀의 시간을 내기 위해 업무를 몰아서 처리하였다.
그리고 이틀 동안 나는 어머니, 세베누스와 함께 어울렸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근교의 호수로 소풍을 갔고, 뱃놀이도 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엘륀의 거리를 걷기도 하였고, 유명한 화백을 불러 가족 초상화를 새로 그렸다.
그렇게 마침내 이틀의 시간이 지나고, 내일이면 내가 홀든가를 떠나는 날이다.
가족과 시간을 보낸 후 늦은 저녁. 나는 신전에 가져갈 짐을 챙겼다. 사용인들에게 시켜도 될 일이었지만, 그냥 내가 하고 싶었다.
개인 재산 중 당장 들고 갈 수 있는 값비싼 보석 몇 개를 가장 먼저 챙기고, 짐가방에 옷을 집어넣었다.
– 내가 다 슬프구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카이로스는 눈물 콧물을 짜내기 바빴다.
‘슬퍼하지 마세요, 카이로스 님. 이게 다 카이로스교를 위한 일입니다.’
지난 며칠간 카이로스의 징징거림을 들었기에 그를 달래주기가 귀찮았지만, 애써 다정히 대해주었다.
– 끄응…… 어쩐지 내가 화목한 가족을 분열시킨 장본인이 된 기분이구나.
‘에이, 아니에요.’
어차피 카이로스교를 널리 전파하지 않으면 세계가 멸망한다. 그렇게 되면 화목한 가족이고 나발이고 다 죽을 텐데, 뭐.
‘옷은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똑똑.
짐가방을 하나 더 늘릴까 고민하는데, 노크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레비.”
세베누스였다.
내가 카이로스교에 입교한다고 선언한 이후로 여태 뚱해 있던 녀석이 웬일이지?
세베누스는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는 와중에도 내게 먼저 말을 걸거나 하지 않았다.
마치 삐친 사람처럼.
“네, 형님.”
나는 짐을 챙기다 말고 의자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세베누스가 내게로 다가오며 나를 만류했다.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하던 일 해라.”
그렇다면야 개의치 않고.
나는 짐가방 하나를 더 열고, 그 안에 옷을 쑤셔 넣었다. 그런데 옆에서 세베누스의 시선이 느껴졌다.
“형님?”
왜 자꾸 쳐다보는 거야. 할 말이 있으면 해라. 이 자식아.
“이런 건 사용인들을 시켜도 될 텐데.”
“……아닙니다. 어차피 많이 가져갈 것도 아니니까요.”
“좀 더 챙기지 그러냐.”
사실 내가 챙긴 보석 몇 개면 충분하긴 했다. 그 정도면 몇 년 치 신전 예산이었으니까.
그래도 입고 다닐 옷은 있어야 하니까 몇 벌 챙기긴 했는데, 신전에 들어가게 되면 거의 매일 교주복을 입고 다닐 테니 옷도 그리 많이 필요는 없었다.
지금 챙긴 짐가방 두 개 정도면 딱이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얼추 정리를 마쳤을 무렵. 나를 빤히 보던 세베누스가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받아라.”
그가 내민 것은, 홀든가의 인장이 새겨진 은빛 회중시계였다.
이걸 왜……? 영문 모를 눈으로 세베누스를 올려다보자, 그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홀든을 떠난다고 하여도, 네가 홀든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다. 너는 영원히 레벨로프 홀든이자, 내 동생이다.”
“형님…….”
오글거리지만, 꽤 감동이었다. 나는 미소 지었다.
– 눈물 나는 형제애구나! 훌쩍.
이윽고 세베누스의 입매가 옅게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언제든 돌아와도 좋다. 나와 어머니는 언제나 이곳에 있을 테니까.”
나는 세베누스가 내민 회중시계를 품에 챙겨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형님.”
***
홀든 백작가의 저택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오늘은 홀든 가문의 둘째 아들, 레벨로프 홀든의 출가일이었기 때문에.
저택 앞에는 홀든가의 마차가 두 대 서있었다. 하나는 레벨로프가 탈 마차이고, 뒤의 마차는 그의 짐을 실을 것이었다.
사용인들은 바삐 움직여 짐마차에 짐을 실었다. 레벨로프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탄식했다.
‘……내가 저렇게 짐을 많이 챙겼나?’
그가 직접 챙긴 짐은 기껏해야 가방 세 개 분량이었다. 그중 두 개가 옷이었고, 하나는 보석들만 들어있어 그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다.
한데 지금 사용인들은 무거운 궤짝 몇 개를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었다.
“어머니, 짐 양이 제가 챙긴 것보다 많은 것 같은데요.”
결국, 상황을 지켜보던 레벨로프가 어머니 레이라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싱긋 웃었다.
“그야 당연하지, 레비.”
이어지는 레이라의 설명에 레벨로프는 조금 놀랐다. 레이라는 레벨로프를 위해 아들의 개인 자산뿐 아니라 넉넉한 용돈을 챙겨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카이로스교를 위한 막대한 기부금도 있었다. 그 금액은 이전에 카이로스교에 사례로 주었던 ‘태양의 눈물’만큼이었다.
이건 레이라와 세베누스, 두 사람의 판단이었다. 레벨로프의 병을 완치시켜준 것에 대한 감사에 더불어, 이만한 기부금을 내었으니 레벨로프의 편의를 봐달란 뜻도 있었다.
‘그 영악한 교주라도, 이 정도면 알아서 판단하겠지.’
세베누스는 그리 생각하였다.
레벨로프가 카이로스교 교주인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