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36
36화
“카, 카이로스 님?”
앞구르기를 하면서 들어도 카이로스의 목소리에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러자 강아지가 근엄하게 머리를 치켜들었다.
“에헴. 그래, 내가 카이로스다.”
“푸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근엄한 척하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웃겼다. 덕분에 소리까지 내면서 웃고 있는데 카이로스는 여전히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요즘 힘이 많이 늘어난 덕분에 현신할 수 있었단다. 물론 내 본 모습으로 나타나는 건 힘이 많이 드니, 어쩔 수 없이 인간과 친근한 모습을 빌렸지. 어떠냐? 나의 근엄함이 느껴지느냐.”
강아지 카이로스는 그리 이야기하며 털이 복슬복슬한 가슴을 쭉 내밀었다. 그 모습은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아무래도 카이로스는 자신이 현신할 만큼 힘을 쌓은 게 무척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약간 흥분한 게 느껴질 정도로 신이 난 걸 보면.
나는 강아지의 가슴털을 쓰다듬어주며 힘겹게 웃음을 참았다.
“네. 아주 근엄하십니다.”
“그렇지?”
“그럼요.”
웃음을 참기가 아주 힘들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런데 이 모습은 얼마나 유지하실 수 있는 겁니까?”
“으음. 외양만 딴 것이라 힘을 많이 소비하지 않으니, 몇 시간 정도는 유지할 수 있단다.”
“그럼 이 모습으로 자주 현신해주세요.”
귀여우니까.
나는 뒷말을 삼키며 강아지 카이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드라운 털이 손가락에 감기는 감촉은 생각보다 더 좋았다.
‘아, 이거 힐링되네.’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연스레 등까지 쓰다듬자 카이로스도 기분이 좋은지 벌러덩 배를 보였다.
그러자 분홍빛 배와 분홍빛 발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두근!
이거 완전…… 귀엽잖아.
역시 귀여운 것이 최고다. 강아지가 세상을 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 그렇지. 거기 좀 더 긁어보아라.”
나는 카이로스가 시키는 데로 배를 열심히 긁어주었다. 어째 강아지 카이로스의 눈이 풀리는 게,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진 건 그때였다.
“주인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자인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나는 자인을 흘긋 보다가 다시 시선을 카이로스에게로 옮겼다.
“산책.”
“그 강아지? 새끼 늑대? 같은 그건 또 뭡니까?”
자인이 다가오자 카이로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부르르, 몸을 털어내더니 기분이 나쁜지 자인을 쌜쭉 노려보았다.
“와. 가까이서 보니까 되게 귀엽네요.”
자인이 나처럼 몸을 쪼그리고는 강아지 카이로스에게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내가 그 손목을 붙잡았다.
“어허. 함부로 만지지 마라.”
“예? 왜요? 주인님도 만졌잖아요.”
이 녀석이.
“이 강, 아니 이분은 카이로스 님이시다.”
그러자 자인이 얼이 빠진 얼굴을 했다.
“예……?”
나는 재차 말했다.
“카이로스 님의 현신이라고.”
그 말에 자인의 미간이 좁혀졌다. 녀석이 나를 걱정스레 보았다.
“주인님, 많이 피곤하십니까?”
자인의 시선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이 새끼가?
그때였다. 카이로스가 근엄한 얼굴로는 몸을 일으켰다. 두 발로 선 것이다.
“그 말이 맞다. 내가 바로 카이로스다, 아이야.”
나와 자인의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지, 진짜요?”
자인은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서면 슬개골에 안 좋습니다!”
나는 곧장 손을 뻗어 카이로스를 네 발로 서게 했다. 그러자 카이로스가 꿍시렁거렸다.
“나는 괜찮단다, 아가야. 이 몸은 외형만 빌린 것뿐이니까. 내 실체에는 전혀 타격이 없단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전생에서 너튜브를 통해 강아지 영상을 많이 본 나였기에, 무심코 걱정이 된 것이다.
“그래, 그래. 착하구나. 날 걱정한 것이지?”
카이로스가 내 무릎에 작은 앞발을 올렸다. 이 뽀짝한 생명체 같으니라고.
진짜 카이로스의 모습과 강아지 모습의 차이가 너무 커서 그런지, 강아지 카이로스가 심히 귀엽게 느껴졌다. 비록 목소리는 이전과 똑같아도 말이다.
“허, 허…… 주인님. 이거 진짜입니까?”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는 자인을 향해 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 허어…….”
자인이 괴이한 신음과 함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
“카이로스 님! 현신하셨군요!”
“카, 카이로스 님……!”
강아지 카이로스를 품에 안고 신전 건물에 들어가자, 아이들이 카이로스의 기운을 감지하기라도 한 건지 달려 나왔다.
세 아이 다 눈을 반짝이며 카이로스를 맞이했다. 웬만한 일에도 무감하던 사샤까지 잔뜩 신나있는 게 보일 정도였다. 귀여운 것들.
“그래, 나의 아이들아!”
내 품에 안겨있던 카이로스가 폴짝 뛰어내려 아이들 사이를 방방 뛰어다녔다.
“와아, 카이로스 님!”
“보, 보고 싶었어요!”
“귀여워요…….”
아이들과 강아지의 조합은, 정말 최고다. 흐뭇하게 웃고 있을 때, 자인이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해왔다.
“정말 저 강아지가 카이로스 님이 현신하신 거군요.”
“그렇다고 몇 번 말하냐.”
“와…… 진짜였구나.”
자인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마른세수를 했다. 자인 이 자식, 두 눈으로 보고도 못 믿다니. 그러고는 눈을 희번덕 뜨더니 무어라 더 중얼거렸다.
“역시 이쪽에 붙길 잘했어. 이쪽은 진짜 ‘신’이니까.”
그러면서 자인은 ‘진짜 신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하고 덧붙였다. 짧은 사이 머리를 굴려 계산을 하는 듯했다.
반투명한 시스템창이 뜬 건 그 순간이었다.
[당신의 심복 ‘자인’이 카이로스교 신도가 되었습니다.]……어?
대박. 이게 웬 떡이냐. 이 자식 스스로 신도가 되다니. 아직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자인이 나를 직접 찾아오기 전까지 자신과 뜻이 맞는 이를 찾기 위해 시도해보지 않은 건 없었으리라.
물론 지금은 나와 엮여있지만, 진짜 신인 카이로스의 현신을 보고 계산 끝에 확신을 가진 모양이다.
‘그런데 메시지에서도 심복이라고 표현하네.’
계약서의 효과 때문인가.
게다가 원래의 표시와는 다른 건, 자인이 내 측근이라 그런 듯했다. 신기하네.
시스템창을 끄고, 다시 아이들과 카이로스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기이한 광경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카이로스 님.”
강아지 카이로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자인이었다.
……뭐하냐, 쟤.
“저는 자인이라고 합니다.”
자인은 공손히 앉아서 카이로스에게 제 소개를 했다. 그러자 아이들 사이를 방방 뛰어다니던 카이로스가 근엄한 얼굴로 자인에게 다가갔다.
“그래. 알고 있단다, 아이야. 네가 내 아이를 도와 여러 일을 했다는 것 또한.”
“와아…….”
카이로스의 칭찬에 자인의 뺨이 조금 붉어졌다. 얘가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그러고보니 원작에서도…… 이랬던 것 같네.
강아지 카이로스의 몸이 공중으로 부웅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카이로스가 멈춘 건 자인의 얼굴 높이에서였다. 강아지의 공중 부양에 자인의 입이 벌어졌다.
“항상 내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 네게, 선물을 주마.”
카이로스의 말과 동시에 분홍 발바닥이 자인의 이마에 닿았다. 이어 카이로스로부터 새하얀 빛이 흘러나와 자인에게 넘어갔다.
설마……!
“가, 감사합니다. 카이로스 님!”
자인이 몹시 기뻐했다. 카이로스는 에헴, 하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을 따라 미소 지었다.
설마 벌써 이렇게 될 줄은 예상 못 했는데. 이게 웬 횡재냐.
원작에서 자인은 테르디안과 동행하는 동료 중 한 명으로, 이른바 성장캐였다.
처음에는 그저 ‘정보상’의 역할을 하던, 무척이나 능글맞고 돈에 미쳐있지만 그렇다고 그리 강하지는 않았던 궁수.
하지만 훗날 카이로스를 믿게 되면서, 카이로스로부터 힘을 받아 테르디안을 강하게 지탱하는 전력 중 한 사람이 된다.
비록 지금 카이로스의 힘은 원작에서보다 약하지만, 그래도 자인은 이전보다 강해졌을 것이다.
‘아, 이건 예상 못 한 성과인데?’
자인이 벌써 카이로스를 믿게 될 줄이야. 원작보다 빠른 흐름에 몹시 흐뭇해졌다.
앞으로 저 녀석, 더 굴려도 되겠네. 나는 카이로스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자인을 보며 씨익 웃었다.
***
아직 동이 터오지 않은 새벽.
새벽 특유의 맑은 공기가 폐부로 들어오니 정신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베온 산으로 출발하는 날이지만, 나는 신전 뒤편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신도들이 거의 오지 않는 넓은 공간에서 하는 아침 운동은 신전에 온 뒤로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저택에서 나왔다고 한들 체력 훈련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으니까.
‘확실히 말로네 병이 완치된 후로 몸이 더 가벼워졌어.’
나는 이전, 파나틱이 굴렸을 때보다 운동량을 늘렸다. 물론 혼자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가끔 체스터가 자세를 봐주곤 했다.
몸을 풀었으니, 오늘은 하체다.
“어? 레벨로프 형제님!”
하체 운동을 시작하기 직전, 세릴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세릴은 정식 사제가 된 이후로도 신전에 출퇴근했다. 물론 신전에 숙소가 있기는 했지만, 세릴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세릴은 사제 일을 하면서도 부모님의 가게를 돕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세릴 사제님.”
현재 나는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기에 교주가 아닌 레벨로프였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몸은 괜찮으세요?”
세릴이 해맑은 얼굴로 물어왔다.
“네.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오늘 떠나신다고 들었는데.”
“아, 네.”
내가 베온 산으로 가 있는 동안, ‘레벨로프’가 신전에 없는 게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 교주와 함께 ‘전도’를 위해 떠나는 것으로 말을 맞춰놨다.
“혹시 모르니, 몸 조심히 다녀오세요!”
“감사합니다.”
세릴은 밝게 웃으며 내게서 멀어져갔다. 참 착하기도 하지. 아직 견습 사제도 아닌 ‘레벨로프’가 교주와 함께 떠난다는데도 부러워하거나 하지를 않았다. 진정한 사제다운 모습이다.
부스럭, 탁.
멀어져가는 세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바로 옆 나무 위에서 무언가가 폴짝 뛰어내렸다.
강아지 카이로스였다.
“저 아이는 믿을만하단다. 태생이 선하고 순한 아이이지.”
카이로스는 어제부터 계속 강아지 상태로 있었다. 외양이 귀엽기도 하고, 머릿속으로 음성이 안 들려와서 편하기도 했다.
“다행이네요.”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하지 않겠니?”
“그래야죠.”
그래도 하체는 못 참지. 나는 최대한 운동을 한 뒤 자리를 떴다.
***
“하아암. 안녕하십니까, 주인님.”
태양이 완전히 떠오르기 전, 자인과 만난 곳은 뒷골목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신전을 방문하는 신도들이 있었기에 부러 약속 장소를 틀었다.
어차피 아이들과는 따로 인사를 한 상태였기에, 신전의 담을 넘어 탈출하듯 나왔다. 모습을 감추기 위해 로브의 후드도 쓰고서.
“간밤에 잘 주무셨습니까?”
“그럭저럭.”
나와 달리 자인은 제대로 못 잤는지 비몽사몽한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의 상점, 밤에 열었지.
“가는 동안 자든지 해라.”
“예, 예. 그래야겠습니다.”
자인은 하품을 쩍쩍하며 녀석이 미리 준비해둔 마차로 다가갔다. 마부에게 무어라 이야기를 마친 자인이 내게 손짓했다.
우리는 자인이 은밀히 준비해둔 마차를 타고 영지를 빠져나갈 계획이었다.
신전에도 관계자들 외에는 우리가 떠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은 신전 관리를 위해 남겨 두고 왔다. 어차피 연락도 계속 취할 수 있고 혹시라도 내가 위험해지면 아이들이 아공간을 넘어올 테니 괜찮았다.
“타시죠. 하암.”
나는 자인과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홀든가의 마차에 비하면 그리 좋은 마차는 아니지만,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다.
“하아아암.”
맞은편에 앉은 자인은 연신 하품을 해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걸치고 있던 후드를 내렸다.
“베온 산이 있는 베온까지는 사흘 정도 걸립니다.”
자인이 기지개를 켜며 보고했다.
“다만 이 마차로 가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요. 중간에 베이어스에서 휴식을 취하고, 이후부터는 말로 이동할 겁니다.”
얼추 예상했던 루트였다.
“그래. 알겠다. 좀 자둬라.”
그러자 보고하는 동안 잠깐 눈을 빛냈던 자인이 흐물흐물 풀어졌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주인님도 좀 쉬세요.”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자인이 두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코를 골기 시작했다.
‘……베이어스.’
마음 같아서는 건너뛰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
나도 자인을 따라 두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