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57
57화
트로이가 부른 건 난데, 왜 입꼬리는 자인이 씰룩거리고 있는 걸까. 정확히는 자인의 입매와 더불어 한쪽 눈썹도 치켜올라가고 있었다.
“카이로스 교가 어떤 곳인지 아직 모른다. 그래도 나는 당신을 따르고 싶다.”
트로이는 진중한 눈으로 나를 향해 이야기했다.
“무엇이든 하겠다.”
뭐든 시켜만 달라는 그 눈빛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 네가 원한다면.”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답했다. 안 그래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제 발로 오다니. 개꿀이네.
“고맙다!”
트로이가 해맑게 웃었다. 마치 아이처럼 순수한 미소였다.
“이봐, 예의를 갖추라고 했을 텐데.”
트로이가 영 못마땅했는지 자인이 다시금 말했다.
“교주가 괜찮다는데 무슨 상관인가.”
그러나 트로이는 지지 않았다. 결국 한 발자국 물러선 자인이 나를 보았다.
“다시 한번 여쭤보는 건데 저도 반말해도 되나요?”
“미쳤냐?”
“쳇! 그래서 그럼 이제 여기서 할 건 다 끝난 건가요?”
녀석은 날카로운 눈으로 물었다. 왜 날 노려봐?
“아직 할 일이 남아있어.”
나는 그리 이야기하며 대사제실에서 빠져나왔다. 자인과 트로이도 내 뒤를 따랐다.
“할 일이 뭐죠?”
“지하감옥으로 갈 거야. 그곳에는 아직 사람들이 잡혀 있으니까.”
“아…….”
대사제실을 벗어나 복도로 나오자 곳곳에 널브러진 리제스교 사제들이 보였다.
‘하멜의 시체하고 사제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
이전, 로벨에서는 테르디안이 전부 죽여놨기에 정화권을 사용하면서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의 사제들은 아직 살아 있었다.
“교주, 이들은 내가 처리해도 되나?”
나와 마찬가지로 사제들을 훑어보던 트로이가 물어왔다. 트로이의 두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어째 불길한데.
‘음…….’
잠시 고민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대신 죽이지는 마.”
“그냥 기억만 지우고 내다 버리겠다.”
그리 말하며 해맑게 답하는 트로이의 모습은 어째 순수 악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방법 자체는 나쁘지 않으니 허락했다. 그러자마자 트로이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와 자인은 트로이를 지나쳐 길을 따라 움직였다. 지하감옥으로 향하는 길. 발소리만 나는 적막을 자인이 깼다.
“몬트족의 후계는 여러 주술을 알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저 녀석이 그 후계인 모양이군요.”
“그러게 말이야.”
– 호오, 그랬구나. 주술이라.
카이로스가 신기하다는 듯이 감탄했다.
“그래서 싸가지가 없는 모양입니다.”
자인이 트로이의 욕을 덧붙이는 것을 애써 무시하자, 녀석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부터 여기가 카이로스교 신전이 된다면, 관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장은 하지 않을 거다. 바하누의 일부터 처리하고, 나중에 생각해야 할 문제니까.”
“흐음. 알피어스나 체스터가 이쪽저쪽 오갈 수 있으니, 아이들을 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자인이 순수하게 의문 어린 눈으로 물어왔다. 이 세계에는 아동보호법이 발달하지 않았으니 그리 생각할 만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힘들어할 거야. 알도네 지부는 바하누의 일이 끝나고 처리하는 게 맞아.”
“알겠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지하감옥에 도착했다.
트로이를 구했던 문이 아닌, 자물쇠가 잠겨있지 않은 철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등불이 일렁이는 복도가 드러났다.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안쪽에서 탁한 기운이 확연히 느껴졌다.
“조심해.”
나는 자인에게 주의를 주고, 기척을 죽인 채 걸었다. 얼마 안 있어 길이 끝났다. 길 끝에서 드러난 것은 널따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키에엑!”
마물화된 병사 수십이 있었다.
“깜짝이야. 놀랐잖아!”
휘이익! 퍼억-!
나는 달려드는 마물 셋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리고 동시에 몽둥이를 쥐지 않은 반대 손으로는 성력을 방출했다.
“크아아악!”
괴이한 비명과 함께 마물들이 소멸했다.
피잉- 퍽! 퍼억!
자인 또한 나 못지않게 전투에 열중하고 있었다. 녀석이 쏜 성력이 담긴 화살이 마물의 머리를 관통했고, 마물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 잘한다, 내 새끼들!
퍼억, 퍽!
달려드는 마물들을 죽이고 또 죽이다 보니 어느덧 정리가 끝이 났다. 날이 갈수록 전투 실력이 늘어나는 걸 보니, 나한테 꽤 소질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 멋지다! 내 새끼!
“후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성물 몽둥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회수하는 자인의 뒤로 지하감옥의 철창이 보였다.
로벨과 비슷한 수의 철창에는 꽤 많은 사람이 갇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상태는 로벨의 사람들보다 심했다.
알도네 사람들은 전신 대부분이 푸르게 물들어 있었고, 나와 자인을 향해 기괴한 소리를 내었다.
“크르륵.”
이미 이지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아직 전신이 모두 물든 건 아니었으니, 구할 방도가 있었다.
“으. 무섭네요.”
“겁먹지 마. 저들은 아직 인간에 더 가까우니까.”
– 그래. 맞다. 온전히 마물이 된 것이 아니니, 충분히 구해낼 수 있을 것이란다.
‘그럼요.’
나는 꺼림칙 해하는 자인을 지나쳐, 철창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인벤토리를 열어 정화권을 사용했다.
파아앗-!
순식간에 새하얀 빛이 퍼져나오며 지하감옥을 가득 메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밝고 따스한 빛은 알도네 전역으로 번져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두 눈을 감았다.
‘이건 왜 매번 이렇게 화려한 거야.’
젠장, 여기서 주목받고 싶지는 않았는데.
바하누로 향했을 디에고교 사제들이 혹시 알도네에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그러나 정화권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죽어가는 꼴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그렇게 다시금 두 눈을 떴을 때. 철창 안의 사람들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푸르렀던 피부가 인간의 것으로 돌아왔고, 흐리멍덩했던 눈에는 초점이 살아났다.
‘효과는 좋네.’
“이게 대체, 뭘 어떻게 하신 겁니까?”
한편 눈 부신 빛에 놀라 눈을 껌뻑이던 자인이 내게로 다가오며 물었다.
“카이로스 님의 힘이지.”
“와…….”
자인이 거듭 감탄했다. 하나 감탄을 금치 못하는 건, 자인뿐만이 아니었다.
“이, 이럴 수가. 드디어…… 드디어 돌아왔어.”
“정신이 맑아졌어!”
“흐윽, 드디어 우린 괴물이 아니게 된 거야.”
“으엉, 엄마아.”
사람들은 저마다 감탄하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힘겹게 미소 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 며칠간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지난 며칠간, 내가 숙소에만 머물렀던 이유는 휴식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해피’의 해독제인 맨드레이크 머리초를 물약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도 있었다.
맨드레이크 머리초와 치유 스킬을 결합한 물약은 단순히 풀만 먹었을 때보다 효과가 좋다. 하여 마물화가 거의 진행된 이들에게 사용하면 좋겠다 싶어 만든 것이었는데.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그리 생각할 때, 사람들의 시선이 어느덧 내게 몰려있었다. 시스템이 등장한 건 그와 동시였다.
[알도네의 시민들이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당신에게 집중할 것입니다!] [10분간, 이곳의 모든 이들이 카이로스 교의 신도가 될 확률이 50% 증가합니다.]호오, 이벤트성 버프도 로벨과 비슷하네. 개이득이군.
“다, 당신이 우릴 구해준 겁니까?”
“그 새하얀 빛…… 그 따스하고 아름다운 빛이 우릴 씻어낸 것 같았는데. 당신이 한 거죠? 제가 본 것 같습니다.”
정화권을 사용할 때 조금이라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이들이 있었나 보다. 다행이네. 사람들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나보다 자인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맞습니다. 이분은 카이로스교 교주, 레비아탄 님이십니다. 카이로스님의 힘이 교주님께 깃들어 여러분을 구해드린 겁니다.”
“카이로스교? 레비아탄?”
“여러분을 괴롭히던 리제스교 역시, 우리 교주님께서 무찌르신 겁니다.”
날이 갈수록 바람잡이 역할을 잘하네. 나는 흘러나오는 미소를 참지 못하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교주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몰린 것뿐만이 아니라 자인까지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넌 전에도 보지 않았냐?
큼, 크흠. 일단 나는 목을 풀었다.
사실 이전처럼 사람들에게 열심히 어필해볼까 했지만, 오늘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시스템 메시지는 사람들이 내게 집중한다고 했을 뿐, ‘발언’에 집중한다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쓸 거다.
나는 사람들을 향해 영업용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저는 카이로스교 교주, 레비아탄입니다. 여러분, 카이로스님은 언제나 여러분의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항상 여러분을 보살피실 겁니다. 그분이 바라는 건 오직 여러분의 믿음뿐이시니까요.”
오늘의 설교는 여기까지. 그들의 마음을 훔칠 건, 다른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이목이 오직 내게로만 집중된 것을 확인하고는 숨을 가다듬었다.
최대한 경건하게 마음을 먹은 후.
오른쪽 눈을 찡긋 감으며 윙크했다.
제발, 이번엔 제발 성공 좀 해라. 제발! 시스템 버프랑 교주복 버프까지 있으니까, 제발!
[칭호 옵션 ‘팬 서비스’ 발동에 성공했습니다!] [알도네 시민 52명이 카이로스교의 신도가 되었습니다!]드디어 성공이다. 이 망할 팬 서비스.
사실 이 옵션을 사용할까 말까 고민하긴 했지만, 매번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지쳤다. 물론, 설교한 횟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왜인지 모르게 매번 새로운 레퍼토리를 짜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윙크 한 번으로 사람들을 홀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설교 문장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아아, 카이로스 님.”
“그렇구나. 카이로스 님께서 우릴 구원해주신 거야.”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시선을 옆으로 돌렸는데.
마치 똥을 씹은 듯한 얼굴의 자인과 눈이 마주쳤다.
……젠장.
***
“감사합니다, 교주님!”
“정말 감사드려요!”
지하감옥의 문을 열고, 갇혀 있던 사람들을 풀어준 뒤 신도들을 배웅했다. 그들은 나와 자인에게 열심히 인사를 하며 돌아섰다.
“언젠가 이곳에 신전을 열 테니 꼭 방문해주세요.”
나는 영업용 미소와 함께 홍보도 잊지 않았다. 카이로스교 알도네 지부가 오픈하려면 아직 먼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인벤토리를 열고 옷을 갈아입었다. 교주복을 집어넣고, 원래 입었던 옷을 걸치고 로브까지 뒤집어쓰니 따끔한 시선이 느껴졌다.
“왜? 뭐?”
“아, 아뇨.”
자인이었다.
녀석은 직전까지 나와 함께 신도들을 밝은 얼굴로 배웅했으면서, 이제는 묘한 눈초리로 나를 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해.”
“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교주님…… 아까 그건 대체 뭡니까? 갑자기 눈에 먼지라도 들어가신 겁니까?”
미간을 좁히고 인상을 구기는 걸 보니 내 윙크가 영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그 모습에 왠지 오기가 생겼다.
“뭐긴 뭐야. 필살기지.”
“예?”
녀석이 되레 당황했다.
“나 잘생겼잖아. 내 윙크 한 번이면 다들 넘어온다고.”
오히려 당당하게 적반하장으로 나가자, 자인의 표정이 더 썩어들었다. 그러게 왜 덤벼.
– 아가야, 고생했단다. 내 새끼, 정말 자랑스럽구나.
‘하하. 그러게요. 저도 제가 자랑스럽네요.’
사실 알도네에서 신도를 늘릴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조금이라도 빨리 바하누로 뜨는 수밖에.
“교주, 정리 다 했다.”
타악.
일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트로이가 갑작스레 위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자식 흑표범 수인답게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깜짝이야! 왜 기척도 없이 튀어나와?”
자인도 나만큼 놀란 모양이다.
“고생했어, 트로이.”
“아니다. 참, 하멜의 시체는 몬스터들에게 던져주고 왔다.”
마치 ‘학교 다녀왔습니다’처럼 평이하게 말하는 어조에 트로이가 조금 무서워졌다. 그리고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자인의 표정이 더 일그러지더니, 녀석이 나와 트로이를 번갈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인이 속으로 신세 한탄을 하는 게 훤히 보였다.
나는 그런 자인을 뒤로 하고 움직였다.
“이제 바하누로 가자.”
서서히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 바하누로 가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