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64
64화
아르헨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뜨고는 입을 뗐다.
“바하누에 리제스교가 들어선 건 약 10개월 전이었다.”
처음 리제스교가 바하누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다른 지부 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마을에서부터 침투를 시작했다. 특이점이라면 얼마 안 있어, 국왕에게 알현을 요청했다는 것.
종교 집단이 인사차 알현을 오는 것은 종종 있었던 것이기에 바하누 국왕은 그것을 수락했다.
리제스교에서는 국왕에게 상당한 양의 보석과 금화를 바쳤고, 그와 함께 은밀히 ‘해피’를 건넸다. 바하누 국왕은 평소에도 향락을 즐기는 자였기에 거리낌 없이 받았다고 한다.
‘원래 딱 그 정도 캐릭터긴 했지. 단순하고, 멍청하고, 무능력한.’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대단한 비중의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그가 어떤 왕이었는지 정도는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한편 아르헨은 내 고개 끄덕임이 이해했다는 뜻으로 보였는지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향락을 즐긴다는 것을 알고 접근한 것이 분명하다.”
아르헨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바하누 국왕이 리제스교로부터 ‘해피’를 받은 이후. 시간이 겨우 두어 달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국왕은 ‘해피’에 완전히 중독되었다.
그때부터였다. 국왕이 리제스교의 대사제, 셀로스를 가까이하기 시작한 것은. 국왕의 총애를 받는 셀로스에게는 자연스레 권력이 생겼고, 권력을 등에 업은 리제스교는 시중에까지 해피를 유통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바하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부끄럽지만 사실 그 전부터 흔들리고 있었겠지.”
아르헨은 침잠한 눈으로 덧붙였다.
그 이후, 차기 국왕으로 내정되어 있던 하벤 바하누 또한 해피에 중독되었다.
아르헨의 언니인 멜리나 바하누가 바하누 국왕과 셀로스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미쳐버린 국왕에게 살해당하였고 아르헨은 첨탑에 갇혀 리제스교에게 농락당하는 신세였다.
대사제 셀로스는 아르헨에게 보란 듯이 국왕을 가지고 놀았고, 아르헨에게는 일부러 ‘해피’를 먹이지 않았다. 무너지는 바하누를 똑똑히 보라면서.
“그 이후는…….”
아르헨이 말을 흐렸다. 향락에 무너진 왕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는 바하누.
‘원작과 같은 흐름이군.’
차이는 하나뿐이었다.
마신의 가호가 왕성으로 이동했다는 것. 문제는 그 하나가 상황을 굉장히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지만.
“그랬군요. 그간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나는 아르헨을 보며, 최대한 안타까운 낯으로 말했다. 물론 단순히 게임의 스토리로 보던 것을 실제로 보니 진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리제스교…….”
한편 아르헨의 이야기를 들은 트로이는 주먹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며 중얼거렸다. 녀석의 눈에 깃든 증오심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한 나라를 뒤흔들다니. 리제스교놈들……. 상도의가 있는 건데 선을 넘는구나.”
자인 또한 상당히 화가 난 듯 제 머리카락을 연거푸 뒤로 쓸어 넘겼다.
‘그나저나 카이로스가 조용하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안타까워했을 이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카이로스님?’
혹시나 해 불러봤으나 대답도 없다.
‘애들이라도 보러 가신 건가?’
아무래도 혼자 신전에라도 간 모양이다. 뭐, 자주 있는 일이니 상관없지만.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제 너희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계획은 있는 건가?”
아르헨이 이전보다 빛나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영업용 미소를 장착한 채 답했다.
“아직 계획이라고 말할 만큼 거창한 건 없습니다.”
그러자마자 아르헨의 미간이 좁혀졌다. 동시에 그녀 주위에 앉아있던 자인과 트로이의 표정도 조금 굳었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지?”
“대략적으로 생각해둔 부분은 있긴 한데요.”
자인이 가까이 다가온 건 그때였다. 녀석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더니 속삭였다.
“주인님, 정말 아무 계획도 없으신 겁니까?”
“자세한 계획은 없지만, 생각해둔 방안은 있기는 해.”
나라고 모든 일에 계획을 짜고 움직이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아예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세법에서 사용했던 방법들을 끊임없이 생각해서 얼추 정리하긴 했으니까.
“저는 여태껏 리제스교와 여러 번 대치했고, 그 과정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니 그들과 싸우는 방식은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미소와 함께 말했지만, 아르헨은 반신반의한 표정이었다. 고개를 주억이며 고민하던 그녀가 결정을 내렸는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일단 목표 몇 개를 정하기는 했습니다.”
“목표라면…….”
“우선 첫 번째 목표는 ‘마신의 가호’입니다. 리제스교나 디에고교에는 각 신의 가호가 있죠. 아, 물론 저희 카이로스교에도 있습니다.”
“가호?”
“신들의 힘이 담겨있는 것으로, 신전을 지키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죠. 간단하게 말해서, 특정 구역을 지키는 보호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르헨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을 이었다.
“마신의 가호를 부수면 현재 리제스교를 보호하는 힘이 사라질 겁니다. 그리고 지금 마신의 가호는 왕성 내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보신 적 있으십니까?”
“마신의 가호…… 글쎄. 어떻게 생겼지?”
“사람 머리만 한 크기의 검은 구체입니다.”
“구체, 구체라.”
아르헨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이내, 그녀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래. 본 적이 있다. 분명 왕성 내의 대사제실에서 보았지.”
얼추 예상은 했다만, 정확히 맞아떨어지다니.
“알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목표는 대사제입니다. 대사제의 신병을 확보한다면 일단 리제스교의 발이 묶이는 것이니까요.”
“……그래.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을 텐데.”
“네. 그렇겠죠. 대사제 곁에는 그를 지키는 경비병과 사제들, 혹은 리제스교 산하의 병력이 있을 테니까요. 하나 그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트로이와 자인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 녀석들이 꽤 강하거든요.”
“몬트족이라면 강하다는 건 알지만…….”
아르헨이 자인을 미심쩍은 눈으로 보았다. 그러자 자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공주님! 저 꽤 강합니다! 그리고 주인님, 왜 본인은 쏙 빼놓고 이야기하십니까?”
“나야 뭐, 전력 외나 다름없잖아.”
“하, 참나. 제가 그 이상한 몽둥이로 마물을 후려 패는 걸 몇 번이나 봤는데요!”
나는 날뛰는 자인에게 진정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다 아르헨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어째 그녀가 흥미롭게 날 보고 있었다.
“교주라고 들었는데, 직접 전선에 나서는 모양이구나.”
“……아, 뭐. 그렇긴 합니다.”
“무릇 한 무리를 이끄는 자는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이지.”
아르헨의 입매가 약간이나마 올라갔다. 부정적인 쪽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네.
“게다가 지금은 자리에 없지만, 다른 전력들도 있습니다. 언제든 저희를 도울 수 있죠.”
“그 수는?”
“……두 명이기는 한데요. 저보다 더 강해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총 다섯 명이란 건가?”
“네.”
나의 대답에 아르헨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다음은?”
다행히 받아들인 모양이다.
“세 번째 목표는, 맨드레이크 머리초입니다. 왕국 내에 유통되고 있는 맨드레이크 머리초를 모두 확보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해피’의 치료제니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물량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아르헨 또한 잘 아는 모양이었다.
“그건 불가능하다.”
아르헨이 딱 잘라 말했다.
“현재 왕국 내의 맨드레이크 머리초는 모두…… 대사제, 셀로스에게 가 있으니까.”
“셀로스요?”
자인이 되묻자 아르헨이 설명을 덧붙였다.
“셀로스가 본격적으로 왕성을 드나들었을 때, 그것들을 모조리 사들였다. 당시에는 왜 그러나 싶었지만 그게 ‘해피’의 치료제일 줄이야…….”
아르헨이 제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녀는 몹시 안타까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맨드레이크 머리초가 해피의 치료제인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게다가 셀로스는 용의주도하게 움직인 것이니.
“사실 세 번째로 말하기는 했지만, 충분한 양의 맨드레이크 머리초 확보가 가장 중요합니다.”
“조금도 구하기 힘든 상황인데 충분한 양까지?”
“바하누에 들어서며 보았을 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해피에 중독되어 있더군요. 게다가 국왕 전하까지 중독된 상태라고 하셨으니까요.”
“하지만-”
“리제스교의 만행을 조금이라도 빨리 멈춰야만 합니다. 설마 전하만 구하고 백성들은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내 말에 아르헨이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물론 백성들을 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 이렇게 질문을 드리죠. 혹시 대사제가 맨드레이크 머리초를 보관할 만한 장소를 알고 계십니까?”
아르헨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성 내의 대사제가 지내는 별궁이 있다. 내가 첨탑에 갇히기 전, 셀로스가 맨드레이크 머리초를 별궁으로 옮기는 것을 보았어.”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지?”
“혹시 경비들의 눈을 피해 대사제가 머무는 별궁에 가는 방법을 아십니까?”
사실 내가 제일 궁금한 건 이거였다. 아무리 여러 차례 게임을 진행했어도 경비병들의 루트까지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으니까. 그저 선택지 몇 개가 주어져서 고르기만 하면 알아서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왕성 내의 경비병들이 언제 어떻게 움직이는지 말해주마.”
아르헨의 말에, 나는 그제야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
바하누 왕성, 셀로스의 별궁.
밤이 늦은 시각이었지만, 대사제 셀로스는 깨어있었다.
그는 침실에서 벗어나 마신의 가호가 있는 대사제실로 바삐 움직였다. 잠든 사이, ‘그분’의 부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철컥.
다급히 대사제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셀로스는 장막 뒤에 있는 가호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가 차디찬 대리석에 닿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간.]낮고 음침한 음성이 가호로부터 흘러나왔다.
“예, 예!”
거룩한 음성에 셀로스는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조금 전, 서쪽 탑 부근에 무언가가 침입했다.]“예, 예? 그게 무슨…… 가호가 있는데 침입이라니요?”
[어떤 잔재주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이 서쪽 탑에 갇혀 있던 인간과 함께 성을 빠져나갔다.]“고, 공주와 함께 빠져나갔다는 것입니까?”
[그래.]셀로스의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그는 어느덧 조아리고 있던 고개도 든 채였다. 그러다 이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며 다시금 엎드렸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텐데요…….”
[그렇지. 하나 가호가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온 게 분명하다.]셀로스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설마 디에고교가 이곳의 일을 눈치라도 챈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즈음, 다시금 그분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니 계획을 앞당긴다.]계획. 그들이 가진 계획은 하나뿐이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셀로스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때, 그분의 음성이 이어졌다.
[아니. 계획은 지금 시작된다.]목소리는 거기서 끝이었지만, 셀로스는 그분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