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76
76화
나는 조용히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뒷맛이 썼다. 자인의 눈물을 봤기 때문일까.
‘……이 녀석.’
속으로 한숨을 내쉬자 자인이 말을 이었다.
“있잖아요, 주인님. 저희 집은…….”
자인의 발음은 심히 뭉개져 있어 자세히 집중하지 않으면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
“엄청, 엄청 가난했어요. 진짜 찢어질 정도로.”
나는 연신 술을 홀짝이며 녀석의 말을 들었다. 자인은 코를 훌쩍이며 고백을 이어갔다.
“부모님은 저희한테 막대한 빚만 남기고 돌아가셨고, 제가 막내거든요? 누나랑 형이 있는데…….”
주정뱅이의 말은 군데군데 끊어져 있었지만, 녀석의 사정을 알고 있기에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아무튼 빚이 너무 많아서 일을 해도 해도, 갚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흐흑.”
자인은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하여 손수건을 내밀자, 녀석이 그걸로 눈물을 닦고는 콧물까지 풀었다.
“너 가져라.”
난 돌려받을 생각 없으니까.
“네, 감사해요. 이 비싼 손수건을 주시다니.”
자인은 울다가도 손수건을 받아 기분이 좋은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다가 다시 침울해져서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런데요, 주인님. 제 누나랑 형,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나야 모르지.”
“빚이 너무 많으니까, 매일같이 빚쟁이들이 찾아왔어요. 그 새끼들은 매일 우리 형을 때리고, 그랬거든요. 누나랑 저까지 때리려고 하니까 형이 나서서 다 맞았어요. 불쌍한 우리 형.”
자인의 눈에서 연거푸 눈물이 뚝뚝 흘렀다.
– 안타까운 사연이구나.
카이로스도 감정이입이 되는지 코를 훌쩍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에 형이 갑자기 저를 깨우는 거예요. 숨어 있으라고 옷장에 저를 막 밀어 넣길래 들어가 있었는데…….”
자인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녀석은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힘겹게 입을 뗐다.
“빚쟁이 놈들이 칼을 들고 찾아왔어요. 형이랑 누나한테 칼을 들이밀면서 순순히 따라오라고 그랬죠. 형이랑 누나는 거절도 못 하고 그 새끼들한테 끌려갔어요.”
“너는?”
“저는 옷장에 숨어서 아무것도 못 했죠. 왜냐하면…….”
“…….”
“형이랑 누나가 절대 나오지 말라고 저한테 계속 신호를 보냈거든요. 끝까지 웃으면서 끌려가더라고요. 저는 무서워서 거기 계속 숨어 있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알게 됐죠.”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원작으로 본 이야기보다, 실제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나 또한 감정에 이입하게 되었다.
“……누나랑 형이 빚을 대신해서 팔려 갔다는 걸요.”
자인은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녀석의 손목으로 투명한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하지만 그때 저는 고작 열두 살이었거든요. 그래서 형과 누나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어요. 그때부터 악착같이 돈을 모았어요. 그게 뭐든 뺏기지 않으려면 돈이 있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자인이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녀석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더러워져 있었다.
“빚쟁이 놈들은 형과 누나를 판 돈으로 빚을 청산했는지 더 찾아오지 않았어요. 근데 그게 마치, 두 사람이 절 위해 희생한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어쭙잖은 위로는 오히려 조롱이 될 수도 있으니까.
입을 여는 대신 조용히 자인의 눈을 바라보니, 녀석이 호흡을 한 번 하고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서 돈을 모으고 또 모아서, 그 돈을 전부 형과 누나의 행방을 찾는 데에 사용했어요.”
녀석이 내가 따라둔 술병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내가 녀석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대신 물을 건넸다.
“감사해요, 주인님.”
자인은 헤실헤실 웃다가도 다시 울상이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나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녀석에게 물었다.
“형의 단서는 금방 찾을 수 있었어요. 형은 먼 나라의 노예로 팔려 가서…… 노역을 하다가 사고로 죽었더라고요. 내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훌쩍, 자인이 코를 삼켰다. 그러다가 고개를 세게 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누나는 살아있어요.”
녀석이 미소 지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짓는 미소는, 그저 가슴을 아프게만 만들었다.
“근데 우리 누나…… 누나도 되게 불쌍해요. 귀족 가문에서 하녀 일을 하다가 디에고교를 믿게 된 모양이에요. 그런데요.”
자인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 몇 년 만에 만난 누나는 이상해졌어요. 디에고교의 광신도가 된 거죠.”
자인의 입매가 픽 올라갔다.
“저와 다시 만났을 때도 저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디에고 신만 찬양하더라고요. 본인이 번 돈도, 제가 준 돈도 죄다 디에고교에 갖다 바치더라고요.”
자인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제가 그러지 말라고 해도, 되려 저한테 디에고교를 믿으라면서. 하지만 제가 어떻게 믿어요? 나락에 있는 누나를 더 나락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게 디에고교인데. 그러다가……”
자인의 자조적인 웃음이 어느새 미친 사람의 그것처럼 변해 있었다.
“누나는 디에고교의 성녀가 되었어요.”
“……그랬군.”
“그거 아세요? 디에고교의 성녀는, 죽을 때까지 디에고교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물론, 알고 있다. 대답 대신 술을 마셨다.
“그러니 어쩌겠어요. 누나를 거기서 빼 오려면, 디에고교를 무너트리는 수밖에는 없죠.”
자인의 입매가 옅게 올라갔다.
“이제 제 가족은 누나 하나뿐인데. 누나를 지키기 위해선, 디에고교를 무너트리는 방법밖에 모르겠더라고요.”
자인은 제 팔에 기댄 채 고개를 숙였다. 녀석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그래서 돈도 열심히 모으고 있는 거예요. 디에고교에서 누나를 빼 오면, 다시는 누나를 잃기 싫으니까. 악착같이 모아서…… 이제는 내가 누나를 지켜주고 싶으니까.”
더 이상 자인의 음성은 이어지지 않았다. 잠들기라도 한 것인지,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만 들려왔다.
–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구나.
카이로스가 코를 훌쩍였다. 나는 조용히 술을 들이켰다.
디에고교의 성녀는 디에고교를 대표하는 이였기에, 디에고교 본단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디에고교 본단의 보안은 상당했다.
원작에서 자인은 이미 여러 번 제 누이를 빼 오려고 시도했었다.
성녀로서의 활동을 마치고 본단으로 돌아가는 누이를 빼내려다가 디에고교 사제들과 마주쳐서 전투를 벌이기도 여러 번. 자인은 그들의 피를 손에 묻히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하나 성녀를 지키려는 이들의 숫자가 상당했기에 그 시도는 매번 실패로 끝이 났다.
‘그러다 결국 결론을 내린 거지.’
누이를 되찾으려면, 디에고교 자체를 무너트려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불쌍한 녀석.”
나는 자인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디에고교를 무너트릴 테니까.
***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미안하다, 교주.”
나는 연거푸 고개를 숙이는 두 녀석들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수도 바하누로 돌아가는 마차 안. 맞은편에 앉은 자인과 트로이는 몹시 미안하다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어젯밤, 나는 이 두 놈을 직접 침실까지 옮겨주었다. 사실 식당에 두고 가면 시종들이 옮겨주었을 테지만. 시간이 워낙 늦어서 시종들을 부르기엔 조금 미안했다.
그리고 정오가 될 때쯤에나 일어난 놈들을 마차로 밀어 넣었다. 시종들이 짐을 챙겨준 덕분에 빠르게 마차가 출발할 수 있었다.
자인과 트로이는 마차가 출발한 뒤에야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곤 내게 사죄를 해온 것이다.
“그 잠깐을 못 기다려서 니들끼리 마시고 취해있냐?”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죄송해요, 주인님. 진짜 조금만 마시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진심으로 미안하다, 교주.”
“됐어.”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쩌겠는가.
“그나저나 자인, 어제 일 기억은 나냐?”
혹시나 해 묻자 자인의 두 눈이 커지며 녀석이 화들짝 놀랐다.
“네? 왜요? 혹시 저 어제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
“아, 뭐…… 딱히.”
“그렇게 물어보신 거 보면 맞는 거 같은데요.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녀석의 어깨가 축 처졌다.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그냥 주사가 좀 있구나 싶은 거였지.”
굳이 자인이 제 과거 이야기를 했다고 말을 할 필요는 없어 보였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자인은 불안했는지 계속 내 눈치를 봤다.
“그냥 취해서 헤실거린 게 전부니까 신경 쓰지 마.”
“아, 그랬군요.”
그 후 다행히 녀석은 정말 지난밤이 기억나지 않았는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수도로 돌아가는 길에도 열심히 뜨개질을 하기도 했으니까.
잠깐 잠을 자고 일어나니 마차는 왕성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를 마중 나온 아르헨에게 덕분에 휴가를 잘 즐겼다고 이야기하고는 별궁으로 향했다.
오늘까지는 좀 쉴까, 하다가 포탈을 타고 로벨로 넘어왔다.
‘그래도 그동안 밀린 일들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나는 교주실에 도착하자마자 쌓여 있는 서류부터 훑었다.
내가 없는 동안 아이들이 일 처리를 많이 해둔 덕분에 분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 오늘까지는 쉬지 그러니.
‘괜찮아요. 충분히 즐겼으니까요.’
서류에 서명을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교주님!]알피어스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알피, 무슨 일이야?”
[그, 홀든 가문에서 신전에 방문하였습니다.]“누가?”
[기사분들이요. 교주님, 그러니까 레벨로프님을 모시러 왔다고 합니다.]“……응?”
갑자기 이게 뭔 소리지. 일단 서류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금방 갈게.”
나는 빠르게 교주실을 벗어났다. 의상도 사제복으로 갈아입고, 안경까지 벗고 건물에서 나오자 파나틱을 비롯한 홀든 가의 기사들이 보였다.
“도련님!”
파나틱이 나를 발견하자마자 환히 웃으며 달려왔다.
“파나틱? 여기까지 갑자기 어쩐 일이야? 어머니가 보냈어?”
“네? 혹시 도련님, 서신을 못 받으셨나요?”
이게 무슨 소리지. 나한테 서신이 왔었다고?
“분명 며칠 전, 집사가 도련님께 서신을 보냈던 걸로 압니다.”
“받은 기억이 없는데.”
“아무래도 누락된 모양이군요.”
혹시나 싶어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보았다. 내가 건물을 나오자마자 나를 따라붙은 아이들은 전혀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희 쪽에는 서신이 도착한 적 없습니다.”
대표로 알피어스가 이야기했다.
“그럼 저희 쪽 실수인가 보군요. 죄송합니다, 도련님.”
“아, 뭐. 누락될 수도 있지. 괜찮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 실수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내일 가주님의 탄신연회가 열립니다. 하여 도련님을 모시러 온 것이고요.”
파나틱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놀라고 말았다.
“어, 어머니의?”
“네!”
이 세계에 오고 난 뒤로 생일을 챙겨본 적이 없어서 전혀 몰랐다. 옛날 기억을 뒤지자, 어머니의 생일이 떠올랐다.
몸이 안 좋아서 연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나날들까지.
“그러고 보니 다음 달이면 도련님 생신이군요!”
“아, 그러네.”
이것도 깜빡 잊고 있었군.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니까.
“도련님의 생신 연회도 열리겠네요, 그럼.”
“……글쎄.”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형이 나를 데려오라고 한 거야?”
“아, 네! 그럼요. 필요한 것들은 이미 전부 준비되어 있으니 몸만 오시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왜 이렇게 예정에 없던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지.
하지만 어머니의 생신을 유교인으로서 무시할 수도 없으니, 나는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