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cult can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98
98화
분명 라윈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쎄했다.
‘이 자식이 운명론자라는 건 원작을 통해 알고 있었다만.’
그렇다고 설마 이제 겨우 몇 번 보게 된 나한테 친하게 지내자고 할 줄은 몰랐다.
물론, 라윈은 지금 보이는 행동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디에고교의 사도 중 가장 제정신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그가 평범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정확히 정의하자면, 라윈은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이중인격을 가진 또라이였다.
“하, 하하. 여기서 만나다니 반갑네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그냥 무시할까 싶었지만, 왠지 이 녀석이라면 나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바다에 매장시킬 것만 같았다.
“네. 저도 반갑습니다.”
라윈은 어제와 다르게 얼굴이 조금 풀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나와 몇 번이나 만나서 친근감을 느낀 모양이다.
문득 원작에서의 라윈이 떠올랐다. 이 녀석은 자신이 운명이라고 여기는 상대에게 급속도로 친밀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하여 칼리드와도 친하게 지냈다. 지금은 칼리드의 가학적인 성향에 멀어지기는 했다만.
“그런데 형제님께서는 하비스 섬에 어쩐 일로 가시는 겁니까?”
라윈이 이제는 아예 내 옆으로 다가와서는 말을 붙였다. 그러는 사이,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응시하며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관광이요. 섬을 보는 건 처음이라 구경하러 가는 거예요.”
“아아. 그렇군요. 하지만…… 타이밍이 영 좋지 못하시네요. 요즘 하비스 섬과 가까운 케틴 해역에 몬스터 출몰이 잦거든요.”
“……그런가요?”
“네. 그러니 되도록 하비스 섬 뒤쪽으로 이어진 바다에는 들어가지 마세요.”
녀석이 진득하게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왜 하비스 섬으로 가는 걸까.
“그런데…… 당신도 하비스 섬에 관광하러 가십니까?”
“아, 제 이름은 라윈입니다. 형제님은요?”
“저는…… 레비아탄입니다.”
딱히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없어 순순히 말했다. 아직 그에게 ‘레비아탄’이라는 이름에 대해 별다른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것일까. 다행히 라윈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직 이 녀석 귀에는 카이로스교에 대한 정보가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군.’
혹시나 싶어 말해보았는데, 꽤 쏠쏠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디에고교 내부에서 아직 카이로스교에 대한 정부가 완전히 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저는…… 관광이라기보다는 하비스 섬에 볼일이 있어서요.”
“무슨 볼일이기에…….”
“그건 개인적인 사정이라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라윈은 미소와 함께 딱 잘라 대답했다. 공과 사에 철저한 캐릭터인 만큼 선을 긋는 것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그냥 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녀석의 대답이 탐착지 않았던 것은 나뿐이 아니었는지 카이로스가 낮은 음성으로 내게 속삭였다.
– 조심하는 게 좋겠구나.
‘네. 디에고교의 사도일 것 같으니, 더 주의할게요.’
***
배가 움직이는 동안, 라윈은 내게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놓았다. 하비스 섬의 어원이라든지, 세우스 마을의 숙소 중 어디가 좋고 나쁜지 등등.
그 이야기들에 대충 대꾸해주다 보니 어느덧 배가 하비스 섬에 도착했다.
하비스 섬은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섬으로, 대략 삼십 가구 정도만이 살아가는 작은 섬이었다. 섬 전체는 달리기로 한두 시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의 범위였다.
“이 섬에서 얼마나 머무르실 겁니까?”
배에서 내리자, 라윈이 내 옆으로 따라붙으며 물었다.
“글쎄요. 이틀 정도?”
생각 없이 대꾸하자, 라윈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조만간 또 뵐 수 있겠네요.”
라윈이 미소와 함께 답했다. 하나 나는 이 녀석과 다시 만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니면 아예 오늘 저녁에 해안가에서 볼래요? 하비스 섬만의 특별한 먹거리가 있다고 들었는데.”
크게 반응을 보인 적이 없건만, 라윈은 경계심이 눈이 녹듯 사라진 소형견처럼 물어왔다.
‘왜 이렇게 들이대는 거야? 이걸 무작정 거절할 수도 없고…….’
결국 별다른 핑계를 찾지 못한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어차피 이 녀석과 오늘 이후로 다시 볼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자 라윈이 내게 손을 흔들고는 멀어져갔다.
“그럼 이따 봬요!”
원작에서도 그렇고, 이 세계에서도 그렇고. 라윈의 첫인상은 언제나 쎄한 느낌을 주는 차가운 미청년이었다.
하나 그 실체는 운명론을 믿는 스무 살짜리 청년. 그리고 그 속내에는 서슴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디에고교의 사도까지 숨겨져 있었다.
정말, 엮이기 싫은 부류다.
나는 멀어지는 라윈에게서 시선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케틴 해역으로 갈 차례였다.
***
케틴 해역과 가장 가까운 해안가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기에, 섬의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이동했다.
다행히 친절한 주민들이 나를 폐쇄된 작은 항구로 안내해주었다. 위험하다는 표지판이 세워진 해안가 뒤로 끝도 없는 수평선이 보였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이 항구에서 배를 띄워 케틴 섬과 교류를 했었나 봐요.’
– 그래. 하나 지금은 모두 폐쇄되었구나.
‘몬스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더군요.’
심지어 나를 이곳까지 안내해준 섬 주민들은 공포심 때문에 순식간에 항구를 떠나갔다. 오히려 잘됐다. 마음 편히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
한편 조금이나마 마음가짐이 편해진 나와 달리 카이로스는 무언가 조금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 그나저나 섬이 보이질 않는구나.
‘그렇긴 하네요.’
그의 말처럼 드넓은 바다 너머로 눈에 보이는 섬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 거리가 꽤 멀어서 그런 걸 거예요. 눈에만 안 보일 뿐 계속 가다 보면 분명 카이로스님께 기도를 올린 신도가 말한 케틴 섬이 나오겠죠.’
– 그 정도 거리라면 배가 있어야 하지 않겠니? 맨몸으로 헤엄을 칠 생각은 아니겠지?
‘어…… 배는 없죠. 대신…….’
나는 누구보다 내 몸을 아끼는 사람이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바다로 뛰어들 위인이 아니란 소리다.
‘바다에 들어가긴 할 거지만, 그냥 들어가는 건 아니에요.’
– 그럼?
‘카이로스님으로부터 메릴세우스 왕국의 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다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여겼거든요. 그래서 준비한 게 있습니다.’
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해초류에 속하는 약초 몇 개와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말린 해초를 잘게 부숴 유리병에 넣고, 배에 타기 전에 구매한 신선한 조개문어의 피까지 집어넣었다. 이렇게 모인 재료들을 잘 섞으면 한 가지 아이템이 완성된다.
나는 언뜻 기괴하게 느껴지는 물약을 바라보다가 단숨에 삼켰다.
[‘바닷물고기 물약’을 섭취하셨습니다.] [3시간 동안 수중에서 호흡할 수 있으며, 수영 실력이 바닷물고기만큼 향상됩니다.]나는 시스템창을 보며 미소했다. 역시 어떤 레시피든 외워두기를 잘했다. 3시간이나 지속되는 효과이니,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 아가야, 무리하지 말거라.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누구입니까. 카이로스님의 첫 번째 사도잖아요.’
– 하지만 바다는 처음이잖니.
이 세계에선 처음이지만, 그래도 전생에서는 꽤 수영을 잘했다. 게다가 지금은 물약의 효과 덕분에 내 수영 실력이 물고기급이 된 상태다.
나는 바다에 들어가기 전, 최선을 다해 스트레칭을 했다. 몸에서 약간 땀이 나기 직전, 걸치고 있던 로브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가벼운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날씨가 꽤 우중충하네.’
분명 낮이었건만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부디 비가 내리지 않길 바라며, 나는 바다로 향했다.
‘생각만큼 차갑지는 않군.’
천천히 얕은 물가를 걷다 보니 어느덧 가슴까지 물이 차올랐다.
나는 곧바로 바닷속으로 잠수했다.
바다 내부에 들어선 뒤 두 눈을 떴다.
‘바닷속에서 이렇게 편히 호흡하다니.’
팔다리를 움직여 헤엄치자, 신체도 매우 가볍게 움직였다. 진짜 물고기가 된 기분이 들었다.
‘역시 물약을 제조하길 잘했어.’
사실 수호의 방벽을 사용하면 굳이 물약을 먹지 않아도 바닷속에서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하나 그러면 성력도 소모될 거고, 물고기만큼 헤엄을 잘 치지도 못했을 터. 하여 나는 그 대신 스토리 후반부가 돼서야 레시피를 얻게 될 물약 제조를 선택한 것이다.
– 아름답구나.
‘그러게요. 정말 예뻐요.’
바닷속에는 여러 물고기가 질서정연하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바닥에는 해초와 조개, 불가사리들이 가득했다.
톡.
지나가던 물고기가 내 손을 건드리고 갔다.
‘귀엽네.’
나는 수중 탐사를 하듯 주변을 살피며 점점 앞을 향해 나아갔다. 중간중간 수면 위로 올라가 케틴 섬이 있는 방향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는 섬의 위치를 찾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하지만 케틴 섬은 내가 출발한 폐쇄된 항구에서 직진하면 도착했기에, 뒤에 있는 항구의 방향을 확인하며 이동했다.
물론, 두 섬의 거리가 꽤 되니 그 방법만으로 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케틴 섬에 가까워지는 케틴 해역에 도착한다면 섬이 보일 터. 그리고 케틴 해역에 도착했다는 걸 아는 방법은 딱 하나.
‘……몬스터다.’
몬스터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헤엄을 치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케틴 해역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기 위해 몬스터의 자취를 찾던 때였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더니.’
한참을 헤엄치던 나는 마침내 대형 몬스터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를 가득 메우고 있는 매우 거대한 문어. 저 문어 하나의 크기가 웬만한 섬처럼 느껴질 정도로 몹시 커다랬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는…… 그 문어 주변에 누군가가 있었다.
– 아가야, 저건……!
나는 재빠르게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문어의 머리를 향해 손을 갖다 대는 이를 발견했다.
그는 바로 라윈이었다.
– 뱀의 아이로구나.
‘네. 그런 것 같아요.’
멀리서 발견한 라윈은 미처 나를 발견하지는 못했는지 문어의 머리를 만지고는 순식간에 수면 위로 올라갔다. 혹시 몰라 잠시간 기다려보았지만, 녀석이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나는 녀석이 확실히 떠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바위 뒤에서 빠져나왔다. 조금 떨어진 거리의, 라윈이 머리를 만지고 간 대형 문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여 약간 다가가자, 문어의 이마에 박혀있는 블랙아크가 똑똑히 보였다.
‘저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였군.’
이게 라윈의 단순한 악취미인지, 혹은 디에고교에서 내려온 명령인지는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예의 있는 척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묘한 수작을 벌이는 녀석의 모습에 몹시 기분이 더러워졌다.
[서브 퀘스트 ‘메릴세우스’ 3. 클리어!] [서브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서브 퀘스트 발생!] [서브 퀘스트 ‘메릴세우스’ 4.내용: 케틴 해역에서 도달한 당신. 눈앞에 나타난 것은 크라켄이었습니다. 크라켄을 처치하고, 케틴 섬으로 나아가세요.
목표: 크라켄 처치 후 케틴 섬에 도착하기 (본 퀘스트는 연계 퀘스트입니다)
성공 시 : 다음 퀘스트 흔적 발견
실패 시 : –
최종 성공 보상 : ???
[수락하시겠습니까?] [네/아니오]문어에게 다가가면서 케틴 해역에 오게 된 것인지, 퀘스트 창이 나타났다. 나는 수락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이었다.
크라켄의 주위로 순식간에 기포가 무수히 차오르더니, 크라켄놈이 거칠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 아이야!
나는 곧 초대형 문어, 크라켄이 만들어낸 거센 물살에 휩쓸리고 말았다. 놈의 크기에 비하면 마치 손톱만 한 크기의 내 몸이 정처 없이 바닷물에 쓸려갔다.
– 괜찮느냐, 아이야!
타악.
다행히 근처에 있던 바위를 붙잡을 수 있었다. 한가득 생성된 기포가 시야를 가렸다. 서둘러 손으로 휘휘 저어 약간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라졌어?’
그사이 크라켄은 원래 있던 장소에서 이미 사라져 있었다.
정확히는 크라켄의 다리 몇 개만이 바닷속에 남아있었고, 몸통은 수면 밖으로 튀어 나간 것이었다.
‘설마.’
나는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불길한 예감에 빠르게 헤엄쳐 수면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마침내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을 때,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거대하고, 전신이 피처럼 붉은 크라켄이 어딘가로 향하는 뒷모습을.
녀석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구태여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녀석의 목적지는…….’
케틴 섬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