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Disaster-Class Necromancer Retires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에필로그
“좋은 아침입니다! 이사님!”
직원들의 말에 김인태 이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좋은 아침입니다.”
그렇게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스켈레톤 경비에게 사원증을 인증받은 뒤 세론이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초고층 빌딩으로 들어간 김인태.
그때 김인태의 눈에 이제 막 입사하여 군기가 바짝 든 신입 사원들이 들어온다.
그 모습을 본 김인태가 추억에 젖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그게 벌써 15년 전이구나.”
한국을 넘어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발돋움한 세론 그룹에 25살의 나이로 입사하여 15년 만에 능력을 인정받아 임원 자리에 오른 김인태.
그룹이 막 도약하던 시기를 제외하면 가장 빠르게 임원직에 오른 케이스이기에 김인태는 자신의 이사직에 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김인태에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하나 있었으니.
“세론 아일랜드, 나는 언제쯤 가 볼 수 있을까. 회장님 얼굴 한번 뵙는 게 소원인데.”
그것은 바로 그룹의 핵심 인사만 갈 수 있다는 세론 아일랜드로 가 살아 있는 위인이라 불리며 존경받는 기업인과 각성자 순위 양쪽 모두에서 수십 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지혁을 만나 보는 것.
김인태가 입사했을 때는 이미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출현한 게이트인과의 전투가 끝난 후 어수선해진 세론 그룹을 모두 복구한 한지혁이 세론 아일랜드에 틀어박혀 칩거 상태에 들어갔던 상황이었으니까.
김인태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래도 나름 임원까지 달았는데 한 번을 안 불러 주시네.”
내심 능력을 인정받아 임원까지 되었으니 한번쯤은 불러 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김인태에게만은 여전히 굳게 문을 닫고 있는 세론 아일랜드.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달래던 그때 누군가가 김인태에게 다가와 말했다.
“김 이사.”
“아! 윤 전무님!”
그 사람은 바로 윤 전무로, 윤 전무는 김인태가 가장 부러워하는 세론 아일랜드에 드나드는 걸 허락받은 소수의 핵심 인사들 중 하나였다.
“이번에 올린 그 프로젝트 있잖아.”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김인태가 말했다.
“예!”
윤 전무가 언급한 프로젝트는 김인태가 세론 그룹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될 거라 생각하여 심혈을 기울여 구상한 것이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나?”
“물론입니다!”
세론 그룹에서만큼은 임원이라 해서 다 같은 임원이 아닌 법.
윤 전무같이 세론 아일랜드의 출입이 허가된 핵심 임원의 반대가 있으면 아무리 좋은 프로젝트라도 무산되기 마련이니 김인태는 윤 전무를 필사적으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로봇과 AI가 노동력으로 활용되며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과 이 새로운 스켈레톤을 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그렇게 줄줄이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김인태.
그런데 그때 윤 전무가 김인태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 좋은 프로젝트라는 건 기획안 봐서 나도 알아.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야.”
“그럼 어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새로운’ 스켈레톤이 ‘대량’으로 필요한 게 맞나, 이걸 물어보는 거야.”
“당연히 그렇습니다. 기존 스켈레톤과는 완전히 다른 일을 수행해야 하니까요.”
“재고로 쌓아 둔 스켈레톤들 알고리즘 손봐서 재활용하는 식으로는 안 돼?”
그러자 김인태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저도 알고리즘 1급 자격증을 가진 사람입니다. 당연히 할 수 있으면 그 방법부터 채택했겠죠. 하지만 이건 완전히 새로운 형태와 기능을 필요로 하기에 새로운 스켈레톤은 필수입니다.”
그러자 윤 전무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이거 큰일이네.”
“큰일이라니요?”
“그런 게 있어.”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윤 전무가 말했다.
“이건 내 선에서 해결될 일이 아니네. 어쩔 수 없지. 자네, 나 좀 따라와, 만나 뵐 분이 있으니까.”
* * *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윤 전무와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바로 세론의 연구 센터.
그리고 거기서 만나게 된 것은 바로…….
“이거 재미있군요.”
벌써 수십 년째 센터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론 그룹의 창립 멤버이자 세계 최고의 스켈레톤 프로그래머로 명성이 자자한 세론 그룹의 살아 있는 전설 백상호였다.
비록 직위는 여전히 센터장이지만, 그건 백상호 본인이 그 자리가 가장 편하고 자신에게 맞다며 고집했기에 그런 것일 뿐 그 누구도 백상호를 일개 센터장으로 보지 않았다.
백상호야말로 세론 아일랜드를 드나들 수 있는 핵심 인사들 중에서도 핵심인, 몇 안 되는 한지혁의 측근이었으니까.
“알고리즘으로 구현이 가능하겠습니까, 센터장님?”
윤 전무의 말에 김인태는 긴장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설마 가능한가?’
윤 전무에게 알고리즘 1급 자격증이 있다는 걸 강조하며 알고리즘 조율만으로는 이 신규 프로젝트 가동이 불가능하다 주장했지만, 상대는 그딴 1급 자격증 가지고는 명함조차 못 내밀 진짜 거물이니까.
그런데 그런 백상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비슷하게 구현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계가 있을 것 같군요. 제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여기 김 이사님 말씀처럼 새로운 스켈레톤이 대량으로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 백상호조차 자신의 주장을 인정해 주니 기분이 한껏 업된 김인태.
그런데 갑자기 백상호와 윤 전무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는 게 아닌가.
“하아. 이거 큰일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새로운 스켈레톤이 필요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큰일이라며 한숨을 내쉬는 윤 전무와 백상호의 모습에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김인태가 물었다.
“도대체 뭐가 큰일이시라는 겁니까?”
“스켈레톤을 누가 만들죠.”
백상호의 질문에 김인태가 말했다.
“한지혁 회장님 아니십니까?”
“그래서 큰일이라는 겁니다. 차라리 사업성이라도 없으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그때 윤 전무가 백상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 센터장님, 센터장님이 보시기에도 사업성이 괜찮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같이 세론 아일랜드로 가시는 게…….”
그러자 백상호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또요?”
“그래도 센터장님 말이라면 좀 들어주시지 않습니까.”
“저번에도 그랬다가 제가 얼마나 시달렸… 후우.”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백상호가 말했다.
“좋습니다. 세론 일인데 가만히 놀고만 있을 수는 없지.”
그러자 윤 전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이십니까?”
“대신.”
백상호가 김인태를 가리키며 말했다.
“김 이사님도 같이 가시는 겁니다. 프로젝트 기획자이니 본인이 직접 설명하세요, 저는 보조만 해 줄 테니까.”
* * *
그저 새로운 프로젝트를 올린 것뿐인데 얼떨결에 자신이 염원해 오던 세론 아일랜드행 전용기에 탑승한 김인태.
김인태는 벅찬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드디어 세론 아일랜드로 가는구나. 아아!”
세론에 모든 걸 헌신해 온 김인태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
하지만 그런 김인태와 다르게 동행한 윤 전무와 백상호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그 성격에 그냥 넘어갈 리가 없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아. 김덕배 고문님께는 연락드리셨습니까? 김 고문님과 백 센터장님이 합공하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칩거한 한지혁을 대신해 세론 그룹을 이끌다 20년 전 부회장직을 내려놓고 고문직만 유지한 채 한지혁과 함께 세론 아일랜드에 완전히 정착한 김덕배를 언급하는 윤 전무.
백상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일단 연락은 했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김 고문님도 반쯤 놔 버리신 상황이라.”
“하아. 김 고문님까지 놔 버리시다니, 큰일이군요.”
그렇게 여러 대화가 오가는 사이 드디어 세론 아일랜드에 도착한 전용기.
전용기에서 내린 김인태가 감격한 표정으로 섬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가… 세론 아일랜드!”
최고급 휴양 시설과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진, 그야말로 지상의 낙원이자 출세의 등용문인 세론 아일랜드.
그렇게 소문으로만 듣던 세론 아일랜드를 만끽하고 있던 그때,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스켈레톤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다가와 말했다.
“어서 오게.”
누군지 얼굴을 확인한 김인태는 바로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말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김 고문님!”
그 노인은 바로 세론 그룹의 영원한 2인자라 불렸던 김덕배였다.
그때 김인태의 뒤에서 백상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 고문님.”
“센터장 왔나? 회장님이 참 좋아하시겠어. 물론 뭐… 일 이야기만 아니라면 말이지.”
그 말에 백상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라고 방법 있습니까. 고문님은 은퇴하셨지만 저는 아직 현역 아닙니까. 제발 설득 좀 해 달라며 부탁하는데 저라도 나서야지요.”
“허허. 아직 팔팔해서 좋구만.”
“회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지금 VR 센터에서 게임하고 계시네.”
“이런 젠장. 하필 요즘 제일 꽂힌 거를 하고 계실 때…….”
“일 때문에 게임하던 걸 방해하면 지랄 난리가 날걸? 허허.”
회장에게 지랄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쓰는 김덕배.
하지만 그런 모습에서 김인태는 오히려 여유로움을 느꼈다.
저런 단어도 거침없이 쓸 수 있을 만큼 한지혁과 편안한 사이라는 뜻이니까.
그때 백상호가 김인태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갑시다, 김 이사. 김 이사가 기획한 프로젝트니 직접 설득해야죠.”
그러자 김덕배가 그런 백상호를 향해 말했다.
“처음 와 본 사람한테 너무 과중한 임무를 맡기는 것 아닌가?”
“한번은 겪어 봐야죠, 어째서 세론 아일랜드에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건지.”
“그건 그렇지. 아무튼 가세나.”
* * *
“으하! 햐!”
거대한 VR 센터에서 VR 기기를 쓴 채 허공을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 청년.
김인태는 그 청년을 보고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하, 한지혁 회장님!’
세계 최강의 각성자이자 세계 최고의 부자이지만 공존을 위해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던질 만큼 엄청난 인품의 소유자.
일부러 그렇게 설계한 게 아닌가 의심이 될 만큼 파도 파도 미담밖에 없는 살아 있는 위인이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론 그룹의 진짜 주인을 직접 마주 보는 순간이 오다니.
그렇게 벅찬 마음을 안고 한지혁에게 다가가려던 그때 백상호가 김인태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잠깐 대기.”
“예?”
“지금 게임 중이지 않습니까. 방해하면 그냥 안 넘어갈 겁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김덕배와 윤 전무.
이해는 가지 않지만 모두가 그러하다니 결국 김인태도 VR 기계를 쓴 한지혁이 온몸을 허우적거리는 걸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지혁이 VR 기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진짜 재밌네. 정말 내가 우주에 있는 것 같아.”
그렇게 VR 기기가 벗겨지며 완전한 한지혁의 얼굴을 보게 된 김인태는 감탄했다.
‘저게 어떻게 60대 얼굴이야.’
세월의 흔적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주름 하나 없는 탱탱한 피부.
한지혁 하면 가장 미스터리로 여겨지는 게 바로 이것이었다.
각성자라 해도 나이를 먹으면서 노화가 되는 건 당연한데, 벌써 60대가 되었음에도 세론 그룹을 창업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
그때 한지혁이 고개를 돌려 백상호를 발견하자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 백 센터장님! 윤 전무도 왔네?”
“예, 회장님.”
“놀러 온 거예요? 바다 보면서 한잔할까?”
그때 백상호가 김인태를 앞세우며 말했다.
“오늘은 놀러 온 게 아니라 여기 김인태 이사를 소개하러 왔습니다. 입사 15년 차의 능력 있는 임원입니다.”
그 말에 김인태는 벅찬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회장님. 김인태입니다.”
늘 염원해 오던 한지혁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었다.
‘어떤 분일까. 게임을 즐겨 하시는 걸 보니 유쾌? 아니면 소문처럼 부드러운 인품의 소유자?’
그렇게 김인태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그때.
한지혁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는다.
“임원을 소개하러 왔다고요?”
“예.”
“굳이 게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는 건 내 눈치를 볼 일이 있다는 소리고, 심지어 임원을 소개하려고 왔다는 건…….”
한지혁이 경악하며 말했다.
“설마 또 일 때문에 온 겁니까?”
그러곤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발악을 하기 시작한 한지혁.
“안 해! 나 일 안 해! 저번에도 해 달래서 해 줬잖아요! 그런데 왜 또 일을 해야 되는데!”
“그때 일해 주신 덕분에 세론 그룹 매출이 더욱 증가…….”
“아니, 돈 충분하니 이제 그만 벌어도 된다니까! 안 해! 절대 안 해!”
마치 하기 싫은 숙제를 앞둔 아이처럼 땡깡을 부리는 한지혁.
“애초에 현상 유지만 해도 된다고 했잖아요! 왜 자꾸 일을 벌이고 키우냐니까!”
자신의 상상과 너무나 다른 한지혁의 모습에 넋이 나간 김인태.
그때 백상호가 김인태에게 말했다.
“얼른 설득하세요.”
“에… 에? 예?”
“참고로 매출이 어쩌느니 비전이 어쩌느니 이런 말은 안 통합니다. 차라리 인정에 매달리세요.”
그때 윤 전무가 다급히 한지혁에게 다가가 말했다.
“회장님, 지금 세론 그룹 수십만 임직원이 회장님 하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앞으로 세론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
“그래서 회장직 유지 했잖아요! 내가 회장직 내려놓으면 사람들이 불안해한다고 해서! 그런데 왜 일까지 시키냐고!”
회장이자 기업의 주인인 한지혁이 본인에게 일을 시킨다며 난리를 치는 상황.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에 김인태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 어? 에?”
결국 백상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그럼 이번만 도와드릴 테니 보고 배워요, 다음부터는 직접 해야 되니까.”
그러곤 한지혁에게 다가가 말했다.
“회장님.”
“백 센터장님, 나한테 왜 이래요? 예? 나 좀 쉬게 해 달라니까!”
“한번만 도와주시죠. 제 선에서 해결될 일이면 제가 했겠지만, 이건 완전히 새로운 스켈레톤이 필요한 프로젝트입니다.”
“그러지 말고 백 센터장님도 은퇴하고 나랑 여기서 놉시다.”
“저는 일하는 게 좋아서 말입니다.”
“나는 아니라고오오…….”
“가끔씩은 회장님이 활동하는 모습도 보이셔야죠.”
“언데드 몬스터 나오면 바로바로 움직이잖아요. 그 정도면 됐지, 왜 회사 일까지 시킵니까!”
“회장니이임!”
그때 그 모습을 보다 못한 김덕배가 나서며 말했다.
“백 센터장, 대신 이런 건 어떤가? 이번만 도와주면 최소 3개월 이상 쉬는 걸 보장한다든지.”
그러자 한지혁이 김덕배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번에도 3개월 보장 한다더니 1달 만에 다시 찾아왔잖아요! 제가 또 속을 것 같습니까!?”
“이번엔 다를 겁니까. 그렇지, 센터장?”
“물론입니다! 3개월 보장!”
일하기 싫어하는 회장과 그런 회장을 어르고 달래는 핵심 인사들.
무게감 있는 한지혁을 필두로 핵심 인사들과 함께 세론 그룹의 미래에 대해 심도 있는 회의를 할 거라 기대했던 김인태의 상상이 완전히 박살 나는 순간이었다.
“으아아! 싫어!”
“그럼 어떡합니까, 새로운 스켈레톤을 만들 수 있는 건 회장님밖에 없는데.”
“그냥 사업 늘리지 말라고요!”
“자본주의 시장에서 정체는 곧 퇴보입니다.”
“조금 퇴보해도 괜찮으니 제발!”
“회장님은 괜찮을지 몰라도 세론 그룹에 모든 걸 바쳐 온 저희는 용납 못 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하던 그때 한지혁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 온다.
“후우. 여보세요. 엉? 스켈레톤이 또? 어디라고요? 영국? 아이씨! 한 일 년 잠잠하더니… 젠장! 왜 갑자기 일이 겹쳐서 오는 건데!?”
한지혁이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전용기 준비 해 줘요, 바로 출발하게.”
그렇게 통화를 마친 한지혁이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하기 싫어…….”
이타적인 성격으로 사람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인격의 소유자로 유명한 한지혁이 보여 주는 극한의 귀차니즘.
그때 한지혁이 김인태를 노려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본인이 기획한 프로젝트인 것 같은데, 맞나요.”
“마, 맞습니다.”
“백 센터장님이 직접 온 걸 보니까 사업성 좋은 대규모 사업인 것 같은데, 왜 일을 잘해서 이 사달을 만듭니까.”
무려 회장에게서 일을 잘한다고 핀잔을 듣는 상황.
“가, 감사합니… 아니, 죄송합니다……?”
감사하다 해야 할지 죄송하다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김인태.
“후우. 젠장. 왜 자꾸 일이 늘어만 가는 거야. 다들 적당히를 몰라, 적당히를.”
그렇게 몸을 일으키는 한지혁.
그런데 한지혁이 갑자기 김인태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음? 일반인치고 에너지가 상당한데?”
“예?”
“잠깐 와 보세요.”
그 말에 엉거주춤 다가가자 한지혁이 김인태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흐음? 감응력이 상당한데? 흐으으음.”
“회, 회장님?”
“지금 문제가 새로운 스켈레톤을 나밖에 못 만들어서 그런 거죠?”
“그, 그렇습니다.”
그러자 한지혁이 김인태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가르치기 귀찮기도 하고 문제 생길까 봐 포기했었는데, 그냥 가르쳐 줘 버릴까? 일반 스켈레톤 만드는 수준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데.”
“예?”
“그래, 이러다간 나 평생 은퇴 못 할지도 몰라. 어차피 에너지는 사람들한테 공급받아야 되니 딱 일반 스켈레톤 만드는 방법만 가르쳐 주면 악용도 못 할 것 아니야.”
그렇게 혼자 이래저래 중얼거리던 한지혁이 말했다.
“그간 제가 감응력 좋다며 따로 추려 둔 리스트에 있는 직원들 전부 이쪽으로 보내세요. 거기에 에너지 선 그릴 수 있는 펜도 대량 발주 하고.”
그 말에 방금 전까지 회장을 어르고 달래던 김덕배를 비롯한 핵심 인사들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 난데, 그 리스트 있지? 회장님이 따로 뽑아 둔 리스트. 그래, 그거. 거기에 있는 직원들 전부 세론 아일랜드로 발령 조치 해.”
“지금 바로 에너지 선 그리는 펜 발주 넣으세요.”
그렇게 순식간에 지시를 내린 한지혁이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스켈레톤 만드는 법 가르쳐야겠습니다, 대신 딱 내가 정해 둔 수까지만 만들 수 있게 한계를 걸고. 그래야 사회적 부작용이 없을 테니까.”
그러곤 김인태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김 이사님도 포함입니다.”
“저, 저 말입니까?”
“새로운 스켈레톤 필요하다고 했죠? 그것도 원래 것과 완전히 다른 형태와 기능을 가진. 본인이 직접 만드세요, 만드는 법 가르쳐 드릴 테니. 물론 악용은 못 할 겁니다, 제가 그런 것에는 좀 민감해서.”
김인태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건 회장님 능력 아닙니까? 그게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거였습……?”
그때 백상호가 나서며 말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세요, 그게 정신 건강에 편하니까.”
“예?”
그사이 모든 지시를 내린 한지혁이 말했다.
“전 이제 영국 가 봐야 되니 마무리는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렇게 한지혁이 나가자 백상호가 김덕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건 10년 전부터 고민하시던 것 아닙니까?”
“맞네. 뭐라더라? 가르치는 데 너무 오래 걸려서 귀찮다고 하셨었지.”
“혹시 문제 생기지는 않을까요?”
그러자 김덕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회장님을 모르나? 아무리 귀찮아도 문제 생길 일은 절대 안 하시는 분이야. 정확히 딱 회장님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이번에 배울 사람들이 대신할 수 있는 구조까지만 만들고 그 외엔 제약을 걸어 두시겠지.”
“하긴.”
그렇게 백상호와 대화를 하던 김덕배가 김인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축하하네, 제2의 백 센터장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얻은 걸.”
“제, 제2의 백 센터장님?”
“그동안은 회장님이 기본 골격, 그러니까 하드웨어를 만들면 센터장 같은 프로그래머들이 그걸 가동할 소프트웨어를 채워 넣는 구조였는데, 이젠 그 하드웨어 제작 방법도 자네 같은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넘기겠다는 소리야. 물론 제약은 많겠지만, 그래도 최초의 기술 전수이니 제2의 백 센터장이 될 기회나 마찬가지지.”
“아아!”
비록 상상한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출세 등용문이라는 세론 아일랜드를 방문하며 엄청난 기회를 얻은 김인태.
김인태가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선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건 나중에 회장님에게 직접 말씀드리시게.”
그때 백상호가 김덕배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스켈레톤 제작까지 일부 넘기시면 회장님 이제 정말로 은퇴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아니라고요?”
“당연하지. 알고리즘과 달리 제작 쪽은 아무리 감응력이 좋아도 가르쳐서 제대로 써먹기까지 최소 몇 년은 걸린다 한 걸 내가 얼핏 들었거든. 아마 앞으로 몇 년간은 쉴 틈 없이 바쁘실 거야.”
“그럼 몇 년 후에는 완전히 은퇴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하. 그렇게 회장님을 보고도 모르나? 아마 이번 일이 전부 해결돼도 또 다른 일이 생길 거야. 왜냐하면…….”
김덕배가 푸근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회장님은 사방에서 일을 불러오는, 그야말로 일복을 타고난 사람 그 자체니까.”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