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126)
#제126화
Chapter 1
세상을 살다 보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어떤 식으로든 ‘편’에 속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 내 경우가 그렇다.
대격변이라는 거, 나는 겪지 못했다.
타이탄에 떨어져서 지구의 10년을 다른 시간으로 대체했으니까.
지구로 돌아오고 나서도 게이트를 클리어하러 다닌다거나 하는 그런 행동, 나는 거의 하지 않았다.
생각을 해 보면 누나를 구하러 텍사스로 갔을 때랑 사도 하나를 죽이러 게이트 안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정빈과 함께 갑작스럽게 생겨난 게이트에 휩쓸렸을 때.
이렇게 세 번이 전부다.
관심이 없었다. 클리어너라는 직업을 가질 생각도 없었고, 굳이 힘들게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어느 한쪽에 서게 될 때가 있다.
괴우룬이라는 고블린이 나타남으로써 시스템의 시련은, 아니지, 이젠 시스템의 시련이 아니라 ‘별의 이야기’다.
이 별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별의 이야기는 phase2로 넘어오면서 phase1 때의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제는 지구 전체가 무대다.
이게 단발성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중요한 건 내가 어쩌다 보니 누나의 편에 선 채 이 이야기에 휩쓸리게 됐다는 거다.
하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타이탄에서 내게 부탁했던 여러 명의 사람들 중, 독일 태생의 카를 슈미츠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아마 타이탄으로 갔던 200명의 지구인 중 가장 살인을 적게 한 사람일 거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단 한 명의 사람도 죽이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살렸다.
그녀는 의사였다. 회복술사였고, 회복 마법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카를 슈미츠.
그녀는 타이탄의 이이백괴들 중 가장 먼저 신성 제국에 몸을 의탁한 여인이었으며 신성 교단의 대사제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그녀가 말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고, 그 말을 하지 못하고 타이탄에 떨어졌다고.
그러니 만약 지구로 가게 되면 그걸 꼭 전해 달라.
무릎까지 꿇으며 부탁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거절하지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전해 주겠다고 했었는데, 솔직히 지구에 도플갱어 같은 게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하물며 그 도플갱어가 지구에 강림했을 때 주변 인물들을 전부 죽였다는데, 이건 뭐, 희망을 가지는 게 이상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 윤영수 비서실장한테 타이탄에 떨어진 이들의 가족 중 살아 있는 이들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정천 그룹을 제외하고 딱 두 명.
정확히 두 명 있었다.
그 두 명이 카를 슈미츠의 가족이다.
기존에 카를 슈미츠와 연을 완전히 끊다시피 살아왔기에 도플갱어가 접촉도 하지 않았고, 그녀의 가족도 카를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가족과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사이라고 해야 할까.
레오폴드 슈미츠.
카를 슈미츠의 아버지로 뮌헨에 위치한 뮌헨 대학교 병원(LMU)에서 근무하는 외과 교수다.
나이는 59세.
와이프와는 이혼했고 부모는 오래전에 사망했다.
게이트에 휩쓸려 사망한 카를 슈미츠와 현재는 같은 뮌헨 대학교 의대에서 의학을 배우고 있는 한나 슈미츠.
여기서 한나 슈미츠는 카를 슈미츠의 여동생이다.
대충 정리했다.
뮌헨에 도착한 나는 곧장 좌표를 따라 뮌헨 대학교 병원으로 이동했다.
아니지.
이동하려 했다.
중간에 방해하는 웬 이상한 새끼가 없었더라면 이동했을 거다.
쿵.
그 소리와 함께 날개 달린 엘프 하나가 내 앞에 착지했다.
거기까지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거다.
문제는.
“아직 협상이 진행 중이다. 이곳으로의 접근은 불허한다.”
이딴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거다.
불허란다, 불허.
조금 의아하긴 했다.
괴우룬인가 뭔가 하는 관리자가 여기를 비우라고 했던 거 같은데, 얘네는 왜 여기에서 버젓이 활동하는 거지?
궁금하긴 했지만 더 중요한 게 있었다. 한숨이 터져 나온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난 너희가 휴전을 하건 다른 사람을 죽이고 다니건 관심이 없어. 난 그저 저쪽 뮌헨 대학교 병원에 있는 사람 하나를 찾으러 온 거야.”
“저곳에 사람은 없다.”
“구라 치지 말고, 새끼야. 위성 전화로 위치 추적했는데 저기 있다더라.”
“…….”
“그러니까, 내가 정말 예의 있게 딱 한 번만 말할게. 좀 꺼져 줄래?”
엘프가 말했다.
“불허한다.”
그대로 손을 뻗었다. 놈의 귀가 손에 잡힌다. 그대로 당겼다. 놈의 면상을 코앞으로 가져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일을 이해하지 못한 듯, 놈의 두 눈은 크게 뜨여 있었다.
그대로 놈의 뺨을 후려쳤다.
짜아아아악-!!
놈의 눈알이 터지고, 볼이 터진다. 옆으로 튀어져 나가는 열 개의 이빨과 제대로 어긋난 턱.
보통 사람이었으면 이대로 죽었을 거다.
하지만 놈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신음을 터트리는 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 말이 말 같지 않아?”
곧장 주둥이에 주먹을 꽂았다.
꽈아아아앙-!!
그대로 짓이겨진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놈의 면상 앞에 쪼그려 앉았다.
“오랜만에 들어 보네. 불허?”
“……대체…… 네놈은…….”
회복 속도가 빠르다. 벌써 턱이 재생됐다.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요즘 들어 이런 기분을 자주 느끼는 거 같아.”
“…….”
“왜 이렇게 뭣도 없는 새끼들이 자꾸 기어오르는 걸까.”
진심이다. 진심으로 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사람이 성질 죽이고 얌전히 살려고 하는데 왜 자꾸 건드리는 거야. 응?”
“…….”
“꺼지라고 예의 있게 말했잖아. 자연기 좀 다룬다고 세상 다 가진 거 같아?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뒈진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새끼가, 콱 씨.”
됐다.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도, 시간을 낭비할 이유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뒤 놈의 면상을 발로 내려찍었다.
콰직-!
그대로 터트린 뒤 심장도 발로 짓밟았다. 확실하게 뒈진 게 맞다.
고개를 들었다.
뮌헨 대학 병원 간판이 보인다. 이곳은 정문이다. 주변에 거의 수천 마리가 넘는 좀비들이 있는 그런 곳.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타이탄에서의 동료가 무릎까지 꿇으며 했던 부탁이다.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소원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 소원, 나는 들어줄 생각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건 나한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 * *
어느 날 갑자기.
보통 소설 도입부에 등장하기 딱 좋은 단어다. 부족한 개연성의 설명을 넘어가게 해 줄 수 있는 단어이며 작가에게 있어서 매우 유용한 마법의 단어이기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일은 시작됐다.
게이트가 열렸고 몬스터들이 등장했고 초인들이 나타났다.
지금의 이 일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났다.
물린 사람은 좀비가 되었고, 그 좀비들을 통솔하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존재가 나타났다.
그들은 시스템상으로 엘리트 좀비라고 불렸고, 스스로는 엘프라 부르기를 원했다.
뮌헨 대학교 병원 외과 교수 레오폴드 슈미츠는 입고 있던 수술복을 집어 던졌다.
“……답이 없군.”
정말 드물다. 레오폴드 슈미츠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그의 옆에서 똑같이 수술복을 벗은 남자가 분을 삭이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찬가집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가 왜 저 사람들을 해부해야 하는 겁니까. 이건…… 너무 비인간적입니다.”
어쩔 수 없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니까.”
“…….”
“심장 속에 있는 벌레를 없애고 뇌에 닿아 있는 촉수들을 아무런 문제 없이 제거하는 방법을 만들어라, 우리에게 내린 명령이지. 지키지 않으면.”
“지금 남아 있는 뮌헨 대학교의 사람들을 하나씩 죽이겠다고 했지요.”
“그래, 애초에 인간이 아닌 놈들이기에 그런 명령을 내리는 거다. 일종의 몬스터 같은 거지.”
“……교수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레오폴드는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괜찮지. 놈들은 분명 자신들의 몸에 있는 벌레를 제거할 의도로 우리에게 시킨 모양이지만, 생각만 바꾸면 우리에게도 의미는 있어.”
그 의미는 별게 아니었다.
“의도가 어찌 되었든 좀비로 변해 버린 인간들을 수술적인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분명 의미가 있는 거지.”
“하지만 그 관리자라는 고블린이 방법은 없다고 했잖아요.”
“그들의 말을 어찌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겠나. 해 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에게 이런 일을 시킨 게 그 고블린이다. 말과 행동이 다를 때는 최대한 의심을 하는 게 맞다. ‘방법이 없다’라는 말은, 높은 확률로 ‘현재로서 찾아낸 방법이 없다’라고 해석하는 게 맞지 않겠나.”
딱딱하고, 고집이 센 남자이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마음 정도는 가지고 있다.
레오폴드는 그렇게 대기실로 돌아왔다. 한숨을 터트린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단 뮌헨 대학교에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 숫자가 대략 120명 정도다.
전부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학부생들이다.
기존에는 숫자가 더 많았지만 이곳은 대학 병원이었다. 좀비 사태 이후로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
엘프들이 최대한 모은 게 이 숫자다.
이미 이곳에서 거의 5일 정도를 지냈다. 서로 안면을 튼 지 오래됐고, 친분이 있다.
그렇기에, 지금 들어서는 저 남자가 외부인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굉장히 부드러운 인상의 동양인 남자라고 해야 할까. 피부는 좋았고 눈매는 또렷했으며 입가에는 작은 미소마저 띠고 있었다.
부드러운 인상을 넘어서, 지나치게 여유로웠다.
그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매우 깨끗한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넥타이는 없었다. 그게 꽤 인상적이다.
그가 귀에 꽂혀 있던 무선 이어폰을 가볍게 두드린다.
불이 켜지는 것과 동시에 그가 말했다.
“여기 레오폴드 슈미츠 씨 있습니까?”
너무나도 유창한 독일어였다.
간단했다. 세상은 변했다. 굳이 다른 나라 언어를 알지 않아도 자동으로 언어를 번역해 주는 기계 정도는 생겨났다. 지금 남자가 귀에 꽂고 있는 게 그 번역기다.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가 레오폴드를 바라본다.
남자도 레오폴드를 바라보았다. 그가 웃었다.
“확실히 닮았네.”
그는 망설임 없이 레오폴드에게 다가왔다. 그때였다. 몰려 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뛰어나오더니 레오폴드 앞을 가로막는다. 여자였다. 그녀는 금발이었고 또한 날카로운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잠깐만요. 당신 뭐예요?”
남자는 유심히 그 여자를 살폈다. 외모.
이 외모가 지나치게 익숙했다.
“……뭐야. 여기도 닮았네?”
이내 남자가 알았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