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128)
#제128화
짜아아아악-!!
아카루안의 얼굴이 홱 젖혀진다. 올라오던 그의 기운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정신이 나갈 정도의 위력이다. 허공으로 튀어 나가는 피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아카루안의 귓가에 진시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니들한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으면 그냥 경고할 때 알아서 찌그러져 있었어야지.”
짜아악-!
“얘기 중이라고.”
짜아악-!
“꺼지라고.”
짜악-!
“끼어들지 말라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쉴 새 없이 아카루안의 뺨을 후려쳤다.
모자랐는지 그대로 바닥에 아카루안을 집어 던진 진시후가 이번에는 발을 휘둘렀다.
“이미 뒈진 시체 새끼가 왜 자꾸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해.”
빠아악-!
“나라를 만들겠다고? 휴전하자고?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말이 나왔으니까 묻자. 야,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퍼어억-!
“여기에 뭐 땅 맡겨 놨어? 시스템인지 뭔지 그거 덕분에 숨 쉬고 말도 하고 그러니까 기분 좋고 막 그래?”
콰직-!
“나라 만들어서 뭐 하려고? 좀비들 만들어 놓고 뭐 하려고? 입 싹 닫으려고? 니들이 걔들 원상 복구시켜 줄 것도 아니잖아. 보니까 한번 물리면 그냥 죽은 거더만.”
빠아악-!
“뭣도 아닌 힘 가지고 왜 이렇게 기어올라. 휴전하면 그다음은 뭔데? 기회 봐서 막 지구 정복하고 그러려고? 아니 근데 이 새끼가, 대답 안 해?”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카루안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팔다리는 죄다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었고 얼굴도 짓이겨졌다.
복부는 움푹 파였고 옆구리도 움푹 파였다. 숨소리에 쇳소리가 섞여 나온다. 갈비뼈가 폐를 찔렀나 보다.
그런 아카루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진시후가 자세를 바로 했다.
놈의 숨통을 끊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바닥에서 진동이 온다.
힐끗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아까 아카루안을 바닥에 던졌을 때 그의 품에서 흘러나온 작은 수정구가 있었다.
뭐야, 이거.
진시후가 수정구를 집어 든 뒤 반대쪽 손으로는 아카루안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이거 뭐냐고 물으려 했지만 하지 못했다.
묻기도 전에 수정구에서 거대한 홀로그램이 떠올랐으니까. 보자마자 놀랐다.
헬레나가 보였다.
“너 거기서 뭐 하냐?”
* * *
헬레나가 말했다.
-……이쪽이 묻고 싶은데요. 거기서 뭐 하세요?
딱히 뭐 한 건 없었다. 그냥 볼일 보러 온 거다.
가벼운 문답이 오갔다. 머리채 잡힌 이놈의 이름이, 아까 듣긴 했는데 기억이 안 나서 물어보고, 기타 등등.
그러다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는 건데, 휴전한다거나 하는 그런 건 아니지?”
건너편의 헬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군대를 동원하든 미사일을 쏘든 핵을 쏘든 상관없으니까 이 개판부터 좀 정리해. 얘네들이 알아서 좀비들 한곳에 몰아 놨으니까 죽이기 편할 거 아니야.”
-그건 맞죠. 그런데 괜찮으세요?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좋진 않아.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방해받았거든. 얘들한테.”
-……걔 필요한데, 혹시 살려 주실 수 있어요?
피식 웃었다.
손에 들려 있던 아카루안을 바닥에 집어 던진 뒤, 검지로 목을 찔렀다.
푸욱 소리가 울린다.
이어서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미안. 곧 뒈질 거라 어쩔 수가 없네.”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재생시키고 그러겠지만 그게 될 리가 있나.
혈맥 찢어 버리고, 경추 부분의 모든 신경을 찢어발겨 버린 뒤 그곳에 내 마나를 집어넣으면, 그냥 일반인이랑 별반 다를 바 없어진다.
아카루안인지 아카시안인지 하는 이 새끼는 조만간 과다 출혈로 죽는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헬레나야.”
-……네.
“거듭 말하지만 난 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정말 관심 없어. 알지?”
-네, 알죠. 사도들과 관련된 거 빼고는 관심 없는 거.
수정구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시체가 된 아카루안의 등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한 입 빨아들인 뒤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한테 정말 중요한 일이 있거든. 타이탄에서 나한테 부탁을 한 애들이 정말 많아. 일종의 소원 들어주기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사도들에 의해서 대부분 죽었어. 기적이지. 지금 그나마 두 명이 살아 있다는 게.”
-…….
“걔가 대단했거든. 성녀였어. 타이탄의 성녀. 드래곤들과의 전쟁에서 걔 ‘희생’이 아니었으면 이기기 힘들었을 거야. 그런 애가 전쟁 시작하기 전에 나한테 무릎 꿇고 빌었어. 자기 아버지랑 동생을 살펴 달라고, 자기가 쓴 일기와 편지를 전해 달라고, 지금 그 부탁을 들어주고 있는데 자꾸 방해를 하네. 너도 이참에 알고 있어.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하려는 일, 그게 뭐든 방해하지 마. 정보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살려 둔다느니, 그딴 거 나한테 말하지도 말고 강요하지도 마.”
-……명심할게요.
“그리고 피 공장에 가둬 둔 사도들 죽이지 마. 내가 죽이라고 할 때 죽여. 관리 제대로 못 해서 사도가 뒈지면 그 책임은 네가 지게 될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헬레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면 됐다.
“엘리트 좀비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정리해.”
-……전부요?
“그래, 전부.”
수도 없이, 정말 수도 없이 말했는데 기어오르는 놈들을 정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 명이 오면 열 명을 죽이면 되고, 열 명이 오면 백 명을 죽이면 된다. 천 명이 오면 만 명을 죽이면 되고, 십만 명이 오면 백만 명을 죽이면 된다. 숫자가 안 맞으면 그냥 씨를 말려 버리면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쓸데없이 욕심부리고 있는 벌레들이 있다. 그 벌레들 때문에 내가 하려는 일이 방해받았다.
그래서, 씨를 말려 버릴 생각이다.
“아 그리고, 누나.”
홀로그램 건너편에 있던 누나가 고개를 들었다. 왼쪽 팔목을 들어 올리며 툭툭 건드렸다.
“무슨 일 생기면 알지?”
건너편에서 누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면 됐다. 그대로 수정구를 부숴 버렸다.
천천히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였다.
“……네놈은 미쳤다……. 제정신이 아니야…….”
억눌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카시안이라고 했나? 기억이 잘 안 나네.”
“……아카루안이다.”
“그게 뭐든 어차피 시체가 될 건데 내가 외워야 돼?”
“……미친놈……. 네놈은 지금 지구에 내려진 유일한 기회를 걷어찬 것이다.”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그걸 왜 네가 판단해? 너 뭐 돼?”
“……아니, 판단할 수 있다. 나는 가족을 잃었고 동료를 잃었다. 그리고 국가를 잃었고 백성을 잃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네놈은 모를 것이다.”
재미있다.
연기를 빨아들이며 놈의 말을 곱씹다가 결국,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하하.
“아…… 하하하. 아…… 세상에, 간만에 웃었네.”
배가 아플 지경이다.
“아카시안아. 내가 했던 말 또 하고 그러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 그냥 건너뛸게. 사실 누가 더 불쌍한지, 누가 더 고통받았는지, 지금 여기서 말로 겨루는 것도 웃기는 거잖아. 그치?”
“……엘프들의 국가를 재건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너희 인간들과 교류하며 끊어졌던 프레시안 제국의 명맥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네놈만 아니었다면!”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놈이 말을 잇는다.
“네놈은 결국 이곳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내가?”
“그렇다. 별 #2403, 지구라고 했나? 그래, 이곳 지구에서 네놈은 자리를 잃게 된다. 지구의 모든 이들이 너를 원망할 테니까. 그때도 지금처럼 주먹을 휘두를 텐가?”
“휘두르면 안 돼?”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다. 그러자 들려오는 답이 꽤 재미있다.
“……미친놈.”
웃고 말았다.
“별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로 인해 지구의 인류 상당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앞으로 벌어질 시련에 비하면 이건 조족지혈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구나. 안타깝네.”
“네놈의 그 독단으로 벌어질 일이다. 다 네놈 때문이다. 네놈 때문에 모든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들고 있던 담배를 놈의 뻥 뚫린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치지직 소리가 울린다.
“야, 내가 넓은 마음으로 쭉 들어 주고 있었는데 얘가 선을 넘네.”
“……뭐?”
“프레시안 제국의 명맥을 이어 가고 싶다고? 이거 웃기는 놈이네.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으면 내가 꺼지라고 할 때 꺼졌어야지.”
“…….”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네 생각보다 힘이 세서 예측이 불가능했다, 이런 건 그렇다 치고. 한번 생각해 보자고. 너희는 왜 그렇게 오만한 걸까.”
“……오만?”
“너나 저기 뒈져 있는 엘프 새끼들이나 하나같이 다 똑같더라. 말투에서부터 그게 딱 느껴져. 불허한다, 오지 마라, 협상이 진행 중이니 가라. 내가 딱 비슷한 경우를 정말 많이 봤어. 왜 저런 행동이 나올까. 간단해.”
품에서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물었다. 불도 붙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웃음이 나온다.
“너희의 머릿속에는, 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그냥 뭣도 아닌 걸로 보였던 거야.”
“……웃기지…… 마라…….”
“지금 웃는 건 나 하나면 족해. 넌 웃지 마. 웃지 말고 그냥 들어. 만만했겠지. 너희 엘프들은 하나같이 전부 자연기를 다루는데 지구에 있는 애들 중에 자연기를 다루는 애는 고작해야 서너 명밖에 안 돼. 그런데도 너희는 꽤 많은 숫자가 죽어 나갔어. 왜 죽었을까?”
“…….”
“간단해. 숫자. 너희는 숫자가 달려. 아무리 좀비로 만들 수 있다고 해도 물량으로 달려들고 온갖 현대 무기가 너희를 조준하는데 그걸 버티겠어? 그래서 나름 생각했겠지. 이 전세를 어떻게 뒤집어야 할까. 하나밖에 없잖아. 휴전을 하는 거야. 휴전을 하고 사태를 진정시킨 뒤에 땅따먹기하듯 땅도 먹고 천천히 적을 아군으로 끌어들이고, 재미있어. 내가 안 끼어들었으면 꽤 볼만해졌을 거야. 그치?”
아카루안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간단했다. 그냥, 이 엘프들은 우리 인간들을 별거 아닌 존재로 보았고 언제든 잡아먹을 수 있는 존재들로 보았다.
생각 없는 멍청한 새끼들이나 이놈들이 하자는 휴전이나 이딴 거에 혹하는 거지, 머리가 제대로 박힌 사람들은 이런 머저리 새끼들의 말에 놀아나지 않는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으면 저자세로 나왔어야지. 왜 자꾸 기어올라. 짜증 나게.”
“…….”
“말하다 보니 조금 궁금해지네. 내가 한 건 어디까지나 추측인데, 아카시안아. 이 추측이 맞아?”
“……맞다.”
“다행이네. 그 휴전을 하면 별의 이야기가 멈춘다는 건?”
“……별의 이야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않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