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145)
#제145화
진시후는 곧장 그 편지를 펼쳐 보았다.
내용은 꽤 많았다.
무엇보다 한국어였다.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짧은 서문은 매우 유려한 필체로 쓰여져 있었다.
[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 잘 알고 계시기에 편하게 말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구에서 저는 이룰 수 있는 것을 모두 이뤘습니다. 그런데 관리자의 말을 듣고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뱀파이어의 기원, 저는 그것이 궁금합니다. 제 부모는 스코틀랜드의 귀족이었습니다. 한번 여쭤봤던 적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인간과 다른 거냐고. 부모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의문을 품긴 했으나 밝힐 방법이 없었습니다. 마이어스 가문도 마찬가지로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고만 말씀하셨으니까.
그런데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삶, 저는 한번 여행을 떠나 보려 합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저와 뱀파이어들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모든 뱀파이어들은, 제가 있건 없건 항상 당신을 지지할 것이며 당신의 명령을 따를 겁니다.
부디, 평안한 밤 되시기를.]
편지를 다시 접었다.
“재미있네. 여행을 떠나겠다는데?”
“예, 맞아요. 라자루스는 사라졌어요.”
“언제?”
“음……. 시간으로 보면 여기 올 때 비행기 타고 오셨죠?”
“그랬지.”
“대충 비행기 타실 시간쯤이겠네요. 그때 갔어요. 이 편지만 남기고.”
그럼.
“너는?”
“저요?”
헬레나가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웃는다.
“전 그딴 거 관심 없어요. 기원이 뭐든 그게 뭐가 중요해요.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인간’이라고.”
진시후도 웃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헬레나만큼은 이상하게 믿음이 간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 헬레나는.
그런데.
“유하도 괴우룬의 방문을 받았다고?”
“네.”
“그럼 유하도 이제 지구에 없나?”
“그건 모르죠. 그래도 있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하면 굳이 어디 갈 것 같지는 않아요.”
대충 짐작이 갔다.
헬레나와 라자루스, 그리고 유하는 진시후와 같은 이레귤러다.
시스템의 지배를 받지 않는데도 별의 이야기의 진행을 방해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그런 이레귤러.
이런 존재들이 지구에 계속 있게 된다면 그건 관리자 입장에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수를 써야 했을 거다.
이해했다.
진시후가 물었다.
“그럼 유럽의 뱀파이어들은?”
“제가 관리하죠. 갑작스럽게 세력이 커져서 여간 골 아픈 게 아니에요.”
그럼.
“사도들은?”
“유럽에 있던 놈들 전부 이송시켰어요. 대충 한 시간쯤 됐는데, 보실래요?”
고개를 끄덕이는 진시후에게 헬레나가 안내를 시작했다.
공장 내부는 매우 고급스러웠다.
아무리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자재는 기본적으로 고급을 써야 하는 게 맞는 거다.
방음 문제도 있고 진동 문제도 있고.
쭉 걸어갔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거대한 공동이었다.
절벽 아래에 이 정도의 공동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컸다.
그곳에 정확히 112마리의 사도가 있었다.
하나같이 사지가 전부 잘려 있었고, 몸 곳곳에 관이 삽입되어 있었으며 그 옆에는 그 관들이 연결된 통이 있었다.
통에 피가 계속해서 차오르고 있었고, 곳곳에서 뱀파이어들이 그 통을 나르고 새로운 통으로 교체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쟤들 몸 상태에 비해서 때깔이 곱네. 밥은?”
“잘 먹이고 있었죠. 저기 식도에 연결되어 있는 관 보이세요?”
진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관으로 밥을 주고 있어요. 거의 과식이라고 봐도 좋아요. 저기 있는 112명 먹이는 데 하루 식비만 거의 10만 달러가 넘어간다니까요?”
“그래서 피 색깔이 저렇게 고운 건가 보네.”
“뭐, 그런 셈이죠.”
그런 헬레나에게 진시후는 분위기를 깨는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이거 다 죽이자.”
“……예?”
“다 죽이자고.”
“갑자기 왜요?”
진심으로 당황한 헬레나는 진시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굳이?
진시후가 말했다.
“거슬려.”
“……뭐가 거슬리시는데요? 저 관리 잘해요. 얘네가 무슨 수로 여길 벗어나겠어요.”
“모르는 거지. 페이즈2가 이 정돈데 페이즈3, 페이즈4, 그때까지도 여기가 안전할 거라고 확신해?”
“……확답을 드리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거기다 아직 사도들도 네 마리나 남았잖아. 그중 최상위권 사도도 있다며?”
“……그렇죠.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충 7위쯤 되는 사도가 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에요.”
“내가 어디를 좀 갈 생각이거든.”
“……어디 가시는데요?”
“좀 멀리.”
“…….”
“죽여. 피는 지금 최대한 뽑아 놔.”
진시후는 판단했다.
만약 자신이 부재할 경우, 여기에 있는 사도들이 전부 풀려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일단 다 죽을 거다.
누나도 죽고, 다른 이들도 죽고.
저기 있는 사도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긴 해도 저거, 솔직히 말하면 회복하는 데 일주일도 안 걸린다.
지금이야 진시후가 있으니까 저기 있는 놈들 몸에 새겨 놓은 ‘봉인식’이 유지되고 있는 거지, 진시후가 없어지면 저들은 전부 풀려난다.
그리고.
“얘네 피로 만든 물약 한 오십 병 정도만 줘 봐. 자양 강장제로 딱이더만.”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애초에 사도들을 가둘 수 있었던 것도 진시후 덕분이다. 거절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이견이 조금 있긴 했지만, 진시후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서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해도 되나?”
“웬일이래. 저한테요?”
“어, 너한테.”
“한번 들어는 볼게요. 말해 봐요.”
“전에 흘러가듯 말했었는데, 내가 독일에 왜 갔는지 기억나?”
“나죠. 과거의 인연 때문이라면서요?”
진시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레오폴드 슈미츠, 한나 슈미츠, 이 두 사람이랑 한국에 있는 정하니, 이렇게 세 명을 네가 지켜 줬으면 해.”
“……의사 두 명이랑 기자 한 명…… 셋 다 각성자는 아닌데…… 음. 알겠어요. 뱀파이어들 중에서도 최정예들 몇 명 붙일게요. 쓸 수 있는 아티펙트도 전부 써먹을 거고요. 이러면 된 거죠?”
“어, 그거면 돼.”
그리고.
“말뚝이나 철근 같은 거 있지?”
“말뚝, 철근이요?”
이해를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왜 굳이?
“나머지 사도가 얘네 구하러 여기 올 거 아니야.”
“……그렇…… 겠죠?”
“그동안 숨어 살면서 제대로 된 것도 못 봤을 거 아니야. 좋은 거 보여 줘야지.”
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생각하는 거 자체가 남들이랑 달랐다.
“……저보다 더 뱀파이어 같으세요.”
“고마워.”
“잘 다녀오세요.”
진시후는 묘한 웃음으로 그 말에 답했다.
* * *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있던 단체가 있었다.
그런데 그 단체가 거의 궤멸 수준으로 망해 버렸다.
원래 이쯤 되면 포기하는 게 맞지만 애초에 그 뚜렷한 목적이라는 게 포기할 수가 없는 목적이다.
살아남은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한 명이 어떻게든 이행해야 하는 그런 목적이기에, 아직 진시후에게 잡히지 않은 네 명의 사도들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다.
페이즈2가 시작되었음에도 이들은 행동하지 않았다.
끝날 때까지도 이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침묵하고 또 침묵했다.
기다리면 기회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솔직히 이들이 기다린 이유는 하나였다.
거의 궤멸 직전까지 간 단체를 다시 한번 도약시킬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프리메이슨이 만든 피 공장.
그곳에는 아직 살아 있는 사도들이 수십 명이 넘는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밖에 설명이 안 됐다.
유럽의 라자루스가 사라졌고, 기존에 유럽에서 관리하던 사도들이 전부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 공원에 지어진 프리메이슨의 피 공장으로 이송됐다.
그 숫자는 무려 112명.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장로들이 모두 죽긴 했으나 괜찮다.
진시후만 없으면 된다.
진시후만 없으면 헬레나? 유하? 상관없다.
다 죽일 수 있다.
백 명의 사도가 일시에 움직이면 그게 가능해진다. 진송이? 한 거대 국가의 힘? 전부 무시해도 된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사도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진시후가, 승천자들을 죽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기회다.
진시후는 그렇게 캘리포니아로 향했고, 그곳에서 다시 한국으로 향했다.
캘리포니아에는 헬레나와 뱀파이어 몇십 명 정도만 있을 뿐이다.
이제 그동안 길고 길었던 침묵을 깰 때다.
다시 도약할 때다.
다시, 시작할 때다.
네 명의 사도는 움직였다.
네 명 모두가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툭.
너무나도 가벼운 착지음이 울린다.
네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세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였다.
7번째 사도 백도사.
44번째 사도 식수귀.
91번째 사도 팔안신녀.
140번째 사도 누라리횬.
네 명이 눈앞에 있는 문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콰아앙-!!
문이 부서진다. 네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말과 행동도 맞춰 놨다.
일시에 다시 한번 자리를 박찬다.
엄청난 속도로 쭉 뻗어 가던 네 사람은 순간 의아했다.
왜, 인기척이 전혀 없는 거지?
묘했다.
정면에 또 다른 문이 보인다. 꽤 컸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저 문 너머가 바로 공동이다. 그곳에 사도들이 억압되어 있다.
문을 열어젖혔다.
이제 다시 사도들의 시대가 온다.
저들을 모두 해방시켜…….
“……어?”
멍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들 네 명의 눈에 보이는 이 광경을 다른 이들이 보았더라도 높은 확률로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지옥도였다.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다.
사방에 핏물이 가득했다.
곳곳에 철근이 박혀 있었고, 그 철근 위에는 살아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도들의 목이 꽂혀 있었다.
핏물들 사이로 보이는 엄청난 숫자의 살점과 뼛조각들을 보면, 이 안에서 방금 전까지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
방금 전까지.
네 명의 사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제서야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엄청났다.
이 네 명은, 확실하게 말하는데 당황했다.
그럴 만도 했다.
112개의 목이 꽂힌 말뚝들 정중앙에 의자가 하나 있었다.
그 의자에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는 남자는 입가에 담배를 한 대 물고 있었는데 아직 불을 붙이기 전이었다.
“전에도 이 말을 한 거 같은데, 한 번 더 해야겠네.”
그가 품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내 든다.
치직.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를 뿜어내며 그가 말했다.
“너희 같은 악당 새끼들이 하는 생각이야 뻔하지.”
차가운 표정의 진시후를 바라보며 네 명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너무 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비릿하게 웃으며 진시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멀쩡히 살아 있는 너희들을 두고 어디 갈 리가 없잖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