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167)
제167화
진시후가 말하는 ‘이런 짓’이라는 것은 이 라그나로크 그 자체를 뜻했다.
가면 남자가 답했다.
“굳이 이유가 필요한가?”
“이유조차 제대로 답하지 못할 일이라면 지속될 이유도 없지 않을까?”
예상치 못한 깊은 문답에 가면 남자가 순간 움찔했다.
이 한없이 가벼워 보이던 남자가 이런 문답도 할 줄 아는가.
또다시 웃고 말았다.
이 남자는, 남에게 스스로를 가볍게 보이도록 유도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걸로 인해서 상대가 방심한다면 그 자체로 그것은 무기나 다름이 없다.
조금, 진지해져야 할 것 같다.
“지배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가면 남자의 질문에 진시후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답했다.
“힘이지.”
“……힘?”
“왜? 바라던 답이 아니야?”
분명 바랐던 대답은 아니었다.
“왜 굳이 그 덕목이 ‘힘’인지 듣고 싶군.”
“별거 없어. 누군가의 머리 위에 서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되거든. 힘이 없으면 아래에서부터 기어올라. 그런 거 미연에 방지해야 일 맡긴 애들도 일하기 편하고 관리가 잘되는 법이거든.”
“…….”
“힘이 없는 지배자는 지배자가 아니야. 지배자의 가면을 쓰고 있는 앞잡이에 불과해.”
“그건 지배자로서의 덕목보다는 소양에 가깝군.”
“그거나 그거나.”
엄밀히 말하면 다른 거지만 대충 뜻은 통했다. 가면 남자가 말했다.
“지배자는 지배하고 있는 땅에 대한 안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힘도 틀린 답은 아니지만, 그 힘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앞서 말한 안정이다. 안정적인 세상, 피지배자들에게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지배자로서의 덕목이다.”
“그게 주기적으로 이 별을 리셋하는 이유가 되나?”
“된다.”
진시후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진짜 궤변 같은데.”
“왜 궤변이라 생각하지?”
“왜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
“너는 모른다.”
“그러니까 뭐를?”
가면 남자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토르가 쓰러져 있었고, 그런 토르의 명치를 발로 밟고 있는 천마 주성철이 보인다.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곳은 2037년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나?”
“나야 모르지.”
“인류의 문명은 급격하게 발전한다. 탄소 배출량으로 인해 끊임없이 오르던 지구의 온도는 기술력으로 안정화시킬 수 있게 되고, 해수면의 상승으로 가라앉았던 도시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복구되지. 또한 과학력의 발전으로 행성 간의 여행은 더 이상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좋은 세상이네.”
“겉으로 보기엔 좋은 세상이겠지. 기술력은 발달했지만 인간이라는 종족은, 아니지, 지성을 가진 종족은 생각보다 그리 이성적이지 않다. 2180년이 되면 아슬아슬했던 세상의 평화는 급속도로 깨지게 되고, 2220년이 되면 인류는 ‘4차 대전’을 시작하고, 2235년에 4차 대전은 끝이 난다. 그때 지구에 살아 숨 쉬는 존재는 한정된 자원으로 인해 멸망 직전까지 가게 되지. 2300년이 되면 그마저도 없어진다. 인류의 멸망이 도래한다는 뜻이다. 중간에 다른 행성으로 피난 간 이들도 있지만 그들의 미래는 어둡다. 세상은 가혹하다. 2320년, 더 이상 인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예정된 미래다. 그것이 지구형 별의 최후다.”
진시후가 눈을 끔뻑였다.
“뭔가 인생 스포당한 기분이야.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게 있는데.”
“그게 뭐지?”
“그 미래가 정해져 있는 건가?”
“……내가 알기로는 정해져 있다.”
“말에 망설임이 있는데? 정해진 거 맞아?”
“적어도 ‘지구형 별’은 지배자가 개입하든 개입하지 않든 그 흐름은 같다. 연도는 다를 수도 있지만 벌어지는 일들은 같다. 멸망은 예정되어 있다.”
잠시 생각하던 진시후가 대뜸 물었다.
“지금 이 별의 역사는 네가 의도한 건가?”
“굵직한 역사들은 의도했지만 세부 사항들은 의도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미국의 독립 전쟁이나 예수의 등장, 십자군 뭐 그런 거?”
“그렇다.”
“그럼 더 이해가 안 가는데. 네가 의도한 게 그런 역사라면 아무 개입 없는 역사는 어떤 역산데?”
“다 방향은 다르지만 결국 2320년에 인류는 멸종한다.”
“그게 정해졌다고?”
“인과율이고 흐름이다.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법칙이지. 왜 별의 이야기가 저러고 있겠나.”
물끄러미 가면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말을 잇는다.
“정해진 역사, 2320년의 멸망을 막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그게 별의 이야기다.”
진시후는 상황이 참으로 묘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나온 김에 말해 주지. 기존의 역사는 이러지 않았다.”
“무슨 역사?”
“마법이 등장하고 종을 초월하고, 어비스가 등장하고 게이트가 등장하고, 이런 것은 기존의 역사에 없던 일이다.”
진시후는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다.
“최대한 ‘태초의 역사’대로 흘러가게는 두지만 그 사이에 마법을 넣고, 초인들을 넣었으며 어비스와 게이트 같은 거대한 변수를 넣었다. 그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 변수를 넣은 이유가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다?”
“그렇다. 당연하게도 마법과 초인, 플레이어, 내공, 무공, 그런 것들을 넣어도 2320년에는 멸망한다. 그것은 정해진 역사, 비틀 수 없는 완벽한 인과율,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불변의 결과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수많은 변수들을 만들어 내고 그 변수들로 인한 새로운 운명을 만들고자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지구형 별은 2320년에 멸망한다. 이런 세상에서 너의 행동이 정당해질 거라 보는가?”
“뭔가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내가 악역 같네.”
“같은 게 아니라 너는 악역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2403으로 돌아가라.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진시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고.
그렇게 5분 정도 생각한 진시후가 물었다.
“별의 이야기라는 게 개입을 함으로써 그 멸종이 정해진 거라면?”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군.”
진시후가 고개를 저었다.
뜬금없는 소리가 아니었다.
“모든 것의 시작이 있을 거 아니야. 그 시작의 역사가 지금의 역사랑 같다? 그래서 결국 2320년에는 반드시 지구가 멸망한다? 너한테는 참 미안한 소린데, 내 경지쯤 오르면 알게 되거든. 흐름은 뒤틀 수 있다는 거.”
“…….”
“사람들 모두에게는 개인의 소우주가 있거든? 그 소우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그걸 깨달은 이들이 있고,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뿐이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형은 지금 네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개소리다.”
“아닐걸. 역사가 정해져 있다고? 완벽하게 흘러가는 역사가 있고 그 역사를 주도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웃기지 마. 그게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너나 편집자인지 뭔지 하는 애들이 개입하는 거 아니야. 반대로 생각해 봐. 적당한 별을 선정해서 그 별을 지구로 만들거나, 가 보지는 않았지만 바르가라는 별이랑 중원이라는 별의 형태로 만드는 이유가, 정말 멸종을 막기 위해서일까?”
가면 남자는 말없이 진시후를 바라보았다.
“공백에 그림을 채워 넣기도 전에 제목을 정해 놓은 거랑 같은 거 같은데, 원류의 역사가 2320년에 멸종했고, 별의 이야기는 최대한 그 역사에 맞춰 2320년에 ‘반드시’ 멸망하게 만든 뒤 그 과정에서 나오는 무언가로 이득을 취하는 게 아닐까? 너, 지금 이용당하고 있는 거 아니냐?”
가면 남자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하는 꼬락서니들 보니까 인과율을 뒤틀 수 있었으면 진작에 뒤틀었는데 2320년에 벌어질 인류의 멸종을 막지 못했다? 장난하나. 못 막은 게 아니라 안 막는 거 아니야? 그 이상부터 벌어질 역사는 ‘허용치’가 아니니까.”
“……누구의 허용치를 이야기하는 거지?”
“나야 모르지. 승천자들인지 아니면 별의 이야기를 만든 놈인지. 혹은 둘 다인지. 그리고 이런 시각도 존재하지 않을까? 리셋권인지 뭔지 하는 걸 계속 반복해서 사용하다 보니 경각심이 사라졌다든가 하는 그런 거.”
말없이 침묵하는 가면 남자는 주변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이미 천마 주성철은 승자가 되었다. 승자가 된 그는 사회자를 통해 자신이 가장 바라는 소원을 말했고, 그 소원의 내용은 현재 이 지구의 지배자를 눈앞으로 불러오는 것이다.
여기 말없이 침묵하는 가면 남자를 주성철이 부르고 있었다.
진시후와 가면 남자는 무시했다. 이 세상에 단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그 작은 공간 안에서 진시후가 말했다.
“진실이 뭐든, 놈들을 만날 이유만 늘어나네.”
“……확실히 사람은 겉보기에는 모르는 법이군.”
“뜬금없이 뭔 소리야?”
“교활하구나. 참으로 교활해.”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의 진시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믿음에 의심의 싹을 넣는다……. 효과적인 선동 수단이지. 누군가를 방심시키고 속이기에는 그만한 방법도 없다.”
이게 뭔 개소리야.
“나는 속지 않는다. 별의 이야기는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한 방식이다. 진명이 첨삭인 이유도 멸망으로 향하는 길들을 바꾸고 지우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네놈의 말에 나는 현혹되지 않는다.”
그런 것치고는 지금 많이 현혹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진시후는 내색하지 않았다.
조용히 손을 들며 말했다.
“성철아.”
작은 목소리였지만 콜로세움에 있을 주성철은 그것이 천둥소리처럼 크다고 생각했다.
그대로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진시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진시후가 말했다.
“고생했고. 판 접어. 오늘 플라티라는 새끼 목 따러 간다.”
“존명-!”
진시후가 웃으며 가면 남자에게 말했다.
“네가 누구인지 대충 느낌이 와서 그러는데, 이제 가면 좀 벗어 줄래?”
가면 남자는 묵묵히 손을 들어 얼굴에 채워져 있던 가면을, 천천히 탈착한 뒤 내려놓았다.
가면 너머, 감춰졌던 얼굴은 진시후가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목 쪽에 거대한 화상 자국, 그리고 짙은 쌍꺼풀과 큰 눈.
목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진시후가 빙긋 웃는다.
“반갑다, 현아.”
별 #12의 지배자, [주먹으로 신을 죽인 남자]라는 이명을 지닌 홍현이 말했다.
“나는 네가 아는 그 홍현이 아니다.”
“나도 그건 알아.”
실소를 터트린 진시후는 곧장 본론을 말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형이 재미있는 물건을 받긴 했는데 이게 구천으로는 못 가는 거더라고, 그래서 너한테 이동석을 받아 갈 수밖에 없겠더라. 형이 지금 [플라티]가 있는 한천으로 가는 이동석이 필요해. 그냥 쉽게, 토닥거리지 않고 나한테 주는 거. 이게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뒈지게 맞고 건네주는 거야. 어떤 게 마음에 들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