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173)
제173화
2403한정아의 말에 모두가 눈을 끔뻑였다.
설마 했는데, 그 설마가 맞았으니까.
분명 연기를 헤치며 걸어오고 있는 일련의 무리들 중 가장 정중앙에 있는 그녀는 매우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한정아가 확인 사살을 시켜 줬으니 놀랄 수밖에.
건너편에서 걸어오던 12의 한정아가 2403의 한정아 앞에 섰다.
잠시 둘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쪽은 별 #12의 한정아, 그리고 이쪽은 별 #2403의 한정아. 서로 구원 길드에 속해 있는데 한쪽은 마스터고 한쪽은 팀장. 가지고 있는 힘도 다르네. 한쪽은 자연경의 강자, 한쪽은 음……. 그냥 각성자.”
2403의 한정아가 듣기엔 야박할지 모르겠으나, 어쩔 수 없었다.
2403의 한정아는 굳이 수식어를 붙여 줄 정도의 강자가 아니었을뿐더러, 저 정도 힘을 지닌 각성자는 널리고 널렸다.
아마 이 말이면 대충 정리가 될 거다.
이곳에 와 있는 별 #12의 구원 길드 각성자 중 별 #2403의 한정아보다 약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나는 잠시 뒤로 물러나 있었다.
서로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정확히는 별 #2403의 사람들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반면 #12는 아니었다.
“진시후 님.”
“어, 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별 #2403의, 그러니까 진시후 님 고향 사람들인가요?”
“응.”
“……저희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세요?”
선택권이 나한테 있다는 것을 별 #12의 한정아는 안다.
간단했다.
내가 어느 쪽 편을 들어 주느냐에 따라 이번 어비스의 승자가 결정되어진다.
“한정아야.”
내 말에 별 #12의 한정아와 별 #2403의 한정아가 동시에 반응했다.
“네.”
대답한 건 12의 한정아다.
2403의 한정아는 못마땅한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도플갱어를 처음 보면 대부분 저런 반응을 보일 거다.
나도 저랬거든.
여하튼.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진시후 님 의견에 따를게요.”
“전적으로?”
“네, 전적으로요.”
정말 궁금했다.
“왜?”
“당신 정도의 존재에게 이 정도만으로도 빚을 달아 놓을 수 있다면, 그건 이득일 테니까요.”
“내가 입 싹 닫으면?”
“닫으실 분은 아니시잖아요.”
웃고 말았다.
별 #12의 한정아는 나를 생각보다 잘 안다. 내가 의외로 파악하기 쉬운 놈이라서일까, 아니면 한정아가 예리한 걸까.
“정말 괜찮겠어?”
“……아마 진시후 님께서는 ‘플레이어’가 아니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업적 포인트 10만 점은 생각보다 가치가 커요. 현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요.”
“그 정도야?”
“네. 저쪽 분들은 초창기라 잘 모르실 테지만, 업적 포인트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요. 나중 되시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실 거예요. 진시후 님.”
“어, 듣고 있어.”
“저희는 이번 경쟁 어비스를 포기할게요. 자리 비켜 드릴까요?”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받은 은혜가 있는데, 배가 아프지만 제가 염치없는 여자는 아니에요. 저쪽에 있는 한정아를 보면 아시겠지만.”
그런가.
손가락으로 2403의 한정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이쪽이랑은 별로 안 친해서.”
“……그래 보이네요.”
“그런데 포기를 한다는 게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데?”
“이곳 어비스에 등장하는 ‘키메라’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중간에 탈주하는 게 가능하긴 한데, 원하시면 탈주할까요? 그런데 탈주하면 저랑 동행권으로 함께 오셨기 때문에 다시 별 #12로 돌아가시게 될 거예요.”
대충 이해했다.
“만약 내가 키메라를 죽이면 그 점수는 어디로 카운트되는데?”
“보통 동행권으로 함께 어비스에 온다는 건 ‘일반인’이 함께 온다는 뜻과도 같아요. 그런 동행인이 키메라를 잡게 되면 그 점수를 레드 진영에 넣을지, 블루 진영에 넣을지 동행권을 사용한 각성자가 결정해요.”
“확실해?”
“……본래라면 확실했는데, 이번에는 잘 모르겠네요.”
그럼 실험해 보면 된다.
천장을 향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퍼걱-!
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 숨어 있던 작은 키메라 한 마리가 바닥에 떨어진다.
12한정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블루 진영, 레드 진영, 둘 중 어디에 100포인트를 합산시킬지 묻는 메시지가 떴어요.”
복잡하지만 하나하나 해 보면 생각보다 심플했다.
“여기 클리어 조건은?”
“최종 방에 위치한 물건을 회수하면 끝나요. 보스 몬스터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물건일 수도 있어요.”
잠시 누나와 홍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윤영수 비서실장님은 어디 가고 둘만 있어?”
“비서실장님은 상급 난이도로 가셨어.”
“아, 그래? 오케이.”
잠시 고민했다.
오랜만에 배포를 풀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솔직히 내가 무슨 타이탄에 갔던 것처럼 10년 동안 못 보다가 본 것도 아니고.
고작 며칠이다.
그런 내게 누나가 물었다.
“시후야.”
“왜?”
“밥은 먹고 다니니?”
괴상한 질문에 괴상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누나가 보기에 내가 어디 가서 굶고 다닐 놈으로 보여?”
“그건 아닌데, 조금 야윈 거 같아서.”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 마. 일단 먼저 가 볼게. 지금 상황은 나중에 다 설명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굳이 누나는 나를 잡지 않았다.
별 12의 한정아에게 눈짓했다. 가자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폐허가 되어 있는 방을 걷게 되었다.
음.
“한정아야.”
“네?”
“조금 섭섭한데.”
영문 모를 표정을 지으며, 한정아가 되물었다.
“뭐가요……?”
“나 정도의 존재에게 빚을 달아 놓을 수만 있다면, 어쩌구, 그랬잖아.”
방금 전에 했던 스몰 토킹을 이야기하는 거다.
한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했으니까.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나?”
“……네?”
“빚이라니, 우리 사이에 무슨 빚이야.”
“…….”
“이번 건 내가 너한테 ‘부탁’한 거야. 넌 들어준 거고. 너랑 나 사이에 빚 같은 건 없어. 네가 나한테 도와 달라고 하면 난 그게 무슨 일이든 다 제쳐 놓고 너 도우러 갈 거야. 그 과정에서 빚 같은 걸 달아 놓겠다느니 그런 말은 하지도 않을 거고, 생각도 안 해. 한정아야.”
“……네.”
“난 인연 같은 걸 가볍게 여기지 않아. 특히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의 인연은 더더욱. 그러니 다음부터는 그런 말 하지 마. 너랑 나, 빚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잖아.”
내 말에 한정아는, 웃었다.
봄이 왔을 때, 자연스럽게 지어지는 그런 웃음을 머금으며 한정아가 말했다.
“네. 그렇게 할게요.”
* * *
별 #12의 한정아는 말없이 걸었다.
그녀를 뒤따르는 구원 길드의 각성자들에게는 따로 이야기한 게 없긴 하지만, 하긴 해야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한정아의 독단이다.
그녀가 몸을 돌린다.
“여러분.”
“예, 마스터.”
“……죄송합니다.”
고개까지 숙이는 한정아를 모두가 말렸다. 차주연이 말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마스터.”
“아니요. 이러는 게 맞아요. 여러분들의 업적 포인트 10만을 제가 강탈한 것과 다르지 않잖아요.”
“…….”
“죽는 그 순간까지 이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단호하게 한 번 더 고개를 숙이는 한정아를 모두는 막지 못했다.
이게, 기운을 끌어내서 주변 사람들을 밀어내면서 숙이고 있는 거라 뭘 어떻게 하는 게 이상했다.
그런 그녀의 등을 툭 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진시후였다.
“뭘 이렇게까지 해.”
“…….”
“말은 안 했는데, 조금 미안하긴 해.”
“그런가요?”
“정상적인 게임이 어그러졌잖아. 나 때문에.”
“…….”
“그래서 하는 말인데, 승천자들로부터 너희 별, 내가 지켜 줄게.”
“…….”
“콜로세움이니 이런 걸 부수는 건 당연한 거고, 적어도 천수는 누리게 해 줄게. 너희 전부.”
“공수표 남발하시는 건 아니죠?”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헛소리 그만하고 그 보스인지 뭔지 하는 거나 잡으러 가자. 그런데.”
진시후의 표정이 되게 묘했다.
“너 우리 누나 보니까 뭘 어찌할 줄을 모르던데, 괜찮은 거 맞지?”
“……솔직히 처음에는 긴가민가했거든요. 그런데 맞네요. 제가 모셨던, 그 진송이 님이 맞아요.”
한정아는 진심으로 의아해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나야 모르지.”
“……어비스 중에는 임진왜란부터 기원전 시기까지, 온갖 사건들이 끊임없이 펼쳐져요. 그 수많은 어비스를 겪으면서 만들어진 세상에 어떻게 같은 존재들이 존재할 수가 있는 거죠? 아무리 리셋을 했다고 해도…….”
“말이 안 된다?”
“네. 마치 정해진 역사를 조정하면서 등장해야 하는 인물을 반드시 등장시키는…… 모르겠어요. 마치 창작자가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묘한 눈으로 한정아를 바라보았다.
“예리한 건지, 상상력이 풍부한 건지 잘 모르겠네.”
“제가요?”
“어, 네가요.”
“…….”
“언젠간 밝혀지겠지. 그러니 벌써부터 걱정하고 그러지 말자, 한정아야.”
“네.”
“가자.”
한정아는 곧장 주변에 있던 구원 길드 각성자들에게 명령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진시후가 막았다.
“다른 애들은 여기서 쉬라 해. 둘만 가자. 길 터.”
진시후는 번잡한 걸 싫어한다.
한정아는 그렇게 걸음을 옮겼다.
진시후와 함께.
* * *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일단 이건 확실히 해야 한다.
나는 어비스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애초에 게이트가 있을 때도 거의 들어가 본 적 없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딱 하나는 안다.
얼마나 멀리에 있건 감각을 집중시키면, 그 감각 안에 들어오는 ‘모든 존재’들을 잡아낼 수 있다는 거.
“그 마나 소총이라고 했나? 그거 하나만 줘 봐.”
한정아는 묵묵히 마나 소총을 꺼내 내게 건넸다.
총신이 상당히 짧았다.
권총보다는 길고 일반적인 소총보다는 짧은.
이런 걸…… 그…… 뭐라고 하더라.
“기관총? 대충 그런 건가?”
“정확히는 기관 단총일 거예요. 마나 소총 자체가 말이 소총이지 기본 모델은 기관 단총을 따 왔어요. 그 이유가…….”
한정아가 내가 들고 있는 마나 소총의 총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 부분이 총열이거든요. 일반적인 총에는 강선이 있는데 마나 소총 같은 경우에는 강선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래?”
“네. 자연기를 있는 그대로 쏘아 내는 무기이기 때문에, 목표로 한 곳에 거의 일직선으로 꽂히거든요. 딱히 총알도 필요하지 않아요. 그냥 기운만 있으시면 돼요. 여기…… 어깨에 견착하시고…….”
한정아가 말끝을 흐린다. 그럴 만했다. 우리 거리가 상당히 가까웠으니까.
얼굴이 거의 코 닿을 거리다.
아니지, 그냥 코가 닿았다.
“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여기서 하자고?”
“……미쳤어요? 여기 어비스예요.”
귀엽네.
작게 중얼거리며 영화에서 보던 자세를 대충 잡아 봤다.
“……자세가 괜찮네요. 군대 갔다 오셨어요?”
“난 안 갔는데, 내 짝퉁은 갔더라고. 방공 부대였나.”
“…….”
“여하튼, 대충 자연기 넣고 쏘면 된다 이거지?”
“네.”
망설이지 않았다. 원래 내가 실전형이다.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대며 자연기를 끌어올렸다.
들고 있던 총이 거세게 흔들린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정아가 당황했다.
“자…… 잠깐만요.”
고개를 갸웃했다. 조준경에서 눈을 떼어 내며 물었다.
“이거 원래 이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