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183)
제183화
대충 이 정도면 알아서 할 거다.
“이 일만 해결되면 바로 가는 겁니까?”
“어. 그 별 #299라는 곳도 가야 하긴 하는데,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잖아.”
하루긴 해도 그래도 미룬 건 미룬 거다.
이제는 더 미루고 싶지 않다.
한천의 플라티.
이제 슬슬 만나러 가야 한다.
“형이 시킨 일 처리하는 데 1시간이면 되나?”
“……저를 뭐로 보시고. 30분이면 됩니다.”
“그랴. 30분 안에 정리하고 한국으로 와. 구원 타워, 아까 거기 있던 곳 알지?”
“예.”
“가 봐.”
“존명.”
가서 재단을 설립하고 뭐, 그런 거에 30분이 걸린다는 게 아니었다. 다 죽이고 구원 길드원한테 일임하고 한국으로 오는 데까지 30분 걸린다는 뜻이다.
30분.
정말 넉넉했다.
손에 쥐고 있던 철근을 옆에다 대충 던진 뒤, 나는 한국으로 향했다.
* * *
다시 아까와 같은 시간이었다.
도합 112개의 미스릴 사슬에 묶여 있는 가면을 쓴 남자의 앞에, 한정아는 편한 자세로 앉았다.
[원한의 결정체]가 물었다.“그를 믿나?”
“네.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 목숨을 여러 번 구해 줬거든요.”
“……까놓고 말하지. 어차피 너와 나 사이에는 계약 조건상의 우위를 지니고 있는 이가 없다. 어느 한쪽이 해지를 하고자 하면 아무런 페널티 없이 해지가 가능하지. 그렇기에 우리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다.”
“신뢰죠.”
“그래, 아직은 없는 신뢰. 그것을 쌓아 가야 너와 나는 오랜 기간을 함께할 것이다.”
한정아는 저 남자의 말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신뢰가 없으니 그 신뢰의 표시를 네가 먼저 보여라.
문맥이나 상황으로 봐도 그게 맞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한정아의 생각일 뿐이었다.
“먼저 양보하지. 내 목표는 한천이다. 마음 같아서는 한천 전부를 없애 버리고 싶지만 너에게 구천의 별 하나를 멸망시키라고 등 떠미는 건 확실히 내 욕심이다. 그러니 철회하겠다.”
“……네……?”
“진시후, 그가 한천의 플라티를 죽이겠다는 마음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물러서는 것이다. 한천의 플라티, 나는 그의 죽음을 원한다.”
“……제가 할 수 없는 일인걸요.”
“맞다. ‘적합자’가 된다면 모를까. 지금의 너는 무엇을 하건, 아무리 발버둥 쳐 봐야 승천자들을 상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시후는 아니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그 상자에 담긴 것은 멸망의 씨앗이다. 공기를 비롯해 마나의 성질을 바꿔 버리는, 별 자체에 재앙을 내리는 독이다. 그 독을 진시후에게 주어라.”
“그걸요?”
“그래, 그걸 진시후에게 주고 플라티의 죽음을 약속받아라. 이 정도면 너에게 보내는 내 신뢰의 표시로 적절한가?”
“……적절하다 못해, 넘쳐 나죠. 대체 왜 저에게 이러시는 거예요?”
잠시 침묵하던 [원한의 결정체]가 단호한 어조로 한정아에게 말했다.
“인과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과율이요?”
“이해하기 어렵다면 필연을 느꼈다고 생각하거라.”
“……대체 어디에서요?”
“그 방을 발견한 그 순간에 네가 있었다.”
“…….”
“그것은 필연이고 인과율이다. 왜냐면.”
이다음 이어질 말을, 한정아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방을 만들 때 있었던 것도 ‘한정아’이기 때문이다.”
“…….”
“같은 존재도 아니고, 같은 영혼을 지닌 존재도 아니지만 ‘비슷한 존재’고, ‘비슷한 영혼’을 지닌 존재다. 그게 필연이고 인과율의 흐름이다.”
복잡해지는 느낌이다.
“내 쪽에서 할 말은 끝났다. 너는 어떻지?”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말해 보거라.”
정말로.
한정아는 이게 정말로 궁금했다.
“……혹시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인가요?”
[원한의 결정체]는 침묵했다.불편한 침묵이다. 괜히 그런 느낌이 든다. 물어서는 안 될 것을 물은 느낌.
침묵하던 [원한의 결정체]가 입을 열었다.
“확실하게 말해 주지.”
“경청할게요.”
“내가 나의 진명을 너에게 말해 준다면, 아마 첨삭이 끼어들 것이다.”
“…….”
“첨삭은 그 즉시 나와 너를 격리할 것이고, 종래에는 계약을 강제로 끊어 버리겠지. 그렇기에 나는 답해 줄 수 없다. 향후 시간이 지나 네가 스스로 알아내는 것까지는 모두가 이해하겠지만,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의미한 행동이다. 그렇기에 너의 그 질문에는 침묵을 택하겠다. 하지만.”
하지만.
이다음이 중요했다.
“이 정도는 말해 줄 수 있다. 나는 별 #875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별 #875를 멸망시킨 것은 나다.”
“……그게 중요한 건가요?”
“중요하다. 후에 네가 나의 진명을 알고자 할 때, 이것은 분명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정도면 되었다.
한정아는 확신했다.
공간에서 나가 다시 본래 있었던 곳으로 곧 갈 것이라고.
눈앞이 흐릿해진다.
그 사이로 [원한의 결정체]가 말을 이었다.
“진시후는 아마 곧 별 #12를 떠나겠지. 그때 나는 너의 심연을 열 것이다. 자연지기의 각성자에서 온전한 초월자로 만들 무대를 너에게 마련해 줄 것이다. 준비하도록.”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한정아는 집무실에 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앞에.
항상 그러했던 것처럼 진시후가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살면서 운명이나 이런 것은 믿지 않았다. 믿을 생각도 없었고 믿을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얘기는 잘됐어?”
그런데.
이제는 왠지, 믿고 싶어졌다.
웃으며 말했다.
“네.”
역사는 반복된다.
* * *
잠시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었다.
홍현이 말했듯 이 별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
그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루 정도 더 머물고 싶었고, 하루 머물렀다.
예기치 않게 어비스에 들어갔다 나왔고, 그 안에서 편집자도 죽이고 내가 있어야 할 별의 누나와 현이를 비롯해 여러 명을 만났다.
내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할 일을 끝냈으니 이제 떠나면 된다.
3분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하늘에서 거대한 굉음이 터진다. 구원 타워 테라스에 천마가 착지했다.
“왔어?”
“예. 시키신 일, 전부 처리하고 왔습니다.”
한정아와 대략적인 이야기는 끝내 놨다.
“한정아야.”
“네.”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어.”
그녀가 걱정 말라는 듯 웃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가시는 건가요?”
“가야지. 체감으로는 하룬데, 소설 분량으로는 거의 이 주일 치를 머무른 기분이야.”
집무실 책상에 올려져 있는 작은 상자를 매만졌다.
“다행이네. 말이 잘 통해서.”
“진시후 님 덕분이죠.”
내 덕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내가 살아온 세상과 한정아가 살아온 세상은 다르다.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으며 온갖 풍파를 맞으며 살아왔다 해도, 내가 있었던 산과 물과 공중은 한정아가 있었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순간 한 번 더 확신했다.
“위험한 놈이네.”
“누가요? 제 배후성이요?”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한정아가 눈으로 물었지만 답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한정아한테 도움이 되는 배후성인 것이 확실하고, 굳이 내가 나서서 이간질해 봤자 얻을 것도 없으니까.
하는 게 이상하다.
그런데 시스템조차 [원한의 결정체]가 압도적으로 강해 등급으로 측정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런 성좌가 ‘고작’ 한정아 정도에게 저런 제안을 하고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이유는 분명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보았을 때, 한천이나 승천자나 이런 건 둘째 치고, 놈의 첫 번째는 ‘한정아’로 보였다.
뭘까.
다른 평행선에서 한정아와 깊은 관계가 있던 건가.
대충 그러려니 했다.
나는 곧장 아공간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내 한정아에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뭐긴, 목걸이지.”
설마 그걸 몰라서 물어봤겠냐고, 한정아가 눈으로 말했지만 이번에도 개의치 않았다.
“타이탄에 있었을 때 내 사람들을 노리는 애들이 많았거든.”
자리에서 일어서며 한정아의 목에 손수 채워 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몇 개 만들었어. 위치 추적 가능하고, 생체 반응 공유되고, 어느 한쪽이 죽을 것이 확실한 치명상을 입었을 때, 서로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일종의 유언 남기기 같은 거라고 보면 돼.”
내 말에서 묘한 부분이 있었나 보다. 한정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어느 한쪽이요?”
“어느 한쪽.”
손을 들어 내 왼쪽 팔목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러자 투명화되어 있던 작은 팔찌가 모습을 드러낸다.
편집자에게 받았던 팔찌가 아니라, 전에 누나에게 주었던 그 팔찌다.
이거 말은 안 했는데 여러 개가 연동된다. 무엇보다 팔이 잘리거나 그래도 소유권을 잃지 않는다.
이건 영혼에 새긴 거니까.
아마 등급으로 따지면 유일 등급 중 최상급은 되지 않을까. 혹은 등급으로도 측정할 수 없는 수준이거나.
이후 아공간에서 아까 삥뜯은 아이템 중 ‘상자’ 하나를 꺼내 한정아에게 건넸다.
“설명 대충 보니까, 너한테 도움 될 거 같더라. 잘 사용해 봐.”
상자를 건네받은 한정아가 상자의 정보를 확인한 뒤 눈을 크게 뜬다.
이곳 별 #12에서 지낸 시간이 대충 며칠이다. 길어야 일주일이 안 된다. 그 와중에 업적 상점이 하도 궁금해서 그 내용을 인터넷에서 대충 검색해 봤었다.
[종언의 악마의 사안] [등급 : 유일] [종언의 권능을 지닌 악마의 사안이다. 취득하게 되면 ‘언령’의 권능을 얻게 되며 사용자의 발전에 따라 ‘종언’의 권능으로 진화한다.]여기서 말하는 ‘언령’의 권능은 레전더리(최상급) 스킬이었다.
이게 업적 포인트로 대충 2억 포인트인가 한다던데, 쓸 만해 보여서 달라고 한 거다.
솔직히.
정말 줄 줄은 몰랐다.
“……이런 걸 제가 받아도 돼요?”
“안 될 거 있나.”
빙긋 웃자 슬금슬금 주성철이 내 곁으로 다가온다.
음.
“연락 자주 하고, 고생해라.”
미소를 지으며 아공간에서 한천으로 향하는 이동석을 꺼내 들었다.
승천자 중 한 명인 플라티의 별.
그곳은 대체 어떤 곳일지, 그리고 플라티라는 놈은 얼마나 강할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주군.”
고개를 돌렸다.
주성철은 아공간에서 검은색 가면을 꺼내 쓰고 있었다.
나도 왼손에 채우고 있던 [천존의 가면 반지]를 활성화시켰다.
얼굴에 흰색 가면이 씌워진다.
“간다.”
“부디, 몸조심하세요. 이건 잘 쓸게요.”
“오냐.”
손에 쥐고 있던 이동석을 부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