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193)
제193화
물끄러미 플라티의 눈을 바라보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분노가 담긴 것처럼 보였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알 수 있었다.
플라티는 분노한 게 아니었다. 지금,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다.
뭐지, 이놈.
뭐라고 해야 할까.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야. 그래서 말하는 건데 내 진명이 뭔지 알아?”
“뭔지 알 거 같은데, 굳이 안 물어보려고.”
“왜? 물어봐 봐. 성실하게 답해 줄 테니까.”
무시했다.
반대쪽 손을 펼쳤다. 백련기가 뭉친다.
[백련교 성화칠결.] [5장 일…….]파아아앙-!
나와 플라티 사이에 백련기로 이루어진 광풍이 휘몰아친다. 기술이 펼쳐지기도 전에 터진 거다.
이유은 간단했다.
플라티가 내가 만들어 낸 백련기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뿐이다.
“너도 ‘진시후’아니랄까 봐, 성격이 참 지랄맞네.”
묵묵히 기운을 끌어올리려던 그때였다.
“어차피 여기 보는 사람 없어.”
멈칫했다.
“첨삭? 편집자? 뭐, 다른 승천자들? 아무도 못 봐. 천마도 보냈겠다, 여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너랑 나밖에 몰라.”
“그래서?”
“그래서긴 뭘 그래서야.”
내 손을 잡고 있던 플라티가 손에 힘을 풀며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여유로운 몸짓으로 그가 말했다.
“대화를 좀 하자, 이거지.”
“대화? 그건 충분히 하지 않았나?”
“하긴 뭘 해. 설마 그때 괴우룬한테 대사 쳤던 그거 말하는 거냐?”
“그럴걸.”
“에이씨. 야, 정확히 말하면 그런 건 대화가 아니라 통보 아니냐? 그때의 넌 통보를 한 거고, 나는 지금 대화를 하자는 거잖아.”
별로 들을 생각이 없었지만, 플라티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천천히 천하검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위치다.
일단은 들어 보자.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자, 들어 봐. 이 세상에 사는 건 사람만이 아니야. 때때로 사람이 아닌 존재와 만나는 사람이 있어. 너나 나처럼.”
“…….”
“도플갱어라는 단어로 쉽게 치부하는 건 적절하지 않아. 이 수많은 우주, 수많은 별, 반드시 벌어져야 할 일은 벌어지는 일정한 역사. 지구, 중원, 바르가, 그리고 그 외에 회생의 기회조차 없던 한쿰, 파순, 카리오, 유로파, 프로테라, 등등. 이건 단순한 ‘별’의 이름을 뜻하는 게 아니야.”
플라티가 손을 휘저었다.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변한다.
천천히, 나와 플라티 사이에서 하얀색의 기묘한 나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별의 이름보다는 ‘별의 유형’을 뜻하는 단어라고 이해하는 게 정확할걸? 별 #12 같은 경우엔 지구-12, 그런데 여기에도 오해의 소지가 있어. 지구-12라고 해서 12번째 지구라는 뜻이 아니야. 편의상 지구-12라고 부르는 거지. 주성철이 나고 자란 중원 같은 경우엔 중원-1692라 부르는 거고.”
“…….”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 건데, 지구형 별은 지금까지 총 444번 등장했어. 별 #2403이 444번째 지구형 별이었던 거지. 그런 수많은 별들 중에서 ‘같은 존재’가 한 명도 없었을까? 지구형, 바르가형, 중원형, 이 많은 곳에서 같은 존재가 없었을까? 너도 봐서 알겠지만 있었어. 그런데 이걸 넌 되게 쉽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건 절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나와 플라티 사이에서 피어올랐던 하얀색의 나무는 순식간에 거대해졌다.
경복궁 전체를 덮고도 남았다. 더 커지고 있었으니까.
“핵심만 말해 줄게. ‘나’는, ‘너’야.”
“……뭐?”
“나는 너의 미래고, 너는 나의 과거라고.”
“…….”
“나는 태초의 진시후이며, 너희 모든 진시후들의 시작이야.”
와락, 구겨진다.
미간이.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같지만 다른 존재다? 아니야. 같은 존재야. 우리는 같은 존재라고. 같은 존재라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목적도 같겠지? 그래서 난 네가 어떤 목적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
“네가 그걸 안다고?”
“알지. 같은 존재니까.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조금 흥미로웠다.
“뭔데? 내 목적이.”
“구원.”
“……구원?”
“별 #12의 진시후는 욕망이 앞선 놈이었어. 진송이에 대한 크디큰 열등감이 큰 목적을 가리고 있었지. 방향이 잘못됐어. 그 열등감이 해소만 되었더라면 별 #12의 진시후는 진송이의 조력자가 되었을 거야. 이미 그런 역사가 몇 번 벌어졌었거든. 다른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 그게 진시후라는 존재가 품고 있는 ‘진의’야. 그저 환경에 너무나도 잘 휩쓸려서 이상한 존재처럼 보일 뿐이지.”
물끄러미 플라티를 바라보았다.
“근본적인 질문을 좀 해 볼까? 내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까?”
“왜 그러고 있는데?”
“구원하기 위해서.”
“뭐를?”
“세상을.”
“미친놈이네.”
“미친놈이지. 이 세상은 미쳐야 살 수 있거든. 내가 하려는 일들도 미쳐야만 가능한 거고.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는 ‘진시후’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 외에 다른 진시후도 그렇고, 다 저마다 멸망의 역사를 끊어 내기 위해 서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거야. 너도 마찬가지고.”
솔직히 말할까.
전혀 공감이 안 된다.
“앞서도 말했듯, 이 세상에 사는 건 사람뿐만이 아니야. 그리고 그런 사람이 아닌 존재를 만나는 이들이 있지. 그런 존재들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있어. 별 #2403의 진시후야. 너한테 제안할게. 너, 내 사람이 되어라.”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무슨 또 거창한 말을 하나 들어 보고 있었는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원피스식 동료 영입이라니.
더 들어 볼 것도 없었다.
“그게 끝인가?”
“뭐가?”
“할 말이 그게 다냐고.”
“응. 난 할 말 끝났어. 이제 네가 이야기하면 돼.”
검을 고쳐 쥐었다.
“아까 그걸 유언이라도 쳐도 되나? 후회 없겠어?”
“……그 말을 깜빡했네. 모든 별의 ‘진시후’는 하나같이 다 싸가지가 없어. 지금 너처럼.”
피식, 실소가 터져 나온다.
내 웃음을 놈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랬으니.
“……그 웃음의 의미는 뭐냐?”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거다.
아니 뭐,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들을 곰곰이, 하나하나 뜯어 보면 이게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같은 존재라고 했나?”
“응. 그렇게 말했지.”
“같은 존재이기에 품고 있는 진의가 모두 같고, 변화 같은 건 의미 없다? 공장에서 찍어 내듯 나오는 양산품이니 결국 다 똑같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게 맞냐?”
“맞다.”
“한심한 새끼.”
“……뭐?”
“내가 너 같은 애들을 꽤 봐 왔는데, 너 정도 되는 애가 그런 소리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야, 사람은 변하는 거야. 너처럼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순응하는 이들은, 좋게 말하면 숭고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변할 의지가 없는 한심한 종자들인 거지.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정해진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며? 그런데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이거, 그냥 구라가 일상인 새끼네.”
“…….”
“야, 이 새끼야. 내가 너랑 같다고? 어이가 없어서.”
“…….”
“주접떠는 것도 정도껏이어야지. 하……. 시간만 버렸네.”
대충 천하검을 어깨에 올리고는 몸을 돌렸다.
버러지 그 자체라고 해야 할까.
말장난하는 새끼들이랑은 원래 상종을 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야. 뭐 하냐, 지금?”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였지만 그냥 개무시했다.
솔직히 말하면, 도발의 의미도 있긴 했다.
내가 여기까지 개소리 들으러 온 것도 아니고.
경고는 충분히 했고, 서로 죽여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럼 뭐, 더 필요한 게 있나.
“……감히-!”
뒤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다가온 플라티가 내 목을 움켜쥔다.
그렇게 밀려난 나는 콰앙, 벽에 충돌하고 나서야 멈춰 섰다.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는 플라티의 얼굴이 코앞에서 보인다.
“너무 가까운데.”
“건방진 새끼가, 지금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말하는 것마다 구라나 치는 양치기 새끼지.”
말 한마디를 안 지는 내 면상을 향해 놈이 주먹을 내질렀다.
왼팔을 들어 막았다.
콰아아아앙-!
충격파에 구석에 있던 건물 하나가 무너지고 뒤쪽 땅이 움푹 파인다.
“……정말이지 구제 불능인 놈이로구나. 과인이, 오늘 그 버릇을 고쳐 주겠노라.”
사람은 여러 개의 가면을 쓴다는 말이 있다.
눈앞의 이 플라티라는 놈이 그러했다.
지금 바뀐 저 말투는, 아까의 그 말투와 상당히 달랐지만 이상하게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한마디 툭 던졌다.
“버릇이라는 건 말이야, 자신이 깨닫고 스스로 고치려고 하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아.”
“스스로 깨닫게 해 줄 것이다. 과인이 직접.”
“너 정도로는 안 될걸.”
계속해서 웃음이 새어 나온다.
“발작 버튼이 제대로 눌렸나 보네. 너 지금 면상 온도 섭씨 99도야, 인마. 조금만 더 오르면 끓겠어, 아주.”
나와 플라티 사이에는 아주 작은 공간이 있었다.
이 공간은 나와 플라티가 서로 점거하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을 통해 오는 공격은 서로가 반드시 반응할 수 있는 그런 공간.
그런데.
뻐어어억-!
그 공간으로 뻗어 오는 플라티의 주먹을 나는 막지 못했다.
몸이 젖혀진다.
목에서 피가 올라온다. 뱉지 않았다. 삼켰다.
즉시 오른 주먹을 뻗었다.
터억, 그 소리가 왜 이리 크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플라티는 감정 없는 얼굴로 내 팔을 잡아챈 뒤 그대로 비틀었다.
꽈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린다. 고통이 뇌리를 찌르르 울린다. 이어서 놈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꽈아아악.
“네놈과 과인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하나 있다. 그것이 뭔지 알겠느냐.”
순식간에 재생한 오른팔을 곧장 뻗었다. 플라티의 목이 잡힌다. 힘을 주었다.
그러나.
“물었다. 과인과 네놈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플라티는 전혀 타격이 없었다.
미간이 구겨진다. 고통 때문에 구겨진 게 아니다.
손에 분명히 힘을 주고 있는데 눌리지가 않는다.
겉에 담긴 호신강기가 아까보다 더 농밀해졌다. 구조 자체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다.
속으로 조금 놀랐다.
아니지, 많이 놀랐다.
이 정도라고?
“과인과 네놈의 가장 큰 차이는 ‘승천’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다.”
“……뭐?”
“과인은 승천을 했고, 네놈은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고, 이 상황과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