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202)
제202화
한참을, 기다렸다.
말이 한참이지, 대충 5분 정도였지만 여기 있는 이들에게 이 정도면 분명 한참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그때 한 명의 남자가 더 모습을 드러냈다.
[준천의 라파엘 님 입장하십니다.]의외로 그는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금발의 긴 머리에, 긴 로브.
수염 하나 없이 깔끔한 외모.
굉장히 어려 보였다. 거의 1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그런 미남자였다.
그는 말없이 연회장 구석에 있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이게 끝이었다.
더 이상 게이트에서 입장하는 이는 없었다.
발렌타인이 말했다.
“플라티가 죽었어.”
그 말을 받은 것은 반쪽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 파천의 양소였다.
“정말 죽을 줄은 몰랐는데.”
어이가 없었는지, 발렌타인이 헛웃음을 터트린다.
“반응이 그게 다야? 죽었다니까? 완전히 그냥 뒈져 버렸다고.”
“그러고 보니, 그건 조금 놀랍군.”
양소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건너편에 있는 바운스고르에게 말했다.
“‘진시후’가 ‘진시후’를 죽였으니, 일종의 동족상잔, 그런 건가?”
“아니지. 동족상잔보다는 자기혐오에 가깝지.”
“껄껄껄, 그게 그렇게 되나?”
두 남자는 상당히 친해 보였다.
똑같이 쪼개는 모습을 보고 있던 발렌타인이 고개를 젓는다.
그대로 팔짱을 꼈다.
솔직히.
저마다의 태도는 다를지라도 생각하는 건 비슷하다.
지금 구천의 절대자 중 한 명이 죽었다.
수만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굳건하게 버티던 괴물이다.
오직 힘 하나로 군림하던 존재가 사망했다.
‘또 다른 진시후, 아무래도 단순한 이레귤러는 아닌 것 같네.’
사상 초유의 사태라는 단어를 써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동안 구천의 권위에 도전했던 이들은 많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정도까지 해내지는 못했다.
자연스럽게 연회장이 침묵에 잠겼다.
저마다의 생각에 잠긴 거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지배자가 사망한 한천을 구천으로 취급해야 하는가.
이제 구천이 아니라 팔천이 되는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지배자를 한천에 보내서 구천을 유지시켜야 하는가.
그런데.
그렇게 유지시킨다 한들 그게 의미가 있을까.
복잡했다.
솔직히 육도선인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도 구천이라고 불렀던 이유는 언젠가, 뒤늦게라도 육도선인이 마음을 바꾸고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승천자가 완전히 사망했다.
분명 생각은 해 볼 만한 문제였는데.
진시후가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 또한 문제였다.
그런 연회장의 정문이 끼이익 소리와 함께 열린다.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어깨에 거대한 대검을 걸친 남자였다.
검은색 반바지에 검은색 반팔.
그리고 시원시원한 외모.
그는 언젠가 진시후도 보았던 [편집자]였다.
주변을 둘러본 그가 말했다.
“네 명이 끝입니까?”
발렌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집자가 웃음을 터트린다.
“여전히 단합이 안 되시는군요.”
“그래서 어쩌라고.”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편집자는 묵묵히 걸어가 한 웨이터의 쟁반에서 잔 하나를 들고는 구석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할 말이 있는 듯 그의 앞으로 발렌타인이 걸어간다.
그리고는 편집자가 들고 있는 잔을 빼앗고는 그대로 쭉 들이켰다.
빈 잔을 바닥에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편집자가 물었다.
“뭐 하는 겁니까, 지금?”
“그냥 마시고 싶어서 마신 건데. 왜?”
발렌타인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마음에 안 들어? 막, 패고 싶어?”
“……여전하십니다.”
“응, 난 여전해. 예나 지금이나. 너는?”
“저는 좀 달라졌습니다. 당신과는 다르게.”
“그래?”
“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생각 없이 미쳐 날뛰는 것만큼 보기 추한 게 없습니다.”
“나한테 하는 소리야?”
“모르죠. 저쪽에 전신 거울 있던데 한번 보고 오시겠습니까? 맞는지 아닌지 직접 보고 판단하시면 될 텐데요.”
발렌타인이 피식 웃었다.
그냥 귀여웠다.
“여하튼, 이번 연회의 주제는 뭔데?”
“별거 있겠습니까. 승천자 한 명이 사망했으니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에 대한 토론, 그런 거겠죠.”
어떻게 보면 상황이 매우 이상해 보일 거다.
이 자리에 어떻게 편집자와 승천자가 함께 모여 있을 수가 있는가.
간단했다.
별의 이야기는 중립이다.
그것은 ‘그냥’ 진행된다.
그 진행에 도움을 주는 존재는 [편집자]다. 별의 이야기로부터 선택을 받은 이들.
그리고 [승천자]들은 별의 이야기의 진행을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움을 주기까지 한다.
그렇다.
어떻게 보면 ‘한배’를 탔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저 행동하고 움직이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물론 한배를 타긴 했으나 그렇다고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다.
그때였다.
구석에 앉아 있던 양소가 말했다.
“야, ‘첫 번째’야.”
첫 번째.
바로 발렌타인의 앞에 앉아 있는 편집자를 부르는 단어였다.
“왜 부르십니까.”
“바쁜데, 빠르게 끝내 주라.”
[첫 번째 편집자]가 어깨를 으쓱했다.마찬가지로 그도 이 자리에 오래 있고 싶지는 않았다. 바로 입을 열었다.
“우선 첨삭은 여전히 ‘구천’을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게 답니다. 솔직히 이 연회도 형식적인 연회고, 우리가 깊은 대화를 나눌 이유도 없고, 그럴 관계도 아니지 않습니까.”
권신 양소가 피식 웃었다.
“새끼, 싸가지 없는 건 여전하네.”
승천자들의 권위는 분명 압도적이다.
하지만 [첫 번째 편집자]의 권위 또한 승천자들 못지않다.
[첫 번째]가 말했다.“그쪽보다는 괜찮으니까 괜히 말꼬리 잡지 마시고.”
“……그쪽? 야, 사천아. 저 새끼가 지금 나한테 그쪽이라고 한 거냐?”
사천의 승천자이자, ‘이치에 통달한 자’라 불리기도 하는 바운스고르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그거면 충분했다.
답하지 않았다는 것은 긍정했다는 것과 같다. 양소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가 자리를 박찬다.
발렌타인의 곁을 스치며 뻗어 나간 그의 손이 [첫 번째]의 목을 움켜쥐었다.
콰아앙-!!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첫 번째]는 신음 한번 내뱉지 않았다. 그저 싸늘한 얼굴로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양소를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그냥 바라보기만 한 건 아니다.
[첫 번째]의 오른쪽 손바닥이 양소의 복부에 닿아 있었다.“……이 새끼 봐라. 여전하네.”
“그쪽도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건 여전하십니다.”
“……아, 어떻게 하지. 진짜 죽여 버릴까.”
“죄송한데, 혼자 죽을 거 같습니까? 내가?”
[첫 번째 편집자].일단 그는 첨삭으로부터 완벽한 신뢰를 받는 존재이면서, 가장 오랜 시간 편집자로 살아왔던 남자다.
그의 힘은.
분명히 말하는데 승천자들에게 닿아 있었다.
양소가 손에 힘을 주는 순간, [첫 번째]의 손바닥은 그 즉시 양소의 복부를 찢어발길 것이다.
“자신 있으면 들어와 보든가.”
“자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이라도 기운을 끌어 올려 양소와 싸움을 시작하고 싶은 [첫 번째]였지만 참고 있었다.
분명 그는 참고 있었다.
“맹약만 아니었더라면, 아마 파천은 진작에 비워져 있었을 겁니다.”
“……이 새끼…… 재미있네. 너, 정말 재미있어.”
그런 두 사람을 중재하는 이가 있었다.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 금발의 미남자.
준천의 라파엘이었다.
그가 로브를 질질 끌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만들 하시지요.”
그 말과 함께 양소와 [첫 번째]의 몸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쭉 날아갔다. 다시 자리를 박차려는 그들을, 라파엘의 입이 막았다.
“정리하면 첨삭은 구천의 일에 신경 쓰지 않겠다, 하지만 구천은 여전히 유지하고 싶다, 이건가요?”
[푸른 눈의 마법사]라는 이명을 지니고 있는 라파엘은, 적어도 [첫 번째]가 판단하기로 이 자리에 있는 승천자들 중 가장 말이 잘 통한다.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음에도 첨삭의 뜻을 읽은 게 그 증거다.
[첫 번째]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자신의 대검을 다시 어깨에 걸쳤다.“맞습니다. 여전히 첨삭은 구천의 일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리셋권을 쓰건, 하위별을 지배하건, 첨삭의 일을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관심 자체를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구천’은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게 ‘맹약의 주체’인 첨삭의 의지입니다.”
라파엘이 빙긋 웃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구천은 유지하겠습니다. 한천에도 굳이 침략하거나 하는 식의 행동도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다음이 중요했다.
“[제우스]는 우리가 회수해야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첫 번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문장의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담겨 있는 함축된 뜻도, [첫 번째]는 읽었다.
“[제우스]는 아직 한천에 있긴 하지만 이레귤러가 가져갈 확률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레귤러가 가져갔을 경우 별 #2403에 개입하겠다, 이 말씀이십니까?”
“맹약이 있기에 저희도 웬만하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제우스]에 담긴 힘은 우리 [승천자]들을 겨냥한 힘입니다. 안 그래도 한천의 플라티를 죽인 남자인데, 그런 그의 손에 [제우스]마저 들어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맹약의 파기도 우리는 고려할 수 있을 겁니다.”
이건 라파엘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나머지 세 명의 승천자 또한 동의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토 달지 않고 그냥 지켜만 보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제거하든, 약화시키든, 아니면 저희에게 주시든, 첨삭과 편집자들이 나서서 그 부분은 미리 해결을 해 주시지요. 이것만 해결된다면 저희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약속할 수 있습니까?”
라파엘이 빙긋 웃었다.
“물론입니다.”
솔직히 [제우스]의 힘이 진시후에게 들어가는 건 첨삭도 원하지 않고, 편집자들도 원하지 않는다.
그 부분에 있어서 [첫 번째]는 따로 할 말이 있었는데, 승천자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그것도 ‘먼저’ 나설 줄은 몰랐다.
[첫 번째]는 생각했다.여기 있는 이들은 처음에 ‘진시후’를 무시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진심으로 자신들의 ‘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가지고 있는 자존심 때문에 말만 안 했을 뿐, 분명했다.
그리고 이들은 아직 모른다.
[제우스]의 치명적인 약점을.이 약점은 처음 [제우스]를 만들던 [미래에서 온 과학자]가 숨겨 두었던 이스터 에그다.
정말 미안한 소리지만 지금 제우스의 주인이 무려 두 번이나 연달아 바뀌었다.
이 경우처럼 ‘연달아’ 주인이 두 번 바뀌면 [제우스]는 힘을 잃는다.
한 명의 승천자가 두 개의 [제우스]를 가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그런 상황을 원하는 이는 그 누구도 없다.
그래서 만들어 둔 건데.
웃음이 나올 뻔했다.
“[제우스]의 힘을 뺏겠습니다. 그저 일반 생명체보다 조금 강한 생명체, 자연기를 다루는 키메라, 그 정도로 약화시키면 되겠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라파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