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206)
제206화
다시 녀석이 걸음을 옮긴다.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반응하고야 말았다.
“어우, X발.”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야, 돼지야. 이거 봐. 어우 씨, 지금 뭐야.”
돼지도 구역질이 났는지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와.
“쟤는 저게 멋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뭐 이리 오글거려.”
기분은 나쁘지 않지만 온몸에 소름이 돋은 건 진짜다.
그런데.
오글거리는 건 일단 둘째 치고, 홍현의 저 말은 조금 생각해 볼 만했다.
영혼은 돌고 돈다.
그냥 영혼이 아니라 ‘같은 영혼’은 돌고 돈다.
오랜만에 느낌이 싸했다.
저 말은 다르게 표현하면 진정한 의미의 ‘환생’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얼굴을 쓸어내렸다.
진짠가.
“내가 전생에서는 별 #12에 있었나? 돼지야, 어떻게 생각해.”
돼지는 표현이 다채로웠다.
사족 보행을 하는 키메라이긴 하나, 쟤는 이족 보행도 가능하다.
지금 이족으로 선 채 앞다리 두 개를 들어 나도 모른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오케이.
이제 여기에서 볼일은 끝났다.
“가자.”
“월!”
손에 있는 이동석을 부쉈다.
* * *
별 #299.
솔직히 말하면 몇 번 긁혔다.
웬만하면 잘 긁히진 않는데, 매춘 별이니 노예 별이니.
심지어 별의 관리자가 ‘소생’이라는 고유 특성을 지니고 있는 유니크한 존재라느니.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올 이유로는 충분했고, 언젠가는 반드시 와야 했다.
그래서 왔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별의별 종족이 다 있다.
키가 무슨 4m는 될 법한 거인과 1m도 안 되는 소인도 있고, 강아지 머리를 하고 있는 수인족도 있고.
특이한 건 그들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거다.
나는 묵묵히 천존의 가면 반지에 기운을 불어 넣었다.
얼굴에 흰색 가면이 씌워진다. 내 모습에 돼지가 눈동자를 빛냈다.
꼬리까지 흔든다.
왜 이래, 이거.
“되게 반가워하네. 천존이랑 친했나 봐?”
돼지는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스처는 취할 수 있다.
그냥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니 했다.
자, 이제 뭐부터 해야 하나.
그때였다.
“아, 여기 계셨군요.”
고개를 돌렸다.
웬 키 큰 장신의 엘프 하나가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아는 앤가.
“마열당 당주님이시죠? 아까는 저희 안내원이 뭘 모르고 설명을 잘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마열당의, 당주?
내가?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런 엘프에게 나는 곧장 삿대질을 했다.
“내가 저 멀리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런 취급을 하는 게 말이 돼? 어?”
“……죄…… 송합니다.”
“말로는 누가 못 해. 사람을 이렇게 개고생시키고 말이야. 낙원이 원래 이런 곳이었어? 이거 실망이야.”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말로만?”
“……예?”
“말로 사과하는 건 누가 못 해? 다 하는 거잖아? 중요한 건 이거 아니겠어?”
그러면서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돈을 달라는 의미가 아니다. 보상을 달라는 의미다.
“……따로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어허, 이거 아직 정신을 덜 차렸구만? 나한테 뭘 원하냐고 물을 게 아니라 뭘 해 줄 수 있는지를 말해야지. 안 그래?”
엘프의 미간이 좁혀졌다.
진상 새끼한테 제대로 걸렸구나, 그런 표정이다.
“……저희가 제공해 드릴 수 있는 서비스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노예 시장 VIP석 제공’, 다른 하나는 ‘낙원에서 보내는 하루 동안의 모든 비용 제공’. 당연히 노예를 구매하거나, 아티펙트를 구매하는 등의 개인 간의 거래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두 가지 중 어떤 게 마음에 드시는지요.”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첫 번째로 하지.”
“첫 번째, 알겠습니다. 마열당의 당주님은 금일 열리는 노예 시장의 VIP로 참석하게 되실 겁니다…… 만…….”
엘프의 말끝이 흐려진다. 그가 두 눈을 빛냈다.
“마열당의 당주, 듀라탄 님이 맞으십니까?”
난 마열당이 뭔지 모른다. 듀라탄이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 봤다.
잠깐 어울린 건데 이게 생각보다 먹히는 것 같아서 장단을 좀 맞춰 주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이게 맞춰 주다 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대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기운을 끌어 올렸다.
쿠구구궁.
내 기운이 사방을 짓누른다. 코앞에 있던 엘프가 뒤로 두어 걸음이나 물러섰다. 이마에는 식은땀마저 흐른다.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그럼 내가 누구로 보이나?”
“…….”
“‘본좌’를 의심하는가. 본좌가 마열당의 당주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마열당의 당주겠는가.”
나는 연기를 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못 하지는 않는다.
거기다 기운까지 이렇게 끌어 올려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주면 웬만한 이들은 다 넘어간다. 심지어 말투까지 바꿨다. 안 넘어갈 수가 없다. 눈앞의 엘프처럼.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그저, ‘마열당의 신수’가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어서……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마열당의 신수.
딱 보니 우리 돼지를 말하는 것 같다.
“신수가 왜 신수(神獸)겠는가. 우리 마열당의 신수는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그렇기에 신수(神獸)다.”
일단 뱉어 본 건데, 의외로 통한다.
“그렇군요. 다시 한번 무례를 사죄드리겠습니다. 먼저, 시장으로 안내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시지요.”
옆에 있던 돼지가 뭐 이런 뻔뻔한 새끼가 다 있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무시했다.
아니지. 이런 건 무시하면 안 된다.
손바닥으로 머리를 한 대 후려치고는 걸음을 옮겼다.
아픈지 눈물을 찔끔 흘리며 돼지가 내 뒤를 따른다.
마열당 당주.
나쁘지 않을지도.
* * *
별 #299.
이곳은 과거 [프로테라]라는 이름의 행성이었다.
정확히는 아류로서 진정한 [프로테라]가 아니라 실험용 별이었지만 지금은 그다지 상관없다.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였다.
왜 첨삭은 지구, 중원, 바르가.
이 세 개 형태의 별을 구하려 하는가.
태초의 별.
#1이 멸망한 이후, [프로테라]를 비롯해 [유로파], [환], [지구], [중원], [바르가] 등등의 별이 생겨났다.
그중 [환]은 특히 [지구]의 그것과 흡사했고, 하위 호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문명이 열악했다.
굳이.
하위 호환인 별의 멸망을 막는다? 첨삭은 효율을 중시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으면 파생될 다른 별의 멸망 또한 막을 수 있다. 그게 첨삭의 계산이었다.
살아남은 생존자들? 당연히 존재한다.
종을 초월해 성좌가 된 뒤 다른 별로 이주해 살아가거나 중립별에서 머물거나, 혹은 승천자들의 사냥개가 되거나.
별 #299는 이제 [프로테라]가 아니다.
[낙원]이다.오직 성좌들을 위한 별.
이곳에 오려면 반드시 이동석을 지참해야 하고, 낙원에 들어와 생활할 때도 상당한 양의 돈을 사용해야 한다.
물가가 일반적인 별이 그것들과는 다르다.
화폐는 두 가지다.
금, 업적 포인트.
이 두 가지로 다른 별에서는 겪을 수 없는 경험과 물품을 이곳에서 살 수 있다.
카지노, 마작, 고스톱, 심지어는 비석 치기까지.
온갖 종류의 즐길 거리들이 많고, 최상위 실력의 요리사들이 모든 별의 음식들을 만든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앞서 말한 것들은 다른 성좌들을 위한 별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곳 낙원이 성좌들을 위한 별 중 최고가 된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다.
[낙원의 왕].그가 지닌 고유 능력 때문이다.
항상 가면을 쓰고 다니기에 그 누구도 외모를 알지 못하는 베일에 싸인 남자지만 그가 지닌 능력은 진짜다.
그의 고유 능력 [소생]은, 일단 전 우주에서 오직 그 하나만이 지니고 있는 능력이다.
그는 죽은 시체를 되살릴 수 있다.
감각을 비롯한 여러 가지의 페널티를 준 상태로 부활시킬 수 있고, 페널티를 완전히 제거한 원래의 상태로 부활시킬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기억이 멀쩡히 살아 있다는 거다.
생각을 해 보면 상당히 악독하다.
누군가와 싸우다 죽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을 뜨게 됐고, 눈 떠 보니 웬 모르는 새끼가 자기를 되살려 놨다. 감각을 비롯한 몸 안의 마나 회로, 심지어는 영혼마저 손상당해 제대로 된 힘을 끌어 올리지도 못한다.
그런데 자기를 되살린 이상한 새끼가 매우 익숙한 면상의 누군가에게 자신을 팔아 버렸다.
그냥 파는 것도 아니다.
신체에 ‘낙인’을 찍은 채 팔아 버린다. 이 낙인이 새겨진 존재는 ‘주인’의 명령을 절대로 거부할 수 없다.
그 말인즉 그날로 그냥 인간 샌드백이 되는 거다. 노예가 되는 거고 시키는 것을 모조리 수행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성좌들을 위한 별 중 최고의 별이 바로 낙원이라 불리는 이유다.
누구든 원한 관계는 있다.
원수도 있고, 은인도 있고, 그런 은인을 타락시키고 싶은 변태 같은 생각을 가진 존재도 있다.
성좌들은 분명 종을 초월한 존재들이긴 하나, 그렇다고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욕망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런 존재들이니 종을 초월할 수 있는 의지를 지니고 있는 거다.
오늘도 낙원의 왕은 낙원을 걷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이들 그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가면을 쓴 채, 땅에 질질 끌릴 정도로 큰 로브를 걸치고 있었음에도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낙원에는 워낙 특이한 이들이 많으니 복장에 관련해서 이 정도는 특이한 축에도 끼지 못한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낙원에서도 가장 거대한 건물, 낙원 타워로 들어섰다.
경비들은 그를 막지 않았다. 신원 같은 것도 검사하지 않았다.
묵묵히 걸어간 그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목적지는 타워 최상층의 연회장이다.
이곳은 시장이다.
노예를 비롯해 온갖 아티펙트와 스킬 스톤들이 거래되는 장소.
낙원 타워는 수만 명을 수용해도 남을 정도로 거대하다.
이곳은 단순한 타워가 아니라 낙원의 왕이 손수 만든 요새다.
최상층에 도착한 낙원의 왕은 연회장 내부로 들어섰다.
이곳의 넓이는 최소 3천 평 이상이다.
수백 명을 수용해도 공간이 남아돈다.
최상층은 낙원의 VIP들만을 수용하는 장소로서 일반적인 성좌들은 이곳에 들어올 수조차 없다.
낙원에서 VIP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이들, 성좌들 중에서도 최상급의 성좌.
그런 이들만이 올 수 있다.
최상층으로 온 낙원의 왕은 묵묵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어느 한 부분에서 멈춰 섰다.
뭐야.
지금 잘못 보고 있나.
왜 저 ‘가면’이 있는 거지.
단순한 흰색 가면이지만 그거야 모르는 이들이 보았을 때나 흰색 가면인 거고, 낙원의 왕처럼 아는 게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저건 단순한 가면이 아니다.
저 가면의 겉에 흐르는 저 은은한 기운.
착용자의 기운과 완벽하게 호응하는 말도 안 되는 호환성.
그리고 결정적으로 재료.
저 가면은 ‘물질’로 만들어진 가면이 아니다. ‘기운’으로 만들어진 가면이다.
낙원의 왕은 그걸 꿰뚫어 봤다.
그리고 저 가면은 이 세상에 절대로 존재해서는 안 되는 가면이다.
‘……천존의 유산이 별 #2403에 등장했다고는 들었었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