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210)
제210화
“그가 이레귤러로 남을지, 새로운 승천자가 될지는 폐하의 의중에 따라 달렸다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발렌타인]은 단 한 순간도 진시후를 습격하겠다고 입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그저 만나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대화를 하고 싶었다.
탈렌의 말은 [발렌타인]의 모든 것을 충족했다.
“너 말 참 이쁘게 해. 상 줄까?”
“……이 자리에 폐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제게는 더할 나위 없는 상입니다.”
“그런가?”
[발렌타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런 그녀의 뒤로 수천 명의 엘프가 죽어 있었다.
엄청난 양의 피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발렌타인]은 그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았다.
“탈렌아.”
“예.”
“네 생각 마음에 든다. 한번 진행해 봐.”
“……존명-!”
승천자들 중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장천의 승천자, [발렌타인]이었다.
* * *
철벅.
피 웅덩이를 밟으며 걸음을 옮겼다.
반 토막 난 천하검에 피가 흥건했다. 곧장 검을 털어 냈다.
후두두, 쏟아진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살아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시체 하나를 집어 들어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 돼지를 잠시 바라보았다.
고기를 잘 먹긴 했는데, 사람까지 저렇게 잘 먹을 줄은 몰랐다. 확실히 말하는데 저건 간식이 아니다.
밥이다. 시간이 대충 점심이니까, 점심밥.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별 #299는 얼마 전에 갔던 별 #875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유리 벽 내부도 결국은 공기가 통한다.
전시되어 있던 상품들 모두가 그 자리에서 시체가 되어 있었다. 정말 다양했다.
다른 별의 우리 누나, 홍현, 한정아, 차주연.
그리고 오다가다 보았던 여러 명의 사람들까지.
심지어 타이탄에 함께 갔던 우리 이이백괴들도 있었다.
아마 내가 아는 이들은 아닐 거다. 전부 다른 별의 사람이겠지.
뭐라고 해야 하나.
가슴이 먹먹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기분이 심각하게 더럽다고 해야 할까.
거슬리는 게 너무 많다.
치워야 할 것도 많고, 죽여야 할 것도 많다.
첨삭인지 뭔지도 한번 손봐야 할 거 같고, 편집자들도 뒈지게 패야 할 것 같다.
이게 뭐야.
같은 얼굴의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을 노예로 쓰면서 이건 다른 별의 존재니까 신경 꺼라?
장난질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성좌들은 이걸 그냥 납득하고 외면하면서 사는 것 같은데.
난 그게 안 된다.
이미 죽은 사람은 안식을 취하게 내버려 두는 게 맞다.
죽은 시체를 다시 되살려서 장난감으로 만든다?
죽여도 싸다.
후회는 없다.
죽일 놈들 죽였다.
자고로 사내란 한번 시작한 일에 있어서 뒤를 돌아보면 안 되는 법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장부 어딨냐?”
전시장 구석에 처박혀 꿈틀거리고 있는 낙원의 왕을 바라보았다.
쓰고 있던 가면은 부서져 있었고, 사지는 뒤틀려 있었다.
복부에 뚫린 주먹만 한 구멍에서는 피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미친 새끼.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는 알고 있는 것이냐.”
반 토막 난 천하검을 바닥에 박아 넣으며 답했다.
“알지.”
“아니, 네놈은 모른다. 모르니까 지금 그따위 태도인 것이다.”
“그런가.”
아공간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런 내게 낙원의 왕이 악에 받친 듯 외쳤다.
“네놈은 선을 넘었다! 승천자들도 넘지 않았던 선을 네놈이 넘은 것이다!”
그러니까.
“무슨 선?”
“……네놈은 무차별적으로 성좌들을 죽였다. 낙원을 지속적으로 이용했던 성좌들뿐만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잠깐 왔던 성좌들과 이 별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였지. 네놈은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아까부터 우리 낙원의 왕은 또렷한 목소리로 자기 할 말을 하고 있었다.
회광반조가 분명했다.
그대로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래서, 장부는 어딨냐니까?”
“……미친놈! 지금까지 뭘 들은 것이냐!”
“듣기야 다 들었지. 왼쪽으로 듣고, 오른쪽으로 흘리고. 뭔지 알지?”
“……네놈은 제정신이 아니다.”
“아니야. 네 걱정이 무색하게 나는 지금 정신이 매우 또렷해.”
아무리 봐도 내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친절하게 설명해 줄 생각이다.
왼손으로 낙원의 왕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보통 새로운 왕이 정해지면 국가에는 여러 가지의 변화가 생겨.”
“크으…….”
“난 구구절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하고, 하나하나 납득시켜 가면서 일하는 놈이 아니야. 형은 지금 규칙을 정했어. 카지노? 고스톱? 돈놀이? 다 해. 상관없어. 그런데 노예는 하지 마.”
“……이 멍청한 새끼! 자본주의 세상이건 사회주의 세상이건 결국 노예는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는…….”
“나도 알아, 이 세상은 결국 계급제라는 거. 지배자가 있고, 피지배자가 있고. 어떻게 보면 노예제가 있는 것과 다르지 않지.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달라. 노예라고 뚜렷하게 낙인찍히는 거랑 아닌 거랑은 다르다고.”
정의의 사도라거나 혁명 세력이라거나, 그딴 것을 자처할 생각은 없다.
난 노예제가 싫다.
어렸을 때부터 싫었다거나 하는 그런 게 아니다. 타이탄에 살았을 때, 노예들을 너무나도 많이 봐 왔다.
말은 안 했는데 내 목에 쇠사슬이 채워졌던 적도 있었다.
노예상을 비롯해 귀족들 목을 죄다 쳐 버리긴 했지만 좋지 않은 기억이다.
“방금 만들어진 내 룰을 거부한다? 그럼 어쩌겠어. 다 죽여야지.”
“……모든 성좌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을 감수하겠다?”
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반대가 돼야 하는 거 아니냐?”
“……뭐?”
“내가 걔들 눈치 보는 게 아니라, 걔들이 내 눈치를 봐야지. 니네가 뭐 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벌써 세 번째 묻는 건데, 장부 어딨어?”
“……네놈에게 줄 장부는 없다.”
“귀찮게 하네. 알아서 찾아볼게.”
꽁초를 던져 버린 뒤, 손을 까딱였다.
뒤에 있던 돼지가 다가온다.
“먹어. 뼛조각 하나 남기지 말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돼지가 낙원의 왕에게 다가갔다. 이어서 고통 어린 비명 소리와 와그작와그작, 살과 뼈를 통째로 씹어 먹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려니 했다.
그대로 아공간을 열었다.
지금 이 별에 살아 있는 존재는 나랑 돼지가 유일하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저기 뒤져 가면서 장부를 찾는 것도 조금 그렇다. 가오가 있지.
언젠가.
내게 이 ‘목걸이’를 주던 남자가 있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이키얀 바그루드였나.
별 #2403의 헬레나와 처음 만났던 순간, 그 심해 게이트의 보스가 내게 이 목걸이를 건네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중에 손이 필요한 잡일 같은 거 할 때 큰 도움이 될 게야.’
목걸이에 마나를 주입했다.
여기에서 첫 번째로 놀랐다.
들어가는 기운이 상당하다.
곧장 반응이 온다.
쿠우웅.
묘한 소리와 함께 주변에 있던 핏물들이 일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곧 갑옷을 입은 병사의 형태가 되었는데, 숫자가 대충 봐도 천이 넘는다.
“……대체 뭘 준 거야.”
머지않아, 무려 수천에 달하는 피로 만들어진 병사가 일제히 내 앞으로 몰려들었다.
오와 열도 완벽하다.
정확히 3개의 부대로 나눠져 있었는데, 각 부대 앞에 지휘관으로 추정되는 병사들이 한 명씩 있었다.
대충 숫자를 세 보니, 병사들은 총 1,200, 지휘관은 3.
다 합치면 1,203.
이거 그동안은 몰랐는데, 상당히 괜찮은 아티펙트다.
타이탄에서도 이런 건 드물다.
“음, 일단 호칭부터 정하자. 왼쪽에 있는 놈을 기준으로 너는 머리가 크니까 대가리, 너는 유독 빨가니까 빨갱이, 너는 말랐으니까 멸치.”
세 명의 지휘관이 그 자리에서 부복했다.
그런데 말없이 부복하는 게 조금 그랬다.
“대답 안 해?”
세 명이 주먹으로 땅을 친다.
쿵.
아무래도 말은 못 하나 보다.
“거두절미하고 명령부터 하달한다. 대가리, 너는 애들 데리고 시체 옷 다 벗기고 돈 될 만한 거 싹 다 정리해서 한곳에 모아 놓고. 빨갱이, 너는 여기 건물들에 있는 아티펙트들 싹 다 모아 와. 그리고 멸치, 너한테 거는 기대가 커. 가서 장부 찾아와.”
세 명의 지휘관이 이번에도 주먹으로 땅을 친다.
콰앙!
이건 대답이었다.
“가 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색은 안 했는데, 몸이 정상은 아니다.
[플라티]는 생각보다 강했고, 나는 내 밑천까지 끌어다 써야 했다.회복하긴 했지만 100%로 회복한 게 아니기에, 힘을 쓸 때마다 약간의 과부하가 걸린다.
음.
나머지 7마리도 잡아 족쳐야 하는데, 생각보다 험한 여정이 될 것 같다.
잠시 그렇게 있었다.
차곡차곡, 한편에는 시체가 정리되고 돼지는 그 시체를 죄다 씹어 먹고.
다른 한쪽에는 아티펙트들이 산처럼 쌓인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부서진 건물 쪽으로 넘어갔던 멸치가 내게 다가오더니 두꺼운 종이 뭉치를 건넸다.
안의 내용을 대충 살폈다.
웃음이 나온다.
“잘했어.”
장부가 맞다.
종이 뭉치를 다시 덮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히야.
“이게 대체 몇 개야.”
원래 혼잣말을 잘 안 하는 타입인데, 이건 좀 예외로 쳐야 한다.
내 앞에 있는 시체들은 돼지가 씹어 먹고 있었으니 이건 차치하고, 낙원에서 긁어모은 아티펙트들의 숫자가.
“허어…….”
숫자를 세기조차 겁이 날 정도의 양이었다.
산처럼 쌓여 있다는 말이 절대 과장이 아닐 정도였는데.
대충, 천 개? 모르겠다. 넘는 거 같기도 하다.
그중 이동석만 따로 빼낸 뒤 정리했다.
그대로 턱을 짚었다.
대충 쓰여져 있는 숫자만 봐도 무슨 별 #2부터 #2403까지 다양했다.
조금 흥미로운 건 이거였다.
이동석 중 2403 이상의 숫자는 없다는 거.
분명 그때 듣기로 2403 이후의 별이 존재하고, 그 별에서도 별의 이야기가 진행 중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직은 갈 수 없다? 그렇게 해석해야 하나?’
아니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이동석을 만든 존재가 #2403 이후의 이동석은 풀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이게 핵심이긴 하다.
이동석은 대체 누가 만드는가.
한천의 홍현한테 물어볼걸 그랬나.
대충 여기까지만 생각했다.
일단 아티펙트들을 전부 아공간에 쓸어 담았다.
다 들어갈까 솔직히 걱정이 되긴 했는데 다행히도 다 들어간다.
장부를 펼쳤다.
여러 익숙한 이름들이 보인다.
그중, 딱 한 이름에 집중했다.
진송이.
그 밑에 별의 이름들이 수두룩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등급별로도 나눠져 있었다.
전부 내가 아는 우리 누나가 아니라, 다른 별의 진송이들이다.
만약 내가 타이탄에서 돌아오지 못했더라면.
누나가 패배했었더라면.
지금 이 장부에 진짜 우리 누나가 적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장부를 덮었다.
별 #900.
내 목적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