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215)
제215화
일단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어느 별의 진송이는 부모 모두가 죽었고, 어느 별의 진송이는 부모 중 한 명이 죽었고, 어느 별의 진송이는 두 명의 부모 모두 살아 있었다.
내 이름과 같은 동생이 있는 쪽도 있었고, 죽은 쪽도 있었고, 애초에 없던 적도 있었다.
이건 별 #12의 홍현을 비롯해 주성철한테 들은 건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광복되지 않고 일본의 식민지로 쭉 유지된 지구형 별이 있고,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대국이 된 별이 있었으며, 북한에 지배당해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 뭐시기 엿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별도 있었다.
마나를 기원전, 기원후 가릴 거 없이 사용한 별도 있고, 산업 시대 이후로 마석이 발견되어 마나라는 기운을 자연스럽게 깨우친 별이 있었으며, 뭐.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 별에 항상 ‘진송이’라는 이름의 여인은 등장했다.
일찍 죽거나, 늦게 죽거나, 차이는 있었지만 분명 존재했다.
환경이 다르니까,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지.
정확히는 달라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천의 승천자를 죽이고, 낙원을 비롯한 여러 개의 별을 돌다 보니 대충 감이 잡혔다.
다른 존재가 아니다.
전부 ‘같은 존재’다.
승천자 플라티는 내게 많은 구라를 쳤지만 사실을 말한 것도 있었다. 이게 그거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영혼의 분리? 아니면 분리된 영혼의 발악?”
“……‘분열(分列)’이 맞지 않을까?”
납득했다.
분열.
누나가 오른쪽 검지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오늘 꿈을 꿨어.”
“무슨 꿈?”
“악몽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또 다른 ‘진송이’가 겪은 일들이 내 눈이 보이더라.”
“단순히 눈에 보였다고?”
누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 자리에 있었어.”
잠시 입을 다물었다.
“끔찍했어. 조금…… 그렇더라고.”
세상을 오래 살지 않아도, 모를 수가 없다.
강제로 굴복당한 존재가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없는 자가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보호해 주는 법의 굴레가 없는 사적인 울타리 안에서 노예 낙인이 찍힌 존재가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심지어 그 노예가 아름답고, 과거 빛이 나던 존재였다면 그걸 꺾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이 얼마나 거대한지.
모를 수가 없다.
내가 여자는 아니지만, 그리고 누나도 아니지만 어떤 고통을 받았을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누나가 머리를 쓸어 올렸다.
“밥 안 먹게?”
“입맛이 없어.”
“그럼 내가 먹는다?”
“먹어.”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누나 앞에서 다시 젓가락을 놀렸다.
한 5분 정도 그렇게 있었을까.
“어떻게 하게?”
“뭐를?”
“성좌들의 요구.”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그러고 보니.
“지금 다 보고 있지?”
“내가 각성자니까, 응.”
“잘됐네. 일단 주도한 놈, 옹호한 놈, 1시간 준다. 반성문 제출해. A4용지에 10pt로 꽉꽉 채워서.”
누나가 눈을 끔뻑인다.
“명심해. 1시간 1분, 1시간 2분, 이런 거 아니야. 정확히 1시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분까지만 받는다. 이상.”
“정말 그게 끝이야?”
“응.”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나.”
“왜?”
“너무 신경 쓰지 마.”
“……왜?”
“‘진송이’라는 존재를 가지고 놀았던 놈들,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놈들, 내가 책임지고 다 죽일 거니까.”
“……시후야.”
누나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뒷일은 생각하지 말자. 간단하잖아. 죽일 놈들 죽이고, 치울 놈들 치우고. 내가 다 치워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나 스스로도 느꼈다.
미친 듯이 멋있다는 거.
한쪽 눈을 찡긋한 뒤, 방을 나섰다.
뒤쪽에서 누나가 물었다.
“어디 가?”
“만날 사람이 하나 있어서.”
“누구?”
정빈의 여동생.
“정하니.”
그 이름이 나오자 누나의 표정이 굉장히 복잡해진다.
“왜 그래?”
* * *
윤영수와 홍현은 구원 타워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
“형.”
“왜?”
“요즘 많이 바빠?”
“뜬금없이 뭔 소리야, 갑자기.”
홍현은 뭔가 불만이 있어 보였다.
“왜 그러는데?”
“밖에 시위대가 있잖아.”
윤영수가 턱을 긁적였다.
“형 요즘 수련하느라 바쁜 거 아는데, 너무 거기에만 몰두하는 거 아니야? 예전엔 안 그랬잖아.”
구원 길드의 1팀장으로서 분명 할 법한 말이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시위대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바보도 아니고, 모를 리 없다.
성좌들이 보이콧 선언을 한 것은 분명 유례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
자세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저 ‘진시후’가 잘못을 했고, 그가 고개 숙여 사과하기 전까지 성좌들은 별 #2403을 외면할 거라고.
그저 그렇게 선언했을 뿐이다.
고작 하루 만에 수천이 넘는 시위대가 결성됐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여하튼 밖에 있는 시위대는 진시후를 꼭꼭 숨겨 두지 말고 당장 꺼내서 성좌들에게 머리 박아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중인데 여태까지 구원 길드의 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왔던 건 윤영수다.
그걸 잘했으니 비서실장인 거고, 그 능력 때문에 구원 길드의 각성자들이나 팀장들이 윤영수를 존중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너무 수련에만 빠져 있었다.
그런 일들의 처리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건 분명 문제가 된다.
홍현은 문제 제기를 했고 윤영수에게서 기대하던 답을 듣고 싶었다.
예컨대, ‘걱정하지 마, 곧 처리할 거야.’, 혹은 ‘오늘 중으로 처리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이런 대답을 듣고 싶었으나, 너무 딴판인 대답이 들려왔다.
“그냥 다 죽일까?”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윤영수가 말을 잇는다.
“하긴, 시위한다고 다 죽이는 건 또 우습지. 걱정하지 마. 오늘 중으로 전부 해산시킬 거니까.”
듣고 싶었던 답을 듣긴 했으나, 들을 거라 예상 못 한 답도 들었다.
홍현이 묘한 눈으로 윤영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구원 타워 최상층.
마스터의 집무실이다.
윤영수가 먼저 걸어가더니 돌아보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만히 서 있는 홍현에게 그가 말한다.
“뭐 해? 가자.”
“……응, 가자.”
하지만 두 남자는 세 걸음조차 걷지 못했다.
집무실 앞에 드러누워 있는 거대한 생명체와 눈이 마주쳤다.
사실 이 두 남자가 아니더라도 그 누구든 저 정도의 괴물을 보면 자리에서 멈추는 것이 당연했다.
“……뭐야, 저건.”
“…….”
할 말을 잃었다.
일단, 느껴지는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몸 주변에서는 파지직 소리까지 난다. 무슨 번개를 몸에 두른 것 같다.
그런데 모습이.
“……도베르만인가?”
“북극곰 크기의 도베르만은 살면서 본 적이 없는데. 몬스터 아니야?”
몬스터 소리에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괴물이 반응했다.
뭐 그딴 개소리를 하냐는 듯, 두 눈이 살벌해진다.
무엇보다.
“현아, 너 저거 알아?”
“알 리가.”
“그런데 왜 이렇게 너만 쳐다봐.”
“아는 누구랑 닮았나 보지.”
그때였다.
뒤쪽 문이 열리며 익숙한 남자가 걸어온다.
진시후였다.
가장 먼저 진시후가 반응했다.
“오. 우리 비서실장님, 그리고 현이, 잘 지냈어요?”
웃으며 다가온 진시후가 윤영수와 홍현을 한 번씩 안아 주었다.
가벼운 안부 인사가 오가고.
진시후가 물었다.
“마침 비서실장님 왔으니까 묻는 건데 ‘정하니’, 어떻게 된 거예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윤영수가 답했다.
“진시후 님이 떠나고 나신 후, 성좌들이 화신 계약을 제안한 거 아시죠?”
“알죠.”
“정하니도 그 대상자였습니다.”
그 부분이 진시후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걔 각성자 아니지 않아요?”
“예. 분명 각성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정하니를 마음에 들어 한 성좌가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요?”
“진시후 님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 업적 포인트를 써서 알아봤는데, 성좌, [찬란한 별의 유산]이 100억 업적 포인트라는 페널티를 감수하고 ‘자기 별’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진시후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대체.
“왜요?”
윤영수가 답했다.
“저야 모르죠.”
진시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성좌 [찬란한 별의 유산].
이름부터가 범상치가 않다.
그리고 들어본 적도 없는 이명이다.
나름 여러 개의 별을 오가며 대충 주워들은 게 많은데 비슷한 것도 없었다.
그럼 최상위권의 성좌라는 뜻이다.
심지어 100억 업적 포인트.
이거, 절대 쉽게 벌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승천자들의 직속 수하라거나, 혹은 성좌들 중 성운을 관리하는 자라거나.
그 정도만 쓸 수 있는 금액이 분명하다.
자신을 노린 거라는 가정은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이유도 없었다.
굳이?
진시후를 노릴 거였으면 정하니가 아니라 윤영수나 홍현을 노렸을 거다.
간접적으로 노리는 게 아니라 그냥 직접적으로 진시후를 정조준할 거라면 진송이를 건드리면 된다.
생각해 볼 문제였다.
왜 하필이면 [정하니]를?
“나도 모르는 뭔가가 있나?”
분명 정하니는 평범했는데.
계획이 살짝 틀어졌지만 괜찮다.
주성철도 아직 별 #2403으로 오지 않았고, 음.
간만에 휴가라고 생각하면 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진시후에게 윤영수가 말했다.
“확실히, 진시후 님은 보통이 아니십니다.”
갑자기 이게 뭔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었다.
이어지는 윤영수의 말에, 진시후는 납득했다.
“오늘 오후에 어비스가 열리는 건 또 어떻게 아시고…… 대단하십니다.”
“열려요? 오늘?”
“네.”
“어비스가?”
“넵.”
“…….”
“……모르셨군요.”
윤영수와 홍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 * *
당연한 소리지만 반성문을 써서 제출한 성좌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본래, 별 #299를 멸망시킨 이후의 계획은 이러했다.
장부에 적힌 별을 들러 죽일 놈 죽이고 막는 놈 죽이고 방해하는 놈 죽이고.
획득한 전리품들이 많긴 했으나, 아공간이 넓어서 상관은 없었다. 그러다 습관처럼 누나의 상태를 확인했고 계획을 바꿨다.
일단 누나한테 가자.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끼리는 그래도 돕고 사는 거다. 내 유일한 가족인데.
그래서 가는 김에 획득한 전리품도 좀 주고, 그러려고 했다.
솔직히 내가 이 전리품들을 가지고 뭘 하겠나.
보따리 장사하려는 것도 아니고, 딱히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누나도 보고, 누나한테 다 건네주면 알아서 잘 사용할 거고.
종합적으로 봤을 때 별 #2403에 들르는 게 정답이었다.
거기다 주성철한테는 볼일이 끝나면 별 #2403으로 오라고 했었다. 계획은 여기에서 새로 짜면 된다.
그런데.
“복잡하네.”
정말 복잡했다.
일단 정빈의 여동생인 정하니가 성좌들에게 불려 갔다.
무슨 100억 업적 포인트에 추가로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를 페널티로 감수하면서까지 데려갔다는데,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누나의 상태도 생각보다 좋지 않아 보였다.
‘어제’, 집무실에서 광명구체를 띄워 보라고 했는데 띄우긴 했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 미친 듯이 떨리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즉, 컨트롤이 안 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