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22)
#제22화
“내 기억에 너는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내가 살다 보니까, 알게 되더라. 너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뿐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거.”
“…….”
“눈물로 쓴 책에 그 어떤 소감이 더 필요하겠니.”
진시후가 툭 던지듯 말했다.
“쓰면서 운 적은 없어.”
“하지만 속으로는 울었겠지. 내가 널 몰라?”
“모르는 거 같던데. 처음 봤을 때 이상한 거 날리더만.”
“뒤끝 있네.”
두 남녀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웃었다.
진송이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려고? 정말 그 사도들이라는 애들 다 잡으려고?”
“잡아야지. 그런데 지금 꼬라지 보니까 내가 안 나서도 저쪽에서 먼저 나설 것 같던데.”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다.
“내 일기 봤으면 알 거야. 타이탄에 처음 떨어졌을 때, 우리를 신성 제국에 팔아넘겼던 남자가 있었어. 그 새끼 덕분에 노예로 시작했거든. 그게 존 마르셀이야.”
“……그 ‘쓰레기’?”
진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기에는 실명이 언급된 이도 있고 언급되지 않은 이도 있다. 존 마르셀은 실명이 언급 안 된 쪽이다. 정확히는 쓰레기로 언급이 됐다. 그럴 만도 했다. 존 마르셀은 그 이후에 수인들에게 곧장 찢겨 죽었으니까.
시기로 따지면 타이탄으로 떨어진 지 고작 일주일.
그 안에 존 마르셀은 죽었다. 별 임팩트도 남기지 못한 그런 존재였으니 굳이 일기에 이름을 남길 필요가 없다. 일기가 왜 일기겠나.
잠시 침묵한 진송이는 생각에 잠겼다.
세상은 넓었다.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해야 할까.
스스로 약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맥없이 당했다.
그래서 결정한 거다.
진송이는 서울로 올라갈 생각이다. 서울은 크다. 고유 각성자는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다. A급 게이트는 물론, S급 게이트가 다른 지역들보다 월등하게 많이 등장한다. 심지어 가끔 등장하는 SS급 게이트도 대부분 서울에서만 집중되어 있다.
그동안 너무 나태했다.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다. 과거의 약속? 그게 무슨 소용인가. 정치적인 압박? 정치적인 이해관계? 그냥 개무시했어야 했다.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영웅이라는 감투를 뒤집어쓰다 보니 희생이라는 단어에 너무 친숙해져 있었다.
놀아나는 건, 이쯤이면 충분하다.
진시후의 등장은 진송이의 욕망을 더 자극시켰다.
진송이가 물었다.
“서울로 올라올래?”
“서울?”
“200번째 사도가 네 행세를 하면서 남겨 둔 게 많아. 그냥 버리기엔 아깝잖아.”
“그거, 걔가 다 번 거야?”
“그건 아니지.”
“그럼 됐어. 누나가 피땀 흘려서 번 돈인데 그걸 내가 어떻게 써. 양심이 있지.”
진송이는 잠시 침묵했다. 이해는 갔다. 원래 시후는 저런 애였다.
200번째 사도는 굉장히 수동적인 남자였다.
정확히 말하면 능동적인 것처럼 보이길 원하는 수동적인 남자라고 해야 할까.
진송이가 주는 것들을 그는 전부 받아 왔다.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면서 작가를 하겠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진송이의 모든 것으로 생활했다.
그 사도와 눈앞의 진시후 사이에는 거대한 위화감이 있었다. 그게, 지금 풀어졌다.
이게 달랐네.
맞아, 내 동생은 이랬지.
진송이가 부드럽게 웃었다.
“괜찮으면 제안 하나 해도 될까?”
“무슨 제안?”
“너, 작가 하지 않을래?”
굉장히 뜬금없었다. 적어도 진시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무슨 작가야.”
“너 어릴 때는 글 쓰고 싶다며, 작가 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것도 장르 소설 작가.”
턱을 긁적였다.
분명 그랬던 적이 있긴 하다. 어릴 적 워낙 재미있게 봤던 소설들이 많았다. 문양가의 막내아들을 비롯한 장르 소설계의 대 히트작들, 그것들을 읽으며 나름의 꿈을 키워 왔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시점은 ‘귀환자 생활백서’, ‘후작가의 역대급 막내아들’, ‘무신회귀록’이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부터다.
이걸 읽으며 ‘내가 써도 이거보단 잘 쓰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도 결국.
“옛날이잖아.”
“그렇게 먼 과거는 아니었어.”
“나한테는 먼 과거야. 10년, 말이 10년이지 내가 실제로 겪었던 시간은 10년이 아니야. 일기장에서 봤잖아.”
“……‘하임족’, 그거?”
타이탄에는 별의별 종족이 다 산다.
그중에는 하임족이라는 종족이 있는데, 그들은 거의 인간 미니어처처럼 매우 작은 종족이다.
성장이 끝난 하임족 장정 키가 고작 40cm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면 매우 작다는 말이 잘 어울릴 것이다.
하임족은 술법을 사용하는 이들인데, 그들에게 금기의 비술 중 ‘시간의 방’이라는 것이 있다.
신체는 그대로 둔 채 영혼만이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으로 이동되고 그곳에서 혼을 연마하는 술법이다.
매우 간단하지만, 이 비술이 왜 금기일까.
간단했다. 비술을 발동시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 과정에서 미치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숫자로 따지면 100명 중 99명이 실패한다. 말이 1퍼센트의 확률이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최강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래곤들부터 하프 드래곤 등등, 온갖 종족들이 저 99에 속한다.
그 정도로 위험한 술법이다.
“내가 알기로 나를 포함해 6명, 타이탄의 모든 역사상 6명만이 시간의 방에서 빠져나왔어. 내가 그 안에서 느낀 시간은, 모르겠다. 지금도 자세하게 모르겠어. 수백 년은 기본으로 흐른 거 같은데 그 이상은 기억이 안 나.”
잠시 말을 멈춘 진시후는 검지로 머리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머리가 닫혀 버렸나 봐. 끝을 본 것 같은데, 모르겠어. 그냥 그 정도로 시간이 흘렀는데 장르 소설 작가라니.”
하지만 진송이도 바보는 아니었다.
뜬금없이 제안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나름 생각을 하고 제안한 거다. 진송이가 말을 이었다.
“그 일기를 장르 소설로 각색하면 어떨까.”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
“너를 대신하고 있던 사도가 장르 소설 작가였다는 건 알지?”
“대충은.”
“한번 써 봐. 나는 모르는 너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줘.”
진시후가 묘한 표정으로 진송이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거.
“진심이야?”
“응, 네 누나는 항상 진심이란다.”
“그런데 난 그런 거 쓰는 재주가 없어.”
“재주야 뭐, 쓰다 보면 늘지 않을까? 원하면 대필 작가라도 구해 줄게.”
“…….”
“그리고 사도 걔, 글 더럽게 못 썼어. 고등학교 수준에서 벗어나질 않더라고. 너라면 다를 거야.”
진시후는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진시후에게 진송이가 꽤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이건 깜빡한 건데 ‘진시후’는 현재 서울 삼정 병원에 입원 중이야.”
“내가?”
“어, 네가.”
“그게 되나?”
“안 될 게 뭐 있겠니. 김천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에 너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했어. 지금 대외적으로 너는 입원 중인 환자야.”
“변호사들이 그렇게 조언한 건가?”
“응. 그래야 정리하기 편하니까.”
“그런데 나 여기 오기 전에 비서실장님이랑 술 마셨는데?”
“그 정도는 괜찮아. 그러니 퇴원하고 싶을 때 말해. 개인적으로는 내일이나 모레 정도면 좋을 거 같아.”
진송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머지는 한국 가서 이야기하자. 배편 구해 줄까?”
“지금 나는 입원 중이라며.”
“밀입국하는 배가 한두 개인 줄 아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우리 누나가 못 보던 사이에 꽤 대담해졌네.”
별거 아니라는 듯 웃는 누나를 바라보며 진시후는 묘한 감정에 젖어 있었다.
확실히 지구로 돌아온 게 맞구나.
재미있었다. 아직까지는.
“배는 구할 필요 없어. 그냥 왔던 것처럼 가면 되니까.”
“관제 센터가 또 바빠지겠네.”
대수로울 거 없다는 듯 진시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진송이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투두두두둑.
진송이가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 친다.
지금.
“……뭐 한 거야?”
“혈 몇 개를 뚫어 줬어.”
“혈?”
“한숨 자. 일어나 보면 개운할 거야. 마나의 움직임도 더 원활해질 거고.”
진송이는 그대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시후가 손으로 진송이의 머리를 짚었다.
“결계 정도는 쳐 놓을 테니까, 걱정 마.”
“……야…… 이러기야?”
“어, 이러려고. 여기저기서 처맞고 다니는 거 보면 내 마음이 참 아파.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한국 오면 전화하고. 먼저 갈게.”
그렇게 진송이는 정신을 잃었고, 진시후는 왔을 때처럼 바다를 건넜다.
미국, 일본, 한국의 모든 관제 센터가 난리가 난 건 덤이었다.
#Chapter 6
오랜만에 먹는 비빔면이다.
무려 5개를 끓였다. 소고기도 얹었다. 직접 프라이팬에 온도 조절도 해 가며 구운 완벽한 고기였다. 부위는 갈비.
정빈은 소고기와 비빔면이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주방 구석에 있는 와인이 보인다.
선물 받은 건데, 저건 언제 먹나.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정빈은 이내 젓가락을 움직였다.
한 입 먹었다.
환상적이었다.
그렇게 두 입 먹었을 때, 베란다 창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두 번. 똑똑.
미간을 구긴 채 고개를 돌렸다.
진시후였다. 진시후가 빨리 문 열라며 손을 휘젓고 있었다.
미치겠다.
이러면 고기가 다 식는데.
한숨을 푹 쉬고는 창문을 열었다. 그 안으로 진시후가 넘어온다.
아니.
“멀쩡한 문 놔두고 왜 여기로 오십니까.”
“내 맘이지.”
“……미치겠네. 그보다 오늘 경찰서 그거는 어떻게 된 겁니까? 아니지. 상당산성 S급 게이트 그거 클리어하시려고요?”
“하나하나 물어봐. 입은 한 갠데 질문이 너무 많네.”
“…….”
“일단 경찰서 그거는 그때 봤던 놈 알지? 이백 번째 사도.”
“전 못 봤는데요.”
“끝부분은 봤을 거 아니야.”
“……윤영수, 그 양반이 와서 입 조심하라고 살벌하게 경고하던데 그냥 전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피식 웃은 진시후가 마저 말했다.
“그렇다고 치고. 김민재, 그 양반도 내 행세하던 그놈이랑 같은 놈이야. 189번째 도플갱어.”
“……아니, 그렇다고 도심에서 대놓고 살인을 하신 겁니까? 뉴스 보니까 형님은 병원에 입원 중이던데요?”
“비서실장 아저씨가 잘 처리하겠지. 일 잘한다며.”
“잘하긴 하죠. 뭐, 경찰서 갔다가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렇게 정리하지 않을까요? 그럼 상당산성 그거는요?”
“거기는 클리어 안 하려고. 너무 날강도잖아.”
“잘 생각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의 길드가 그거 클리어하려고 쓴 돈이랑 노력을 생각하면, 어후……. 뒤통수치는 건 진짜 아닙니다.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지. 그런데 와인 좀 드실래요? 아직 따지도 않은 새 건데.”
“됐어. 그보다.”
진시후가 묘한 웃음을 짓는다.
“미국에서 돌아오면서 생각한 거거든.”
“……예? 어디요?”
“미국.”
“거긴 또 언제 갔다 오셨어요?”
“방금.”
“…….”
“여하튼, 생각해 봤는데 너밖에 없더라고.”
“……저밖에 없다고요? 뭐가요?”
“들어봐. 내가 너한테 해 준 게 얼마야.”
“갑자기요?”
“스킬도 알려줬지, 마나 혈도 뚫어줬지, 이야, 이거 생각해 보니 엄청나게 많은 걸 해줬네. B급 각성자에서 S급 각성자까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거잖아. 내가.”
정빈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왠지 불안했다.
“너, 작가할래?”
상상조차 못 했다.
작가? 갑자기? 그것도.
“제가요?”
“어, 네가.”
“…….”
“너 대필 작가 해라. 돈 많이 벌게 해 줄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