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255)
제255화
모른다.
첨삭은 그냥, 그렇게 존재했다.
멸망을 막는 기구.
‘아이러니하지. 수많은 별들을 실험 무대로 만들며 첨삭은 [리셋권]이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도구들도 만들어 냈다. 이게 어찌 가능할 수 있었을까. 첨삭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손쉽게 해내는 것일까.’
오직 한 명만이 그 근원을 파고들었다.
‘판타지아의 핵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게 내 결론이다. 첨삭은 판타지아의 멸망에 깊숙하게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이 확실하고, 판타지아의 후손들인 우리는 그 멸망을 밝혀내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반대하는 이들도 있겠지. 그러나, 나나 너희들이나 서로 수천 년간 전쟁을 벌였다 해도 우리 모두 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유 없이 특정 시점이 되면 반드시 멸망하는 별, 그 문제를 첨삭에게만 맡겨 놓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금껏 최소 이천 개의 별이 멸망을 했는데 첨삭은 단 하나도 구해 내질 못했다. 이게 우연일까. 일부러 구하지 않는 게 아닐까. 구할 방법이 있음에도 외면하는 게 아닐까.’
[육도선인]은 모두에게 말했다.‘왜, 첨삭은 우리 승천자들이 별의 이야기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일까.’
‘맹약은 철저하게 첨삭에게 유리한 조항만이 가득하다. 법칙을 뒤틀고 인과율의 틀을 깨부숴 버릴 수 있는 우리 승천자들의 접근을 첨삭은 철저하게 막아 왔다. 왜 그랬을까. 멸망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막지 않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도 이쯤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
[육도선인]은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직접 내려가, 첨삭을 부술 생각이다. 첨삭이 하는 일을 우리가 하게 되면 적어도 첨삭보다는 더 빠르게 멸망의 원인을 파악하고 멸망을 막을 수 있다. 그렇기에 너희에게 제안한다.’
[육도선인]이 작게 웃었다.‘별 #2403, 이곳에서 나는 [적합자]를 이용해 첨삭에 도전할 것이다. 시기는 phase3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나는 고르고 고른 수하들로 각성자가 될 것이 확실한 존재의 자리를 대신할 생각이다. 이 과정에서 너희의 도움이 필요하다.’
일리가 있었다.
[육도선인]은 승천자들 모두가 경계했던 남자였지만 그런 것을 넘어서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남자였다.밑져야 본전이다.
그래서 승천자들 모두 ‘도움’을 주었다.
일단 가지고 있던 탄천으로 향하는 이동석을 모았고 200명을 엄선했다.
‘첨삭은 내가 개입하는 것까지는 알고 있겠지만 내가 누구로 위장하였는지는 모를 것이다. 짐작 정도는 하겠지만 그 짐작조차 틀리게 할 생각이다.’
대놓고 함정을 파겠다는 뜻이었다.
발렌타인이 물었다.
‘누구로 위장할 건데?’
육도선인은 이렇게 답했다.
‘과거에 존재했으나 첨삭에게 도전해 존재 자체가 사라진 인물, [진리의 문] 너머로 유배당했다는 것이 유력한 인물, [천존]으로 위장할 것이다.’
진시후는 주요 인물이 맞다.
상한과 하한이 없는 존재다.
승천자가 될 가능성도 있고 비렁뱅이가 될 가능성도 있다. 들쭉날쭉,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가 없는 인물이 바로 진시후다.
오히려 그렇기에 그는 [적합자]가 될 수 없다.
가진 힘이라면 [적합자]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겠으나 절대로 [적합자]는 되지 못한다.
항상 올곧아야 하고, 목적의식이 반드시 뚜렷해야 하며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준의 인물이어야 한다.
그 정도가 [적합자]의 최소 조건이다.
과거 [천존]은 그 누가 보아도 완벽한 [적합자]였다.
그는 스스로를 단련해 첨삭에게 도전했다.
그의 창은 첨삭에게 닿았다.
하지만 완벽하게 뚫지는 못했다.
모든 것을 얻기 위해 도전을 했다면 그 도전이 실패했을 때 모든 것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하는 법이다.
천존은 첨삭으로부터 배척당했다.
아무리 리셋권을 사용해도, 정상적으로 별의 시간이 흘러도.
그는 절대로 세상에 등장할 수 없다.
존재 자체가 지워진 남자.
그게 첨삭에게 도전했다가 실패한 자의 말로다.
[육도선인]은 위장하기 전, 수하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존재할 수 없는 존재로 위장하라].’
그 수하는 그 명령을 확실하게 이행했다.
존재 자체가 지워져, 세상에 태어날 수조차 없는, 혹여 우연의 일치로 태어난다 해도 1분 안에 사망할 그 존재의 영혼에 스스로의 영혼을 넣었다.
자연스럽게 힘은 봉인되었고 그의 ‘의지’만이 살아 있었다.
심지어 phase3가 되면 모습을 드러내게 장치까지 해 놓았다.
그렇다.
[태초의 드래곤]이었던 [바르트라]는 [천존]으로 위장했다. [윤영수].그가 [천존]이다.
발렌타인은 육도선인에게 이것도 질문했다.
‘phase3’의 어느 시점에 봉인이 깨지는 건데?
[육도선인]은 이렇게 답했다.‘‘때’가 되었을 때. 혹은 일이 심각하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홍현의 두 눈이 일렁인다.
승천자들의 시선이 더 집중되었다.
발렌타인이 중얼거렸다.
“홍현? 쟤였어?”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몰랐다.
육도선인 정도 되는 승천자가 작정하고 자신을 봉인하면서까지 숨어 버리는데, 그걸 알아채는 게 더 이상하다.
그나마 [적합자]로 유력한 진송이의 주변 인물이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저 정도까지 주변에 있을 줄은 몰랐다.
화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발렌타인의 두 눈에 또렷하게 보인다.
꽈아아아앙-!!
공간이 깨지며 진시후가 멀리 날아갔다.
저 상황이 어떻게 끝나느냐에 따라 승천자들의 행동 방향이 정해진다.
발렌타인은 진시후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98%의 진실에 2%의 거짓을 더해서 말했다.
휴전을 제안한 이유, 다 저거 때문이다.
첨삭과의 전쟁이 시작되려면 육도선인의 계획이 성공해야 한다.
그 말인즉, 진시후가 저 자리에서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자세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 * *
괜찮냐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내막을 이야기해 주려던 그때였다.
홍현이 고개를 돌린다.
“……형님.”
“……왜?”
“형님이 죽인 겁니까?”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으셨겠지요.”
홍현의 두 눈은 슬퍼 보였다. 녀석이 말을 잇는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다 죽고 죽이는 게 맞는 건지.”
“회의감이 들어?”
“……조금요.”
확실히 해야 한다.
지금 내 눈앞의 홍현은 별 #12의 홍현이 아니다.
별 #2403의, 햇병아리 홍현이다.
자연경에 걸쳐 있는 경지가 분명한데 아직은 모자라다.
“현아.”
“……예, 형님.”
“미안한데, 애도나 이런 건 나중에 하자.”
남들이 보면 와 저거 사이코패스 새끼 아닌가 싶을 정도였겠지만 어쩔 수 없다.
“한 놈이 더 남았거든.”
“……한 놈이요?”
“그, 남았는데, 그게 지금.”
잠시 말을 멈춘 뒤 홍현의 심장을 검지로 가리켰다.
“거기 있는 거 같거든.”
홍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저……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가요?”
“정확히는 네가 아니라 네 영혼 아래에 숨어 있는 놈이라고 해야겠지.”
“…….”
“윤영수는 완전히 합쳐진 상태였어. 아니지, 합쳐졌다기보다는 본래의 성격이라고 해야 하나. 스스로가 봉인했던 힘과 기억이 시간이 지나 다시 회복된 경운데 너는 아직 아니거든.”
이런 설명 같은 게 핵심은 아니었다.
“분리를 좀 해 보려고 하거든.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는데 시도는 해 봐야지.”
“…….”
“왜?”
“……모르겠습니다. 지금, 뭔가 좀…… 이상합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홍현이 그 자리에서 심장을 부여잡은 채 주저앉는다. 와락, 미간이 구겨졌다.
지금 나와의 대화가 일종의 트리거가 된 건지, 점점 홍현의 몸에서 가공할 만한 힘이 뻗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도는 한 번도 안 해 본 거라, 몇 가지 준비해야 할 게 있었는데 이러면 어쩔 수 없다.
속성으로, 해야 한다.
곧장 홍현의 양어깨를 짚은 뒤, 내 기운을 강하게 밀어 넣었다.
홍현의 혈맥을 타고 심장으로 뻗어 간다.
그리고, 그 심장에 똬리를 튼 이질적인 기운을 확인했다.
놀라웠다.
지금 홍현의 몸에 숨어 있는 저 기운은 전에 마주쳤던 [아귀]의 그 기운과 흡사했다.
이건, [육도선인]이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고 기운의 크기가 더 커졌기 때문에 내가 잡아낼 수 있었던 거다.
그게 아니었다면 못 잡았을 것 같다.
이걸 이런 식으로 숨겨 놓은 거구나.
생각하면서도 기운을 계속 주입했다.
분리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홍현은 죽는다.
간만에 필사적이었다.
눈을 감았다.
홍현의 내부 혈맥의 모든 구조, 마나 회로의 두께, 흐름.
그리고.
[육도선인]의 영혼.그대로 눈을 떴다.
잡았다.
[육도선인]의 영혼을 감싼 뒤, 밖으로 방출시키려던 그때였다.나조차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꽈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뒤로 밀려났다. 아니, 날아갔다. 기운을 방출시키며 몸을 멈춘 뒤 다시 홍현 쪽으로 날아갔다.
거의 다 됐는데.
저걸 방출만 시키면 되는데.
양손을 다시 뻗었다.
홍현의 몸에 기운을 주입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늦은 것 같다.
터억.
연기 사이에서 두 개의 팔이 뻗어 온다. 각각 내 양 팔목을 붙잡았다.
우뚝, 몸이 멈춘다.
연기가 사라졌다.
그곳에.
난생처음 보는 괴물이 하나 있었다.
이마에는 두 개의 뿔, 키는 컸다. 상의는 입지 않았고 맨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상체 곳곳에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하체는 굉장히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발은 맨발이다.
방금전까지의 홍현이 아니었다.
“……일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군.”
두 개의 뿔 아래, 서늘한 두 개의 눈이 나를 노려본다.
도마뱀의 눈깔처럼 기이한 느낌을 주는 눈이다.
그의 두 눈이 잠시 떨린다. 이윽고, 그가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몸 전체를 움찔했다.
[바르트라]는 윤영수로 살아가던 시절의 기억에 자신의 기억이 합쳐지는 순간 잠시 빈틈을 보였었다.하지만 [육도선인]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 [홍현]으로 살던 모든 기억을 받아들인 게 분명하다. 빈틈이, 아예 없다.
그가 말했다.
“[플라티]를 죽였다? 재미있구나.”
“난 별로 재미없는데.”
“이레귤러라……. 천존의 유물을 지닌 이레귤러, 유용한 장기말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나, 선을 넘었더구나.”
꽈아악, 육도선인의 팔에 힘이 들어간다. 양 팔목에서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괜찮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일단 그 몸에서 좀 꺼져 줄래. 뭐 좀 해야 할 게 있어서.”
“영혼을 분리하는 작업을 말하는 거라면 의미 없다.”
왜 의미 없냐고 물으려던 그때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