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26)
#제26화
Chapter 1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
높이 솟은 아파트가 보인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JAE APT다.
나는 이곳 104동 건물로 들어섰다. 이사 오려는 사람이 있는지 공동 현관 입구는 훤히 열려 있었다. 묵묵히 걸어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선 뒤 26층을 눌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2603호 앞.
내 행세를 하던 200번째 사도가 살던 그 집이 맞다.
비밀번호가 뭔지는 모른다. 그래서 그냥 전자 도어 록을 부쉈다.
콰드득.
문을 잡아 뜯은 뒤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말끔했다.
노트북이 있고, 옷이 있고, 방이 있고, 가구가 있고.
남자 한 명이 살기엔 좀 크다.
거실을 슥 둘러보았다. 꽤나 큰 켄넬 하나가 보인다. 똥개도 하나 길렀나 보다.
털이 짧았고, 덩치는 큰.
그러다 집 안에 있던 액자를 보게 되었다. 그 액자에 내 짝퉁 새끼가 환하게 웃고 있는 게 보인다. 그런 놈의 옆에는 혀를 길게 빼고 웃고 있는 도베르만이 있었다.
이 새끼.
“가지가지 했네.”
진심이다.
뭐 하면서 살았던 새끼인지, 그리고 집안에 뭐가 있는지 한번 훑어보러 온 거였는데 이거 가관이다.
일단 액자들을 전부 한 번에 모았다. 그러고는 전부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거실 쪽 책자들이 있는 곳에 차 키가 두 개 보인다.
하나는 삼각별, 하나는 황소.
잠시 생각했다.
200번째 사도는 내 행세를 하면서 과거 내가 했던 언행들을 참고한 게 확실하다. 나는 어렸을 때 장르 소설 작가가 꿈이라고 이야기했었다. 누나한테든, 학교 다닐 때 선생님한테든.
한번 글을 써보고 싶었고 그 글로 돈을 벌어보고 싶은 전업 작가가 되고 싶었다. 재미있는 글을 쓰며 스스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직업 중 나는 유일하게 작가가 끌린다고, 정말 많이 이야기했다.
그런데 200번째 사도는 어울리지도 않게 장르 소설 작가를 하고 있다.
‘나’를 연기한 그 버러지는 과거의 내가 원했다고 이야기해왔던 것을 실현시킨 것이 분명하다.
그럼 이 삼각별 차 키.
이게 뭔지도 나는 대충 짐작이 간다.
드림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커서 돈을 벌게 되면 저 차는 꼭 타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했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던 차.
아무래도 ‘그 차’가 맞는 것 같다.
일단 황소 차 키는 대충 옆에 치워놨다. 이따가 윤영수 비서실장한테 줄 생각이다. 중고로 팔아서 돈을 챙기든 누나가 가져가든 알 바 아니다.
삼각별 차 키는 주머니에 넣었다. 그대로 주방으로 갔다. 유통 기한이 지난 음식들이 보인다. 딱히 건질 만한 게 없다.
안쪽에는 작업실이 있었다. 꽤 많은 책들이 있고, 책상이 있었으며 그 책상에 끽해야 노트북과 데스크톱이 있다.
“음.”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 건데 신분증, 운전면허증이랑 여권, 지갑은 없다. 그때 서울 도심에서 죽였을 때 같이 날아간 거 같은데, 이것도 윤영수 비서실장한테 물어봐야겠다.
나는 곧장 윤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진시후 씨.
“지금 제 짝퉁이 살던 그 집에 와 있는데요.”
-아, 결국 가셨군요. 비밀번호는 알고 계십니까?
“몰라서 문 부수고 들어왔습니다.”
-……그거, 그러면 보안 업체에서…… 아, 아니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툭 투툭 툭.
워치를 두드리는 소리다. 무언가를 입력하는 듯하던 윤영수가 이내 내게 말했다.
-해결했습니다. 안에는 뭐, 건질 거 있습니까?
“없네요. 끽해야 노트북 하나랑 데스크톱 하나인데, 아까 슬쩍 보니까 비번이 걸려 있더라고요. 이거 풀 수 있습니까?”
-예. 디지털 기기면 풀 수 있습니다. 제가 가지러 가겠습니다.
“지금 여기로요?”
-예, 지금 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여기 차 키가 두 개 있던데, 이거 차종이 뭡니까?”
-각각 21년식 AMG GTR, 32년식 한정판 인벤시블 쿠페Invencible Coupe입니다. 전자는 순수 가솔린, 후자는 전기차입니다.
설마 했는데 맞다.
AMG GTR. 내 드림카다. 전면이 길고 후면이 짧은, 영화 속에서 악당들이 탈 법한 차.
-사용하실 거면 그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GTR같은 경우는 21년식이지만 실사용이 거의 드물었고 킬로 수도 고작 400km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희 구원 길드에서 매 분기마다 점검을 했고 현재는 이상이 없습니다. 인벤시블 쿠페도 마찬가지고요.
고개를 저었다.
“이거 GTR만 타겠습니다. 인벤시블 그거는 그냥 중고로 팔아줘요. 아니면 비서실장님 가지셔도 되고, 그런데 면허증이랑 신분증 같은 거는요?”
-그때, 200번째 사도를 진시후 씨가 죽였을 때 회수해놨었습니다. 마침 지금 제가 들고 있는데 바로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전화를 끊으려던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린다.
“보안 업체가 왔나 본데요.”
-그럴 리가요. 제가 처리했…….
정말 미안한 소리지만 윤영수의 말은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현관문에서 나타난 남자의 면상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아니, 못 알아보는 게 이상했다.
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다. 시후야.”
잊을 수 없는 얼굴이다.
정말로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대로 손을 뻗어 눈앞에 있는 남자의 면상을 잡아챘다.
“켁…… 케엑…….”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가 당황한다. 아니, 내 생물학적 아버지, 진태섭이 당황한다.
“왜…… 왜 이러…….”
내 눈을 본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의 눈에 비친 내 눈빛은 매우 살벌했으니까.
“네가 왜 아직도 살아 있냐?”
어린 시절, 나는 이 남자에게 미친 듯이 얻어맞으면서 살았다. 청주에서 누나랑 함께 반지하에 살던 이유도 이 남자를 피해서 그곳으로 간 거다.
이 새끼는 사람 새끼가 아니다.
나를 패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어린 누나에게 성적인 학대를 했다.
확실히 하고 싶었다.
성적인 학대지, 강간이 아니다. 만약 내가 누나를 데리고 뛰쳐나오지 않았더라면 강간까지 갔겠지만 그건 막았다.
문제는 그 전의 과정이다. 가슴을 만지고 자기 성기를 누나에게 만져 달라는 등,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처먹던 소주병으로 그의 뒷머리를 내려친 뒤 누나와 함께 도망쳤다.
정확히 9살 때 도망쳤다. 그때 그 순간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선명하다.
도망친 누나와 나는 우리의 처지를 안쓰럽게 여기던 초등학교 때 선생님 덕분에 숨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중간에 놈이 찾아왔던 적도 있었다. 누나가 13살 때였는데, 그때 누나의 이마에 큰 흉터가 생겼다. 소주병으로 13살 여자의 머리를 내려찍었는데 흉터가 안 생기는 게 이상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때 오른팔이 부러졌다.
물론 부러지는 그 와중에도 돌멩이로 놈의 머리를 내려찍긴 했다. 야구 빠따로도 후려쳤다. 중요한 건 이런 적이 여러 번 있었다는 거다.
그런 놈이다.
누나와 나를 패고 어머니의 보험금으로 도박을 하고 도박에 져서 누나와 나를 걸기까지 했던 인간쓰레기.
설마 했다.
설마 이 새끼가 살아 있을까.
그런데 그 설마가 맞았다.
“시후야, 대체 왜 이러는 거니. 나다, 네 아비.”
표정 없는 얼굴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 * *
윤영수는 다급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들려온 그 목소리 때문이다.
진태섭.
분명 진태섭이다.
그 인간이 가장 말이 통하는 ‘진시후’의 집으로 간 거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기존의 진시후 행세를 하던 사도는 세간에서 착한 사람으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아버지의 과거를 용서하고, 그런 아버지조차 품은 채 함께 나아가는.
그런 놈이었고 윤영수의 입장에서 진태섭과 200번째 사도는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버러지였다. 가능하면 살처분이라도 하고 싶은 그런 버러지.
두 버러지 새끼가 손잡고 염병 떠는 동안 구원 길드가 뒤에서 처리한 일들이 수두룩빽빽하다.
윤영수가 뒤에서 뛰어다니지 않았더라면 저딴 언플이 가능했을 리 없다. 그런 윤영수는 지금 들려온 진시후의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네가 왜 아직도 살아 있냐?’
그 목소리에는 윤영수가 살면서 단 한 순간도 느껴 본 적이 없던 어마어마한 살기가 담겨져 있었다.
가야 했다.
“실장님, 정말 가실 거예요?”
“예, 가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먼저 드시고 들어가세요.”
더 이상 말할 여유도 없다는 듯 윤영수가 자리를 박찼다. 마침 진시후의 집은 가깝다.
섭섭하네, 그렇게 중얼거리는 차주연의 말은 못 들은 척했다.
순식간에 자리를 박찬 윤영수가 도심을 가로지른다.
빨랐다.
스킬 ‘헤이스트’와 ‘속력 증가’, ‘2단 부스터’를 섞어서 쓰는 중이다.
지금 윤영수의 속도는 시속 900킬로가 넘는다. 바람을 가르며 그는 청담 JAE아파트에 도착했다.
곧장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는 그러지 못했다.
콰아아아아앙-!!
퍼걱-!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섬뜩한 소리가 울렸으니까.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뒤쪽 아파트 입구 쪽에 ‘시체’가 있었다.
굉장히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린 시체답게 몸 안의 장기들 몇 개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시체다.
꿈틀꿈틀, 머지않아 움직임이 가라앉았다.
윤영수는 알 수 있었다.
저 흐릿한 면상과 피에 젖었지만 입고 있는 복장이, 길드에서 나올 때 보았던 ‘그’와 같았다.
진송이와 진시후의 아버지, 진태섭.
그가 지금 아파트에서 떨어져 내려 피떡이 됐다.
윤영수가 고개를 들었다.
창가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진시후다.
그는 행복하다는 듯 웃고 있었다.
* * *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그것도 육사 출신의 특수 부대 대위. 그리고 어머니는 성남에 있는 국군 수도 통합 병원의 간호 장교였다.
두 분은 각각 친인척 하나 없는 고아였기에 나와 누나는 친척이 단 하나도 없다.
어머니는 내가 5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치렀던 그때가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솔직히 말하면 5살 이전에 아버지가 어땠는지 자세하게는 모른다. 자상한 아버지였다거나 하는 그딴 것도 모른다.
그저 어머니의 몸에 상처가 많았고 가끔 방에서 욕설과 고성이 오가며 주먹질을 해 댔던 것 말고는, 정말 몰랐다.
누나를 통해 몇 가지를 들었었는데, 어머니는 그냥 맞고 살았다. 아버지는 매우 폭력적이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보험금으로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술 처먹고 때리고, 또 때리고.
돈을 잃은 게 나와 누나 잘못이라며 매일매일 우리를 팼다.
어느 날은, 정말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던 적도 있었다.
아마 내 나이가 8살 때였던 것 같다.
소령 진급에 밀렸다며 옷을 벗을 거라고, 그게 다 나와 누나 잘못이라고.
진태섭은 그런 남자였다.
육사 출신이, 그것도 소령 진급에 목을 매던 이가 떨어졌다는 건 그만큼 폐급이라는 뜻이었지만 진태섭은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렸다.
시간이 흘러 내가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말랐을 때, 나는 결심해야 했다.
아니, 결심했다.
여느 때와 같이 폭력이 시작됐다. 그때 나는 소주병으로 진태섭의 머리를 후려친 뒤 누나랑 도망쳤다.
오